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오현주

기자

e갤러리

  • 숨은 '파랑새' 찾기…상상을 부르는 '애정' [e갤러리]
    황예랑 ‘실내에서 나무와 새를 기르는 방법’(2024 사진=페이지룸8)[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손길이 많이 간듯, 잘 다듬은 화초가 돋보이는 화분이 나란히 놓인 테이블. 슬쩍 보이는 창문이 아니어도 집밖이 아닌 집안의 공간처럼 보인다. 붉은 열매와 하얀꽃, 뾰족한 초록잎 분재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런데 단순히 정물화적 구상은 아닌가 보다. 슬쩍 들여다본 작품명이 ‘실내에서 나무와 새를 기르는 방법’(2024)이니까. 예쁘고 참한 전경을 옮겨다 놓은 그 이상의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단 얘기다. 작가 황예랑(31)은 ‘작은 존재’에 관심이 많다. 작가 자신의 시공간에 잠시 머무는 생물에 대한 애정인데. 꽃과 나무, 새와 나비 등 살아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의 사물에까지 생명력을 심어 화면으로 불러내는 거다. 때론 정밀한 묘사로 한눈에 들어오게, 때론 거친 묘사로 상상을 동원하게 하는 작업에 더 독특한 것은 ‘햐얀’이 가진 상징성을 뿌려두는 거다. 흰먹과 백묵을 재료로 즐겨쓰는 것 외에 순수·무결 등의 의미를 슬쩍 흘려둔단다. 역시 ‘하얀’천이 도드라진 작품에서, 그렇다면 작품명이 암시한 ‘새’는 과연 어디에 있나. 하얀천 아래, 흘려보지 않아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철제 새장 그 안쪽이다. 좌우로 한 마리씩, 작은 발과 긴 꼬리로 존재를 알리고 있다. 4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페이지룸8서 여는 개인전 ‘숨을 참는 버릇’에서 볼 수 있다. 한국화 21점, 조각 3점 등 24점을 꺼내놨다. 한지에 먹·백묵·동양화물감. 72.7×90.9㎝. 페이지룸8 제공. 황예랑 ‘숨을 참는 버릇’(2024·19.5×25㎝), 한지에 먹·백묵·동양화물감(사진=페이지룸8)
    오현주 기자 2024.03.18
    황예랑 ‘실내에서 나무와 새를 기르는 방법’(2024 사진=페이지룸8)[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손길이 많이 간듯, 잘 다듬은 화초가 돋보이는 화분이 나란히 놓인 테이블. 슬쩍 보이는 창문이 아니어도 집밖이 아닌 집안의 공간처럼 보인다. 붉은 열매와 하얀꽃, 뾰족한 초록잎 분재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런데 단순히 정물화적 구상은 아닌가 보다. 슬쩍 들여다본 작품명이 ‘실내에서 나무와 새를 기르는 방법’(2024)이니까. 예쁘고 참한 전경을 옮겨다 놓은 그 이상의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단 얘기다. 작가 황예랑(31)은 ‘작은 존재’에 관심이 많다. 작가 자신의 시공간에 잠시 머무는 생물에 대한 애정인데. 꽃과 나무, 새와 나비 등 살아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의 사물에까지 생명력을 심어 화면으로 불러내는 거다. 때론 정밀한 묘사로 한눈에 들어오게, 때론 거친 묘사로 상상을 동원하게 하는 작업에 더 독특한 것은 ‘햐얀’이 가진 상징성을 뿌려두는 거다. 흰먹과 백묵을 재료로 즐겨쓰는 것 외에 순수·무결 등의 의미를 슬쩍 흘려둔단다. 역시 ‘하얀’천이 도드라진 작품에서, 그렇다면 작품명이 암시한 ‘새’는 과연 어디에 있나. 하얀천 아래, 흘려보지 않아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철제 새장 그 안쪽이다. 좌우로 한 마리씩, 작은 발과 긴 꼬리로 존재를 알리고 있다. 4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페이지룸8서 여는 개인전 ‘숨을 참는 버릇’에서 볼 수 있다. 한국화 21점, 조각 3점 등 24점을 꺼내놨다. 한지에 먹·백묵·동양화물감. 72.7×90.9㎝. 페이지룸8 제공. 황예랑 ‘숨을 참는 버릇’(2024·19.5×25㎝), 한지에 먹·백묵·동양화물감(사진=페이지룸8)
  • 홀로 무게를 견디는 듯…구상이라는 '추상' [e갤러리]
    조부경 ‘무제’(2023), 캔버스에 아크릴, 100×80.3㎝(사진=미광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비정형의 대비. 여기서 ‘비정형’의 의미는 둘 이상이다. 일정한 틀을 벗어난 도형, 기대치를 벗어난 색, 평면인지 입체인지 헷갈리는 구성 등등. 한마디로 ‘이게 뭔가’란 질문에 ‘그게 뭐다’란 답을 꺼낼 수 없는 그거다. 아예 접근방법이 다르단 얘기다. 형식만 보자. 굳이 추상으로 몰고 가면 ‘기하학적 추상’ 혹은 ‘색면추상’쯤 될까. 하지만 이 역시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구체적인 형상에서 끌어낸 형태를 치밀하게 표현했다니. 작가 조부경(60)은 그렇게 ‘입방체의 건축물’을 그린다. 