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나타난 기묘한 토끼, 기괴하고 아름다운 동화

안무가 허성임 신작 '토끼는 어디로 갔나요?'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첫 선
인간이 내재한 욕망과 두려움 현대무용으로
조명·음악·무대장치·몸짓으로 펼친 판타지
  • 등록 2024-03-07 오후 4:09:09

    수정 2024-03-07 오후 4:09:09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많은 창작물에서 토끼는 모험의 세계로 이끄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만난 토끼는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동화로 관객을 초대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무용 작품 ‘토끼는 어디로 갔나요?(Where is the Rabbit?)이다.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무용 ‘토끼는 어디로 갔나요?’(Where is the Rabbit?)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국과 한국, 벨기에 등에서 활동 중인 안무가 허성임이 자신이 이끄는 현대무용 단체 허 프로젝트와 함께 선보인 신작이다. 토끼를 형상화한 역동적인 움직임과 그림자를 통해 인간이 내재한 욕망과 두려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시도를 담았다.

허성임 안무가는 ‘동굴, 바운스, 외로움’을 작품을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꼽았다. 작품은 동굴 속에 들어온 듯 다소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막을 올렸다. 토끼의 모습을 한 무용수가 침묵을 깼다. 무용수가 상자 속에 웅크리고 들어간 채 한쪽 팔로 토끼의 얼굴을 표현한 기이한 모습이었다.

침묵 속에서 춤추던 토끼는 무용수 그레이스 엘렌 바키와 마주한다. 그레이스 엘렌 바키는 벨기에 니드컴퍼니의 안무가이자 허성임 안무가의 오랜 창작 파트너다. 허리를 앞으로 수그리고 양팔을 바닥에 짚은 뒷모습을 한 무용수 5명이 뒤이어 등장했다. 이들은 일정한 박자에 맞춰 다리를 흔들며 토끼의 뛰는(바운스) 모습을 표현했다. 공연 중반부에선 무대 뒤편 스크린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 그레이스 엘렌 바키를 먹어 삼키듯 공격했다. 내면의 외로움,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기운에 잠식돼 가는 모습 같았다.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무용 ‘토끼는 어디로 갔나요?’(Where is the Rabbit?)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품은 비극적인 분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동굴을 빠져나온 듯 무대가 다시 밝아오자 천장에서 수많은 바(bar)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무대장치들이 마치 거대한 물결무늬처럼 펼쳐지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무용수들도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은 듯 마음껏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유와 환희가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허성임 안무가에 따르면 작품 속 토끼는 ‘순수함’의 표현이다. 그는 “토끼는 우리에게 옛날부터 아주 친숙한 동물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현실과 이상을 연결해주는 중간자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라며 “이 작품에서 토끼는 순수한 이미지이고,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함을 찾는 여정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외로움과 두려움은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자 그림자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우리’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통해 아주 작고 짧은 달콤함을 느끼면 좋겠다”고 작품의 주제를 밝혔다.

안무가의 설명이 꼭 정답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것은 ‘토끼는 어디로 갔나요?’는 처음엔 다소 기괴해 보이지만, 매우 아름답게 끝난다는 점이다. 조명과 음악, 그리고 무대 장치와 몸짓만으로 펼쳐 보인 경이로운 판타지였다. 공연 시간이 50분이다 보니 작품의 주제를 찬찬히 곱씹으며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힘든 일상에 찌든 현대인에게도 기묘한 토끼와 함께 신비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싶은 ‘순수함’은 어딘가에 숨어있음을 일깨우는 작품이었다.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무용 ‘토끼는 어디로 갔나요?’(Where is the Rabbit?)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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