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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넘기는 소리… 행복이 들리나요?
  • 책장 넘기는 소리… 행복이 들리나요?
  • [조선일보 제공] 서울 신당동에 사는 종현(7)이네는 토요일 아침도 평일처럼 분주하다. 맞벌이 생활을 접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인 엄마 이성미(34)씨가 집 근처 도서관을 다니면서 알게 된 어린이 문화교실에 가기 위해서다. 종현이가 듣고 있는 강좌는 토요일 오전 프로그램인 ‘종이접기’. 그림에 소질이 없어 보여 미술학원을 다니라고 해도 극구 거절하던 아이가 종이접기엔 유독 흥미를 붙여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게 일과가 됐다. 주말엔 아이와 남편이 책을 보는 사이 엄마는 공부를 할 수 있어 일석삼조. 도서관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나면 남산 야외식물원으로 산책을 가기도 하고, 새롭게 단장한 ‘N타워’에서 서울 시내를 구경하고 내려온다. 책 읽고 영화 보고… 문화교실도 풍성 요즘 도서관은 한마디로 멀티미디어 공간이다. 초고속 인터넷에 각종 DVD, CD-ROM 등이 구비된 디지털 자료실일 뿐 아니라 논술·영어동화구연·마술교실·풍선아트 등을 배울 수 있는 문화교실이다. 도서관마다 영화 상영이나 음악 감상 프로그램, 이야기 교실 등이 짜여 있는 것은 기본. 여름과 겨울에는 초등학생을 위한 방학 특강이 개설되는 곳도 많다. 수강료는 무료이거나 한 달에 1만 원 정도. 상영되는 영화 프로그램이 최신판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지만, 온 가족이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면 1일 피서지로, 실속 있는 ‘놀토’ 나들이 코스로 충분하다. 아직 한산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근린공원에 문을 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아직은 한산하고 쾌적하다. 23만 권의 도서를 갖춘 지상4층 지하2층 규모의 방대한 어린이청소년 전용 도서관. 장판을 깔아 배를 깔고 엎드려 또는 소파에 앉아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어린이자료실도 예쁘지만 엄마들은 어학실과 영상음향실을 갖춘 멀티미디어실에 눈독을 들일 만하다. 화·목·토·일요일엔 애니메이션과 뮤직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어학실은 4좌석, 영상음향실은 30석이라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당일)하는 것이 좋다. 개관 기념으로 ‘동심의 세계를 그리는-한국아동문학 이야기’라는 전시를 열고 있다. nlcy.go.kr 매일 동화 축제,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매주 화~금요일 진행되는 동화구연 ‘재미 솔솔 이야기 시간’이 인기 프로그램. 수요일에 가면 오후 2시에 진행되는 ‘율동과 함께 동화나라’ 프로그램을 연달아 들을 수 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엔 어린이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7월10~13일까지 접수를 받는 ‘방학특강’도 체크해두자. 초등 3학년을 대상으로 한 ‘방학특강-동화구연교실’이 7월26~28일 열리고, 4학년 대상 ‘방학특강-독서교실’은 7월31일~8월4일 열린다. 이 달 22일 오후 2시에 진행되는 ‘가족이 함께 듣는 토론 이야기’엔 아빠도 꼭 데려가자. children.lib.seoul.kr 강변에서 책 읽기, 광진정보도서관 한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책 읽는 맛이 난다. 이곳은 주말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엔 유아와 초등학생을 위한 구연동화를, 둘째·넷째 일요일엔 영어 스토리텔링을 진행한다. 매주 토요일 2시와 일요일 11시·2시에는 가족 단위로 볼 수 있는 영화도 상영된다. 7월에는 ‘쿠스코?쿠스코! 2’ ‘그리스 로마신화’ ‘내 친구 드래곤’이 상영된다. 7월 말에는 여름방학 독서교실이 열리며 2학기 교육·문화 프로그램인 동화구연교실, 책 만들기 교실 등은 8월 중 접수 예정이다. gwangjinlib.seoul.kr ▲ 서울 역삼동 근린공원 숲 속에 세워진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에서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있는 아이. 주말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마련된다.중국어·바둑도 배워요, 양천도서관 성인과 초등학생을 위한 강좌가 4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문화교실이 활성화돼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주산암산, 천재바둑교실, 동화구연, 독서논술은 조기에 마감되는 인기 강좌. 여느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는 예비 아나운서반, 리더십 향상을 위한 위인탐구반, 중국어반도 눈길을 끈다. 문화교실 신청 접수는 지난 3일부터 진행 중. 자리가 남아 있는 강좌들도 있으므로 지금 문의해도 된다. yangchun.lib.seoul.kr 만화박물관 옆 부천시립도서관 아동인형극, 이야기 교실, 어린이 동화구연 등 유아와 초등학생을 위한 연중 프로그램들이 있다. 월 1~2회 주말에 진행되므로 도서관에 들렀다가 도서관 옆에 위치한 부천 레포츠 공원으로 나들이 코스를 잡으면 금상첨화. 레포츠 공원 내 인라인스케이트 전용 트랙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공원 내 보조경기장 옆에는 놀이기구까지 있어 놀이공원을 따로 가지 않아도 된다. 레포츠 공원 내에는 도자기와 한지공예 등 전통공예 교실도 운영되고 있다. 체험장 옆에는 한국만화박물관, 유럽도자기박물관까지 있으므로 최적의 나들이 코스다. bcl.go.kr
(클릭! 새책)비너스랑 갤러리아 가실래요?
