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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검색결과 3,736건

  • (화제)신보 대졸공채, 고급인력 978명 탈락
  • [edaily] 신용보증기금 대졸 신입직원 공채에서 공인회계사(CPA) 80명, 세무사 20명, 석사이상 고학력자 878명(박사 6명 포함)이 탈락한 것으로 나타나 고급인력의 취업난을 실감케 했다. 신보에 따르면 70명을 뽑는 이번 공채에는 총 8826명이 지원, 12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합격자중에는 공인회계사 5명, 세무사 2명, 석사 17명, 토익성적 900점이상 26명, 학점 4.0이상 37명 등이 포함됐다. 반면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와 석사이상 고학력자 등 1000명에 가까운 고급인력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신보는 "대졸자 취업난을 반영하듯 지원자의 상당수가 대학 평균성적 최상위권에 있는 등 자질이 우수한 지원자가 많았다"면서 "이번에 탈락한 사람들도 우수한 인재들인 만큼 낙심하지 말고 앞으로 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바란다는 위로 편지를 발송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실시한 신입행원 채용시험에서도 토익만점자와 CPA 50여명이 무더기로 탈락, 높은 취업문턱을 증명했다. 은행권의 경우 취업 경쟁률이 최고 200대 1을 넘어섰고 MBA나 CPA 등이 대거 몰린 것으로 나타나 이들중 상당수도 취업문을 통과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LG연구원은 최근의 대졸 취업난은 시작에 불과하며 적어도 오는 2007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11월 고용동향에서도 대졸 예정자들이 포함된 20대 계층의 실업률이 전달보다 0.8%P 급등, 정부가 청년실업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2001.12.19 I 조용만 기자
  • (화제)증권사 신입사원 모집에 우수인력 "밀물"
  • [edaily] 증권사 신입직원 모집에 우수인력이 대거 몰려 화제가 되고 있다. 굿모닝 증권에 따르면 30명내외를 모집하는 신입사원 공채에 7500명이 지원, 무려 25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쟁률도 경쟁률이지만 특이한 것은 지원자의 캐리어가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눈길을 끈 것은 사법시험에 합격해 연수원까지 거친 소위 "국내 최고의 엘리트"들이 두명이나 들어있었다는 것(이번 모집에 나이제한 없음). 이들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자신들이 취득한 자격을 내세우지 않고 똑같은 신입사원 차원에서 증권사를 택한 것이라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굿모닝증권이었다. 굿모닝증권은 고심 끝에 "신입사원 선발의 취지나 개인적인 장래 등에 맞지 않으며 이같은 인력이 필요할 경우 다른 경로로 영입하겠다"고 결론짓고 서류전형에서 과감히(?) 탈락시켰다. 고학력 경력자들은 사법 연수생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 공인회계사 출신도 있었고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은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또 현지인에 가까운 영어를 구사하거나 특수한 자격증을 보유한 예비 신입사원도 적지 않았다. 굿모닝증권 관계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우수한 인력이 너무 많이 몰려 우열을 가리기가 여간 쉽지 않다"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다른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실업문제가 심각하다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실업을 면키 위해서건 증권이 좋아서건 일단 증권사를 택한 이들에게는 아직도 치열한 경쟁이 남아 있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1차 합격생들은 실무 인터뷰와 임원 인터뷰를 거쳐야 하고 다음 단계로 이달 중순 세미나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등 세번의 관문을 더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1.11.02 I 김희석 기자
  • 4분기중 BBB이하 회사채 5∼6조 추가 보증(상보)
  • [edaily] 정부는 최근 회사채발행 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올 4분기중 BBB이하 회사채에 대한 신용보증 지원을 5조∼6조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계부처간 협의를 거쳐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재원을 조속히 확충하기로 했다. 정부는 29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경제장관간담회를 개최, 이같이 결정하고, 2조원 규모의 제2차 추경예산을 편성 4분기중 1만명 규모의 대학생 중활을 실시하는 등 동절기 고용안정 대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활에 참가하는 대학생들에게는 학점의 80%까지 인정해 줄 수 있도록 교육부에 요청할 계획이다. 지금은 40%만을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진 부총리는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이달부터 BBB이하 회사채의 발행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4분기중 5조∼6조원 가량의 프라이머리 CBO 발행지원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 부총리는 이어 "현재 추세로는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중 실업이 새로운 경제,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추경을 통해 인턴제, 중활제 등 청소년 고용대책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들이 1차 추경예산을 조속히 편성, 연내에 지역사업과 고용흡수에 나설 수 있도록 행자부 등을 통해 독려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중소기업에 대한 산업은행 등의 기존 자금이 만기연장 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하는 등 경기둔화에 따른 중소기업 자금난을 사전에 예방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진 부총리는 "현재 국내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이 테러피해를 입은 미국보다 더 위축된 상황"이라면서 "경제주체들이 평상심으로 돌아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경제장관들은 국방부 소속 장성 2명을 불러 미국의 보복전쟁 전개 예상 시나리오를 설명 받았다. 진 부총리는 "현재로서는 미국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2분기 정도 늦게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일부에서는 비관론을 제기하고 있으나, 내년 하반기부터는 미국 등 세계경제가 가파른 회복을 보일 것이란 예측을 강하게 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1.09.29 I 안근모 기자
