느릿느릿 돌아보라, 봄빛 물든 청산도

유채밭 너머 푸른 바다… 구불구불 슬로길 걷기
  • 등록 2010-04-07 오후 4:38:00

    수정 2010-04-07 오후 4:38:00

[경향닷컴 제공] 완도 청산도에 가면 세 가지가 다르다. 첫번째, 거기는 푸르다. 서울처럼 칙칙하지 않다. 하늘과 바다만 푸른 게 아니라 들도 푸르다. 두번째, 담장도 길도 밭고랑도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굽고, 휘어져 있다. 반듯반듯 자로잰 듯 나누지 않았다. 휘면 휜 대로, 굽으면 굽은 대로 돌아간다. 한번에 다볼 수 없어 묘하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들쭉날쭉하지만 보기 좋다. 정감있다. 세번째, 느리다. 과속을 단속하는 카메라가 없다. (정말 못봤다) 말 그대로 슬로시티인데 굳이 카메라를 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청산도에 간 것은 얼마전 슬로길이 일부 개통돼서다. 3년 전 제주 올레길이 유명해지자 청산도에도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길을 다듬기 시작했다. 돌담도 돌아가고, 바다도 바라보면서 가는 이 길은 모두 40㎞. 현재는 21㎞만 뚫렸는데 이르면 올해 말까지 모두 개통된다.

슬로길 1코스를 따라가봤다. 6.2㎞로 3시간 코스. 도청리 부두에서 시작된 길은 ‘서편제’에 나왔던 밭고랑길로 이어진다. 영화에서 주인공 가족들이 어깨에 흥이 올라 북장단에 맞춰 아리랑을 부르던 돌담을 끼고 가던 밭길이다. 밭을 나눈 돌담장 너머 마늘은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파랬다. 유채밭은 4월 중순 축제행사에 맞춰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심어놓아서 꽃이 만개하지는 않았다. 유채밭 너머로 바다도 파랬다. 청산(靑山)이란 이름과 딱 어울린다.

“옛날에는 선산도(仙山島)라고도 했다네요. 아름답다는 뜻이죠.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만큼 좋다는 뜻 아닐까요.”(김송기 슬로시티 사무장)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을 지나 바윗길로 접어들면 해안 절벽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여기서 도청리 부두가 잘 보인다. 부둣가에서 보면 마을 풍광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지만 여기서 보면 마을은 양쪽 어깨에 파란 바다를 끼고 있다. 풍경만 따진다면 정말 좋은 터다. 좌로 돌아가도 바다, 우로 돌아가도 바다인 곳이 우리땅에 얼마나 될까. 그저 부럽기만 하다.

길은 절벽 허리쯤을 파고들며 돈다. 과거 여행자들은 언덕배기에 있는 세트장만 보고 돌아갔다. 그 너머에 길은 들여다볼 생각도, 호기심도 없었다. 새로 뚫렸다는 길이라서 들어갔는데 “와…!” 한다. 한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다도 모습을 바꾼다. 양식장도, 바위 절벽도 보인다. 물빛도 모퉁이마다 다르다. 섬들도 여럿 보였는데 안내판에는 앞에 보이는 큰 섬이 보길도라 쓰여있다. 절벽 전망대의 이름은 새땅끝. 주민 왈. “글쎄 해남만 땅끝이 아니라 여기도 따지고 보면 땅끝이지라….”

길옆에는 청산도 아니면 보기 힘든 초분이 있다. 초분은 풀무덤이다. 진짜는 아니고 축제를 위해 만든 것이다.

“옛날에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뱃일 나간 아들들이 들어와야 장례를 치르죠. 그래서 풀로 임시 무덤을 쓴 겁니다. 그게 풍습이 된 거죠. 지금도 실제로 청산도 사람들은 초분을 만들어요. 한 2~3년 정도 있다가 다시 매장을 하죠.”