  • (클릭! 새책)비너스랑 갤러리아 가실래요?
  • [이데일리 전설리기자] 캔버스와 붓, 물감, 절대적인 미(美)의 고정된 틀을 벗어던지고 디지털 시대의 나와 너, 우리 사회를 조명한다. 소비와 상업주의에 휘말려 엔터테인먼트와 아트의 경계를 넘나든다. 현대 미술을 이야기하는 책 두 권을 소개한다. ◇비키니를 입은 현대 미술 심란하다. `밀로의 비너스`의 잘려진 팔에 갤러리아 백화점 쇼핑백을 들리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아름다운 팔등신을 로봇으로 둔갑시킨다. `최후의 만찬` 그 성스러운 예수와 열두 제자의 얼굴을 댕강 잘라 후진타오, 장쩌민, 고이즈미, 조지 W. 부시, 노무현, 자신의 얼굴을 붙여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대가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정도로 작품들을 망가뜨려놓고 그녀가 부르짖는 바는 세속적이다. "미술은 생쑈"이고 "최고의 소비 시대에 최고 미술품은 명품(브랜드)"이라고. 낸시 랭. 그녀는 작가 정신에 죽고 사는 가난한 아티스트가 되기 보다 달러를 벌겠단다. 책 곳곳에서 "아이 러브 달러~쪽!"을 외치며 유명세와 돈, 명품에 대한 숭배를 감추지 않는다. "예술도 비키니처럼 가벼웠으면 좋겠다. 나는 그저 미술을 즐기고 싶다"고 말하는 솔직, 대담한 그녀는 소비주의, 쾌락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의 초상.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그 초상을 쫓으며 도발적인 그녀의 초대에 응하다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게 해석한 서양 미술사는 들을 수 있다. 낸시 랭은 뉴욕에서 태어났고 홍익대를 졸업했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 받지 않은 손님으로 찾아가 란제리를 입고 바이올린을 켜는 등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연출해 세계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부터 패션브랜드 '쌈지'의 아트디렉터를 겸하며 설치 미술가, 패션 모델, 광고 모델, 방송 진행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랜덤하우스중앙. 1만1000원. ◇랑데부 아트 `랑데부(Rendez-vous)`는 회합, 밀회, 나아가 남녀 간의 은밀한 사랑을 뜻하는 프랑스어. 새책 `랑데뷰 아트`는 이 시대의 예술을 `랑데부의 예술`이라고 규정한다. 현대의 예술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생각과 생각이 교류하며 시간과 공간이 새로운 장과 만나서 의미를 생성해나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탄생한다고. 책은 온라인에 다이어리 그림일기와 신비한 스타일의 그림을 올려 유명해진 정한별과 아이완 등 디지털 시대가 낳은 예술가들을 소개하며 `디지털 시대의 현대 미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듯 써내려간다. 글씨그림 작가 유승호, 설치작가 이불 뿐만 아니라 장 외젠 오귀스트 아제, 신디 셔먼 등 외국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도 소개했다. 지난해까지 5년간 KBS-TV의 디지털 미술관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이광록 프로듀서와 여경환 구성작가, 영상을 맡았던 정수현씨가 내놓은 단행본. 아트북스. 1만5000원.
2006.06.08 I 전설리 기자
"오! 神이시여" 붓으로… 빛으로…믿음으로 그린 그림
  • "오! 神이시여" 붓으로… 빛으로…믿음으로 그린 그림
  • [조선일보 제공] 뛰어난 예술가는 신(神)의 사랑과 질투를 함께 받는다. 미술로 종교를 만나는 전시 두 개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프랑스 근대미술의 거장 조르주 루오 전시 ‘루오-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5월 4일~8월 27일)와 김인중 신부전(5월 4일~7월 30일)이다. 20세기 초 유럽은 야수파, 표현주의, 입체파 등의 미술사조가 휩쓸었지만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1871~1958)는 어느 한 유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보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예수의 얼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많이 그렸다. 이번 전시에 걸린 유화 ‘모욕을 당하는 예수’(그림, 왼쪽), ‘그리스도의 얼굴’, ‘베로니카’(그림, 오른쪽 아래) 등은 그의 이런 소망을 잘 드러낸다. 루오는 20세기 초 유럽의 거리에서 만나는 밑바닥 인생 또한 잘 그렸다. 지칠 대로 지쳐 피곤하게 몸을 씻고 있는 창녀, 싸구려 서커스의 광대 등이다. 이런 사람들의 그림에서도 그는 성스러운 느낌을 전달한다. 광대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감추어야 하는 슬픈 사람’이라고 보았기에 숙연한 분위기를 담을 수 있었다. 루오의 대표작들은 굵은 윤곽선 속에 물감을 두텁게 칠해 마티에르(질감)가 살아있다. 더욱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는 광휘가 흐른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유명한 판화 연작인 ‘그리스도의 수난’, ‘미제레레’, ‘악의 꽃’ 등도 전시된다. 파리의 조르주 루오 재단, 퐁피두 센터, 파리시립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가지고 왔다. 루오가 생전에 쓰던 붓, 팔레트, 책 등 유품도 같이 볼 수 있다. 김인중(66) 신부는 마리아를 경배하는 주제로 만든 작품 20점을 보여준다. 빛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듯해 ‘빛의 화가’라 불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자기, 스테인드 글라스, 미사제의에 그림을 넣은 다양한 작품을 보여준다. 높이가 2~3m인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에서는 주황, 노랑, 보라의 색깔이 투명한 여백과 어울리며 퍼진다. “종교와 색채의 신비가 어우러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김인중 신부는 2003년 노트르담 성당에서 초대전을 했고, 스위스 프뤼브르 성당, 프랑스 앙굴렘의 세례 요한 성당 등에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 이명희 신세계 회장 "아버지 처럼 되는게 꿈…"