좀더 할애하면 ‘빛을 받고 있는 건축물의 단면들’이다. ‘무제’(2023)는 집 마당에서 바라본 계단·난간·기둥 등을 수없이 ‘대비’한 연작 중 한 점이다. 이런 작업을 두고 작가는 “유년기부터 생활한 공간에서 응시의 시간과 행복한 존재감을 느낀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물론 말처럼 단순치는 않다. 방황도 할 만큼 한 작가의 지난 시간을 안다면 말이다. 그림이 막혀 나이 마흔에 훌쩍 떠난 유학을 1년 만에 접었다. 돌아와선 갤러리를 차렸는데 남들 그림 보며 공부는 했다지만 그 길도 아니었던 터. 결국 다시 붓을 들고 10여년이란다. 서너 가지가 전부처럼 보이지만 50∼70회씩 칠하고 닦아 얻어낸 색 화면. 홀로 무게를 견디는 듯한 작품들이 작가를 닮았다. 18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미광화랑서 여는 개인전 ‘집 빛 기억’(Dwelling Light Memory)에서 볼 수 있다. 조부경 ‘무제’(2023), 캔버스에 아크릴, 112.1×162.2㎝(사진=미광화랑)
    오현주 기자 2024.01.12
    조부경 ‘무제’(2023), 캔버스에 아크릴, 100×80.3㎝(사진=미광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비정형의 대비. 여기서 ‘비정형’의 의미는 둘 이상이다. 일정한 틀을 벗어난 도형, 기대치를 벗어난 색, 평면인지 입체인지 헷갈리는 구성 등등. 한마디로 ‘이게 뭔가’란 질문에 ‘그게 뭐다’란 답을 꺼낼 수 없는 그거다. 아예 접근방법이 다르단 얘기다. 형식만 보자. 굳이 추상으로 몰고 가면 ‘기하학적 추상’ 혹은 ‘색면추상’쯤 될까. 하지만 이 역시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구체적인 형상에서 끌어낸 형태를 치밀하게 표현했다니. 작가 조부경(60)은 그렇게 ‘입방체의 건축물’을 그린다. 좀더 할애하면 ‘빛을 받고 있는 건축물의 단면들’이다. ‘무제’(2023)는 집 마당에서 바라본 계단·난간·기둥 등을 수없이 ‘대비’한 연작 중 한 점이다. 이런 작업을 두고 작가는 “유년기부터 생활한 공간에서 응시의 시간과 행복한 존재감을 느낀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물론 말처럼 단순치는 않다. 방황도 할 만큼 한 작가의 지난 시간을 안다면 말이다. 그림이 막혀 나이 마흔에 훌쩍 떠난 유학을 1년 만에 접었다. 돌아와선 갤러리를 차렸는데 남들 그림 보며 공부는 했다지만 그 길도 아니었던 터. 결국 다시 붓을 들고 10여년이란다. 서너 가지가 전부처럼 보이지만 50∼70회씩 칠하고 닦아 얻어낸 색 화면. 홀로 무게를 견디는 듯한 작품들이 작가를 닮았다. 18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미광화랑서 여는 개인전 ‘집 빛 기억’(Dwelling Light Memory)에서 볼 수 있다. 조부경 ‘무제’(2023), 캔버스에 아크릴, 112.1×162.2㎝(사진=미광화랑)
  • '절규' 대신 '절교'…뭉크 밀어낸 태권브이 [e갤러리]
    성태진 ‘절교’(2023), 양각 나무패널에 아크릴·잉크, 170×110㎝(사진=이길이구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자동연상으로 흥얼거리던 ‘로봇 태권브이’는 적어도 이 화면엔 없다. “정의로 뭉친 주먹,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와는 거리가 한참은 멀다. 헐렁한 두 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동네를 어슬렁대는 소심하고 좀스러운 동네 청년만 있다. 꼬마들이 타고 놀던 목마에 올라타길 즐기는 그이가 이번에는 명화 속 인물 코스프레로 여럿을 웃긴다. 에르바르트 뭉크의 ‘절규’(1893)를 패러디한 ‘절교’(2023)로 말이다. 작가 성태진(51)의 세상풍경은 ‘인간 태권브이’로부터 시작한다. 어느 동네청년의 스토리인 양 모두의 관심에서 밀려난 청년백수, 돈과 힘을 잃은 서민 등 현대인의 무기력과 비애에 대한 얘기를 풀어왔다. 소재만큼이나 방식도 특이하다. 나무판에 양각으로 도상을 새기고 겹겹이 색을 칠해 완성하는데, 그림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나무판 문구가 백미다. 인간 태권브이의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고뇌를 절절하게 묻혀낸 노래가사가 대부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직도 세상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은 있지만 나만의 세상 속에서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58길 이길이구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내 모든 날과 그때’에서 볼 수 있다. 회화·설치작품 50여점을 내놨다.성태진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2022), 양각 나무패널에 아크릴·잉크, 100×100㎝(사진= 이길이구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4.01.11
