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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신보 대졸공채, 고급인력 978명 탈락
- [edaily] 신용보증기금 대졸 신입직원 공채에서 공인회계사(CPA) 80명, 세무사 20명, 석사이상 고학력자 878명(박사 6명 포함)이 탈락한 것으로 나타나 고급인력의 취업난을 실감케 했다.
신보에 따르면 70명을 뽑는 이번 공채에는 총 8826명이 지원, 12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합격자중에는 공인회계사 5명, 세무사 2명, 석사 17명, 토익성적 900점이상 26명, 학점 4.0이상 37명 등이 포함됐다. 반면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와 석사이상 고학력자 등 1000명에 가까운 고급인력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신보는 "대졸자 취업난을 반영하듯 지원자의 상당수가 대학 평균성적 최상위권에 있는 등 자질이 우수한 지원자가 많았다"면서 "이번에 탈락한 사람들도 우수한 인재들인 만큼 낙심하지 말고 앞으로 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바란다는 위로 편지를 발송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실시한 신입행원 채용시험에서도 토익만점자와 CPA 50여명이 무더기로 탈락, 높은 취업문턱을 증명했다. 은행권의 경우 취업 경쟁률이 최고 200대 1을 넘어섰고 MBA나 CPA 등이 대거 몰린 것으로 나타나 이들중 상당수도 취업문을 통과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LG연구원은 최근의 대졸 취업난은 시작에 불과하며 적어도 오는 2007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11월 고용동향에서도 대졸 예정자들이 포함된 20대 계층의 실업률이 전달보다 0.8%P 급등, 정부가 청년실업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 펜타클아카데미,온라인 교육사업 진출..미국 ESI와 제휴
- [edaily] 펜타클벤처아카데미(대표 임민수)는 미국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교육기업인 ESI 인터내셔널사(www.esi-intl.com)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온라인 교육서비스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제휴는 ESI 인터내셔널의 조지워싱턴대 PM 석사자격증 코스 및 국제공인 PM자격증인 PMP 시험 준비 코스, PM 컨설팅 방법론 등 ESI의 온오프라인 교육과정을 펜타클벤처아카데미에 도입하고, 공동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펜타클은 ESI와의 제휴를 통해 올 연말부터 국내 온라인 교육사이트들과 연계, ESI 교육프로그램을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퓨전클래스로 운영하고, 장기적으로 국제공인 PM 전문 교육사이트를 구축할 방침이다.
1981년 설립된 ESI 인터내셔널社는 시스코, 컴팩, IBM, 모토롤라, 오라클, 루슨트테크놀로지, 나스닥, 보잉 등 표춘誌 선정 500대 기업 등 연간 200여 고객사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매니저(PM) 및 계약관리자(CM)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ESI의 교육프로그램은 국제공인협회인 PMI의 공인 교육프로그램으로, 국제공인 PM자격증인 PMP의 준비과정임과 동시에 자격유지과정이며, 조지워싱턴大 연계 과정 이수 時, 해당 학점과 6개의 마스터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다.
임민수 펜타클벤처아카데미 사장은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프로젝트매니저의 양성과 역량 강화를 통해 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쟁력 강화에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제휴를 위해 방한한 ESI 인터내셔널사의 르로이 수석 부사장은 "인터넷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은 ESI의 글로벌 전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⑨박성진 삼성투신 차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삼성투신운용의 스트레티지스트인 박성진 차장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운명의 장난(?) 교수의 꿈이 증권사 채권맨으로>
-그럼 신영증권에 입사한 것은 어떤 계기에서입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요. 제가 준비했던 학교가 인디애나 주립대였어요. 미국 내에서도 빅 10에 들어가고 무엇보다도 한국학자들 중 여기서 학위받은 분들이 많은 곳이죠.
제 석사논문을 영어로 번역해서 원서를 넣었더니 그 쪽에서 “좋다. 너는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이게 왠 떡이냐 싶었죠. 돈도 없는데 미국에서 다시 석사부터 시작하려면 좀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까.