  • [조선일보 제공] “솔직히 말해 국내에서의 작은 성공에 만족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국내에서 제일이 된다든지 국내 경쟁에서 이긴다든지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본을 축적하여 차례차례 새로운 기업을 개척함으로써 선진 외국과 당당히 맞서 이긴다. 그것이 내가 나아갈 길이다.” 세계 경제라는 격전지(激戰地)에서 싸워야 하는 우리에게 고(故) 이병철(李秉喆) 삼성그룹 회장의 이 말은 등짝을 휘갈기는 채찍처럼 들린다. 이 회장이 20년 전에 했다는 이 말은, 그의 3남5녀 중 막내딸이자 신세계(004170)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명희(李明熙·62) 회장이 가장 소중히 품고 있는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이명희 회장은 오는 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기업관과 철학,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배워 기업을 우량기업으로 일군 자신의 이야기를 밝혔다. 국내외 언론을 막론하고 그가 인터뷰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본지와의 독점인터뷰는 지난 3일 강효상 산업부장이 이 회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으로 찾아가 2시간20분 동안 이루어졌다. ―그동안 왜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도 아버지처럼 사진찍기를 싫어해요. 남 앞에서 얘기하는 것이 자신도 없고요. (웃으며) 이번 인터뷰도 1주일 동안 연습한 거예요. 가려져 있는 것을 좋아했고, 사실 영원히 가려져 있고 싶었어요. 우리 직원들도 제 얼굴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 신세계로선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현재 증축 중인 본점이 오는 8월 다시 오픈하는 것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신세계는 삼성그룹에서 분리한 이후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삼성그룹에 함께 있는 동안은 신세계가 발전할 수 없었어요. 삼성의 지원은 대부분 전자나 반도체에만 집중됐지요. 그래서 오빠(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나 분리할래요’라고 말했어요. 분리할 당시 신세계는 백화점 한두 개와 조선호텔 정도였지요. 오늘날 이처럼 성장한 데에는 국제감각이 바탕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섯 살짜리가 성인이 됐을 때는 현재 있는 직업의 90%가 사라질 것이다’는 무서운 말이 있어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마트’도 회장님이 낸 사업 아이디어였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방황했어요. 방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프라이스클럽(회원제 창고형 할인점)과 월마트(할인점)를 가봤어요. 창고형 매장인데 TV가 너무 쌌어요. 50달러, 100달러였어요. 고장도 안 나고 잘 나오더라고요. 한국에서도 할인점을 해보자고 첫 매장을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전문경영인에게 전적으로 회사를 맡기십니까? “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전문경영인을 두고) 너무 나서면 웃기는 일이죠. 그러나 브리핑을 듣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나섭니다. 일하는 사람을 ‘잘 한다 잘 한다’ 하면서 치켜세워야 합니다. 경영은 맡기지만 나중에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요.” ―인재는 어떻게 키우십니까? “아버지는 인재를 나무기르듯 기르라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직접 면접을 보셨어요. 사람들은 아버지가 면접 때 관상(觀相)을 본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길러야 할 사람이라면 기회도 주고 끝까지 지켜봅니다. 동기부여도 하고 어떤 행동을 할까 툭 말을 던져보기도 합니다. 순발력을 보는 거죠. 남이 자기에게 반하게 하려면 자기가 먼저 그 사람에게 반해야 해요. 그러면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회사 일을 맡게 됐나요? “학창시절 제 꿈은 현모양처였어요. 결혼해서도 집에만 있었죠.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회사에 나오라고 하셨어요. ‘아버지 전 못합니더’라고 했죠. 자꾸 뒤로 빼니까 나중엔 화를 내셨어요. 여자도 앞으로는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백화점 사업을 하게 된 것은 그 분야에 소질이 있어서였나요? “모든 자식이 다 회사를 물려받지는 않았어요. 제가 분석하는 걸 좋아하고, 변화무쌍한 것, 새로운 것을 좋아하니까 백화점 사업을 맡기신 것 같아요. 한때는 6개월간 기자생활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출근 전날 아버지는 저를 불러 말씀하셨어요. 첫째가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책임을 피하라는 게 아닙니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라는 것이죠. 대신 믿지 못할 사람은 아예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고도 하셨어요. 무한추구죠. 신중하게 생각한 뒤에는 빨리 진행하라고 가르치셨어요.” ―아버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셨죠?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연도 참 많아요. 