    성태진 ‘절교’(2023), 양각 나무패널에 아크릴·잉크, 170×110㎝(사진=이길이구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자동연상으로 흥얼거리던 ‘로봇 태권브이’는 적어도 이 화면엔 없다. “정의로 뭉친 주먹,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와는 거리가 한참은 멀다. 헐렁한 두 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동네를 어슬렁대는 소심하고 좀스러운 동네 청년만 있다. 꼬마들이 타고 놀던 목마에 올라타길 즐기는 그이가 이번에는 명화 속 인물 코스프레로 여럿을 웃긴다. 에르바르트 뭉크의 ‘절규’(1893)를 패러디한 ‘절교’(2023)로 말이다. 작가 성태진(51)의 세상풍경은 ‘인간 태권브이’로부터 시작한다. 어느 동네청년의 스토리인 양 모두의 관심에서 밀려난 청년백수, 돈과 힘을 잃은 서민 등 현대인의 무기력과 비애에 대한 얘기를 풀어왔다. 소재만큼이나 방식도 특이하다. 나무판에 양각으로 도상을 새기고 겹겹이 색을 칠해 완성하는데, 그림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나무판 문구가 백미다. 인간 태권브이의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고뇌를 절절하게 묻혀낸 노래가사가 대부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직도 세상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은 있지만 나만의 세상 속에서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58길 이길이구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내 모든 날과 그때’에서 볼 수 있다. 회화·설치작품 50여점을 내놨다.성태진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2022), 양각 나무패널에 아크릴·잉크, 100×100㎝(사진= 이길이구갤러리)
  • 청룡 위에 '금룡'…구름 몰고 다니다 머문 곳 [e갤러리]
    권지은 ‘떠오르는 용’(Rising Dragon Ⅰ& Ⅱ·2023), 종이에 채색·금박, 36×22.5㎝(2점 각각)(사진=장은선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청룡 대신 금룡이다. 발톱을 바짝 세운 유연한 몸을 휘감으며 밤하늘로 튀어오르는 중이다. 구름인 듯 꽃인 듯 오색찬란하게 피어오른 배경은 이미 천상계 그대로다. 여기에 슬쩍 얹은 덤인 양, 입에서 떨어뜨린 여의주는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을 위한 몫인가 보다. 그 기운을 고르게 퍼뜨려 땅 위의 행운까지 만들어줄 생각인 건지. 작가 권지은(한국전통문화대 전통미술공예학과 교수)은 ‘용 그림’을 그려왔다. 변주한 용과 확장한 용의 세계를 끊임없이 발굴해왔다고 할까. 상상력을 바탕으로 형체를 만들어야 하는 용이지만 근원과 바탕이 있다. 고려불화다. 고려불화의 정통성을 현대미술의 감각에 얹어내는 독특한 채색화를 만들어내는 거다. 화려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화면이 작가 작업의 특징이다. 5∼7회에 걸쳐 레이어를 덧씌우는데도 붓끝이 빚은 형상은 그렸다기보다 스며든 것처럼 담백하다. ‘떠오르는 용’(Rising Dragon Ⅰ& Ⅱ·2023)은 2024년 용의 해를 맞아 제작한 신작. 구름 사이로 솟구치는 용을 묘사하는 ‘운룡도’에 전통 채색화에서 주로 부귀영화를 상징해온 ‘모란’을 접목해 새해 새날의 새로운 기운과 새로운 희망을 염원했다.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청룡시대! 다 이루리라’에서 볼 수 있다. 용을 그린 회화작품 25점을 걸었다. 권지은 ‘화룡’(花龍Ⅰ·2023), 종이에 채색·동박, 40×57㎝(사진=장은선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4.01.11
    권지은 ‘떠오르는 용’(Rising Dragon Ⅰ& Ⅱ·2023), 종이에 채색·금박, 36×22.5㎝(2점 각각)(사진=장은선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청룡 대신 금룡이다. 발톱을 바짝 세운 유연한 몸을 휘감으며 밤하늘로 튀어오르는 중이다. 구름인 듯 꽃인 듯 오색찬란하게 피어오른 배경은 이미 천상계 그대로다. 여기에 슬쩍 얹은 덤인 양, 입에서 떨어뜨린 여의주는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을 위한 몫인가 보다. 그 기운을 고르게 퍼뜨려 땅 위의 행운까지 만들어줄 생각인 건지. 작가 권지은(한국전통문화대 전통미술공예학과 교수)은 ‘용 그림’을 그려왔다. 변주한 용과 확장한 용의 세계를 끊임없이 발굴해왔다고 할까. 상상력을 바탕으로 형체를 만들어야 하는 용이지만 근원과 바탕이 있다. 고려불화다. 고려불화의 정통성을 현대미술의 감각에 얹어내는 독특한 채색화를 만들어내는 거다. 화려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화면이 작가 작업의 특징이다. 5∼7회에 걸쳐 레이어를 덧씌우는데도 붓끝이 빚은 형상은 그렸다기보다 스며든 것처럼 담백하다. ‘떠오르는 용’(Rising Dragon Ⅰ& Ⅱ·2023)은 2024년 용의 해를 맞아 제작한 신작. 구름 사이로 솟구치는 용을 묘사하는 ‘운룡도’에 전통 채색화에서 주로 부귀영화를 상징해온 ‘모란’을 접목해 새해 새날의 새로운 기운과 새로운 희망을 염원했다.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청룡시대! 다 이루리라’에서 볼 수 있다. 용을 그린 회화작품 25점을 걸었다. 권지은 ‘화룡’(花龍Ⅰ·2023), 종이에 채색·동박, 40×57㎝(사진=장은선갤러리)