의기양양 비자를 받으러 대사관에 갔더니 아까 그 여자 면접관이 “your job responsibility is not enough guarantee to come back. Your financial status is not enough guarantee to finish your coursework” 이라고 하더군요. 기가 막혔죠. 그때가 12월이었어요. 1월에 미국으로 가서 2월부터 시작하는 강의를 수강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 때 이미 결혼을 해서 기혼자용 기숙사에 제 피 같은 돈 100불을 예치금으로 송금까지 한 상황이었어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했죠. 그런데 전혀 안 통해요. 안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경을 불러서 끌어낼 태세에요.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 느껴본 적 있으십니까. 한 남자의 꿈과 인생이 일개 미 대사관 직원의 손에서 박살이 난 겁니다.
인디애나 주립대에 전화를 했습니다. 창피해서 비자가 리젝트됐다는 소리는 죽어도 못하겠고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다음 달에는 못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괜찮다. 2년 안으로만 다시 하면 된다. 그렇지만 2년이 지나면 토플과 GRE를 새로 시험 봐서 최신 성적을 보내주면 또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낙담한 마음을 조금은 지울 수 있었죠. 그 때 병도 좀 앓았는데 가장이니 어떡합니까. 먹고는 살아아죠. 신문을 탁 펼치고 구인광고를 막 뒤졌어요.
취직을 하기로 결심하고 보니 12월에 신입사원을 뽑는 곳이 딱 두 군데였어요. 신영증권이랑 디지털조선. 처음에는 당연히 디지털조선에 가고 싶었습니다. 대기업공채는 이미 가을에 끝났고 신영증권은 회사 자체에 일이 있어서 12월로 늦춰졌다고 하더군요. 신영증권의 일정이 먼저 시작됐는데 모집분야에 연구/조사 분야가 있었어요. 일단 두 곳에 모두 원서를 넣었죠.
-증권이 무엇인지는 아는 상태에서 입사를 결정한 것은 아닐텐데요.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유학준비를 하면서 잠깐 토플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그 학원 바로 옆에 동서증권이 있었어요. 학원에서는 초급반 영어랑 주부회화를 담당했습니다. 아침에만 좀 바쁘고 오후에는 내리 놀아요. 그리고 학생들 수업끝나고 직장인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시간에 연이어 수업이 계속되는 거죠. 학원강사가 참 고달픈 직업입니다. 건강도 많이 망쳐요.
낮에 시간 많겠다 바로 옆에 증권회사 있겠다. 그래서 순진한 집사람을 꾀서 주식을 하겠다고 졸랐어요. 당시 집사람이 피아노 레슨을 20개나 해서 2000만원을 모았거든요. 그 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이 돈을 불려서 유학가자는 결심을 하고 증권계좌를 만들었더니 처음에는 잘 되더라구요. 금방 2500만원으로 돈이 불어났거든요. 저는 주식의 ‘주’자도 몰랐고 기업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어요.
들어본 회사라고는 아버님이 다니셨던 동아건설이 고작이었어요. 당시 성수대교 붕괴사태 때문에 동아건설주가 무척 쌌어요. 그래서 “음 저건 낙폭과대주야” 라고 매입했죠. 하하. 그리고 당시 금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LG계열사 주식도 샀고요. 그런데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 그 다음부터는 폭락하기 시작하는 겁니다.(웃음)
그 후 손절할 때가 왔는데도 그걸 못했어요. 개미투자자의 전형적인 실패사례죠. ‘손절하지 않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를거야’ 라는 말도 안되는 류의 생각들. 되긴 뭐가 됩니까. 유학 갈 날짜는 다가오고 점점 돈은 줄어드는 지경이 됐어요. 대충 정리를 해보니까 1500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 남았더군요. 속으로는 “그래도 선방했다. 이게 다 내가 블루칩과 낙폭과대주를 산 덕택이야”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하
유학이 취소되고 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내가 왜 주식투자에 실패했는지 증권회사에 들어가서 몸소 알아봐야겠다는 오기죠. 전 그 당시만해도 증권회사 직원들은 그 이유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딴에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는데 그 길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디지털조선은 어떻게 됐냐구요? 제가 학부는 놀아서 학점이 나쁜데 대학원은 all A였어요. 대학원 all A지, 토플 점수 우수하지…나름대로는 서류는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디조에 원서를 보냈어요. 그런데 서류에서 떨어졌습니다.(웃음) 그래서 지금도 조선일보는 감정이 좋지 않아요.
