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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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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70년대 중국에도 흙수저가 있었다
    70년대 중국에도 흙수저가 있었다
    장병호 기자 2020.06.02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많은 지식 청년들이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의 일환으로 농촌에 강제로 내려가 생활했다. 혁명이 끝나자 이들은 도시로 돌아가기를 원했지만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특권층 자제들이 인맥과 편법을 총동원해 도시로 돌아갈 기회를 먼저 차지했기 때문이다.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양레퍼토리씨어터에서 막을 내린 연극 ‘만약 내가 진짜라면’은 요즘 흔히 말하는 ‘흙수저’와 ‘금수저’가 1970년대 중국에서도 존재했음을 보여줬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급의 벽 앞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권력 앞에서는 거짓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그야말로 ‘웃프게’ 다가왔다.연극 ‘만약 내가 진짜라면’의 한 장면(사진=서울연극협회, ⓒFotobee).작품은 1970년대 중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어느 장군의 자제를 사칭한 스무 살 남짓한 청년에게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한 사건이다. 중국 극작가 사예신이 직접 청년을 인터뷰해 1979년 발표한 희곡을 김재엽 연출이 이끄는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이 국내 초연으로 선보였다.주인공은 상산하향 운동으로 농촌에 내려온 청년 리샤오장(김시유 분)이다. 리샤오장은 여자친구 저우밍화(권윤애 분)와의 결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시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특권층 자제들에게 기회를 번번이 빼앗긴다. 연극을 보기 위해서도 인맥과 편법으로 표를 구해야 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 그는 홧김에 고위간부 자제 ‘장샤오리’로 자신의 정체를 속인다.과거 중국의 이야기지만 마치 지금 한국 사회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권력 앞에서 갖가지 편법을 마다하지 않는 관료들의 모습이 그렇다. ‘고위간부 자제’의 등장에 관료들은 자신의 이익을 채우고자 온갖 사탕발림을 일삼는다. 점점 더 능수능란해지는 리샤오장의 거짓말과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관료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리샤오장의 정체를 의심하던 우서기(지우 분)마저 리샤오장의 거짓말에 속고 마는 모습은 권력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거짓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극은 리샤오장이 내세운 ‘장샤오리’의 정체가 드러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작품은 리샤오장에 대한 처벌 대신 그의 거짓말을 믿은 주변 사람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린다. 리샤오장이 ‘흙수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시선이 강하게 드러난다.극작가 사예신이 극 중 캐릭터로 등장하는 점이 독특하다. 작품에서 사예신은 적극적으로 극에 개입하는 화자 역할을 맡아 관객으로 하여금 1970년대 중국과 2020년대 한국을 비교하게 만든다. 원작은 1979년 중국에서 초연한 뒤 곧바로 중국 정부로부터 공연 금지 조치를 받았다. 그렇게 무대에서 사라졌던 리샤오장은 40여 년이 지나 한국에서 다시 부활해 지금도 변함없는 권력과 특권의 문제를 곱씹어보게 만들었다. 제41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으로 신인연기상(유종연), 무대예술상(오수현 의상디자이너)을 수상했다.연극 ‘만약 내가 진짜라면’의 한 장면(사진=서울연극협회, ⓒFotobee).
  • [리뷰]폐관 앞둔 단관극장엔 숨겨진 비밀이 있다
    폐관 앞둔 단관극장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장병호 기자 2020.05.28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이곳에는 추억이 너무 많이 묻어 있지.”충청도 어느 시골 마을의 단관극장 레인보우 시네마. 아버지 조병식(김재건 분)에 이어 극장을 지켜온 조한수(박윤희 분)가 폐관을 얼마 안 남겨둔 극장을 둘러보며 말한다. 바스라질 것 같은 오래된 영화 포스터, 벽마다 깊이 밴 퀘퀘한 냄새. 40여 년 세월을 품은 낡디 낡은 극장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아련하다.시간과 공간이 바뀌어도 그곳에 자리한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픈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23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폐관을 앞둔 극장을 무대로 사라져가는 공간과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무대 위에 풀어낸다.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의 한 장면(사진=서울연극협회).작품은 재개발로 폐관하게 된 극장 레인보우 시네마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1978년부터 극장을 운영해온 조병식·한수 부자와 한수의 아들 조원우(박완규 분), 원우를 쫓아 극장을 찾아온 신태호(한윤춘 분), 여기에 극장 여직원 송희원(배현아 분)과 인형 탈을 쓰고 다니는 영사기사 박수영(김성철 분), 쉼터처럼 극장을 찾는 동네 주민 김정숙(장지아 분)의 사연이 들줄과 날줄처럼 얽히고설킨다.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출발하는 극은 이들이 지닌 마음 속 상처와 결핍을 찬찬히 조명한다. 그 중심에는 병식·한수·원우 3대가 있다. 겉보기에 단란한 이들 3대에게는 절대 언급해서는 안 되는 과거의 사건이 있다. 