김송기 사무장은 “4월 중순 열리는 걷기 행사 때 초막 안에 놓인 관에 누워보는 이벤트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청산도 마을의 제모습을 보려면 실은 신흥리나 동촌리 상서리 마을까지 들어가봐야 한다. 슬로시티란 이름과 어울리는 마을이 바로 거기 있기 때문이다. 담장은 돌로 쌓았고, 담장 너머로 동백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목이 뚝 꺾인 붉은 동백이 검은 돌담 아래 떨어져 있다. 마을 옆으로는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는데 이리 구불 저리 구불거린다. 청산도에 가면 들녘만, 마을만 바라봐도 기분좋다. 칼처럼 날카롭지 않고 모든 게 둥글둥글해서다. 창처럼 솟은 빌딩숲과 각지고 모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마을에 오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게다가 봄빛이, 그것도 초록빛이 그렇게 환할 수 없다. 햇살이 고랑고랑 빈틈없이 떨어지는 다랭이밭에서 봄바람에 이리 저리 휩쓸리는 청보리를 보고 있으면 “여기 눌러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청산도는 논도 특이하다. 다락논이 다랭이밭뿐 아니라 다른 데서 보기 힘든 구들장논이 있다. 구들장논이란 대체 뭘까. 한 뼘의 논이라도 늘리려 했던 먼 옛날, 구들장 같은 넓은 돌판을 바닥에 깔고 논을 만들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 때 일본인들이 이 섬까지 와서 쌀을 공출해갔다고 한다. 1970~80년대 교과서에 청산도는 어업전진기지로 나왔다. 삼치 같은 고급어종이 많이 잡혔던 천혜의 어장이었던 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잡는 어업은 사양길, 기르는 어업이 주종을 이뤘다. 청산도는 양식업을 하기에도 좋아서 근해는 전복양식장이 많단다. 뭐든지 부수고 새로 짓는 여느 마을들과 달리 원형까지 훼손되지 않은 섬이니 여행자들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청산도엔 이 외에도 눈여겨볼 게 많다. 고인돌도 있고, 갯돌해변도 좋다. 주변에 섬들이 많아서인지 파도마저 와락 달려들지 않는다. 느릿하게 밀려온다. 청산도의 봄은 초록이다.

▲ 여행길잡이… 완도서 뱃길로 50분

*완도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탄다. 오전 8시·11시20분, 오후 2시30분·6시 등 하루 4차례 배가 뜬다. 주말에는 배편을 두차례 더 늘려 운항할 때도 있다. 50분 걸린다. 청산도에서 서둘러야 할 때가 있다. 차를 가지고 갈 경우 나올 때 선착장에서 줄을 서야 한다. 평일은 1시간 전, 주말에는 더 일찍 나와야 한다. 도착하자마자 관광안내소에서 몇 시쯤 나와야 하는지를 알아두고 떠나는 게 좋다. 배삯은 편도 7150원. 청산도에서 나올 때는 6500원이다. 차량 도선료는 싼타페 기준으로 편도 2만6500원. 완도 여객선터미널 1544-1114. 청산농협(선박운항사) (061)552-9388

*차가 없을 경우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 현지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셔틀버스는 주말의 경우 오전 9시와 오후 1시에 떠난다. 2시간30분 정도 가이드가 함께 타서 청산도의 명소를 안내하는 식이다.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마을버스는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한다. 청산버스 (061)552-8546, 청산나드리 마을버스와 개인택시 (061)552-8747, 청산택시 (061)552-8519.

*2010 ‘청산도 슬로우걷기 축제’가 10일부터 5월2일까지 열린다. 개막식은 17일. 슬로길 행사는 1코스에서 열린다. 부두에서 도락리~서편제세트장~화랑포~새땅끝~초분~당리갯돌밭~봄의 왈츠세트장~도청항으로 이어지는 6.2㎞ 코스. 2시간40분 걸린다. www.slowcitywando.com은 걸핏하면 트래픽 초과로 안열린다. 완도군홈페이지에서 청산면을 찾아보면 부둣가 등대모텔(061-552-8558)을 비롯한 여관과 민박집, 음식점 정보가 나온다. http://tour.wando.go.kr 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50-5224, 관광안내소 (061)550-5152.

*우리테마투어(02-733-0882)가 청산도와 보길도를 묶는 1박2일 상품을 판다. 14만9000원. 우등버스타고 가는 보길도, 청산도, 소록도, 통영을 엮은 2박3일투어는 3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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