조용필의 노래 ‘허공’을 들어보면 아버지와 저의 관계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와의 모든 약속과 사랑이 허공 속에 사라졌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는 왜 저러시지’라고 불평할 때도 전 ‘아버지처럼 해야지’라고 다짐했어요. 형제 중 저만 아버지처럼 메모하기를 좋아해요. (이 회장은 매일 쓰고 있는 메모장(다이어리)을 보여줬다. 다이어리에는 굳은 결심에서부터 새로운 스타일의 구두 사진까지 다양한 자료와 단상이 적혀 있었다.) 제 금고 안에 이런 공책이 20권 정도 있어요. 저는 편식 습관까지 아버지를 닮았어요. 아버지는 스트레스까지 즐기셨지만 전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망가는 편입니다.” ―이병철 회장님이 반도체를 시작하려 했을 때 참모들의 반대가 많았지요? “고민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는 68세 때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서 73세 때 64K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셨어요. 병상에서 암과 투병하시면서도 반도체 실적을 보고받으셨어요. 우리보다 앞선 세대셨던 아버지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시대를 내다보셨는지, 그분의 선견지명에 놀라울 뿐입니다. 아버지는 늘 왜 우리나라에 장보고의 동상이 없는지 궁금해하셨어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장보고와 아버지는 뜻을 같이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는 자주 나가십니까? “1년에 두 번 정도 유럽과 뉴욕을 다녀옵니다. 1년 이상 해외에 다녀오지 않으면 패션을 따라가지 못해요. 저는 외국을 갖다오면 완전히 바뀌어 돌아옵니다. 미국에 가면 건축에 빠지고, 미술감각도 달라져 돌아옵니다. 좋은 것을 발견하면 반드시 사진을 찍습니다. 그 물건이 몇 달 뒤엔 꼭 제 앞에 있어야 해요. 추구하지 않고 감동받지 않는 삶은 재미가 없어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는 자주 만나십니까? “남산에 운동하러 갈 때 만나요. 오빠가 가끔 집으로 오라고도 합니다. 집안 문제 가지고 의논하죠. 가족끼리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할 때 말이죠. 홍 관장(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현재 삼성미술관인 ‘리움’ 관장)하고도 친하게 지내요. 서로 나이도 비슷하고, 자식들 나이도 비슷하니까요. 판단 기준도 비슷해요.” ―선대 회장님과 오빠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두 사람의 성격은 아주 달라요. 물론 예민한 건 우리 셋이 다 닮았죠. 하지만 아버지는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파악하세요. 아버지는 계획적이고 통제적이시죠. 오빠는 스케줄에 얽매이지 않고 철학적이며 한없이 관대하죠.”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십니까? “9시쯤 일어나서 제일 먼저 신문을 보면서 기고문, 경제·교육분야 기사 등을 스크랩합니다. 원본은 따로 스크랩하고 복사한 종이는 다이어리에 붙여요. 식사 후에는 책을 봅니다. 요즘은 책을 보면 어깨가 아파서 다른 사람보고 읽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창조적 마인드’(하워드 가드너 지음)같이 너무 좋은 책은 직접 읽어요. 밤에는 시사프로그램 등 TV를 봅니다.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려요.(자신이 직접 스케치한 언니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얼굴과 자화상 등을 보여줬다.) 대학들어갈 때는 그림을 입학하기 위한 ‘무기’로 배웠지만 지금은 즐겨요. 앞으로 한문글씨도 배우고 싶고 펜글씨도 배우고 싶어요.”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1년 동안 8㎏을 뺐어요. 살찌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드니까 먹는 것을 방치해서인지 자꾸 살이 찌더라고요. 어느날 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번 결심한 것을 안 하면 전 입에 가시가 돋는 것 같아요.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달려듭니다. 식사는 하루에 두 끼만 먹어요. 저녁은 샐러드를 겸해서 먹고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어요. 골프와 남산을 걷는 것이 즐기는 운동입니다.” ―오는 8월 오픈하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은 어떤 곳이 되길 바라십니까? “지금 한국 백화점들은 그게 그겁니다. 내 콘셉트는 차별화입니다. 손님들이 ‘신세계는 도대체 어딜 가서 이런걸 뽑아왔어?’라고 할 정도로 놀라게 해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업체에 백화점 매장만 빌려주는 임대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물건을 사서 들여 놓을 겁니다.” ―신세계 그룹이 장래에 삼성그룹을 능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십니까? “아직 세상 끝난 것 아니잖아요? 백화점만이 유통은 아닙니다. 유통은 무궁무진한 세계입니다. 빨리 아이디어를 내서 바꿔나가는 게 중요해요.” ―언제가 가장 보람있는 때입니까? “아버지가 평가받으실 때입니다. 제가 일군 이마트도 자랑스럽지만 아버지처럼 되는 게 제 꿈입니다. 오늘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제 처지도 보람있어요. 그것은 저에 대한 브랜드 가치가 있어서 아닙니까? 하지만 앞으로 10년 동안은 대면 인터뷰를 안 할 생각입니다.(웃음)” ―신세계의 미래 비전을 말씀해주시죠. “비전이 크지요. (유명 브랜드) 아웃렛도 해야 하고, 홈쇼핑, 소프트웨어도 팔 겁니다. 이마트에서는 지금 하드웨어만 팔지만 앞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 등 갖가지 소프트웨어도 살 수 있게 할 겁니다. 또 세계에서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2013년까지 신세계를 세계 10대 유통그룹으로 키울 겁니다. 국내에 이마트를 130개, 중국에도 이마트를 25개까지 늘릴 겁니다. “ ―그룹의 임직원들에게 어떤 당부를 하고 싶으십니까? “이 상태에서 행복을 유지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항상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제가 30대에 하루는 골프를 쳤어요. 파 포(par four) 홀에서 잘 쳐서 두 번째 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공 치느라 바빠 저만 나무 밑에서 쉬었어요. 모자를 벗으며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불행이 오면 어떡하나’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행복할 때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미국의 부자들)헤지펀드는 예술품 애호가
