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에 기술戰士가 없다

이공계출신 격감…그나마 공장 발령나면 사표
  • 등록 2004-01-26 오후 8:28:36

    수정 2004-01-26 오후 8:28:36

[조선일보 제공] 세계 자동차업체들이 미래 승부사업으로 사활을 걸고 있는 차세대 엔진 개발 경쟁. 치열한 이 레이스에서 도요타·혼다·폴크스바겐은 이미 프리우스Ⅱ·인사이트 등 차세대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 시제품을 내세워 결승점을 향해 질주 중이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업체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차세대 엔진에 쓰일 신소재 개발조차 착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에 자동차용 강판과 소재를 공급하는 철강업체인 현대하이스코.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차세대 엔진 개발을 위한 박사급 연구원 8명을 채용하기 위해 국내 주요 대학의 재료·금속공학과를 샅샅이 훑었다. 3개월여가 흐른 지금까지 채용한 인원은 제로(0). “반도체·세라믹 분야의 재료공학 전공자는 있어도 철강이나 금속 신소재 분야에서는 아예 전공자를 찾을 수 없었다.”(이용진 수석연구원) 4~5년 전부터 빨간등이 켜진 이공계 대학 기피 현상이 대학 울타리를 뛰어넘어 산업현장에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신기술·신제품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제조업의 세계. 하지만 한국 제조업체들은 “신기술을 개발할 사람이 없다”고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산업 현장에 ‘신기술 암흑’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악몽의 징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기술 전쟁의 최전선에서 승부를 겨루어야 할 ‘기술전사(戰士)’ 후보생들이 급감하고 있다. 97학년도 대입 수능에서 자연계열 응시자는 35만6560명. 2003학년도에는 19만8835명으로 절반 가량으로 추락했다. 기술전쟁 지휘관으로 활약해야 할 박사급 인력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자연대 박사과정 경쟁률은 0.51 대 1, 공대 박사과정 경쟁률은 0.77 대 1.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그나마 이들마저도 학교 울타리를 나온 뒤에는 과학을 신기술로, 신기술을 신제품과 신공정으로 승화시키는 산업현장을 외면하고 있다. 산업용 섬유인 타이어코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효성은 지난 연말 신입사원 중 15명을 울산 공장에 배치했다. 생산공정을 혁신할 섬유공학·화학공학 전공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5명이 새해 출근 첫날 사표를 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실업자)이라는 청년 실업의 시대, 그들 기술 전사들의 사표의 변은 뜻밖이다. “현장 근무가 싫답니다. 지방이라서 더 싫답니다.”(효성 울산공장 임규동 인력운용팀 과장) 기술에 대한 집념을 상실한 기술 전사들. 이들이 만들어낼 현실은 자명하다. 신기술과 첨단기술의 최대 격전장인 미국 특허 출원 시장에서 한국은 패퇴하고 있다. 90년부터 97년 사이 한국이 출원한 특허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31.39%. 세계 전체 평균 증가율(4.57%)의 6.9배였다. 그러나 이공계 기피가 본격화된 97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의 특허출원 증가율은 세계 평균(11.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5.5%로 떨어졌다. ‘고등학생들의 이공계 대학 기피 이공계 대학생과 석·박사 출신들의 산업현장 기피’로 이어지는 연쇄 흐름이 한국을 기술 빈국(貧國)이라는 낭떠러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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