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주식 투자에 신중해졌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와 비교하면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성장 위주 정책 공약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식시장이 상승랠리를 펼쳤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지난해 대선 이전에 비해 여전히 6.2% 높은 상태로 최근 69거래일 동안 1% 이상 떨어진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현금 보유를 늘리거나 잠재적인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위험 부담을 줄이는 등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은 펀드내 현금 보유비중을 지난해 12월 4.8%에서 이달 5.1%까지 늘렸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의 평균 4.5%를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 및 중국 위안화 평가 절하 우려가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대선 직후 급등했던 금융주가 지난주 지수를 끌어내렸다는 점도 눈에 띈다. KBW나스닥 은행지수는 취임일 전 5거래일 동안 2.8%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지난 18일까지 일주일 동안 글로벌 금융 섹터에서 7억4900만달러를 회수했다. 글로벌 금융섹터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은 17주 만에 처음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 및 이에 따른 상승랠리에 대해 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투자자들이 미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 전망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주가에 반영된 결과라고 WSJ은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경제 정책을 내놓을 것인지 좀 더 객관적으로 확인하려고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투자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및 감세 등을 기대하고 있지만 시행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주가 상승 압력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마이클 프레드릭 블랙록 포트폴리오매니저는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얼마나 다른 정책을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가 주식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올해 세계 정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주식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올해 프랑스 대선, 독일 및 네덜란드 총선 등에서 얼마나 포퓰리즘을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남아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