  • 펜타클아카데미,온라인 교육사업 진출..미국 ESI와 제휴
  • [edaily] 펜타클벤처아카데미(대표 임민수)는 미국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교육기업인 ESI 인터내셔널사(www.esi-intl.com)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온라인 교육서비스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제휴는 ESI 인터내셔널의 조지워싱턴대 PM 석사자격증 코스 및 국제공인 PM자격증인 PMP 시험 준비 코스, PM 컨설팅 방법론 등 ESI의 온오프라인 교육과정을 펜타클벤처아카데미에 도입하고, 공동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펜타클은 ESI와의 제휴를 통해 올 연말부터 국내 온라인 교육사이트들과 연계, ESI 교육프로그램을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퓨전클래스로 운영하고, 장기적으로 국제공인 PM 전문 교육사이트를 구축할 방침이다. 1981년 설립된 ESI 인터내셔널社는 시스코, 컴팩, IBM, 모토롤라, 오라클, 루슨트테크놀로지, 나스닥, 보잉 등 표춘誌 선정 500대 기업 등 연간 200여 고객사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매니저(PM) 및 계약관리자(CM)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ESI의 교육프로그램은 국제공인협회인 PMI의 공인 교육프로그램으로, 국제공인 PM자격증인 PMP의 준비과정임과 동시에 자격유지과정이며, 조지워싱턴大 연계 과정 이수 時, 해당 학점과 6개의 마스터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다. 임민수 펜타클벤처아카데미 사장은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프로젝트매니저의 양성과 역량 강화를 통해 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쟁력 강화에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제휴를 위해 방한한 ESI 인터내셔널사의 르로이 수석 부사장은 "인터넷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은 ESI의 글로벌 전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2001.09.10 I 이의철 기자
  • 터무니없이 비싼 등록금이 초래한 인력난-BW
  • [edaily]비싼 대학 등록금 때문에 대학 진학률이 줄어들고 있고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이 충분한 인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비지니스위크가 최신호에서 밝혔다. 미국 기업들은 적당한 인재를 당장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15년뒤로 가보자. 대학은 태부족이고 빈부격차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1994년 캘빈 토마스와 그의 친구들이 세인트 루이스의 유니버시티 씨티 하이스쿨을 졸업할 당시만 해도 대학을 졸업한 중산층이 되는 꿈은 실현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평균 3.1의 학점에 토마스와 친구들은 대학입학 허가를 받았다. 이들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6개의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았던 토마스는 등록할 수가 없었다. 학생대출을 받고도 등록금을 내기에는 4500달러나 부족했다. 그와 두 동생까지 부양해야했던 그의 어머니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토마스는"많은 친구들이 대학을 가긴 했지만 등록금을 내지못해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토마스는 이제 25살이고 대학 4학년이 된다. 원하던 대학보다 훨씬 싼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지금에 오기까지 그는 몇년간 일해야 했다. 호황의 아이러니다. 지난 몇년간 유례없이 장기적인 경기팽창에도 가난한 학생들에게 미래의 성공이란 아직도 먼나라 얘기다. 90년대 중반이후 대부분의 등록금 원조 혜택은 중산층에게만 돌아갔다. 상류층 자녀들이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보다 대학졸업장을 딸 가능성이 7배나 크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자람에 따라 향후 10여년간 대학진학연령 인구는 15%나 증가할 것이다. 이중 85%는 소수민족이, 41%는 빈민층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까지 흑인과 히스패닉이 대학에 다닐 확률은 각각 55%, 50%로 백인의 65% 보다 훨씬 적다. 또 하류층의 36%만이 대학을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이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지도 모른다. 고등 교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줄어든다면 보다 능력있는 근로자를 충분히 양성하기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등록률은 98년부터 1.5% 감소했다. 이러한 추세는 능력있는 근로자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동안에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내셔널 얼라이언스 비지니스의 CEO로버트.T. 존스는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의 공급은 아직도 필요에 훨씬 못미친다"고 경고했다. 수용능력도 한계에 부닥쳤다. 현재 고등학생 중 53%만 대학에 진학한다. 이 비율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대학의 강의실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요지는 지난 2월 학생 자금원조에 관한 의회 자문위원회가 내린 결론에 잘 드러나 있다. 위원회는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와 기회를 늘리지 않으면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숙련 노동자들을 양성해내지 못하게 될 것이며 계층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 교육 기회를 보장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 중산층에 더 많은혜택을 부여했을 뿐이다. 클린턴의 1997 호프 장학금 프로그램은 대학 진학의 기회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대상 학생들에게 대학 2년간 3000달러의 세금을 감면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빈민층은 혜택을 보지 못했다. 세금은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금 감면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매칼레스터 대학의 총장 마이클 맥퍼슨은 많은 대학들이 중산층 이상에게만 유리한 혜택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빈민층 학생들을 위한 최대 규모의 펠 교부금이 있다는 사실이 약간의 위안이 된다. 그러나 75년 공립대학의 4년간 비용 중 85%를 지원해주던 펠 교부금은 작년에 전체 비용 중 39%만을 원조해주는데 그쳤다. 결국 펠 교부금의 확충이나 혁신적인 교육기회 증대책이 없는 한 능력있는 인력을 구하기 위해 사용자라도 직접 나서야 할 것이다.