  • 세상은 모르던 '커넥션'…가슴 먹먹한 '관계'였다 [e갤러리]
    이순심 ‘관계 #019’(Connection #019·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63×120㎝(사진=스페이스22)[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웅장한 바위기둥 두 개가 거대한 문으로 버티고 섰다. 세월도 거스를 수 없을 무게로 하늘을 열고 하늘을 닫는다. 구름을 깨우고 바다를 재운다. 가히 자연이 벌인 ‘위압적인 사건’이 아닌가. 이 비밀스러운 광경을 포착한 이는 사진작가 이순심(65)이다. 발단은 10여년 전 어느 바위 앞에서였단다. “그날 그 바위에서 느낀 오묘한 에너지로 인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고 했다. 이후론 “인간이 만든 건물처럼 우뚝우뚝 솟은 바위”를 촬영하러 다녔다는데. 백령·변산·신안·거제·제주 등 가파른 해안선만 골라 말이다. 그저 ‘기괴한 아름다움’만 좇은 건 아니었나 보다. 시간과 역사를 켜켜이 짊어진 이 무지막지한 흔적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적 관계’가 보였다니까. 관건은 이 관계를 어떻게 내보일 건가에 달렸을 터. 작가는 각기 다른 두 장소에서 촬영한 장면을 연결해 범상치 않은 그 ‘관계’를 모두의 눈앞에 데려다 놓기로 했다. ‘관계 #019’(Connection #019·2023)는 바위·구름·바다가 꾸린 묘한 ‘커넥션’에 작가의 의식을 녹여낸 연작 중 한 점이다. 지난 10여년 간 마음만 바빴던 결과물을 기어이 집약했단다. 언제부턴가 작가 대신 갤러리스트(갤러리나우 대표)로 역할이 뒤바뀌며 계속 미뤄둔 부담스러운 숙제였을 테지만 “갤러리를 운영하며 생긴 더 큰 안목이 만들어낸 작업”이라고 했다. 마침내 먹먹한 관계에 가닿은 거다. 그게 우주든 자연이든 사람이든. 25일까지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스페이스22서 여는 개인전 ‘관계-시공을 넘나드는 관계항’(Connection: Transcending Timespace Relationships)에서 볼 수 있다. 이순심 ‘관계 #003’(Connection #003·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150㎝(사진=스페이스22)이순심 ‘관계 #014’(Connection #014·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150㎝(사진=스페이스22)이순심 ‘관계 #007’(Connection #007·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120㎝(사진=스페이스22)이순심 ‘관계 #002’(Connection #002·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90㎝(사진=스페이스22)이순심 ‘관계 #017’(Connection #017·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90㎝(사진=스페이스22)
    오현주 기자 2023.10.23
    이순심 ‘관계 #019’(Connection #019·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63×120㎝(사진=스페이스22)[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웅장한 바위기둥 두 개가 거대한 문으로 버티고 섰다. 세월도 거스를 수 없을 무게로 하늘을 열고 하늘을 닫는다. 구름을 깨우고 바다를 재운다. 가히 자연이 벌인 ‘위압적인 사건’이 아닌가. 이 비밀스러운 광경을 포착한 이는 사진작가 이순심(65)이다. 발단은 10여년 전 어느 바위 앞에서였단다. “그날 그 바위에서 느낀 오묘한 에너지로 인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고 했다. 이후론 “인간이 만든 건물처럼 우뚝우뚝 솟은 바위”를 촬영하러 다녔다는데. 백령·변산·신안·거제·제주 등 가파른 해안선만 골라 말이다. 그저 ‘기괴한 아름다움’만 좇은 건 아니었나 보다. 시간과 역사를 켜켜이 짊어진 이 무지막지한 흔적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적 관계’가 보였다니까. 관건은 이 관계를 어떻게 내보일 건가에 달렸을 터. 