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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썩는데 500년 ‘멜라민 그릇’ 고작 250원에 팔리는 까닭[플라스틱 넷제로]
    썩는데 500년 ‘멜라민 그릇’ 고작 250원에 팔리는 까닭
    김경은 기자 2022.08.21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음식점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멜라민 그릇이 레트로 열풍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멜라민 그릇은 대표적인 ‘열경화성’ 플라스틱 제품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재활용이 불가능하고, 썩는 데 수 백년이 걸리는 플라스틱이다. 고열에 노출 시 암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것을 고려할 때 소각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개당 250원에도 판매되는 멜라민 그릇 가격엔 이 같은 어마어마한 환경오염비용이 고려됐다고 보긴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사용 저감 정책의 ‘허점’을 짚어봤다. 식당에서 흔히 사용되는 멜라민 그릇(사진=이데일리 김경은 기자)◇폐기물 부담금 감면·면제 대상 줄여야우선 상당수 업체가 최소한의 처리 비용조차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나라는 재활용이 어려운 폐기물을 생산 또는 수입하는 업자에 대해 폐기물 부담금을 부과한다. 플라스틱 폐기물 ㎏당 150원의 기본요율을 적용한다. 21일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부과액은 지난해 871억원으로 최근 5년사이 31.9%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폐기물부담금 상승률 7.0%를 크게 웃돈 것이다. 하지만 실제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폭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법적으로 일정 규모 이하의 사업장은 부담금을 면제해 주고 있어서다. 전체 폐기물 부담금 대상의 약 30%가 감면대상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영세업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매출액 10억원 이하나 연간 생산량 10t(톤)이하인 업체는 폐기물 부담금 대상에서 제외해주고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 가운데서도 매출액 200억 이하에선 매출 구간에 따라 50~100%의 부담금 감면이 이뤄진다. 폐기물 부담금을 내지 않으려고 법인을 쪼개거나 생산 규모를 조정하는 편법도 일부 발생하고 있다.열경화성 수지는 멜라민수지 외에도 페놀수지, 우레탄수지 등 다양하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매우 폭넓게 사용된다. 소각이 어렵고, 반영구적이다. 열경화성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방법은 최초 만들었던 모양 그대로 다른 용도로 쓰는 경우 뿐이다. 주로 자동차 산업에서 폐자동차 범퍼를 재활용하는 경우가 거의 유일하다. 그릇은 대체품이 많기 때문에 가격부담이 상승하면 사용량 감소로 이어질 여지가 충분하다. 멜라민 그릇의 경우 영세 가공업자나 수입업자가 많아 제외되는 곳이 많다. 이같이 폭넓은 감면과 면제 대상을 줄여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출처: 한국환경공단◇부담스럽지 않은 부담금…임금 1.4배 올랐는데 10년째 제자리폐기물 부담금 현실화가 10년째 이뤄지지 않으면서 부담이 지나치게 낮은 점도 문제다. 심지어 재활용 가능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보다 부담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폐기물 부담금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분담금보다도 전반적으로 낮았다.한국포장재재활용공제조합에 따르면 12개 품목의 플라스틱류 EPR 분담금 중에서 폐기물 부담금보다 높은 품목이 7개에 달했다. 생산자가 재활용 의무 이행률을 미달해 패널티(부과금)를 받게 될 경우엔 EPR 대상기업들은 폐기물부담금 대상 기업에 비해 최대 3.8배 더 많은 벌칙금도 내야한다. 환경에 더 많은 부담을 주는 재활용 불가능 플라스틱 생산자가 재활용 가능 제품을 만들고 재활용 의무를 이행하는 생산자보다 부담이 적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환경치유 비용이 고려되지 않고 소각이나 재활용 등 폐기물 처리 중심으로 비용을 책정한 탓이다. EPR 분담금은 재활용 처리 비용을 고려한 것으로, 소각을 기준으로 책정된 폐기물 부담금 요율보다 전반적으로 높다. 또 현재 폐기물 부담금 요율은 지난 2008년에 정해진 금액으로 2012년 적용돼 10년째 그대로다. 물가상승분을 반영하면서 올해는 182원으로 10년 동안 21% 올랐으나, 이 기간 최저 임금이 1.4배 뛴 것과 비교하면 임금 상승분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 담당 공무원들은 1년 반 남짓이면 부처를 옮기기 때문에 저항이 심한 요율 인상을 추진하기보다 다른 현안을 처리하는데 업무가 치중돼 있다”며 “유럽의 플라스틱세나 2024년 플라스틱 국제협약 도입 등으로 플라스틱이 무역장벽화할 가능성이 나오는 만큼 플라스틱 정책 정비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유럽연합은 최근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해 ㎏당 0.8유로(한화 약 1050원)의 플라스틱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는 우리나라 폐기물부담금의 약 5.7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 폐플라스틱 놓고 '中企 vs 대기업' 양육권분쟁 '왜'[플라스틱 넷제로]