2001.08.20 I 홍정민 기자
  • 정통부, 해외우수IT교육기관 대학생 파견연수 확대
  • [edaily] 정보통신부는 국내 우수 IT 잠재인력인 대학생들의 해외 우수 IT교육기관에서의 파견 및 연수를 지원하는 "해외 우수 IT교육기관 파견·연수 지원사업"을 확대 실시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지난 4월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120명을 선발한데 이은 제2차 사업으로 총 44.5억원을 투입, 880여명의 대학생들이 해외 우수 IT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통부는 대학생들이 인도의 Aptech, NIIT 등 세계 최고 수준의 IT교육기관에서 현지 교육을 받을 경우 교육비 및 체류비 등의 50%(1인당 한도 500만원 한도)를 지원할 예정이다. 정통부는 이번 사업을 위해 국내 2년제 이상 대학중에서 세계 우수 IT교육기관과 IT교육을 실시하기로 상호 협약을 맺고, 해당 교육과정을 이수한 대학생에게 학점교류를 인정하는 대학을 "해외 우수 IT 파견·연수 지원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해외 우수 IT 파견·연수 지원사업 수행기관"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대학은 오는 30일부터 수시로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http://www.kipa.or.kr)에 사업참여 신청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정통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IT전문지식은 물론 외국어 능력과 국제적 감각까지 구비한 국제경쟁력 있는 IT 전문가가 많이 양성되어 향후 국내 IT전문인력의 부족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우리 IT인력의 해외 진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1.07.27 I 이경탑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⑬박광철 금융감독원 팀장(상)
  • [edaily]금융감독원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금융구조조정과 기업구조조정을 현장에서 직접 처리한 조직이다. 정책구상은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위원회에서 하더라도 금융시장의 실태와 정책의 실질적인 집행 방법 등은 금감원의 실무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율됐다. 금감원의 자산운용감독국은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투신산업의 문제를 처리하고 시장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금감원 자산운용감독국의 박광철 팀장이다. 박 팀장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사건과 사고가 있는 곳”에 늘 나타나서 일을 처리한 베테랑 ‘해결사’다. 증권감독원 시절, ‘이철희-장영자 사건’으로 촉발된 삼보증권 사태를 처리한 것을 시작으로 외환위기 이후에는 투신권 구조조정, 대우사태, 시가평가제도 적용 등을 담당했다. 우리나라 채권시장의 한 축을 이루는 투신권은 IMF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폭풍의 눈’이었다. 투신권의 자금이 어떻게 이동하느냐에 따라 채권시장을 비롯한 금융권이 초긴장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 올 2월 채권수익률이 급등할 때도 투신권의 MMF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아 시장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 박 팀장은 “투신사들이 MMF를 마치 전략상품처럼 생각하는 풍토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며 “일반 국민들이 신탁상품의 특성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금융시장이 고도화되고 자산운용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금융권에 흩어져 있는 규정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연기금을 활성화 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금융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연금과 보험권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한다”고 말했다. 우니라나 금융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투신권의 변화를 현장에서 바라봤고 새로운 정책시행을 주도했던 박 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박광철 팀장 약력은 인터뷰 기사 하단 참조) <반골기질 강한 법학도, 증권감독원에 입사> -증권감독원에 입사하신 것은 몇 년도입니까. ▲1982년 7월입니다. 1982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공부한답시고 엉뚱한 일을 하다가(웃음) 입사가 좀 늦었어요. 석박사는 입사 후에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신 것은 언제인가요. ▲1975년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그해에 건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75년 당시 덕수상고를 졸업하셨다면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 취업해서 예정된 코스를 밟을 수도 있었을텐데요... ▲제가 약간 반골기질이 있어서요.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가 고집해서 덕수상고를 들어가긴 했는데 입학하고 나니까 저랑 영 안맞는 겁니다. 졸업조건이니까 주산, 부기자격증도 따고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구요. 친구들이 좋은 은행에 취직하는 것을 보면서도 말이죠.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은 했는데 그 당시 상업고등학교의 과목 중 대학입시와 관련된 것은 영어 하나였습니다. 수학같은 과목은 아예 수업을 들어본 적도 거의 없어요. 그래서 혼자 영어공부만 하다가 장난삼아서 재학중 공무원 시험을 봤는데 덜컥 붙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상고에서는 3학년 때는 취업이 되면 학교수업을 제대로 듣지않아도 감안이 되거든요. 그래서 "됐다. 이제는 대학공부만 해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입시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군대는 언제 마치셨나요. ▲학교 입학하자마자 군대에 갔죠. 1975년 7월인가 8월에 말입니다. 78년에 제대하고 그 이듬해 복학했습니다. -대학졸업 후 6개월 동안 무슨 공부를 하셨습니까. 사법고시 준비인가요. ▲물론입니다. 증권감독원 입사 후에도 계속한걸요. 계속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증감원 입사 후 업무에 젖어들다 보니 어느 순간 그 꿈과 멀어졌어요. 제가 증감원에 입사하자마자 "증권산업 전산화"가 시작됐습니다. 당시가 82년이었으니까 국보위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였죠. 국보위가 국가 전산작업을 추진하면서 일본에서 유니백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기기를 들어오게 된 배경에는 구구한 설이 있지만 어쨌든 그 비싼 기기를 들여와서 활용할 길을 찾다가 "증권산업 전산화에 사용하자" 고 결론이 났던 겁니다. 