<우연의 연속, 채권분석가가 되기까지>
-신영증권에 들어자마자 바로 채권부로 갔습니까?
▲연수를 받고 신입사원들에게 지원부서를 적으라더군요. 1순위는 무조건 조사부 적었죠. 한 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두번째는 국제부. 폼 나잖아요. 3순위. 주식부. 왜 주식을 하다가 망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발령을 하는데 인사부장이 “박성진 채권부” 하고 부르는 겁니다.
인상 팍 쓰면서 ‘도대체 채권부가 뭐하는데야?’ 라고 생각했어요. 인사부장께 물었죠. 채권부가 뭐하는 곳이냐고. 그랬더니 인사부장이 “아파트 분양하잖아. 거기서 채권받거든. 분양하고 나오는 사람들 앞에서 채권, 채권 하면서 소리지르고 가서 팔아. 너 명동이나 주택가에서 채권, 채권하면서 팔러다니는 사람들 본 적 없냐? 그거하는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토씨하나 다르지않게 전해드리는 거에요. 반은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황당했어요.(웃음) 채권이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데다 신입사원 교육 때 채권시간이 무지 재미없었거든요. 수학공식 막 쓰고 계산도 복잡하고.
채권부에 갔더니 지금 LG투신에 있는 최원녕 과장이 “네가 채권부냐?” 라고 인상을 쓰면서 말하는 거에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초등학교 선배더라구요. 그것 때문에 꽉 잡혀서 찍 소리도 못하고 살았죠. 하하.
-결국 전공이나 희망사항과는 전혀 상관없이 채권판에 들어왔군요. 처음에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수도결제죠뭐.(증권사가 채권매매 중개시 현물 채권과 대금을 교환, 결제해주는 것) 처음 증권사 채권부에 가면 하는 일이 그거 밖에 더 있겠습니까. 속된 말로 인생이 완전히 골로 가더라구요. 그전까지는 알튀세르, 레비스트로스와 라캉을 논하던 나름대로 먹물먹은 지식인이라고 제 딴에 자부했는데 말이죠. 하하. 인생이 이렇게 꼬이고 저렇게 꼬이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더군요. 그냥 전공살려서 기자나 됐으면 폼이라도 날 거 아니겠어요. (웃음)
-수도는 얼마나 했습니까?
▲9개월 정도? 한 일년 가까이 했습니다. 제가 신입사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좀 많았어요. 다행인 것은 저랑 한 조가 된 친구가 운전을 전혀 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운전을 하고 그 친구가 막 뛰어다니는 일을 했죠(웃음) 제가 어떤 건물 앞에 차를 탁 세우면 그 친구는 미친 듯 뛰어올라가서 도장 찍어오고. 수도를 직접 해 봐야 채권의 비애를 몸소 체험할 수 있어요. 길이 막힐 때는 원효대교를 뛰어서 여의도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많았어요. 그때 거래가 많았거든요. 선배들이 “야 이 자식아 빨리빨리 처리 못해? 느려터져 가지고선” 뭐 이렇게 혼이났죠. 저도 열이 받으면 “우리 회사에서 매매보고서 나보다 더 빨리 작성하는 사람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나보다 더 빨리 하는 사람없으니까 늦는다고 갈구지 마” (웃음) 이렇게 맞받았죠.
<“너는 컴퓨터도 잘 다루니까 기술적 분석이나 한번 해봐라”>
-채권의 기술적 분석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그것도 제가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신영증권 황 부장께서 “너는 컴퓨터도 잘 다루니까 이거 한번 해봐라”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리셔서 하게 된 겁니다. 입사하고 3개월 후부터 수도업무랑 채권분석을 같이하기 시작했어요. 채권단가, 이론부터 알아나갔죠. 실제로 해보니까 제가 한 것이 잘 맞아 떨어지더라구요. 잘 맞을 때까지 조정도 이리저리 해보고. 여하튼 재미있었습니다.