    폐플라스틱 놓고 '中企 vs 대기업' 양육권분쟁 '왜'
    김경은 기자 2022.08.14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폐플라스틱을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육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SK지오센트릭·LG화학·롯데케미칼 등 주요 대기업이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자, 지난해 12월 한국자원순환단체총연맹 등은 ‘플라스틱 원료 재생업 및 선별업’ 두 가지를 동반성장위원회에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신청했다. 이에 그동안 숨 가쁘게 진행했던 대기업의 국내 폐기물 업체 인수합병(M&A) 및 지분투자는 올스톱 상태다. 이를 상황이 유사한 양육권 분쟁에 비유해 보자. 형편이 썩 넉넉하지 않은 중소 씨는 그동안 건강한 ‘A폐플라스틱’이와 난치병을 앓는 ‘B폐플라스틱’이를 그럭저럭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 남편 대기업 씨가 몸이 아픈 B를 데려가겠다고 나선다. 재벌인 전 남편은 B가 건강한 플라스틱으로 세상에 나갈 수 있게 수 조원을 들여 치료법도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기업 씨는 B와 친해지려고 노력해왔지만, 중소 씨의 이 같은 반발에 한발 물러난 상태다. 동반성장위의 결정을 앞두고 관련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앞으로 대기업은 3년간 이 시장에 진출할 수 없다. 동반성장위는 올 연말까지 판단을 내놔야한다.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폐기물업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분쟁SK지오센트릭은 기존의 석유화학 기업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주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유전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목표를 드러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국내외에 약 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뿐만 아니다. 롯데, 한화 등 알만한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모두 사활을 걸고 뛰고 있다.그러려면 과거 플라스틱 생산에 그쳤던 사업모델을 전면 수정해야한다. 폐기물 선별·재활용까지 확장해야 한다. 폐플라스틱이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플라스틱 ‘순환(Circular)’ 모델 밑작업이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지난해 8월 기자간담회에서 “리사이클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인 효율적인 ‘쓰레기 모으기’를 위해 어떻게 인공지능(AI), 디지털전환(DT) 기술을 접목시킬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나 사장은 지난달 미국 뉴욕시에 위치한 고형폐기물 재활용 수거 및 선별 시설 ‘심스 재활용센터(Sims Municipal Recycling Facility)’를 방문하기도 했다. 뉴욕시는 심스 외에 선별 분리 재활용 업체가 단 2곳이 도시의 폐기물 처리를 담당한다. 국내에선 플라스틱 재생 및 선별업은 국내 341곳의 중소·영세사업자들이 해왔다. 업계 1위인 알엠이 지난해 매출액 580억원, 영업이익 33억원을 기록한 정도다. 매출액 1억원을 넘기는 곳은 절반도 안된다. 대기업 진출 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운영 격차가 불가피하다. 영세·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자명하다. 결국 건강한 ‘A’까지 재벌 남편에게 뺏길 수 있다는 것이 이들 우려의 핵심이다. A폐플라스틱은 고품질 폐페트(PET)병이 대표적이다.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제도 시행으로 우리나라도 고품질 폐페트가 늘어나고 있어 중소 씨의 사업도 꽤 활기를 띄고 있다. B폐플라스틱은 말 그대로 B, C급의 질이 좋지 않은 폐플라스틱이다. 수요가 적어 골칫거리다. 이는 지난 기사(국제망신 '쓰레기산' 없앨 방법 알아보니[플라스틱 넷제로])에서도 자세히 다룬 바 있다. ◇“B급 플라스틱엔 기술·자본력 필요”그런데 양육권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아이의 의사다. 이해관계가 대립중인 어른들 입장이 아닌 ‘B폐플라스틱’이의 입장에서 보자.중소 씨는 난치병을 앓는 B를 키우기엔 돈이 많지 않다. B가 덜 아프려면 고가의 광학선별기(플라스틱 자동 선별기)나 로봇 자동화기기 등이 필요하다. 잔병치레(작은 크기의 플라스틱 잔재물)는 눈 감고 넘어갔다. 거의 매립이나 소각으로 처리했다. 재벌 남편에게 B의 잔병치레는 당장에도 해결할 능력이 된다. 대기업이 선별·분리업체에 지분투자를 하면 시설 고도화가 가능해진다. 