업무를 담당하면서 위탁자원장과 신용거래장까지 모두 제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석사는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처음에 들어와서는 업무때문에 눈코뜰새 없이 바빴어요. 사법고시에 대한 미련도 포기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고시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자 "아 이래선 안되겠다. 공부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85년에 석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88년에 석사를 마치고 일이 바빠서 한 해 쉬다가 89년 다시 박사코스를 밟았죠. 그런데 일 때문에 아직까지 학위논문을 못 쓰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허허 -사법고시를 준비하시던 분이 어쩌다가 증권감독원에 들어오게 됐나요. 궁금합니다. ▲제가 법학을 공부하면서 만난 두 분의 은사가 계십니다. 한 분은 지금도 건국대학교에서 상법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이시고 다른 한 분이 바로 양병회 교수님이시죠. 제가 양 교수님을 무척 따랐는데 양 교수님이 적극적으로 입사를 권하셨습니다. 추천서가 왔는데 거기 가라고 말씀하시면서요. "거기 들어가서도 고시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증권감독원 공채 3기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까 공부할 시간이 전혀 없더군요.(웃음) -그럼 증권감독원이 뭐하는 곳인지를 모르고 입사하셨군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시험볼 때는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들어와서 일을 하다보니 공부가 더 필요한 직장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석사를 양 교수님 밑에서 마쳤죠. 그런데 박사과정에 진학하려고 하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제가 해온 공부가 좀 달랐어요. 대부분 석사와 박사를 같은 지도교수님 밑에서 밟지만 저는 박사는 다른 교수님 밑에서 했습니다. 일과 관련된 쪽으로 공부방향을 바꾼 거죠. -유니백 시스템 업무를 맡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당시 저는 유통시장국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윗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상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선 법학을 전공한 제가 유용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회계와 법을 동시에 아는 사람이 드물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무렵 삼보증권의 완매사태가 터졌습니다. <사건이 있는 곳에 늘 나타나는 해결사> -그것이 언제죠? ▲82년입니다. 81년에 그 사건이 터져서 82년까지 계속됐어요. 요즘 환매조건부채권있죠? 그것을 당시에는 완매채라고 불렀습니다. 일명 전매라고도 하죠. *편집자 주 : 환매조건부채권(RP, Repurchase Agreements) 금융기관이 일정기간 후에 다시 사주는 조건으로 팔고 경과 기간에 따라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을 말한다. 채권 투자의 약점인 환금성을 보장한 것으로 지난 1981년 미국에서 예금은행의 단기자금 조달방식으로 처음 도입됐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중앙은행과 예금은행간의 유동성 조절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앙은 행인 한국은행과 예금 은행사이에 시중 통화 수위와 예금은행의 유동성 상황에 따라 수시로 RP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RP 만기는 보통 1∼15일 이내이며 자금 결제는 주로 한국은행에 예치된 지급준비금의 대차거래로 이뤄진다. 채권가격은 계속 떨어지는데 빌린 돈은 점점 늘어나 채권을 다 팔고도 돈을 갚을 수 없게 됐습니다. 평가손실이 이자부분만큼 계속적으로 누적됐고 이것이 뻥하고 터져버린 것이 바로 삼보증권 완매사태입니다. 이 사건이 회계시스템을 금융거래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고 그 업무에 매달렸습니다. -그 때도 어쨌든 채권과 관련된 일을 하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증권업계 전산화 업무도 같이 했으니 정신없었죠 뭐. 원장 만드는 일, 대체전표 다루는 일 등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일을 시작하려니 무척 힘들었어요. -그 다음 다른 부서로 이동한 건 언제입니까. ▲삼보사태 처리 후 검사총괄국에서 잠깐 근무했습니다. 검사국에 있으면서 대리 승진시험을 봤는데 시험성적이 나쁘지않은 편이어서 상사 중 한 분이 정보분석과로 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당시가 증권감독원의 조사국이 막 창립되려는 단계였어요. 조사국에서 초기화단계 업무정립을 하고 다시 검사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검사국에서 2년 정도 일하자 이번에는 분쟁조정위원회 신설이라는 것과 마주치게 됐어요. 분쟁조정위원회로 갈때 과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분쟁조정위원회의 제도를 도입하고 규정을 일일이 만들고 겨우 한숨 돌리고 나니 투신 각서파동 사태와 직면했습니다. -투신 각서사태가 몇 년도인가요. ▲95년에 터졌습니다. 그 당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일을 수습하느라고 이리뛰고 저리뛰었습니다. 96년까지 계속 그 뒤치닥거리를 했는데 위에서 공부를 더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습니다. -어느 지역에 있었습니까. ▲콜로라도였어요. 콜로라도 주 덴버에 1년 동안 있었습니다. 제 자랑 같습니다만 1년 동안 43학점이나 땄죠. 그 곳의 학제는 1년이 3학기로 이뤄져있는데 매학기마다 3학점 과목을 서너개씩 듣곤 했습니다. 골프도 배웠구요.(웃음) <외환위기의 한가운데에서 투신사 구조조정을 담당> -귀국해서 맡은 업무는 어떤 일이었나요. ▲97년 돌아오니 바로 고려증권 일이 터졌어요. 증권업계에 IMF 여파가 들이닥친 것이죠. 대통령 선거와 관련돼 증감원의 계좌추적 사건도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어요. 청문회 열리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 때 일을 마무리하고 고려증권, 동서증권이 터지면서 현장으로 파견을 나갔습니다. 대책반에서 기획업무를 맡으면서 자금조달, 수습방법 제시를 하다가 "현장감독이 필요하니 현장으로 나가라"고 하셔서 나가게 된 겁니다. 이번엔 신세기 투신이 터진다고 해서 인천으로 가라고 해서 인천으로 갔죠. 금감위가 98년 4월 2일부로 발족되니 그 업무를 이관받으라고 해서 98년부터 또 투신과 일하게 됐어요. 한남투신 사태가 터졌구요. 현대투신과 맞물려서 일하던 중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에서 4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터지는 곳에만 있었던 셈이죠. (인터뷰 중편으로 이어짐)