-채권관련 책은 몇 종류나 봤습니까.
▲기술적 분석에 관한 책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아요. 거기에 나오는 공식들을 보는거죠.
제가 좀 컴퓨터를 다루니까 그 공식들을 프로그램으로 짜고 그것을 또다시 엑셀에서 구현하는 작업들을 했어요. 조정과정을 몇 개월 거치니까 신기할 정도로 잘 맞는 거에요. 그때 당시에는 족집게처럼 들어맞는다고 느껴졌을 정도니까요.
-그게 몇 년도인가요.
▲입사하던 해였으니까 96년이군요. 그런데 이유가 있더라구요. 그 당시 시장은 지금처럼 시가평가(market to market) 시장도 아니었고 대부분 시장참가자들이 기관투자가다 보니까 현재에 비해 모멘텀이 훨씬 분명한 시장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것이 아니라 한 번 모멘텀이 생기면 관성에 의해서 일정 기간은 그것이 계속 유지가 된 거죠. 단기 딜링을 해서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고 자신감도 막 생겨났습니다. 아침회의에서 “금리 어떻게 될 것 같나?”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코멘트를 하고. 그러면서 “아 나는 이쪽 방면에 소질이 있는가봐. 분석의 천재라니까” 라는 착각에 빠지게됐죠(웃음).
그 시절에는 어디 인터넷이 있습니까. 나오는 모든 금융데이타를 일일이 손으로 작업했어요. 한국은행 데이터, 경기동향, 통계청 데이터를 수기로 입력했다는 거 아닙니까.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재미를 느낀 것이 가장 큰 이유였군요.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안하고 말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비자받을 때 흠 잡히지 않고 돈 모아서 곧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습니다.(웃음) 학원강사랑은 엄청난 차이가 있잖아요. 증권회사라면 미국사람들도 job responsibility가 어쩌니 저쩌니 못할 거 아니겠어요. 2년간 괜찮다는데 금방 떠나려고 했죠. 그런데 학위받는 일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유학 갈 형편도 안됐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학계만큼 정치적인 곳도 없잖아요.
물론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없을 수는 없죠. 사람인데. 수도하면서 도장받으러 다니려고 내가 이때까지 공부했나. 이런 생각들. 그래서 대학때부터 다니던 교회에도 뜸하게 되고. 저는 토요일 교회모임 때문에 대학시절 내내 그 흔한 MT도 한번 안 간 사람인데 말이에요.
‘이렇게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을 모셨는데 생 양아치 같은 애들은 다 잘되고 나는 남들 다 가는 유학 한 번 못 가나’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도 위에서 뭐하라고 시키면 죽어라 하거든요.(웃음) 제가 바로 그랬어요. 마음 속은 썩어 문드러져도 하라면 다 했으니까요.
그러다 지금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만났어요. 그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자네를 유학 보내시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서 지금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그 일을 시키시려고 일부러 여기 남게 하신 거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에 관한 재능을 주신거다. 네가 경제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분은 하나님이 메꿔 주실거다.” 이렇게 설득을 하시더군요.
-조직 안에서 전문적으로 분석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수도일이 끝나고 나서는 상품운용팀에 들어갔어요. 말이 상품운용이지 일반고객들을 상대로 채권을 파는 거였죠. 전자계산기도 무지 잘 써야했구요. 세금계산을 손으로 하는데 나중에는 손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손동작을 놀려야 했습니다.
-아니 엑셀이 있었을텐데 왜 그런 일을 했습니까.
▲관행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깨지는 것이 아네요(웃음). 엑셀쓰자고 어른들에게 건의하면 무조건 손으로도 할 줄 알아야 된대요. 컴퓨터 없을 때는 네가 어떡할거냐는 거죠.
<”상상력과 재치” 시황으로 이름을 얻다>
-그럼 시황을 본격적으로 쓴 건 언제입니까.