작가는 각기 다른 두 장소에서 촬영한 장면을 연결해 범상치 않은 그 ‘관계’를 모두의 눈앞에 데려다 놓기로 했다. ‘관계 #019’(Connection #019·2023)는 바위·구름·바다가 꾸린 묘한 ‘커넥션’에 작가의 의식을 녹여낸 연작 중 한 점이다. 지난 10여년 간 마음만 바빴던 결과물을 기어이 집약했단다. 언제부턴가 작가 대신 갤러리스트(갤러리나우 대표)로 역할이 뒤바뀌며 계속 미뤄둔 부담스러운 숙제였을 테지만 “갤러리를 운영하며 생긴 더 큰 안목이 만들어낸 작업”이라고 했다. 마침내 먹먹한 관계에 가닿은 거다. 그게 우주든 자연이든 사람이든. 25일까지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스페이스22서 여는 개인전 ‘관계-시공을 넘나드는 관계항’(Connection: Transcending Timespace Relationships)에서 볼 수 있다. 이순심 ‘관계 #003’(Connection #003·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150㎝(사진=스페이스22)이순심 ‘관계 #014’(Connection #014·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150㎝(사진=스페이스22)이순심 ‘관계 #007’(Connection #007·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120㎝(사진=스페이스22)이순심 ‘관계 #002’(Connection #002·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90㎝(사진=스페이스22)이순심 ‘관계 #017’(Connection #017·2023), 캔버스에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90㎝(사진=스페이스22)
  • 오로지 먹과 물 다스리는 일…착각하는 붓이 나대지 말라고 [e갤러리]
    문봉선 ‘인왕산’(2022), 한지에 먹, 220×122㎝(사진=모두의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삐죽한 봉우리로 겁을 주는 법이 없고 헐거운 산세로 실망시키는 법도 없다. 가깝다고 했는데 저만치 떨어져 있고, 다 갔다고 했는데 더 가라 한다. 그 산, 인왕산이 눈앞에 있다. 폭 2m를 넘긴 한지는 먹기운 아니, 산기운을 먹고 바짝 긴장했다. 무여 문봉선(62·홍익대 교수). 우린 그를 수묵화의 대가라 부른다. 일필휘지, 한 번 뻗으면 망설이는 법이 없는 그의 붓길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큰 붓으로 한호흡을 품고 마치 부드러운 난을 치듯 쳐 올라가니. 특히 그렇게 세운 소나무는 웅장한 기백으로 주위를 입 다물게 했다. 1980년대 현대도시의 풍경을 그린 수묵풍경화로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등을 휩쓸었지만, 돌연 ‘산’으로 돌아갔더랬다. 본디 수묵화가 있던 그 자리로 되돌리자 한 건가. 그러곤 끝내 “진경산수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까지 끌어냈다. 이후엔 물에도 바람에도 곁을 내줬지만, 그 마음이 어디 가겠는가. ‘인왕산’(2022)에는 그 세월의 농담이 묻어 있다. 그만의 소나무도 들어 있다. 오로지 먹과 물을 다스리는 일이다. 착각하는 붓이 나대지 말라고 늘 붙든다. 허투루 삐져나가는 법이 없다.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계동2길 북촌도시재생지원센터 모두의갤러리서 두레 이숙희와 여는 2인전 ‘동행·동행(同行·洞行)에서 볼 수 있다. 두 작가는 사제지간이다. “인왕산 아래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틈틈이 쌓아온 수묵·삶의 이야기를 펼친다”고 했다. 스승의 기개를 닮아 제자는 여리지만 서릿발 같은 꽃을 피웠다. 이숙희 ‘모란’(2022), 한지에 수묵담채, 30×40㎝(사진=모두의갤러리)이숙희 ‘붓꽃’(2022), 한지에 수묵담채, 30×40㎝(사진=모두의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3.09.18
    문봉선 ‘인왕산’(2022), 한지에 먹, 220×122㎝(사진=모두의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삐죽한 봉우리로 겁을 주는 법이 없고 헐거운 산세로 실망시키는 법도 없다. 가깝다고 했는데 저만치 떨어져 있고, 다 갔다고 했는데 더 가라 한다. 그 산, 인왕산이 눈앞에 있다. 폭 2m를 넘긴 한지는 먹기운 아니, 산기운을 먹고 바짝 긴장했다. 무여 문봉선(62·홍익대 교수). 우린 그를 수묵화의 대가라 부른다. 일필휘지, 한 번 뻗으면 망설이는 법이 없는 그의 붓길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큰 붓으로 한호흡을 품고 마치 부드러운 난을 치듯 쳐 올라가니. 특히 그렇게 세운 소나무는 웅장한 기백으로 주위를 입 다물게 했다. 1980년대 현대도시의 풍경을 그린 수묵풍경화로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등을 휩쓸었지만, 돌연 ‘산’으로 돌아갔더랬다. 본디 수묵화가 있던 그 자리로 되돌리자 한 건가. 