2001.06.01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⑨박성진 삼성투신 차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삼성투신운용의 스트레티지스트인 박성진 차장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운명의 장난(?) 교수의 꿈이 증권사 채권맨으로> -그럼 신영증권에 입사한 것은 어떤 계기에서입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요. 제가 준비했던 학교가 인디애나 주립대였어요. 미국 내에서도 빅 10에 들어가고 무엇보다도 한국학자들 중 여기서 학위받은 분들이 많은 곳이죠. 제 석사논문을 영어로 번역해서 원서를 넣었더니 그 쪽에서 “좋다. 너는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이게 왠 떡이냐 싶었죠. 돈도 없는데 미국에서 다시 석사부터 시작하려면 좀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까. 의기양양 비자를 받으러 대사관에 갔더니 아까 그 여자 면접관이 “your job responsibility is not enough guarantee to come back. Your financial status is not enough guarantee to finish your coursework” 이라고 하더군요. 기가 막혔죠. 그때가 12월이었어요. 1월에 미국으로 가서 2월부터 시작하는 강의를 수강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 때 이미 결혼을 해서 기혼자용 기숙사에 제 피 같은 돈 100불을 예치금으로 송금까지 한 상황이었어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했죠. 그런데 전혀 안 통해요. 안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경을 불러서 끌어낼 태세에요.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 느껴본 적 있으십니까. 한 남자의 꿈과 인생이 일개 미 대사관 직원의 손에서 박살이 난 겁니다. 인디애나 주립대에 전화를 했습니다. 창피해서 비자가 리젝트됐다는 소리는 죽어도 못하겠고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다음 달에는 못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괜찮다. 2년 안으로만 다시 하면 된다. 그렇지만 2년이 지나면 토플과 GRE를 새로 시험 봐서 최신 성적을 보내주면 또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낙담한 마음을 조금은 지울 수 있었죠. 그 때 병도 좀 앓았는데 가장이니 어떡합니까. 먹고는 살아아죠. 신문을 탁 펼치고 구인광고를 막 뒤졌어요. 취직을 하기로 결심하고 보니 12월에 신입사원을 뽑는 곳이 딱 두 군데였어요. 신영증권이랑 디지털조선. 처음에는 당연히 디지털조선에 가고 싶었습니다. 대기업공채는 이미 가을에 끝났고 신영증권은 회사 자체에 일이 있어서 12월로 늦춰졌다고 하더군요. 신영증권의 일정이 먼저 시작됐는데 모집분야에 연구/조사 분야가 있었어요. 일단 두 곳에 모두 원서를 넣었죠. -증권이 무엇인지는 아는 상태에서 입사를 결정한 것은 아닐텐데요.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유학준비를 하면서 잠깐 토플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그 학원 바로 옆에 동서증권이 있었어요. 학원에서는 초급반 영어랑 주부회화를 담당했습니다. 아침에만 좀 바쁘고 오후에는 내리 놀아요. 그리고 학생들 수업끝나고 직장인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시간에 연이어 수업이 계속되는 거죠. 학원강사가 참 고달픈 직업입니다. 건강도 많이 망쳐요. 낮에 시간 많겠다 바로 옆에 증권회사 있겠다. 그래서 순진한 집사람을 꾀서 주식을 하겠다고 졸랐어요. 당시 집사람이 피아노 레슨을 20개나 해서 2000만원을 모았거든요. 그 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이 돈을 불려서 유학가자는 결심을 하고 증권계좌를 만들었더니 처음에는 잘 되더라구요. 금방 2500만원으로 돈이 불어났거든요. 저는 주식의 ‘주’자도 몰랐고 기업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어요. 들어본 회사라고는 아버님이 다니셨던 동아건설이 고작이었어요. 당시 성수대교 붕괴사태 때문에 동아건설주가 무척 쌌어요. 그래서 “음 저건 낙폭과대주야” 라고 매입했죠. 하하. 그리고 당시 금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LG계열사 주식도 샀고요. 그런데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 그 다음부터는 폭락하기 시작하는 겁니다.(웃음) 그 후 손절할 때가 왔는데도 그걸 못했어요. 개미투자자의 전형적인 실패사례죠. ‘손절하지 않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를거야’ 라는 말도 안되는 류의 생각들. 되긴 뭐가 됩니까. 유학 갈 날짜는 다가오고 점점 돈은 줄어드는 지경이 됐어요. 대충 정리를 해보니까 1500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 남았더군요. 속으로는 “그래도 선방했다. 이게 다 내가 블루칩과 낙폭과대주를 산 덕택이야”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하 유학이 취소되고 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내가 왜 주식투자에 실패했는지 증권회사에 들어가서 몸소 알아봐야겠다는 오기죠. 전 그 당시만해도 증권회사 직원들은 그 이유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딴에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는데 그 길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디지털조선은 어떻게 됐냐구요? 제가 학부는 놀아서 학점이 나쁜데 대학원은 all A였어요. 대학원 all A지, 토플 점수 우수하지…나름대로는 서류는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디조에 원서를 보냈어요. 그런데 서류에서 떨어졌습니다.(웃음) 그래서 지금도 조선일보는 감정이 좋지 않아요. <우연의 연속, 채권분석가가 되기까지> -신영증권에 들어자마자 바로 채권부로 갔습니까? ▲연수를 받고 신입사원들에게 지원부서를 적으라더군요. 1순위는 무조건 조사부 적었죠. 한 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두번째는 국제부. 폼 나잖아요. 3순위. 주식부. 왜 주식을 하다가 망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발령을 하는데 인사부장이 “박성진 채권부” 하고 부르는 겁니다. 인상 팍 쓰면서 ‘도대체 채권부가 뭐하는데야?’ 라고 생각했어요. 인사부장께 물었죠. 채권부가 뭐하는 곳이냐고. 그랬더니 인사부장이 “아파트 분양하잖아. 거기서 채권받거든. 분양하고 나오는 사람들 앞에서 채권, 채권 하면서 소리지르고 가서 팔아. 너 명동이나 주택가에서 채권, 채권하면서 팔러다니는 사람들 본 적 없냐? 그거하는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토씨하나 다르지않게 전해드리는 거에요. 반은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황당했어요.(웃음) 채권이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데다 신입사원 교육 때 채권시간이 무지 재미없었거든요. 수학공식 막 쓰고 계산도 복잡하고. 채권부에 갔더니 지금 LG투신에 있는 최원녕 과장이 “네가 채권부냐?” 라고 인상을 쓰면서 말하는 거에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초등학교 선배더라구요. 그것 때문에 꽉 잡혀서 찍 소리도 못하고 살았죠. 하하. -결국 전공이나 희망사항과는 전혀 상관없이 채권판에 들어왔군요. 처음에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수도결제죠뭐.(증권사가 채권매매 중개시 현물 채권과 대금을 교환, 결제해주는 것) 처음 증권사 채권부에 가면 하는 일이 그거 밖에 더 있겠습니까. 속된 말로 인생이 완전히 골로 가더라구요. 그전까지는 알튀세르, 레비스트로스와 라캉을 논하던 나름대로 먹물먹은 지식인이라고 제 딴에 자부했는데 말이죠. 하하. 인생이 이렇게 꼬이고 저렇게 꼬이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더군요. 