▲브로커팀으로 옮기면서 시황을 쓰게 됐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3개월 정도 전이었어요. 97년 9월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데일리 한편 조그만 귀퉁이에다가 제 이름으로 시황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평이 너무 좋은 거에요. (웃음)
-제 기억으로도 호평을 받았던 것이 생각나네요. 기술적 분석과 관련된 코멘트도 최초로 나왔었죠 아마? 지금도 그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체 제작한 툴을 가지고 하니까 제 예측이 잘 맞으니까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자’ 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나름대로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도 많이 넣었죠. 확인도 안 해보고 “이런 건 아닐까? 저런 건 아닐까?” 를 집어넣은 겁니다. 그때는 그게 장점이었죠. 지금은 단점이 됐지만(웃음)
제가 지금도 “너는 확인해보면 간단한 일을 가지고 상상을 먼저 해. 그래서 안돼” 질책을 받아요. 그러면서 맨날 깨지거든요. 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해요.
-당시 데일리 말고 따로 리포트를 쓴 적은 없나요.
▲사실 저는 데일리를 쓸 만한 내공도 가지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배우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권을 잘 알지도 못하는 애가 채권계에 입문해서 뭔가 쓴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 정도겠죠. DB 만들고 상관관계 분석하는 모든 일들이 재미있었고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첫번째 프리젠테이션은 어디서 했습니까.
▲정말 기억이 안나요. 한때 많이 불려다니긴 했는데 어디서 처음 했는지가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자주 갔던 곳은 외환, 한미은행 등 은행권이었습니다.
-혼자 갔습니까.
▲아뇨. 담당부장님과 함께 갔습니다. 가서 상담하고 이것저것 말해주고. 사실 맞았던 적보다 틀린 적이 훨씬 많았어요. 틀렸을 때의 그 창피함, 짜증남이라는 건 말로 못해요. 틀린 것만 가지고도 많은 공부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채권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다른 곳에서는 프리젠테이션을 한다고 전해주는 정보가 채권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 빈약하게 느껴진거죠. 시장도 좁고 돌아가는 메커니즘도 빤한 곳이 이 바닥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가서 이러저러 말을 하니까 “쟤는 채권수도도 해 본 녀석이고 말은 좀 통하네” 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건 절대 아네요. 전 지금도 투신, 은행권이 어떻게 채권을 사고 파는지 잘 몰라요. 많은 선배들은 제게 “네가 말은 참신하고 조리있게 했지만 실상 은행이나 보험이 그렇게 단순하게 자산운용을 하는 곳이 아니다” 라고 충고를 해줬죠.
-그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뭡니까.
▲우리 시장이 좀 건조하다 보니..제가 장난기가 좀 심한 편이라 의도적으로 코믹하게 쓰려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내용의 본질은 놓치지않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긴 했는데. 별루 기억에 남는 것이 없네요.
-시황제목을 무척 재미있게 달았던 걸로 기억됩니다만.
▲음 그런 건 있었어요. 외환위기 이후 IMF 고금리 정책을 계속 고수했잖아요. 그 후 분기마다 정책 내용을 바꾸게 됐는데 한번은 영문을 읽어보니까 이번엔 고금리 정책 완화기조로 간다 뭐 이렇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진짜 금리가 내렸습니다. 마침 금리가 하락하는 날 IMF 서울사무소장의 금리하락 멘트도 나갔죠. 그 시점에서 제가 뭐라고 코멘트를 했냐면 “IMF는 Immediate Money-market Fever 다“ 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그런 걸 기억해 준 거죠. 분석을 잘해서가 아니라.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 부시 100일 평가, "매수후 보유"..월가 예상치대로
- [edaily] 부시 미국 대통령은 29일(미국시간)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에 대한 미국 내의 평가는 어떨까. 일단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한 편이다. 로스앤젤러스타임스(LAT)가 지난 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의 지지도는 57%로 나타났다. 이러한 지지도는 1993년 봄에 실시된 클린턴의 50%대의 지지도나 1989년 4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58% 지지도와 비교되는 수치이다.
LAT는 이에 대해 부시의 비교적 높은 지지도는 그의 정책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그의 인간성에 대한 호감이라고 분석했다. 즉 취임 직후 부시가 말한 "클린런 행정부 이후 실추된 백악관의 명예와 권위를 회복하겠다"는 말이 그에 대한 호감의 지표로 작용했다는 말이다.