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을 병식과 한수는 애써 숨기려 하지만 원우는 끊임없이 이를 끄집어내려고 한다. 여기에 성소수자, 치매, 왕따 등 사회적인 문제까지 극 속에 녹아들어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낸다.시종일관 유쾌함과 따스함을 잃지 않는 작품이다. 그러나 3대가 감춘 과거의 사건과 함께 인물들의 비밀이 드러나는 극 후반부는 묵직하다. 특히 폐관 직전 폭풍우가 찾아온 극장에서 펼쳐지는 극 후반부는 3대를 연기하는 배우 김재건, 박윤희, 박완규의 열연이 빛난다. 웃음이 끊이지 않던 객석에서도 이 순간만큼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 곳곳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소리가 들린다.폭풍우도 잠시일 뿐, 언제 그랬냐고 묻는 듯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드리운다. 사람들의 그리움과 추억이 녹아든 레인보우 시네마도 폐관이라는 운명을 피해가진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축 폐관’이라는 글자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희망과 행복이 대단한 곳에 있는 게 아님을 느끼게 한다.제목은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이자 영화 ‘초원의 빛’에 등장하는 대사에서 따왔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 좀처럼 외워지지 않던 긴 제목은 극장 밖을 나설 때 상처와 결핍을 이겨내자는 강한 응원처럼 입에 착 달라 붙었다.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의 희곡을 구태환 연출이 무대화했다. ‘제41회 서울연극제’ 공식 초청작으로 오는 30일까지 공연한다.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의 한 장면(사진=서울연극협회).
  • [리뷰]"혼인증서는 믿지 않아"…당돌한 춘향이 왔다
    "혼인증서는 믿지 않아"…당돌한 춘향이 왔다
    장병호 기자 2020.05.19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난 이따위 혼인증서 믿지 않아요.”지난 1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창극단 신작 ‘춘향’의 한 장면. 이몽룡(김준수 분)이 써온 혼인증서를 춘향(이소연 분)이 도도한 표정과 함께 찢어버린다. 당황한 이몽룡이 “진심이다”라며 애원하자 춘향은 당돌하게 말한다. “그럼 천지신명께 맹세하세요.”국립창극단 ‘춘향’의 한 장면(사진=국립극장).춘향을 떠나간 임을 한없이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캐릭터로만 생각했다면 놀랄 만하다. 국립창극단의 ‘춘향’은 자신의 생각을 똑 부러지게 내세우는 당당한 춘향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몽룡과의 첫 만남도 신선하다. 이몽룡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춘향이 “양반이 부르면 가야 하니? 못 가”라고 딱 잘라 말하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남녀의 사랑을 다룬 ‘춘향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다. 그동안 연극·영화·오페라·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돼 왔다. 창극도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으로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1962년 국립창극단의 창단 공연,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축하 공연 등 의미 있는 무대에 올라왔다. 2014년에는 국립창극단이 해외 연출가와 협업한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을 선보이기도 했다.6년 만에 국립창극단이 다시 무대에 올린 ‘춘향’은 판소리가 바탕인 창극의 본질은 지키면서 캐릭터 설정과 극의 전개 등 포장만 살짝 바꿔 새로움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혼인증서를 찢은 춘향이 이몽룡의 진심을 확인하고 함께 부르는 ‘사랑가’가 그렇다. 이몽룡을 쩔쩔매게 하던 춘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표정으로 “어화둥둥 내 사랑이야”라며 노래를 부른다. 어두운 무대 위를 촘촘히 수놓는 작고 하얀 조명이 마치 두 사람의 우주를 보여주는 듯 몽환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국립창극단 ‘춘향’의 한 장면(사진=국립극장).변학도의 등장과 함께 시작하는 2막은 판소리의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감옥에 갇힌 춘향이 노래하는 절절한 ‘옥중가’, 걸인이 돼 돌아온 이몽룡이 장모인 월매와 만나 부르는 ‘어사와 장모’ 등은 판소리 속 대목을 그대로 무대에 올려 소리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든다.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사출또’ 장면은 강렬한 기타 사운드에 번쩍이는 조명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건반과 기타, 드럼 등 서양악기와 국악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음악, 마당놀이를 연상케 하는 전통연희 장면 등 눈과 귀가 즐거운 장면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지루함을 느끼기 힘들다. 그동안 국립창극단이 선보여온 고전의 현대화와는 다소 거리가 먼 작품이지만 오히려 한국적인 친숙함이 잘 녹아 있다.이번 공연은 국립극장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다. 지난 2월 말부터 코로나19 여파로 극장 문을 잠시 닫았던 국립극장은 ‘춘향’을 시작으로 다시 문을 연다. 지난 14일 첫 공연은 그동안 공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마스크를 쓴 관객들의 추임새와 박수가 공연을 가득 채웠다. 배우 겸 연출가 김명곤이 대본과 연출,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작창을 맡았다. 작곡가 김성국이 음악을 담당했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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