버려지는 잔재물 등을 포함해 B급 폐플라스틱을 보다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 대기업 씨는 중소 씨와의 원만한 합의가 쉽지 않다 보니 당초 양육권에서 면접권 수준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지난해 재활용 업체 인수합병(M&A) 시장은 SK를 비롯해 LG, 한화 등이 동시에 진출하며 뜨겁게 달아 오른 바 있다. 현재는 거의 중단 상태로 파악된다.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원료의 안정적 공급은 굳이 경영권이나 운영권이 아닌 지분투자를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며 “중소기업과 상생방안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SK지오센트릭과 美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가 CES2022 현장에서울산에 폴리프로필렌 폐플라스틱 재활용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내용의 주요 조건합의서를 체결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SK지오센트릭 제공◇도시유전, 아직은 기술 상용화 전…“빠른 사업전환 필요”이번 양육권 분쟁의 또 다른 관건은 B의 난치병을 고칠 수 있느냐다. 중화학업체들은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폐플라스틱을 ‘버진(Virgine) 플라스틱’과 동일한 품질로 만들어내는 이른바 도시유전이라 불리는 기술개발에 투자를 진행 중이다. 오염도가 높은 B급 폐플라스틱으로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은 현재 핵심 기술인 해중합, 열분해, 솔벤트 추출 등 3대 기술력은 모두 갖춘 상태다. 현재는 각 기술을 상용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하지만 물리적 재활용에 비해 높은 탄소배출량과 결국엔 A급 폐플라스틱을 가져갈 것이란 기존 재활용 업체의 우려도 설득력이 없진 않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폐플라스틱의 잘못된 유출을 방지하려면 대규모 자본력과 기술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오는 2024년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도입으로 플라스틱 리사이클 시장의 시계열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계형산 목원대 신소재화학공학과 교수는 “국내 중화학업계는 기존 사업의 개념을 바꾸거나 플라스틱 버진 원료 생산을 줄이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화학적 재활용’은 중화학업체들에겐 성장전략의 일환이기에 앞서 생존이 달린 문제라는 말이다. 동반위가 중소기업의 편을 들어준다면 법적소송 등 어떤 식으로든 맞대응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순환경제 패러다임은 전 세계적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도 대립이 아닌 상생모델 구축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액센츄어가 세계경제포럼(WEF)과 쓴 책 ‘순환경제 시대가 온다’에서 저자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디지털 기술, 엔지니어링 등을 통해 기존의 생산·소비 방식을 파괴하는 순환 우위를 확보하는 기업은 향후 250년간 지구촌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폐기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도록하는 순환경제 패러다임이 향후 250년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이어 “2030년까지 현재의 폐기물을 경제적인 부(富)로 바꾼다면 그 보상은 무려 4조5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 미세플라스틱의 기습…위해하지 않은게 아니다[플라스틱 넷제로]
    미세플라스틱의 기습…위해하지 않은게 아니다
    김경은 기자 2022.08.12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깃발을 꽂으면 세계 최초다.” 등반가 이야기가 아니다. 미세플라스틱 연구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만큼 미세플라스틱 연구는 불모지에 가깝다는 뜻이다.롤프 할든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그의 저서 ‘오늘도 플라스틱을 먹었습니다’에서 “인류는 최근에서야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했다.우리도 모르는 사이 인류는 미세플라스틱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미세플라스틱의 위해성을 제대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여로 평가된다. 그 결과 올 들어 미세플라스틱의 유해성을 세계 최초로 증명한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올 한해 발표된 개별 연구자들의 논문 모아보니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인체에 가하는 위협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인간의 혈액서 검출된 ‘나노 플라스틱’미세플라스틱은 지난 2004년 영국 폴리머스대 톰슨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5㎜(5000㎛) 이하 플라스틱으로 개념화한 이후, 최근 연구는 인체의 막을 지나 혈액에도 침투할 만한 크기인 ‘나노 플라스틱’까지 나아가고 있다.