그러곤 끝내 “진경산수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까지 끌어냈다. 이후엔 물에도 바람에도 곁을 내줬지만, 그 마음이 어디 가겠는가. ‘인왕산’(2022)에는 그 세월의 농담이 묻어 있다. 그만의 소나무도 들어 있다. 오로지 먹과 물을 다스리는 일이다. 착각하는 붓이 나대지 말라고 늘 붙든다. 허투루 삐져나가는 법이 없다.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계동2길 북촌도시재생지원센터 모두의갤러리서 두레 이숙희와 여는 2인전 ‘동행·동행(同行·洞行)에서 볼 수 있다. 두 작가는 사제지간이다. “인왕산 아래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틈틈이 쌓아온 수묵·삶의 이야기를 펼친다”고 했다. 스승의 기개를 닮아 제자는 여리지만 서릿발 같은 꽃을 피웠다. 이숙희 ‘모란’(2022), 한지에 수묵담채, 30×40㎝(사진=모두의갤러리)이숙희 ‘붓꽃’(2022), 한지에 수묵담채, 30×40㎝(사진=모두의갤러리)
  • 숨긴 것 가진 것, 다 내려놓게 하는 '무장해제' [e갤러리]
    안말환 ‘꿈꾸는 40106’(Dreaming 40106·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65.1×100.0㎝(사진=갤러리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막 파마를 끝낸 듯 풍성한 머리를 얹은 튼튼한 나무 아래 종종거리는 어린 새들. 마음이 푸근해지는 정경이 아닌가. 싱그러운 초록 바탕에 어울린 따뜻한 노랑은 눈까지도 푸근하게 하고. 숱하게 그려진 나무와 숲, 새지만, 이처럼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은 흔치 않다. 숨긴 것, 가진 것을 다 내려놓게 하는 ‘무장해제’, 바로 그 경지에 올려놓는 거다. 작가 안말환(66)은 나무를 그린다, 아니 키우고 가꾼다. 그 나무가 숲이 되고, 그 숲이 새들을 불러모으는 ‘삶의 과정’을 화면에 붙들어둔다. 통틀어 ‘편안한 나무’지만 작가의 나무에는 ‘역사’가 있다. 초기에 이름 모를 추상화한 나무를 시작으로 미루나무, 바오바브나무, 소나무까지 일정 기간 연작을 만들어냈는데. 종류는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한국적 미감’이다. 그중 하나라면 두툼한 질감일 거다. 돌가루 섞은 질료를 긁거나 파내 만든 특유의 장치는 작가의 ‘무기’가 됐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무기를 크게 휘두르는 법이 없다. 그저 보는 이의 가슴에 역시 두툼하게 얹어낼 뿐. “나의 나무는 지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신선한 숲, 세상에서 가장 크고 깨끗한 호흡이 되려 한다”고 했더랬다. 그런 나무의 소망 한 줄기가 ‘꿈꾸는 40106’(Dreaming 40106·2023)일 터. 나무를 그린 지 30여년이란다. 작은 묘목을 땅에 심어도 장성한 나무가 됐을 세월이다. 캔버스에서 키운 나무라고 다르겠는가. 23일까지 서울 서초구 매헌로 갤러리작서 여는 기획전 ‘안말환: 행복이 열리는 나무’에서 볼 수 있다.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안말환 ‘꿈꾸는 212029’(Dreaming 212029·2021), 캔버스에 혼합재료, 40×80㎝(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2210133’(Dreaming 2210133·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30×60㎝(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나무’(Dreaming Tree·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80.3×130.3㎝(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50129’(Dreaming 50129·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60×130㎝(사진=갤러리작)
    오현주 기자 2023.09.18
    안말환 ‘꿈꾸는 40106’(Dreaming 40106·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65.1×100.0㎝(사진=갤러리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막 파마를 끝낸 듯 풍성한 머리를 얹은 튼튼한 나무 아래 종종거리는 어린 새들. 마음이 푸근해지는 정경이 아닌가. 싱그러운 초록 바탕에 어울린 따뜻한 노랑은 눈까지도 푸근하게 하고. 숱하게 그려진 나무와 숲, 새지만, 이처럼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은 흔치 않다. 숨긴 것, 가진 것을 다 내려놓게 하는 ‘무장해제’, 바로 그 경지에 올려놓는 거다. 작가 안말환(66)은 나무를 그린다, 아니 키우고 가꾼다. 그 나무가 숲이 되고, 그 숲이 새들을 불러모으는 ‘삶의 과정’을 화면에 붙들어둔다. 