CBS마켓워치는 부시의 취임 100일 성적을 "C"학점으로 평가했다. 이는 LAT의 지지율 57%와 비슷한 수치이다. 100일 성적으로는 괜찮은 편이라는 평가다. 100일 동안 부시가 한 일보다는 아직도 할 수 있는 많이 남아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분석이다.
그러나 1조3000억달러의 감세안을 제외한 보건, 교육, 환경, 사회기반시설 등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소 부정적이다. "온정적 보수주의자" 부시가 감세를 통해 사회로 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곳으로 돈을 많이 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행보다. 체니 부통령은 현재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및 환경 정책을 결정하는 태스크 포스팀을 운영하고 있고,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미사일 방어시스템과 관련한 지출 계획을 승인할 예정이다.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체니의 입장은 공급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다. 이는 환경과 에너지 보전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를 늘리는 방향이다.
국방예산과 관련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국방부가 스타워즈로 향한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CBS마켓워치는 이에 대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고 코퍼러티즘(corporatism)만이 지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감세, 정부지출, 퇴직연금, 보건, 에너지, 국방 등에 대한 "최고경영자(CEO) 예산"이 완전히 드러나기 전까지 "C"학점은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인 셈이다. CBS마켓워치는 투자자인 미국 국민들에게 부시 행정부의 100일에 대해 "매수 후 보유(buy-and-hold)"전략을 취할 것을 권했다.
- 배런스 500 발표, AOL 타임워너 29위에 랭크돼
- [edaily] 미국의 경제주간지인 배런스가 최근호에서 "배런스 500"을 선정한 결과, 1~5위를 퀘스트 디어그노스틱스, 하우스홀드 인터내셔널, 화이자, 제너럴 다이나믹스, 존스 어패럴 그룹 등이 차지했다.
기준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 움직임과 비교한 상대적 투자 수익률, 과거 3년간 투자 현금흐름 수익률 중간값(CFROI), 올해 CFROI 전망치, 매출 성장률 등이었다. 따라서 과거 1년간 또는 3년간 주가가 많이 오른 기업이 상위에 랭크되게 돼 있다.
퀘스트 디어그노스틱스는 진단기기 업체며, 하우스 홀드 인터내셔널은 소비자 금융회사, 화이자는 제약회사, 제너럴 다이나믹스는 방산업체, 존스 어패럴 그룹은 폴로 진 업체다.
머크가 23위, 리만 브라더스가 26위, AOL 타임워너가 29위, 타이코 인터내셔널이 31위, 스그나가 33위, 텍사코가 39위, 앤하우저 부시가 46위로 상위에 랭크됐다.
오라클이 85위였으며, 코닝이 92위, 알코아가 100위였다. 월마트는 96위를 차지했다. 킴벌리 클라크는 102위에 올랐다. 일라이 릴라이와 존슨 앤 존슨은 121위와 123위였다. 시스코 시스템스는 186위를 기록했다. 씨티그룹도 189위.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218위였다. 상대 투자수익률과 과거 3년간 CFROI가 각각 F로 나타나 평균 학점이 2.00이었다.
- 인터넷기업협회, 인터넷 기업 인재개발원 운영
- [edaily] 인터넷 기업 임직원들의 직무향상을 위한 "인터넷기업 인재개발원"이 생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이달부터 인터넷 기업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해 대기업의 인재개발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될 "KBA(Kinternet eBusiness Academy)" 교육과정을 상설 운영한다고 9일 밝혔다.
이 교육과정은 정보통신부가 지원하고 있는 "e-BIZ 활성화 지원단"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재무/회계관리", "인사/조직관리", "신 마케팅 전략", "글로벌 비지니스" 등 인터넷 기업에 우선 필요한 4개 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다.
과목당 일일 4시간씩 주 5일 교육으로 연중 3회 상설, 운영될 예정이며, 교육내용은 인터넷 벤처기업의 여건을 감안, 신입사원이나 기존 직원들의 직무능력 향상에 맞추어져 있다.