지난 5월 국제환경저널에 게재된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실험에 참가한 성인 22명 중 77%인 17명의 혈액에서 0.7㎛(1㎛=0.0001㎜) 이하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지난해 이탈리아 산모의 태아쪽 태반에서 5~10㎛의 미세플라스틱을 검출한 것보다 작은 크기다. 신생아의 첫 대변(태변)에서도 검출돼 미세플라스틱이 태반을 침투하는 것이 입증된 데 이어, 혈액을 타고 우리 몸 곳곳을 미세플라스틱이 이동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주삿바늘을 통해 유입됐거나, 신체 내에서 분해되며 장기 막을 뚫고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흡, 음식과 음료를 통한 섭취로 마이크로 미세플라스틱이 유입된다는 것도 밝혀졌다. 수술 중 분리된 폐조직에서도 검출됐으며, 특히 신생아 대변에선 성인보다 미세플라스틱이 10배 이상 많았다. 신생아의 경우 젖병 등 플라스틱류 사용이 성인에 비해 높으며, 자외선살균 소독 등의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으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환경에선 검출 기술력 부족…‘위해한 수준’ 판단 일러식약처는 지난 3월 우리나라 성인의 식품섭취량을 토대로 산출한 인체노출량(하루 평균 16.3개)과 알려진 독성정보를 비교해 “인체에 위해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 기술력 수준에선 다소 이른 판단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세플라스틱이 정의된 이후 진행된 연구들은 해양과 생선, 조개류 등 해양 생태계를 중심으로 연구돼왔다. 대부분 인체 흡입 시 배출되는 크기로, 수산물은 여러 번 세척하는 과정 등을 거치면 상당 부분 제거도 가능하다. 인체에 크게 위해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인체 위해성 여부를 논할 단계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연구 결과가 아직 부족해서다. 식약처 분석 대상은 환경 샘플을 기반으로 나온 판단이다. 해양이나 담수 등 환경에서 체취 한 샘플에서는 나노플라스틱 검출이 불가능하다. 환경 샘플은 인체 샘플과 달리 오염도가 높아서 아직 나노플라스틱을 검출할 기술력이 없다. 즉 현재 기술력으로는 우리가 실제 환경에서 얼마나 많은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돼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박준우 안전성평가연구소 환경독성영향연구센터장은 “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먹는 물에서 미세플라스틱의 위해성에 대한 신뢰성 있는 증거는 없으나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밝힌 이후 최근 3년간 위해성을 입증한 자료들이 축적되는 과정에 있다”며 “막연한 불안도 위험하지만, 위해성이 없다고 볼 근거도 현재로선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미세플라스틱 유해성, 韓 연구진 세계 최초 규명미세플라스틱의 위해성은 아직 연구 초기 단계이지만, 유해성을 입증한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의 김진수 박사 연구팀이 지난 4월 체내에 흡수된 미세플라스틱이 암세포의 성장 및 전이를 가속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연구팀은 10㎛ 이하의 폴리스틸렌을 인체 세포에서 얻은 위암세포에 노출한 결과 노출된 세포는 최대 74%더 빨리 자랐고, 전이는 3.2~11배 많았다고 밝혔다.또 김 박사 연구팀은 실험쥐들에게 미세플라스틱을 섭취시킨 이후 관찰한 결과 자폐스펙트럼 장애 유발을 규명하기도 했다. 미세플라스틱 섭취 후 실험쥐 전 연령대에서 사회성이 감소하고 강박적이고 반복적 행동이 증가하는 것이 확인됐고, 사회성 지수는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지 않은 쥐보다 50% 낮게 나타났다.플라스틱 자체에는 독성이 없어 그동안 미세플라스틱은 위해성이 낮다는 것이 공식적인 결론이었다. 다만 유해물질인 프탈레이트 등 플라스틱 첨가제나 해양 부유과정에서의 오염 등 부가적인 원인으로 우울, 자폐, 생식기능 교란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반해 최근 연구 결과들에서 미세플라스틱 자체의 유해성이 입증되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미세먼지처럼 유해물질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미세플라스틱의 환경 실태 조사와 인체의 위해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세플라스틱을 유해물질로 규정하는 등의 대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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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확실하다'를 확실하게 말한 이창용 총재의 소통…그 다음은
    최정희 기자 2022.07.15