그냥 전공살려서 기자나 됐으면 폼이라도 날 거 아니겠어요. (웃음) -수도는 얼마나 했습니까? ▲9개월 정도? 한 일년 가까이 했습니다. 제가 신입사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좀 많았어요. 다행인 것은 저랑 한 조가 된 친구가 운전을 전혀 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운전을 하고 그 친구가 막 뛰어다니는 일을 했죠(웃음) 제가 어떤 건물 앞에 차를 탁 세우면 그 친구는 미친 듯 뛰어올라가서 도장 찍어오고. 수도를 직접 해 봐야 채권의 비애를 몸소 체험할 수 있어요. 길이 막힐 때는 원효대교를 뛰어서 여의도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많았어요. 그때 거래가 많았거든요. 선배들이 “야 이 자식아 빨리빨리 처리 못해? 느려터져 가지고선” 뭐 이렇게 혼이났죠. 저도 열이 받으면 “우리 회사에서 매매보고서 나보다 더 빨리 작성하는 사람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나보다 더 빨리 하는 사람없으니까 늦는다고 갈구지 마” (웃음) 이렇게 맞받았죠. <“너는 컴퓨터도 잘 다루니까 기술적 분석이나 한번 해봐라”> -채권의 기술적 분석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그것도 제가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신영증권 황 부장께서 “너는 컴퓨터도 잘 다루니까 이거 한번 해봐라”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리셔서 하게 된 겁니다. 입사하고 3개월 후부터 수도업무랑 채권분석을 같이하기 시작했어요. 채권단가, 이론부터 알아나갔죠. 실제로 해보니까 제가 한 것이 잘 맞아 떨어지더라구요. 잘 맞을 때까지 조정도 이리저리 해보고. 여하튼 재미있었습니다. -채권관련 책은 몇 종류나 봤습니까. ▲기술적 분석에 관한 책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아요. 거기에 나오는 공식들을 보는거죠. 제가 좀 컴퓨터를 다루니까 그 공식들을 프로그램으로 짜고 그것을 또다시 엑셀에서 구현하는 작업들을 했어요. 조정과정을 몇 개월 거치니까 신기할 정도로 잘 맞는 거에요. 그때 당시에는 족집게처럼 들어맞는다고 느껴졌을 정도니까요. -그게 몇 년도인가요. ▲입사하던 해였으니까 96년이군요. 그런데 이유가 있더라구요. 그 당시 시장은 지금처럼 시가평가(market to market) 시장도 아니었고 대부분 시장참가자들이 기관투자가다 보니까 현재에 비해 모멘텀이 훨씬 분명한 시장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것이 아니라 한 번 모멘텀이 생기면 관성에 의해서 일정 기간은 그것이 계속 유지가 된 거죠. 단기 딜링을 해서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고 자신감도 막 생겨났습니다. 아침회의에서 “금리 어떻게 될 것 같나?”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코멘트를 하고. 그러면서 “아 나는 이쪽 방면에 소질이 있는가봐. 분석의 천재라니까” 라는 착각에 빠지게됐죠(웃음). 그 시절에는 어디 인터넷이 있습니까. 나오는 모든 금융데이타를 일일이 손으로 작업했어요. 한국은행 데이터, 경기동향, 통계청 데이터를 수기로 입력했다는 거 아닙니까.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재미를 느낀 것이 가장 큰 이유였군요.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안하고 말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비자받을 때 흠 잡히지 않고 돈 모아서 곧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습니다.(웃음) 학원강사랑은 엄청난 차이가 있잖아요. 증권회사라면 미국사람들도 job responsibility가 어쩌니 저쩌니 못할 거 아니겠어요. 2년간 괜찮다는데 금방 떠나려고 했죠. 그런데 학위받는 일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유학 갈 형편도 안됐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학계만큼 정치적인 곳도 없잖아요. 물론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없을 수는 없죠. 사람인데. 수도하면서 도장받으러 다니려고 내가 이때까지 공부했나. 이런 생각들. 그래서 대학때부터 다니던 교회에도 뜸하게 되고. 저는 토요일 교회모임 때문에 대학시절 내내 그 흔한 MT도 한번 안 간 사람인데 말이에요. ‘이렇게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을 모셨는데 생 양아치 같은 애들은 다 잘되고 나는 남들 다 가는 유학 한 번 못 가나’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도 위에서 뭐하라고 시키면 죽어라 하거든요.(웃음) 제가 바로 그랬어요. 마음 속은 썩어 문드러져도 하라면 다 했으니까요. 그러다 지금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만났어요. 그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자네를 유학 보내시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서 지금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그 일을 시키시려고 일부러 여기 남게 하신 거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에 관한 재능을 주신거다. 네가 경제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분은 하나님이 메꿔 주실거다.” 이렇게 설득을 하시더군요. -조직 안에서 전문적으로 분석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수도일이 끝나고 나서는 상품운용팀에 들어갔어요. 말이 상품운용이지 일반고객들을 상대로 채권을 파는 거였죠. 전자계산기도 무지 잘 써야했구요. 세금계산을 손으로 하는데 나중에는 손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손동작을 놀려야 했습니다. -아니 엑셀이 있었을텐데 왜 그런 일을 했습니까. ▲관행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깨지는 것이 아네요(웃음). 엑셀쓰자고 어른들에게 건의하면 무조건 손으로도 할 줄 알아야 된대요. 컴퓨터 없을 때는 네가 어떡할거냐는 거죠. <”상상력과 재치” 시황으로 이름을 얻다> -그럼 시황을 본격적으로 쓴 건 언제입니까. ▲브로커팀으로 옮기면서 시황을 쓰게 됐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3개월 정도 전이었어요. 97년 9월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데일리 한편 조그만 귀퉁이에다가 제 이름으로 시황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평이 너무 좋은 거에요. (웃음) -제 기억으로도 호평을 받았던 것이 생각나네요. 기술적 분석과 관련된 코멘트도 최초로 나왔었죠 아마? 지금도 그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체 제작한 툴을 가지고 하니까 제 예측이 잘 맞으니까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자’ 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나름대로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도 많이 넣었죠. 확인도 안 해보고 “이런 건 아닐까? 저런 건 아닐까?” 를 집어넣은 겁니다. 그때는 그게 장점이었죠. 지금은 단점이 됐지만(웃음) 제가 지금도 “너는 확인해보면 간단한 일을 가지고 상상을 먼저 해. 그래서 안돼” 질책을 받아요. 그러면서 맨날 깨지거든요. 