  • [edaily 김현동기자] 요즘 예술품 경매시장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월가의 돈이 예술품 경매 시장으로 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월가의 유명한 트레이더들이 컬렉터로 이름을 날린 것은 오래전부터다. 1900년대 초 주식발행 업무로 시대를 주름잡았던 J. 피어퐁 모간은 월가 컬렉터의 1세대에 속한다. 1980년대에는 기업차입인수(LBO)으로 유명한 사울 P. 스타인버그와 헨리 R. 크라비스가 역시 컬렉터로 유명했다. 모네나 마네의 그림으로 냉혹한 기업사냥꾼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월가의 돈이 헤지펀드로 이동하면서 월가의 컬렉터도 젊고 공격적인 헤지펀드 매니저로 바뀌고 있다. 그 중 최근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물이 SAC 캐피탈의 스티브 코헨(48)이다. 코헨은 2년전 3억5000만달러를 벌었고 지난해에는 그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헤지펀드 매니저답게 그는 컬렉션에서도 공격성을 유감없이 발휘, 이름난 작품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그는 지난 5년간 잭슨 폴록의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그림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튀겨서 그리는 그림)을 비롯해 마네의 자화상, 모네의 수채화, 드가의 무용수 그림, 앤디 워홀(`슈퍼맨`)superman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 아트 작품을 사 들였다. 이를 위해 그가 쏟아부은 돈만 3억달러가 넘는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스타 작가 데미언 허스트가 포름알데히드에 호랑이와 상어를 집어넣고 박제시킨 14피트짜리 작품을 800만달러에 사들여 유명해졌고, 근래 가격이 크게 오른 리차드 프린스의 사진으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 폐쇄적인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이름도 생소한 헤지펀드 매니저가 이렇게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돈의 힘’이다. 코헨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십만달러를 기꺼이 내놓는다. 코헨이 폴록의 작품을 5200만달러에 사고, 워홀의 팝아트 작품을 2500만달러에 매입했을 때 미술품 딜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믿기지 않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코헨이 제시한 가격은 바로 그 작품의 기준가치로 됐고, 시장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맨하튼 박물관의 딜러인 페리 루벤스타인은 “심리적으로 보면 코헨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샀다고 하면 그 작가의 작품 가치가 올라가고, 심지어 다른 작가의 작품 가격을 올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평했다. 유명한 작품만을 주로 매입하다보니 업계의 평판도 좋다. 라이트이어 캐피탈의 회장이자 페인웨버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고 모던 아트 뮤지엄의 수탁자인 도널드 B. 매론은 코헨의 소장품을 보고 나서 “그는 상당한 안목이 있는 컬렉터입니다. 아주 독특한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감성과 함께 탁월한 식견,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합니다”고 말했다. 물론 열정적인 컬렉터이면서 현대 미술관의 가장 큰 후원자의 한명인 코헨의 컬렉션에는 나름의 특징이 있다. 수집한 예술품을 여러 단체에 기증했던 앤드류 맬론이나 에스터 로더 회장 로널드 로더와 달리 코헨은 세계적으로 인정된 작품들만 수집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가 직접 보지 않은 채 유명하다는 말만 듣고서 살 작품을 선택한다는 말도 있기는 하다. 코헨은 이미 컬렉터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로널드 로더, 라스베가스 호텔과 카지노 주인인 스테판 A. 윈, 출판업자 S. I. 뉴하우스 2세, 레온 D. 블랙, 크라비스 등으로 구성된 클럽의 구성원이다. 코헨은 현금자산만 20억달러로 알려진 월가의 가장 영향력있는 투자자다. 포지션 이동이 잦은 공격적인 트레이더로 월가에서 가장 많은 수수료를 내는 매니저 중 한 명이고, 연간 투자수익률은 최저 13%에서 최고 60%에 이른다. 지난해 수익률은 23%였다. 그는 독학으로 예술사를 공부했고, 4000권의 예술사 서적과 수백권의 예술가에 대한 책을 사서 읽었다. 그는 최근 현대 미술관의 작품매입위원회 위원에 선임돼 조만간 이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월가의 새로운 예술 후원자로 떠오른 헤지펀드 매니저에는 코헨만 있는 게 아니다. 시카고에서 80억달러를 자산을 운용하는 시타델 인베스트먼트 그룹의 창립자 케네스 그리핀(36)은 최근 지난 1999년 소더비 경매에서 6000만달러에 낙착됐던 세잔의 정물화를 사들였다. 골드만삭스의 파트너였다가 지금은 에톤 파크 캐피탈을 운영하는 에릭 민디시(36)와 앤도르 캐피탈의 다니엘 C. 벤튼은 휘트니 뮤지엄의 이사다.
