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신 총장 직무정지 결정 '유보'…정부-과기계 갈등 일단 '봉합'(종합)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카이스트(KAIST) 이사회가 국가 연구비 횡령 등의 의혹을 받는 신성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을 유보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내 과학기술계의 갈등은 잠시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일단 양 측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피하면서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카이스트 이사회가 무리하게 총장 직무 정지라는 초유의 사태가 초래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 사진=카이스트.

카이스트 이사회는 14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제 261차 정기이사회를 개최해 신성철 총장의 직무정지 안건에 대해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유보’를 결정했다. 카이스트 이사회는 연구비 횡령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만큼 시시비비가 가려진 후에 이사회를 다시 열어 직무정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카이스트 이사회 간사인 김보원 카이스트 기획처장은 이사회 직후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이번 이사회에서는 최고 지성의 전당인 카이스트의 총장 직무를 정지시키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이사회는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직무정지 건은 차기 이사회에서 심의·의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카이스트 이사회는 과기정통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뜻도 밝혔다. 김 처장은 “카이스트 이사회는 과기정통부가 관련 법령과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법적 조치를 이행했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를 존중한다”며 “이제는 이사회가 과기정통부의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카이스트의 명예와 그 구성원의 자긍심을 지킬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카이스트 이사회는 이번 신 총장 사태로 인한 카이스트의 혼란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신 총장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 처장은 “이사회는 한국 과학기술의 긍지인 카이스트가 타 기관의 감사 결과에 의해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총장은 현재의 상황으로 카이스트와 과학기술계에 누를 끼친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하고 자중해 주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앞서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 52조의 3 제2항에 따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신성철 총장의 직무정지’를 요구하는 공문을 지난달 30일 접수하고 이날 열린 제 261차 정기 이사회의 공식 안건으로 이를 상정했다.

이날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이사회에는 이장무 이사장, 구혁채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정책국장 등 이사 9명이 참석했다. 이사는 신 총장까지 총 10명이나 신 총장은 제척 사유에 해당돼 참석하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과기정통부가 요청한 신 총장 직무정지 안건을 상정하고 과기정통부 측 당연직 이사인 구혁채 국장으로부터 과기정통부의 입장을 듣고 참석 이사들의 의견을 차례로 청취했다.

과기정통부와 기획재정부, 교육부 정부 측 당연직 이사들은 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으나 다른 이사들이 신 총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직무정지를 결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 이사장은 신 총장에 대한 직무 정지 결정을 유보하고 차기 이사회에서 재논의하는 안에 대해 이사들의 의견을 물어 과반수 찬성으로 이를 최종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성철 총장은 이사회 결정 직후 “본인의 일로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어 “정부관계자를 포함한 이사들의 결정에 감사하다”며 “더욱 신중하고 겸허하게 대학을 경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신 총장이 DGIST 총장 재임 당시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연구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면계약을 맺어 국가연구비 22억원을 LBNL로 빼돌리고 제자 임 모씨를 겸임교수로 편법 채용했다며 그를 횡령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KAIST 이사회에 총장 직무정지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