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해요. -당시 데일리 말고 따로 리포트를 쓴 적은 없나요. ▲사실 저는 데일리를 쓸 만한 내공도 가지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배우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권을 잘 알지도 못하는 애가 채권계에 입문해서 뭔가 쓴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 정도겠죠. DB 만들고 상관관계 분석하는 모든 일들이 재미있었고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첫번째 프리젠테이션은 어디서 했습니까. ▲정말 기억이 안나요. 한때 많이 불려다니긴 했는데 어디서 처음 했는지가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자주 갔던 곳은 외환, 한미은행 등 은행권이었습니다. -혼자 갔습니까. ▲아뇨. 담당부장님과 함께 갔습니다. 가서 상담하고 이것저것 말해주고. 사실 맞았던 적보다 틀린 적이 훨씬 많았어요. 틀렸을 때의 그 창피함, 짜증남이라는 건 말로 못해요. 틀린 것만 가지고도 많은 공부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채권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다른 곳에서는 프리젠테이션을 한다고 전해주는 정보가 채권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 빈약하게 느껴진거죠. 시장도 좁고 돌아가는 메커니즘도 빤한 곳이 이 바닥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가서 이러저러 말을 하니까 “쟤는 채권수도도 해 본 녀석이고 말은 좀 통하네” 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건 절대 아네요. 전 지금도 투신, 은행권이 어떻게 채권을 사고 파는지 잘 몰라요. 많은 선배들은 제게 “네가 말은 참신하고 조리있게 했지만 실상 은행이나 보험이 그렇게 단순하게 자산운용을 하는 곳이 아니다” 라고 충고를 해줬죠. -그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뭡니까. ▲우리 시장이 좀 건조하다 보니..제가 장난기가 좀 심한 편이라 의도적으로 코믹하게 쓰려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내용의 본질은 놓치지않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긴 했는데. 별루 기억에 남는 것이 없네요. -시황제목을 무척 재미있게 달았던 걸로 기억됩니다만. ▲음 그런 건 있었어요. 외환위기 이후 IMF 고금리 정책을 계속 고수했잖아요. 그 후 분기마다 정책 내용을 바꾸게 됐는데 한번은 영문을 읽어보니까 이번엔 고금리 정책 완화기조로 간다 뭐 이렇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진짜 금리가 내렸습니다. 마침 금리가 하락하는 날 IMF 서울사무소장의 금리하락 멘트도 나갔죠. 그 시점에서 제가 뭐라고 코멘트를 했냐면 “IMF는 Immediate Money-market Fever 다“ 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그런 걸 기억해 준 거죠. 분석을 잘해서가 아니라.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5.04 I 정명수 기자
  • 부시 100일 평가, "매수후 보유"..월가 예상치대로
  • [edaily] 부시 미국 대통령은 29일(미국시간)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에 대한 미국 내의 평가는 어떨까. 일단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한 편이다. 로스앤젤러스타임스(LAT)가 지난 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의 지지도는 57%로 나타났다. 이러한 지지도는 1993년 봄에 실시된 클린턴의 50%대의 지지도나 1989년 4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58% 지지도와 비교되는 수치이다. LAT는 이에 대해 부시의 비교적 높은 지지도는 그의 정책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그의 인간성에 대한 호감이라고 분석했다. 즉 취임 직후 부시가 말한 "클린런 행정부 이후 실추된 백악관의 명예와 권위를 회복하겠다"는 말이 그에 대한 호감의 지표로 작용했다는 말이다. CBS마켓워치는 부시의 취임 100일 성적을 "C"학점으로 평가했다. 이는 LAT의 지지율 57%와 비슷한 수치이다. 100일 성적으로는 괜찮은 편이라는 평가다. 100일 동안 부시가 한 일보다는 아직도 할 수 있는 많이 남아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분석이다. 그러나 1조3000억달러의 감세안을 제외한 보건, 교육, 환경, 사회기반시설 등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소 부정적이다. "온정적 보수주의자" 부시가 감세를 통해 사회로 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곳으로 돈을 많이 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행보다. 체니 부통령은 현재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및 환경 정책을 결정하는 태스크 포스팀을 운영하고 있고,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미사일 방어시스템과 관련한 지출 계획을 승인할 예정이다.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체니의 입장은 공급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다. 이는 환경과 에너지 보전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를 늘리는 방향이다. 국방예산과 관련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국방부가 스타워즈로 향한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CBS마켓워치는 이에 대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고 코퍼러티즘(corporatism)만이 지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감세, 정부지출, 퇴직연금, 보건, 에너지, 국방 등에 대한 "최고경영자(CEO) 예산"이 완전히 드러나기 전까지 "C"학점은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인 셈이다. CBS마켓워치는 투자자인 미국 국민들에게 부시 행정부의 100일에 대해 "매수 후 보유(buy-and-hold)"전략을 취할 것을 권했다.
2001.04.30 I 김현동 기자
  • 배런스 500 발표, AOL 타임워너 29위에 랭크돼
  • [edaily] 미국의 경제주간지인 배런스가 최근호에서 "배런스 500"을 선정한 결과, 1~5위를 퀘스트 디어그노스틱스, 하우스홀드 인터내셔널, 화이자, 제너럴 다이나믹스, 존스 어패럴 그룹 등이 차지했다. 기준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 움직임과 비교한 상대적 투자 수익률, 과거 3년간 투자 현금흐름 수익률 중간값(CFROI), 올해 CFROI 전망치, 매출 성장률 등이었다. 따라서 과거 1년간 또는 3년간 주가가 많이 오른 기업이 상위에 랭크되게 돼 있다. 퀘스트 디어그노스틱스는 진단기기 업체며, 하우스 홀드 인터내셔널은 소비자 금융회사, 화이자는 제약회사, 제너럴 다이나믹스는 방산업체, 존스 어패럴 그룹은 폴로 진 업체다. 머크가 23위, 리만 브라더스가 26위, AOL 타임워너가 29위, 타이코 인터내셔널이 31위, 스그나가 33위, 텍사코가 39위, 앤하우저 부시가 46위로 상위에 랭크됐다. 오라클이 85위였으며, 코닝이 92위, 알코아가 100위였다. 월마트는 96위를 차지했다. 킴벌리 클라크는 102위에 올랐다. 일라이 릴라이와 존슨 앤 존슨은 121위와 123위였다. 시스코 시스템스는 186위를 기록했다. 씨티그룹도 189위.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218위였다. 상대 투자수익률과 과거 3년간 CFROI가 각각 F로 나타나 평균 학점이 2.00이었다.