2005.03.07 I 김현동 기자
  • "경영권안정 위해 최대한 노력"-현정은 회장(상보)
  • [edaily 김희석기자]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의 모든 경영진들은 현대그룹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며 "법규를 위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시도하는 KCC측의 경영권 행사 주장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슬기롭게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9일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은 각각 1월호 사보를 통해 현정은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게재했다. 현정은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경영권 수호의지를 재천명했다. 아울러 현대엘리베이(017800)터가 시대의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한다면 2007년 매출 1조원 달성과 2010녀 세계 10대 종합운반기업회사 진입이라는 경영목표를 무난히 달성할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상선(011200)에 대해서는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현대상선이 세계 최고의 종합물류기업으로 발전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1. 현대그룹 경영과 관련해 가장 역점을 두고 계신 점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경영철학과 기업가 정신을 이어가면서, 국민기업화 취지 계승 발전, 경영안정,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 전문경영인 체제의 책임경영, 소액주주 중시경영에 가장 역점을 둘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넘게 면면히 이어온 창조적 정신, 적극의지, 강인한 추진력이라는 현대정신과 회사와 주주의 이익은 물론 국가경제발전에도 기여하는 다양한 사업을 발전시켜온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무형의 자산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하는 현대그룹의 살아있는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대그룹의 정통성이 변함없이 계승 발전되도록 저는 최대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기업 경영 전반과 지배구조 개선 등을 포함한 제도개선을 통해 이사회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능력 있고 유능한 전문경영인들이 소신껏 최대한 능력을 발휘해 기업 가치를 높여 나가게 할 것이고, 회사의 이익을 모든 주주들과 나누고,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고부가가치 사업진출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나가며, 열심히 일해 주는 직원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전문경영인들을 적극 뒷받침해 나갈 것입니다. 현대그룹의 정통성에 따라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며,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재도약해 나가기 위해 모든 총력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 2. 최근 현대그룹 경영권 문제는? 우선 현대그룹 임직원 및 현대그룹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저를 비롯한 현대그룹의 모든 경영진들은 현대그룹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 경영진들은 시장의 기본질서이자 법규를 위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시도하는 KCC측의 경영권 행사 주장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슬기롭게 막아낼 것입니다. 위기와 기회는 동시에 찾아온다고 합니다. 현재 현대그룹이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임직원들이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잊지 않고, 현대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일치단결해 어려움을 극복한다면, 우리 현대그룹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기업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 임직원 여러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저와 현대그룹 경영진들을 믿고 변함없는 애사심을 갖고 각자 업무에 충실해 주시길 바랍니다. 임직원들의 노력에 반드시 보답해 드릴 것입니다. 3. 현대그룹 회장으로서 경영일선에서 직접 느끼신 점은?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제가 현대그룹의 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이신 정주영 명예회장님과 정몽헌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현대그룹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현대 가족들의 의견과 유족인 제가 책임을 회피한다면, 그동안 현대그룹이 쌓아온 명성과 신뢰를 잃을 수도 있기에 현대그룹의 모든 책임을 떠맡고 회장직에 나섰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현대그룹을 사랑하고, 현대그룹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의지만큼은 누구한테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현대그룹은 국가의 기간산업을 일으키고, 남북경협사업을 주도하는 등 국민기업, 민족기업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정몽헌 회장님은 특히 기업이 어느 정도 커지면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면서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념을 구현코자 하셨습니다. 저는 정몽헌 회장님의 꿈을 반드시 실현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전 경영일선에 직접 나서면서부터 자신감과 함께 현대그룹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기업은 한사람의 힘에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8천여 명의 임직원들의 힘이 합쳐져 움직여진다는 현대그룹의 저력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대그룹의 뛰어난 전문경영인들과 우수한 인재들을 중심으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강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4. 현대그룹이 원하는 인재관은? 창조적 정신과 강인한 추진력을 지녔으면 합니다.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줄 하는 창의적인 젊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장에 활용해 나가는 실천력도 뒤따라주어야 합니다. 정주영 명예회장님은 항상 남보다 먼저 생각하고, 일단 확고한 신념이 생기면 황소처럼 밀어붙여 남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을 다 이루어 내셨습니다. 도덕성과 올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공명정대한 방법으로 일을 추구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사회,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일해 나갈 수 있어, 저희 현대그룹이 추구하는 국민기업화 취지에도 부합되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고를 목표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 나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외국어는 물론이고, 국제적 비즈니스 감각과 글로벌화된 시각을 갖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 변화의 추이에 맞춰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5. 