    2022년 7월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총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불확실성’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3일 한은 역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한 후 기자회견에서 ‘불확실성’이란 단어를 열 여덟 번이나 꺼냈다. 이날 총재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총재가 밝힌 기본 시나리오에는 현실화될지가 알 수 없는 많은 전제들이 깔려 있었다. ◇ 물가 고점 근거는 ‘시장이 그렇게 봐서’…경기도 불확실이 총재는 물가가 3분기말, 4분기초에 고점을 찍고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겠다고 비교적 명확하게 밝혔지만 이런 기본 시나리오를 전제로 정책 방향이 양쪽으로 열려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악화돼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거나 그와 다른 방향으로 전 세계 경기침체가 더 커져서 경기, 물가상승 속도가 떨어지면서 베이스라인에서 유연하게 대처해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물가가 3분기말, 4분기초에도 고점을 찍지 않고 더 높아지면 추가 빅스텝이 나올 가능성도 열어두고 경기침체가 더 커져 물가도 떨어지면 금리 동결 뿐 아니라 금리 인하까지도 원론적으론 열어둔 셈이다. 물가는 더 오를 것 같은데 물가가 언제 잡힐지, 경기는 둔화되는 것 같긴 한데 잠재성장률(2%)보다는 높을지, 낮을지조차 불확실하다는 얘기다. 3분기말, 4분기초 물가가 고점일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도 유가 선물 가격에 반영된 연말과 내년 숫자가 배럴당 90달러, 80달러 중반대로 떨어져서, 즉 시장이 그렇게 봐서이지 명확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우크라 전쟁에 서방 국가의 제재가 계속됐으나 러시아는 중국, 인도 등에 천연가스를 팔아 하루 전쟁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별 탈이 없다. 우크라 전쟁만 보면 유가가 떨어질 이유보다 러시아의 공급 중단에 유럽 가스 대란이 현실화돼 유가가 급등할 변수가 더 커 보인다. 심지어 경기가 어떻게 될지 쉽게 예견할 수 없다며 이 총재는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많아 한 두 세달 지켜보면 한은 경기 예측이 낙관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보다 명확해지고 거기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8월과 10월까지는 0.25%포인트씩 금리를 인상하되 그 뒤는 땅을 밟아가며 움직일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 빅스텝까지 동원한 금리 인상…물가상승 억제 효과 1%p도 안돼 문제는 그렇게 불확실한데도 ‘금리 인상’은 역사상 세 번 연속 이뤄져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한은은 작년 8월부터 올 7월까지 약 1년간의 기간 동안 기준금리는 1.75%포인트 올렸다. 그 기간 동안 분명한 것은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커졌고 유동성이 줄면서 주식 가격이 추락했고 부동산 가격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분명하지 않은 점은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얼마나 잡았느냐는 점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라는 칼이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면 그동안의 금리 인상 효과가 어떻게 물가에 반영됐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한은이 올 3월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1분기부터 2021년 4분기까지 주요 18개국 패널자료 분석 결과 금융완화기 때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물가상승률은 0.11%포인트 하락한다. 이를 고려하면 1.75%포인트의 금리 인상으로 물가상승률은 0.77%포인트, 즉 1%포인트도 못 낮췄다. 다만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수축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물가상승률 억제 효과는 이보다 더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 한은은 당시 보고서에서 “기준금리 인상 효과를 점검한 결과 경제성장과 물가 등 실물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는 현재로선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 뒤로 물가 급등 억제를 위해 금리는 더 빠르게 큰 폭으로 올렸는데 한은 스스로 밝혔듯이 물가에 대한 파급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면 정책 효용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금리로 물가를 낮추는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해도 금리 인상밖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금리 인상’에 따른 고통을 감내할 각 경제주체들을 향해 ‘대국민 설득’이라도 강화해야 한다. 