통틀어 ‘편안한 나무’지만 작가의 나무에는 ‘역사’가 있다. 초기에 이름 모를 추상화한 나무를 시작으로 미루나무, 바오바브나무, 소나무까지 일정 기간 연작을 만들어냈는데. 종류는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한국적 미감’이다. 그중 하나라면 두툼한 질감일 거다. 돌가루 섞은 질료를 긁거나 파내 만든 특유의 장치는 작가의 ‘무기’가 됐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무기를 크게 휘두르는 법이 없다. 그저 보는 이의 가슴에 역시 두툼하게 얹어낼 뿐. “나의 나무는 지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신선한 숲, 세상에서 가장 크고 깨끗한 호흡이 되려 한다”고 했더랬다. 그런 나무의 소망 한 줄기가 ‘꿈꾸는 40106’(Dreaming 40106·2023)일 터. 나무를 그린 지 30여년이란다. 작은 묘목을 땅에 심어도 장성한 나무가 됐을 세월이다. 캔버스에서 키운 나무라고 다르겠는가. 23일까지 서울 서초구 매헌로 갤러리작서 여는 기획전 ‘안말환: 행복이 열리는 나무’에서 볼 수 있다.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안말환 ‘꿈꾸는 212029’(Dreaming 212029·2021), 캔버스에 혼합재료, 40×80㎝(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2210133’(Dreaming 2210133·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30×60㎝(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나무’(Dreaming Tree·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80.3×130.3㎝(사진=갤러리작)안말환 ‘꿈꾸는 50129’(Dreaming 50129·2023), 캔버스에 혼합재료, 60×130㎝(사진=갤러리작)
  • 깔깔해지고 당당해지고 도도해지는 '잡초 이야기' [e갤러리]
    이귀화 ‘풀의 소리를 듣다-다스리다 I’(2021), 캔버스에 오일, 97×97㎝(사진=장은선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마디가 있다. 잇지 말고 끊으라는 것처럼. ‘푸른 마디’라고 하면 으레 대나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미끈하게 뻗은 단단한 몸통과는 결이 다르니 말이다. 되레 살점까지 떨어져 나간 상처 입은 연한 표피만 매달려 있지 않은가.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전혀 약해 보이질 않는다. 이내 빳빳하게 튀어오를 태세가 느껴지니까. 작가 이귀화가 화면에 옮겨 놓은 ‘푸른 마디’는 작가의 마음과 붓을 얻은 ‘다른’ 자연이다. 경외감을 뿜어내는 스케일이 거대한 여느 자연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가령 쭉쭉 솟아 하늘에 기대는 대나무가 아니라, 납작하게 땅을 지키는 풀이란 얘기다. 실제로 작가의 작업에는 그 ‘초록 풀’이 자주 등장한다. 무질서한 엉킴 속에 질서를 잡아가는, 제자리 하나는 지킬 줄 아는 ‘잡초’ 말이다. 꼿꼿하게 서 있지도 못하는 그 잡초는 제풀에 널브러지고 위압에 짓밟히기도 한다. 마땅히 대단할 게 없다. 그런데 저 초록 풀을 작가의 화면에 들여다만 놓으면 ‘다른’ 풀이 되는 거다. 깔깔해지고 당당해지고 도도해진다. 묘사에 앞선 표현으로 구상에 앞선 추상을 완성한 작업이다. ‘풀의 소리를 듣다-다스리다 I’(2021)은 보이는 마디가 아니었다. 들리는 마디였다. 9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풀의 소리를 듣다’에서 볼 수 있다. 신작과 근작 30여점을 걸었다. 이귀화 ‘순정 9’(2023), 캔버스에 아크릴, 45.5×53㎝(사진=장은선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3.09.01
    이귀화 ‘풀의 소리를 듣다-다스리다 I’(2021), 캔버스에 오일, 97×97㎝(사진=장은선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마디가 있다. 잇지 말고 끊으라는 것처럼. ‘푸른 마디’라고 하면 으레 대나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미끈하게 뻗은 단단한 몸통과는 결이 다르니 말이다. 되레 살점까지 떨어져 나간 상처 입은 연한 표피만 매달려 있지 않은가.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전혀 약해 보이질 않는다. 이내 빳빳하게 튀어오를 태세가 느껴지니까. 작가 이귀화가 화면에 옮겨 놓은 ‘푸른 마디’는 작가의 마음과 붓을 얻은 ‘다른’ 자연이다. 경외감을 뿜어내는 스케일이 거대한 여느 자연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가령 쭉쭉 솟아 하늘에 기대는 대나무가 아니라, 납작하게 땅을 지키는 풀이란 얘기다. 실제로 작가의 작업에는 그 ‘초록 풀’이 자주 등장한다. 무질서한 엉킴 속에 질서를 잡아가는, 제자리 하나는 지킬 줄 아는 ‘잡초’ 말이다. 꼿꼿하게 서 있지도 못하는 그 잡초는 제풀에 널브러지고 위압에 짓밟히기도 한다. 마땅히 대단할 게 없다. 그런데 저 초록 풀을 작가의 화면에 들여다만 놓으면 ‘다른’ 풀이 되는 거다. 깔깔해지고 당당해지고 도도해진다. 묘사에 앞선 표현으로 구상에 앞선 추상을 완성한 작업이다. ‘풀의 소리를 듣다-다스리다 I’(2021)은 보이는 마디가 아니었다. 들리는 마디였다. 9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풀의 소리를 듣다’에서 볼 수 있다. 신작과 근작 30여점을 걸었다. 이귀화 ‘순정 9’(2023), 캔버스에 아크릴, 45.5×53㎝(사진=장은선갤러리)