올해 최고의 실적을 올린 현대상선 직원들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십시오. 현대상선은 돌아가신 정몽헌 회장님이 많은 애착을 가졌던 회사였습니다. 지난 1981년 회장님이 처음 대표이사 직책을 맡으신 회사가 바로 현대상선이며, 2000년까지 거의 20년간 현대상선의 경영을 직접 맡으시면서 국내 최대이자 굴지의 세계 해운기업으로 키우셨습니다. 이런 현대상선이 유동성문제와 대북송금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정 회장님은 물론이고 저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노정익 사장을 비롯한 현대상선 임직원 여러분이 한마음으로 구조조정과 자구노력을 기울여 회사를 안정화시켰고, 올해는 눈부신 실적을 올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현대상선이 세계 최고의 종합물류기업으로 발전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또한 지금처럼 임직원 여러분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주신다면 현대상선은 앞으로 더 좋은 회사, 탄탄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6. 내년도 해운시황 및 사업전망을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젊었을 때부터 친정아버지이신 현영원 회장님을 통해 해운업에 대해 많이 배웠고, 정몽헌 회장님께서도 자주 현대상선 말씀을 하시곤 해서 그런지 해운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해운업은 국내보다는 국제 경기에 민감한 글로벌 비즈니스입니다. 세계적 추이를 살펴보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해운시황전망이 매우 밝을 것 같습니다. 또 세계경기가 뚜렷이 회복세를 보일 전망이어서 물동량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전반적인 해운업 시황은 호조를 보여서, 현대상선은 내년에 올해보다 더 나은 수익을 시현할 것으로 믿습니다. 중장기적으로 현대상선은 IT에 대한 투자와 세계경기에 영향을 덜 받는 사업에 대한 신규투자를 확대해 수익구조를 다변화 시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현대상선은 초일류 종합물류기업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7. 현대그룹의 국민기업화를 시도하셨는데 그 취지 및 계획은? 현대그룹의 국민기업화 취지는 그동안 현대그룹이 추진해 왔던 사업의 성격과 방향이 국가경제에 큰 기여를 해왔던 점과, 더욱이 평소 정몽헌 회장의 경영철학이었던 &43088;기업은 어느정도 규모가 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43089;는 뜻을 계승하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현대그룹의 국민기업화 취지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 정신은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대그룹 모든 계열사에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과 전문경영인 중심의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소액주주들의 실질적인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도 마련해 나갈 것입니다. 8. 회장님의 좌우명은? 늘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또 그러한 실수를 통해 하나씩 더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 그 순간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저는 무엇이 딱 `옳다` `그르다`로 단정 짓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때 그때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하고, 또한 자기가 최선을 다 한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한 과정에 대한 만족을 느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9. 건강관리 비결은? 사실 최근엔 여유가 없어서 규칙적인 운동은 못하고 지냈습니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하는데 차를 타고 바쁘게 돌아다니다보면 걸을 기회가 너무 없어서 최근엔 아이들이 몸관리도 좀 하라고 면박이 심합니다. (웃음) 건강에 신경을 좀 더 써야할 것 같습니다. 뛰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등산도 별로 즐겨하지는 않습니다만 평지에서 걷는 걸 좋아합니다. 실내에서 걷는 것보다는, 친구나 아이들과 함께 저녁에 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 가서 자주 걷곤 했습니다. 10. 퇴근 후나 주말 등 여가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시는지? 그림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예전엔 미술관을 자주 다녔습니다. 영화도 좋아해서 즐겨하는 편입니다. 골프는 시도해봤는데 별로 재미가 안 붙더군요. 영화는 비디오로 보는 것보다 직접 극장에서 보는 걸 좋아하고 음악회 가는 것도 좋아합니다. 친구하고 보러 갈 때도 있고 아이와 함께 가기도 하는데 최근엔 못 갔습니다. 예전엔 스포츠댄스에 빠져서 한 2, 3년 재밌게 배웠는데 이 역시 요즘은 못하고 있습니다. 11. 가장 존경하는 인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신 현대그룹의 창업자이자 시아버님이신 정주영 회장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일부에선 다소 저돌적이라곤 하시지만 제가 곁에서 가까이서 뵌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실 때는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한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시면 바로 잠을 청하시며 시간을 쪼개 쓰시는 모습이나, 근검절약하는 생활습관,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 등 참 배울 점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12. 감명 깊게 읽은 책? 책을 닥치는대로 읽는 편인데, 미국에 있을 때는 `인성개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관련 도서를 많이 읽었고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책을 좋아합니다. 한국에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고 번역이 되어서 나온 책이 기억이납니다. 요즘은 읽으려고 책은 많이 샀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깊이 빠져들지는 못 하는 것 같습니다. 13.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신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자녀교육관은? 아무래도 사회학을 전공하다보니 각종 사회단체들하고 많이 연관되기도 하고 또 관심이 가고 해서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 뜻을 최대한 받아주는 편인데 아이들이 하고 싶다고 하면 막지 않고 알아서 해라, 그런 식입니다. 그런데 자율성을 강조하다보니 너무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결정 내릴 때 더 고민하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아무래도 예전보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가 먼저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남을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 있으면 도와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어려서부터 얘기해 오곤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도 잘 따라주고 있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14. 2004년도 회장님의 개인적인 소망은? 직원들에게 덕담 한 말씀? 우선 우리 현대그룹이 흔들림 없이 잘 나갔으면 하는 게 지금 제일 큰 소망입니다.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건강관리를 잘 했으면 하고, 아이들이 학교 잘 다니고 아무 문제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한편 직원 여러분들이 모두 현대그룹에서 일하는 데 자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대 정신`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울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한 개개인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냈으면 합니다. 저는 현대 가족 여러분들이 신나는 직장 분위기를 갖게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 기회가 닿는다면 직원 여러분과 직접 만나서 어울리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2004.01.09 I 김희석 기자
