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 "블랙리스트 조사 후 더 큰 분노…다시는 없어야"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조사신청서 제출
"검찰 조사 통해 개인에 대한 사찰 확인해"
황석영 작가 "21세기에 일어난 야만적 사건"
  • 등록 2017-09-25 오후 12:33:39

    수정 2017-09-25 오후 12:33:39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 작가 황석영(오른쪽)과 방송인 김미화가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 12층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 조사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검찰 조사를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국정원이 나에 대해 작성한 문건을 확인한 뒤 매우 불쾌하고 화가 났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MB 블랙리스트’로 검찰에 참조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방송인 김미화는 “조사를 통해 국가에서 개인에 대한 사찰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것이 내가 사랑해온 대한민국인건가 싶었다”며 한탄했다.

김미화는 25일 서울 광화문 KT빌딩 12층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를 방문해 조사신청서를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검찰 조사에서 알게 된 사실과 그동안의 심경을 밝혔다.

김미화는 “국정원 발표로 블랙리스트가 사실로 밝혀진 뒤에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졌다”면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서 그동안 격었던 어려움에 대해서 어렵겠지만 조사를 신청해달라고 요청해 선배된 입장에서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를 통해 확인한 국정원 문건 내용도 일부 공개했다. 김미화는 “문건을 보면 처음에는 ‘편파·좌편향 진행자 퇴출 교체 권고’ 등 내 입장에서는 ‘말랑말랑한’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골수 좌파 연예인’ ‘종북 세력’ 등으로 나를 표현하더라. 심지어 마지막 페이지에는 ‘김미화 수용불가’라고 써있었다”며 “도대체 어디에서 나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2010년 제기했던 KBS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한 내용도 국정원 내부 문건에 있었다. 김미화는 당시 우파 성향의 언론인 겸 시사평론가 변희재가 운영하던 한 매체의 기자로부터 사문서 위조죄로 경찰에 고발을 당했으나 사실과 달라 기각됐다.

김미화는 “문건 중에는 사문서 위조에 해당하지 않아 사법처리도 되지 않았던 이 사건을 통해 나에 대한 ‘고립 유도’를 하라는 내용도 있었다”면서 “당시 나를 고발했던 사람들이 국정원의 행동대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 작가 황석영(왼쪽)과 방송인 김미화가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 12층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 조사신청서를 제출한 뒤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작가 황석영도 함께했다. 황 작가는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자행해온 블랙리스트 관련해 공개적으로 조사를 요청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썩 내키지는 않았다. 블랙리스트조차 필요없는 불온한 작가로 지목된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속속 드러나는 예를 보면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조사 신청 이유를 밝혔다.

황 작가는 이명박 정부 시절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인터넷에서 모함과 공격을 받았다. 그는 “2010년 가을 광화문에서 당시 문체부 출입을 하던 국정원 직원을 만나 ‘이제부터 정부 비판을 하면 개인적으로 큰 망신을 주거나 폭로하는 식으로 나가게 될 테니 자중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황 작가는 2011년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과거 방북 직후 안기부와 공안당국이 주장했던 혐의를 교묘하게 짜깁기한 내용이 인터넷 개인 블로그를 통해 유포됐다. 황 작가는 “그때 떠돌던 내용은 국정원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라면서 “최초 유포자가 누구이고 그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작가회의 성명서 발표를 계기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황 작가는 “2014년부터 해마다 6월이면 국민은행 동대문지점으로부터 검찰에서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해 제공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2016년 3월 파리 도서전에서는 한국이 아닌 프랑스 조직위를 통해 초청을 받았다. 행사가 끝난 뒤 문체부에서 나를 참가하게 한 실무자를 추궁해 시말서를 쓰게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폭로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개작 요구를 받은 사실도 공개했다. 황 작가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작가회의 성명서 발표 이후 이틀 뒤 청와대 교문수석과 외교안보수석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내가 이런 일에 연루되는 것을 염려한다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개작과 함게 ‘통일위원회’에 들어와 달라고 해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같은 적폐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이번 기회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황 작가는 “20세기의 야만적인 사건이었던 매카시즘이 21세기에 보다 치졸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국가가 이런 일을 자행한 것은 ‘문화야만국’으로서 치부를 드러낸 일”이라며 “모두가 다 같이 반성하며 이를 바로 잡아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지난 18일 첫 대국민 보고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의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두 사람의 조사 신청까지 포함해 총 56건이 접수돼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민간위원을 맡고 있는 시인 송경동은 “‘MB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 배우 문성근, 영화감독 권칠인, 변영주, 김조광수 등이 조사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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