더구나 앞으로의 금리 인상은 한은이 너무 낮은 금리를 ‘정상화’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화정책 방향에선 ‘완화 정도를 조정하겠다’는 문구가 빠졌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2.25% 기준금리는 중립금리 하단 정도에 온 것”이라며 “그렇게 보니까 완화 정도 조정한다는 표현을 계속 쓰기보다 지금부터는 금리를 올린다, 내린다는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앞으로 한 두 번 금리를 올려도 ‘긴축’은 아니다”고 했지만 2.25%가 중립금리 하단 범위에 속하는 만큼 보는 시각에 따라 이미 ‘긴축’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금리 인상이 장기적 시계에서 경제성장률을 갉아먹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앞으로 금리 인상이 가져올 희생의 폭이 커진 만큼 금리 인상이 ‘물가’를 잡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경기와 물가에 대한 판단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래서 금리를 얼마나 더 올릴 것인지 등에 대해 세세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 잇단 금리 인상 그후…고통의 시간이 다가온다 [BOK워치]
    잇단 금리 인상 그후…고통의 시간이 다가온다
    최정희 기자 2022.07.04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거시경제를 오랫동안 봐왔던 경제학 교수, 채권 전문가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격양돼 있었다. 전례 없는 고(高)물가와 빠른 기준금리 인상을 두고 한쪽에선 “금리 올린다고 물가가 잡히냐”, “경기 꺼뜨리고 가계빚 이자 부담만 높인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쪽에선 “인플레이션이 우습냐. 그냥 뒀다가 더 큰 위기를 좌초한다”, “침체를 감수하고라도 금리를 올려 인플레 심리를 꺼뜨려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나 경기를 봐가면서 금리를 올리자는 쪽도 금리를 덜 올리자고는 섣불리 얘기하지 못한다. 물가가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금리를 올리면 물가가 잡히냐는 비판에 ‘그럼 아무 것도 안하고 있을 것이냐’가 최대의 항변이다. 어느 쪽이든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2.75~3%까지는 올라설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가 3%를 넘어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만 의견이 갈린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이 어느 정도 종료된 이후다. 금리 인상, 그 끄트머리에는 뭐가 있을까. ◇ 자산가격 조정이 의미하는 것…경기침체 신호탄인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주가가 꺾이기 시작했고 부동산마저 흔들리고 있다. 자산가격 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올 들어 23%, 31% 가량 급락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주로 투자하는 미국 증시 역시 급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과 나스닥 지수는 각각 20%, 29% 하락했다. 주가는 작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꺾이더니 올 들어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도 꺾일 조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3월 106.2로 2년 7개월 만에 하락 전환하더니 5월 106.1로 더 추락했다.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도 전국과 수도권 기준으로 6월 마지막주까지 8주 연속 하락하고 있고, 서울은 5주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선 하반기 주택 매매 가격은 더 떨어지고 전세가격은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등 ‘깡통 전세’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저금리에 빚을 내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하락은 주가가 떨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후폭풍이 예상된다. *전년동기비(출처: 산업통상자원부)뿐만 아니다. 취업자의 20%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은 2년 여간 문을 닫았다가 두 달 전에야 거리두기가 해제됐는데 이들이 맞닥뜨린 것은 고금리·고물가다. 사업소득이 없는 자영업자 비중은 2020년 8.6%로 2019년(7.6%)보다 늘었는데, 폐업률은 12.1%에서 10.9%로 오히려 줄었다. 9월말 원리금 상환유예가 폐지되고 손실보상금도 사라지면 자영업자 줄폐업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폐업자 수가 전년대비 감소하다가 이듬해 두 배 가량 급증한 경험이 있다. 실물지표도 흔들리고 있다. 6월 수출은 5.4% 증가하는 데 그쳐 16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릿 수대 증가세를 보였다. 