  • (edaily리포트)2003년 1월 뉴욕의 겨울풍경
  • [edaily 정명수기자] 미국 제1의 도시 뉴욕은 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영하 17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이 엄습했습니다. 9.11테러, 자본주의의 심장, 급락하는 주가, 이라크 전쟁.. `빅 애플`로 불리는 뉴욕은 영욕의 현장입니다. 경제부 정명수 기자가 얼어붙은 뉴욕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2003년 1월 뉴욕이라는 공간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시죠. 우리에게 미국은 뭘까요. 미국 경제는 뭘까요. 미국 경제의 심장, 뉴욕은 또 뭘까요. 우리는 뉴욕 증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받습니다. 그러나 정작 뉴욕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죠. 그 속에 있는 건물들, 사람들, 공원, 박물관 등등.. 뉴욕은 이 모든 것이죠. 타임스퀘어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번화한 거리입니다. 추운 날씨에도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큰 전광판이 있습니다. 주식 시세를 보여주죠. 뉴스도 나옵니다. 타임스퀘어 한 구석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떤 뉴스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노무현 당선자는 북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주가에 영향을 주는 뉴스 중 하나로 노 당선자의 인터뷰가 전광판을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걸로 끝. 타임스퀘어에서 북한 핵 문제는 이렇게 한줄로 정리됐습니다. 케이블TV 제가 묵었던 곳에는 채널이 800개가 넘는 케이블 TV가 있었습니다. CNN, MSNBC, FOX등 채널을 돌릴때마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바그다드, 터키, 쿠웨이트, 사우디를 인공위성으로 연결, 그곳에서는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시시각각 보고하고 있는 것이죠. 백악관 주변의 시각, 의회 지도자, 군사 전문가도 끊임없이 등장하구요. 심지어 이라크 침공 루트를 설명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TV들은 이미 전쟁을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아니, 전쟁을 하라고 조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9.11테러가 후세인 소행이라고 믿는 미국인들도 있답니다. 언론의 위력이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아침 일찍 레오나르도 다빈치 특별전을 보러 갔습니다.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드로잉을 모아서 전시회를 연 것이죠. 이 전시회는 모건스탠리의 후원으로 열렸습니다. 증시 상황이 나빠지면 감원의 칼날을 뽑아드는걸 주저하지 않는 투자은행이 그림 전시회를 후원하다니...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또 하나. 전시된 그림을 설명해주는 오디오 가이드가 있습니다. 5달러를 내면 녹음기 같은 것을 줍니다. 그림에 붙어 있는 번호를 누르면 설명이 나옵니다. 재밌는 것은 오디오 가이드 후원사였습니다. 9.11 테러 직후 뉴욕 시장에 당선된 마이클 블룸버그, 그가 운영하는 경제 통신사 `블룸버그`였습니다. 투자 은행은 전시회를 후원하고, 투자 뉴스를 공급하는 통신사는 오이오 가이드를 후원하고... 버스 미술관을 나와서 버스를 탔습니다. 숙소가 있는 롱아일랜드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죠. 뉴욕의 버스에는 토큰이 없습니다. 우리의 교통카드 비슷한 메트로 카드가 있죠. 지하철과 버스를 동시에 탈 수 있습니다. 메트로 카드가 없으면 반드시 동전을 내야합니다. 버스 요금통이 지폐를 인식하지 못하거든요. 1달러50센트하는 버스 요금이 없었습니다. 지폐뿐이었습니다. 당황했죠. 우락부락하게 생긴 흑인 운전기사가 뭐라고 야단입니다. 여행 가이드책에 이런 경우, 승객들에게 동전 교환을 부탁하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Can you exchange this bill to coins...?" 되는 영어인지 안되는 영어인지 무작정 옆자리 승객에게 부탁했습니다. 한참을 가방을 뒤져서 동전을 찾더군요. 근데 없다는 거에요. 그 옆에 여자 승객에서 부탁했죠. 역시 동전이 없데요. 그런데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짓더군요. 결국 앞자리의 흑인한테서 동전을 바꿨습니다. 버스 승객들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동전을 바꿔달라는 제 요청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줬습니다. 이런 미국인들이, 이런 뉴요커들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고, 이라크와 전쟁을 못해 안달이라는 것이 믿겨지십니까. 기차 저녁 8시. 팬실베니아 스테이션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뉴욕 맨하탄은 집값이 워낙 비싸 대부분 기차로 한두시간 거리의 교외에 집이 있습니다. 우리로 치면 분당이나 수원 쯤에서 통근하는 거죠. 기차는 승객들로 꽉찼습니다. 좌석이 없어 서서 가는 승객도 많습니다. 햄버거로 간단하게 저녁을 때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펼쳐든 지역 신문을 유심히 봤습니다. 헤드라인이 뭘까요. 실업률 기사였습니다. "올해도 실직은 계속된다. 노동시장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출퇴근을 하니까요. 보통의 뉴요커들은 주중에 딴 짓을 거의 못한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와야 8시까지 출근이 가능하고, 퇴근하고는 곧바로 집으로 가야 내일 아침 또 출근을 하죠. 직장을 잃지 않으려면 어쩌겠습니다. 집-직장-집-직장.. 다람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유태인과 한국인 록펠러 센터 뒤편으로 가면 서울 종로와 같은 금방 거리가 나옵니다. 대부분 도매상입니다. `LK 메가 골드`라는 금방을 경영하는 한국인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에서 금장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진입장벽이 높고, 인맥이 있어야 하니까요. 미국의 귀금속 시장은 유태인이 꽉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까만 외투에 높은 모자, 턱수염을 길게 기른 유태인, 아니면 빵떡 모자를 쓴.. 이런 유태인들이 좌지우지하는 뉴욕의 금시장에 한국인들이 얼마나 진출해 있을까요. 놀랍게도 금 거래의 모든 단계에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금을 세공하는 공장, 그 공장에서 물건을 받아서 도매로 넘기는 도매상, 그 도매상과 연결돼 있는 소매상, 심지어 금세공 장비를 파는 가계까지. 다이아몬드 거래에도 한국인들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LK 메가 골드` 사장님은 10년전 무작정 미국으로 온 불법 체류자였다고 합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꿈을 향해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근 미국에 사는 한국 교민들은 걱정이 많다고 합니다. 촛불 시위를 보도하는 미국 현지 언론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거죠. 그래도 유태인을 능가하는 끈끈한 삶의 의지를 누가 꺾겠습니까.
2003.01.29 I 정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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