2001.04.23 I 김홍기 기자
  • 약세장에서 살아남는 펀드매니저 - 포브스
  • [edaily] 미국의 경제 격주간지인 포브스는 최근호에서 올해와 같은 약세장에서 효과적인 포트폴리오로 수익률을 내고 있는 펀드매니저의 투자활동을 소개했다. 프루던트베어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데이비드 타이스는 포브스가 평가한 바로는 시장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투자수익이 A+ 학점을 받을 만하고 시장이 올라갈 때는 F학점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 약세장에서 수익을 내는가. 타이스는 예를들어 금 은과 관련된 주식을 거론한다. 경기에 대항할 수있는 성격을 갖고 있는 주식들이다. 그는 미국 경제가 둔화된다고 하는 것은 곧 달러가치에 문제가 생길 것이란 점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 경우 금은 달러가치 하락에 대한 헤징수단이 될 수있기 때문에 수요가 커질 수있게 된다. 타이스는 남아공의 금 관련기업인 하모니골드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하모니골드의 금 상품 매출은 지난해에 4억9100만달러여다. 타이스는 하모니가 주당수익률등을 잘 관리할 수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타이스는 또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비겐이란 유전자치료제품 개발업체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이 회사가 AAV벡터라는 유전자치료 진단기술을 가지고 있어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는 "종목을 선택할 때 펀더멘털에 비해서도 크게 내려간 주식이나 아무리 약세장에서라도 가치를 발휘할 수있는 특별한 기술이나 촉매제를 가지고 있는 것을 찾는다"고 말한다. 타이스의 펀드는 지난해 S&P 500 평균보다도 14 포인트가 높은 5%의 수익률을 냈다.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 시장이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매도포지션을 정리하고 몇개의 주식을 발굴했다. 그중의 하나가 오피스맥스이다. 오피스맥스의 경우 특별한 요인은 멕시코의 억만장자인 카를로스 슬림 헬루가 인수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1.04.23 I 박재림 기자
  • 인터넷기업협회, 인터넷 기업 인재개발원 운영
  • [edaily] 인터넷 기업 임직원들의 직무향상을 위한 "인터넷기업 인재개발원"이 생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이달부터 인터넷 기업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해 대기업의 인재개발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될 "KBA(Kinternet eBusiness Academy)" 교육과정을 상설 운영한다고 9일 밝혔다. 이 교육과정은 정보통신부가 지원하고 있는 "e-BIZ 활성화 지원단"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재무/회계관리", "인사/조직관리", "신 마케팅 전략", "글로벌 비지니스" 등 인터넷 기업에 우선 필요한 4개 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다. 과목당 일일 4시간씩 주 5일 교육으로 연중 3회 상설, 운영될 예정이며, 교육내용은 인터넷 벤처기업의 여건을 감안, 신입사원이나 기존 직원들의 직무능력 향상에 맞추어져 있다. 협회는 오는 16일(월)과 23일(월)부터 "재무/회계 관리"와 "인사/조직 관리" 2개 과목을 우선 개설키로 하고, 지난 4일부터 홈페이지(http://www.kinternet.org/)를 통하여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재무/회계 관리" 과정은 삼일회계법인과 공동으로 "인터넷기업의 주요계정과 회계관리", "M&A절차와 회계처리방법", "기업공개에 따른 회계와 세무", "기업가치 산정"등으루 구성돼 있다. "인사/조직관리" 과정은 "벤처기업의 인사조직관리 요령", "구조조정에 따른 인사분야의 역할", "성과와 연봉제 중심의 임금제도", "스톡옵션의 이해와 실무" 등으로 편성됐다. 협회는 이를위해 지난달 말 협회 내에 오디오, 비디오 시설을 완비한 30평 규모(50명 수용가능)의 교육장을 설치, 완료했으며 앞으로 기업들과의 협의를 거쳐 현재 4개 과정을 실수요에 맞게 확대 운영하는 한편, 과목당 학점제를 도입, 연봉계약이나 승진 등 기업 내부의 인사/조직체계와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또 교육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과정별 커뮤니티를 구성, 운영해 교육생 상호간에 지속적인 정보교류를 유도해 나갈 계획이며, 다음 달부터는 "신 마케팅 전략", "글로벌 비즈니스" 등 2개 과목을 추가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번 교육과정 참여하려면 "재무/회계 관리"는 오는 13일까지 "인사/조직관리"는 20일까지 협회 홈페이지(http://www.kinternet.org)에서 온라인 신청을 하면 되며 회원사의 경우 수강료의 50%를 할인받을 수 있다. (문의처: 528-4134)
2001.04.09 I 김윤경 기자
  • LG전자,맞춤형 인재육성 온라인 시스템 구축
  • [edaily] LG전자가 필요한 인재를 채용, 핵심인재로 육성하기 위한 "맞춤형 인재육성 제도"를 도입했다. LG전자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본부장 김쌍수 사장)는 개인이 미래설계서를 입력하면 이를 직속 상사와 인사담당자가 공유, 인사 정책에 반영하는 "사이버 인재육성시스템"을 구축,시행에 들어갔다. "미래 설계서"란 개인의 신상정보, 경험직무, 업무성과, 근무하고 싶은 부서, 받고싶은 교육, 본인의 비전, 애로사항 등을 입력한 것으로 직속상사와 인사담당자가 언제든지 조회해 직원들의 적성과 소질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된다. 직속 상사와 인사 담당자는 소속 직원의 인사 정책을 논의하는 인재위원회에서사이버 시스템에 등록된 미래 설계서를 바탕으로 교육, 희망 근무 부서 이동 여부 등 향후 육성 방안을 논의하고 결과를 시스템에 입력하면 직원은 자신의 미래설계서에 대한 직속상사의 의견과 지원 방안을 조회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직원은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알맞은 근무부서 조정 및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업무 만족도를 높이고 회사는 인재육성시스템에 누적된 자료를 활용해 직원 개개인에 대한 육성방안을 결정하게 된다. LG전자는 이같은 인재 육성 시스템과 별도로 재학중인 대학생을 선발, 교육을 통해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맞춤형 인재 채용 제도 "디지털 스칼라쉽"을 실시하고 있다. "디지털 스칼라쉽(Digital Scholarship)"이란 디지털 사업의 급속한 전개에 필요한 디지털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공대생 중 전자공학 비전공 학생을 선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전공학생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킨 후 채용하는 맞춤형 인재 채용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는 전자공학 비전공 분야 4학년 공대생 중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을 선발, 방학을 이용해 LG전자 러닝센터(연수원)에서 4주동안 전자공학 기초이론 교육과 현장 실습을 실시한다. 또한 학기 중에는 회사가 지정한 전자공학 전공 중 2과목(6학점)이상을 수강해 B0이상의 학점을 취득하면 입사 특전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디지털 스칼라쉽」은 모든 과정을 수료한 1기생 14명이 올해 졸업과 동시에 LG전자에 연구직으로 입사했고 현재 2기생 59명이 장학금을지원 받으며 교육을 받고 있다.
2001.04.02 I 이의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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