조업일수 감소로 인한 영향이라고 해도 2분기 수출은 13% 증가에 그쳐 4개 분기 연속 증가세 둔화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주력품목의 수출 신장세가 악화할 우려가 크다며 지난 3일 긴급 비상경제장관회의까지 열었다. 소비는 전월비 석 달째 감소세다. 거리두기 해제로 재화보다는 서비스 소비가 늘어난 영향이란 해석이다. 고금리·고물가에 6월 소비심리지수는 96.4에 그쳐 지난해 2월(97.2) 이후 1년 4개월 만에 100을 하회했다. 소비심리지수는 1개 분기 후 소비지표에 영향을 준다. 자산가격은 붕괴되고 고물가에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면서 경제 주체들이 모두 ‘견디고 버텨야’ 하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5월 8.4로 5월 기준 2005년(9.0)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를 후행하는 고용지표는 견고하지만 비용 부담이 커지는 데다 위기에 대응해 기업들의 몸집 줄이기가 시작되고 있어 고용지표 역시 꺾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한국 지수는 7월 4일 기준, 미국은 7월 1일 기준 (출처: 마켓포인트)◇ 금리 인상 고통 얼마나 감내해야 하나…대국민 설득 필요 금리 인상은 곧 다가올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미국에선 금리 인상의 끝에 경기침체가 올 것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 심리를 꺾기 위해 금리 인상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고, 결국엔 경기침체로 인해 내년 상반기쯤 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시장에선 전망했다. 마치 ‘침체’라는 결과를 예견해놓고, 그 길로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도 물가냐, 경기냐 둘 중의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경기를 선택하더라도 침체를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금리 인상을 가속화해도 물가 상승세를 얼마나 꺾을지 의문이다. 어떤 방식이든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고 가계, 기업 등 어느 하나 그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엄혹한 경제 상황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위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어느 정도인지 누군가는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금통위원들이 입을 열고 국민의 고통이 수반되는 금리 인상에 대해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할 때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말한 물가가 더 오르지 않기 위해 ‘임금 인상을 자제하라’ 같은 피상적인 발언은 빼고 말이다. (출처: 한국부동산원)
  • [BOK워치]`빅스텝` 망설이게 하는 한은 `선제적 금리 인상`
    `빅스텝` 망설이게 하는 한은 `선제적 금리 인상`
    최정희 기자 2022.06.13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주요국에서 정책금리를 50bp씩 올리는 `빅스텝` 물결이 한창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작년 8월부터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에 아직까진 다른 나라처럼 빅스텝이 아닌 기준금리를 25bp씩 올리는 베이비스텝으로도 물가 상승세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하지만 미국의 물가 고점 예측이 와르르 무너졌고 물가가 예측이 아닌 베팅의 영역이 돼버린 터라 선제적 금리 인상의 성과는 점점 퇴색될 가능성이 커졌고, 빅스텝은 언제든 꺼내들 수 있는 카드다. 자신이 예측한 7·8월 물가 고점론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한 뒤인 4분기 쯤 `뒷북 빅스텝`이 될 지, 아니면 이보다 이른 시점에서의 `선제적 빅스텝`이 될 지 정도가 변수다. ◇ ‘물가 예측 맞길 기다릴까 vs 조기 빅스텝할까’물가가 베팅의 영역이 돼 버린 상황에서 한은 역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은은 7·8월 물가 고점을 예측하고 있는데 그 때까지는 기준금리를 25bp씩 연속 인상하는 게 한은과 금융통화위원회가 그리는 기본 시나리오다. 그런데 만약 한은 예측이 무너지고 4분기에도 물가가 계속 오르면 어떻게 될까. 그때 가선 빅스텝 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뒤늦게 빅스텝 카드를 꺼내는 순간,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는 괜찮다’는 심리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 주요 경제학자들이 점치는 내년 상반기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더해지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더 키울 수 있다. 