  • 한 뭉텅이 바람처럼 살았다, 풍경이 됐다 [e갤러리]
    김용주 ‘바람얼굴 I’(2023), 캔버스에 아크릴. 40×40㎝(사진=제주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뭉텅이의 덩어리가 어느 곳을 향해 몰려가는 중이다. 희끗희끗 푸르고 진한 기운이 둥글고 강하게 뭉쳐서 말이다. 슬쩍 훔쳐본 작품명이 ‘바람얼굴 I’(2023). 누구라도 처음 봤을 이 맹렬한 풍경을 작가 김용주(65)는 어찌 한눈에 알아보고 화면에 옮겨놨을까. 어찌 보면 작가의 생과 삶을 응축한 듯하다. 제주에서 나고 제주에서 자랐단다. 그 섬을 떠나 들어선 뭍에선 그리움조차 내색하지 못한 세월이었을 거다. 30년간 서울에서 중·고교 미술교사를 지냈다. 학생들 가르치는 교과서도 수차례 집필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돌연 ‘돌아가야겠다’고 했단다. 마치 책무를 다한 듯 다 털어버리고 말이다. 이후는 귀향해서 다시 만난 제주를 관찰하고 제주를 그리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밤잠도 아까울 만큼 몰입하고 빠져들면서. 그래서 남들 하는 붓질로는 부족했다고 여긴 건가. 작가 작업은 대부분 붓 대신 손과 손가락을 도구로 쓴단다. 눈에 보이는 전경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경은 그렇게 화면에 뭉쳐졌다. 하늘을 움직이는 기류인 ‘바람’이 사람을 움직이는 소망인 ‘바람’이기도 하듯이. 9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바람마당’에서 볼 수 있다. 열세 번째 개인전이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부터 종달리, 성산읍 오조리로 이어지는 바닷가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별해 걸었다. 김용주 ‘하도리의 오후 I’(2023), 캔버스에 아크릴, 89.4×130.3㎝(사진=제주갤러리)김용주 ‘들여다보기 Ⅱ’(2021), 캔버스에 아크릴, 40.9×53㎝(사진=제주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3.09.01
    김용주 ‘바람얼굴 I’(2023), 캔버스에 아크릴. 40×40㎝(사진=제주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뭉텅이의 덩어리가 어느 곳을 향해 몰려가는 중이다. 희끗희끗 푸르고 진한 기운이 둥글고 강하게 뭉쳐서 말이다. 슬쩍 훔쳐본 작품명이 ‘바람얼굴 I’(2023). 누구라도 처음 봤을 이 맹렬한 풍경을 작가 김용주(65)는 어찌 한눈에 알아보고 화면에 옮겨놨을까. 어찌 보면 작가의 생과 삶을 응축한 듯하다. 제주에서 나고 제주에서 자랐단다. 그 섬을 떠나 들어선 뭍에선 그리움조차 내색하지 못한 세월이었을 거다. 30년간 서울에서 중·고교 미술교사를 지냈다. 학생들 가르치는 교과서도 수차례 집필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돌연 ‘돌아가야겠다’고 했단다. 마치 책무를 다한 듯 다 털어버리고 말이다. 이후는 귀향해서 다시 만난 제주를 관찰하고 제주를 그리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밤잠도 아까울 만큼 몰입하고 빠져들면서. 그래서 남들 하는 붓질로는 부족했다고 여긴 건가. 작가 작업은 대부분 붓 대신 손과 손가락을 도구로 쓴단다. 눈에 보이는 전경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경은 그렇게 화면에 뭉쳐졌다. 하늘을 움직이는 기류인 ‘바람’이 사람을 움직이는 소망인 ‘바람’이기도 하듯이. 9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바람마당’에서 볼 수 있다. 열세 번째 개인전이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부터 종달리, 성산읍 오조리로 이어지는 바닷가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별해 걸었다. 김용주 ‘하도리의 오후 I’(2023), 캔버스에 아크릴, 89.4×130.3㎝(사진=제주갤러리)김용주 ‘들여다보기 Ⅱ’(2021), 캔버스에 아크릴, 40.9×53㎝(사진=제주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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