협회는 오는 16일(월)과 23일(월)부터 "재무/회계 관리"와 "인사/조직 관리" 2개 과목을 우선 개설키로 하고, 지난 4일부터 홈페이지(http://www.kinternet.org/)를 통하여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재무/회계 관리" 과정은 삼일회계법인과 공동으로 "인터넷기업의 주요계정과 회계관리", "M&A절차와 회계처리방법", "기업공개에 따른 회계와 세무", "기업가치 산정"등으루 구성돼 있다.
"인사/조직관리" 과정은 "벤처기업의 인사조직관리 요령", "구조조정에 따른 인사분야의 역할", "성과와 연봉제 중심의 임금제도", "스톡옵션의 이해와 실무" 등으로 편성됐다.
협회는 이를위해 지난달 말 협회 내에 오디오, 비디오 시설을 완비한 30평 규모(50명 수용가능)의 교육장을 설치, 완료했으며 앞으로 기업들과의 협의를 거쳐 현재 4개 과정을 실수요에 맞게 확대 운영하는 한편, 과목당 학점제를 도입, 연봉계약이나 승진 등 기업 내부의 인사/조직체계와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또 교육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과정별 커뮤니티를 구성, 운영해 교육생 상호간에 지속적인 정보교류를 유도해 나갈 계획이며, 다음 달부터는 "신 마케팅 전략", "글로벌 비즈니스" 등 2개 과목을 추가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번 교육과정 참여하려면 "재무/회계 관리"는 오는 13일까지 "인사/조직관리"는 20일까지 협회 홈페이지(http://www.kinternet.org)에서 온라인 신청을 하면 되며 회원사의 경우 수강료의 50%를 할인받을 수 있다. (문의처: 528-4134)
- LG전자,맞춤형 인재육성 온라인 시스템 구축
- [edaily] LG전자가 필요한 인재를 채용, 핵심인재로 육성하기 위한 "맞춤형 인재육성 제도"를 도입했다. LG전자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본부장 김쌍수 사장)는 개인이 미래설계서를 입력하면 이를 직속 상사와 인사담당자가 공유, 인사 정책에 반영하는 "사이버 인재육성시스템"을 구축,시행에 들어갔다.
"미래 설계서"란 개인의 신상정보, 경험직무, 업무성과, 근무하고 싶은 부서, 받고싶은 교육, 본인의 비전, 애로사항 등을 입력한 것으로 직속상사와 인사담당자가 언제든지 조회해 직원들의 적성과 소질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된다.
직속 상사와 인사 담당자는 소속 직원의 인사 정책을 논의하는 인재위원회에서사이버 시스템에 등록된 미래 설계서를 바탕으로 교육, 희망 근무 부서 이동 여부 등 향후 육성 방안을 논의하고 결과를 시스템에 입력하면 직원은 자신의 미래설계서에 대한 직속상사의 의견과 지원 방안을 조회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직원은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알맞은 근무부서 조정 및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업무 만족도를 높이고 회사는 인재육성시스템에 누적된 자료를 활용해 직원 개개인에 대한 육성방안을 결정하게 된다.
LG전자는 이같은 인재 육성 시스템과 별도로 재학중인 대학생을 선발, 교육을 통해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맞춤형 인재 채용 제도 "디지털 스칼라쉽"을 실시하고 있다.
"디지털 스칼라쉽(Digital Scholarship)"이란 디지털 사업의 급속한 전개에 필요한 디지털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공대생 중 전자공학 비전공 학생을 선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전공학생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킨 후 채용하는 맞춤형 인재 채용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는 전자공학 비전공 분야 4학년 공대생 중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을 선발, 방학을 이용해 LG전자 러닝센터(연수원)에서 4주동안 전자공학 기초이론 교육과 현장 실습을 실시한다.
또한 학기 중에는 회사가 지정한 전자공학 전공 중 2과목(6학점)이상을 수강해 B0이상의 학점을 취득하면 입사 특전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디지털 스칼라쉽」은 모든 과정을 수료한 1기생 14명이 올해 졸업과 동시에 LG전자에 연구직으로 입사했고 현재 2기생 59명이 장학금을지원 받으며 교육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