한 투자은행(IB) 이코노미스트는 “빅스텝을 하게 된다면 한 차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몇 번 하게 될 것이란 심리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한국은행, 통계청)한은의 물가 예측이 깨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5~7월께 물가가 5%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5월 이미 5.4%를 기록한 상황에서 6월엔 6%대 물가가 전망되고 있다. 3~5월 물가가 전월보다 0.7%씩 올랐는데 6월에도 이만큼만 오르면 6월 전년동월비 물가는 6.1%가 된다. 아니나 다를까, 이달 들어 유가가 다시 오르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석 달 만에 120달러를 돌파, 이달에만 5%대 상승했고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도 2%대 올랐다. 유가는 3주 후에 소비자 물가에 반영되는 터라 최근 유가 급등세가 즉각 6월 물가에 반영된다. 6월 물가상승률이 6%대를 찍게 될 경우 한은에선 물가 상승률은 5%대 후반이나 6%대 초반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며 3분기 중 물가가 고점을 찍을 것이란 전망은 변하지 않는다고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물가 고점 예측에 실패한 미국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선 3월 물가가 8.5%를 보였을 당시 고점을 찍었다는 전망이 많았으나 5월 8.6%를 기록, 예상치(8.3%)를 훌쩍 넘었다. 모하메드 엘-엘리언 알리안츠 수석 고문은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며 “미국 물가가 9%에 다다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 재무부 장관 출신의 래러 서머스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금리 인상폭을) 25bp냐 50bp냐가 아닌 50bp냐 75bp냐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5월 “75bp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 역시 거짓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 한은, ‘경기 희생’할 조기 빅스텝에 베팅할까 한은이 물가가 더 높게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에 베팅해 조기 빅스텝 카드를 꺼낼 지 주목된다. 한은이 금리를 내릴 때는 한꺼번에 1%포인트까지도 내렸지만 올릴 때는 25bp씩만 올려와 빅스텝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빅스텝을 한다는 것은 경기 회복이 꺾이더라도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7월 정책금리를 25bp 올리고 9월 50bp 올리겠다고 하자 경기 둔화 우려에 유로화가 급락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는 경기 둔화와 함께 가계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 급증 우려도 커질 수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4.3%로 36개국 중 1위였다. 고물가와 함께 고금리에 따른 가계 이자부담이 커져 경기 둔화 후폭풍이 커질 수 있다. 한은은 6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정책 모의실험 결과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에 적극 대응할 경우 경기는 0~5분기 단기내에선 둔화 압력이 커지지만 6~11분기 중장기 시계에선 물가를 조기에 진압해 정책금리 인상 필요 폭을 줄여 경기 둔화 압력이 빠르게 약화된다”고 밝혔지만 이는 정책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했을 때를 전제로 한 것일뿐 빅스텝처럼 급격한 인상이 경기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선 예견하기 어렵다. 빅스텝을 망설이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한은의 선제적 금리 인상에 대한 성과가 퇴색된다는 점이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 왔지만 별 수 없이 다른 나라처럼 경기 우려를 높여가며 빅스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먼저 금리를 올려 빅스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굴레에 갇혀 있기엔 물가 상승세가 너무 엄혹한 상황이다. 올 4월에 부임해 선제적 금리 인상을 함께 하지 않았던 이창용 총재는 이 틀을 경계하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0일 72주년 창립 기념사에서 “우리나라가 더 이상 선제적 금리 인상이 아니다”며 “먼저 출발한 이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실기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정책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빅스텝을 배제할 수도, 배제하지 않을 수도 없는 냉혹한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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