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키채 3개 부러지도록 맞아”…빙상선수들은 왜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나

인권위 스포츠인권특조단, 빙상종목 인권 실태조사 발표
모든 폭력 유형의 피해 경험이 전체 평균 응답률을 상회
실업선수 그룹, 전체 응답률보다 두 배 정도 높게 나타나
  • 등록 2021-04-15 오후 12:00:00

    수정 2021-04-15 오후 12:00:00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가죽 날집이라고 스케이트 라인에다 끼우는 걸 이중으로 끼어가지고 락커룸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스케이트를 신기고 아래로 스케이트 타는 자세를 잡으라고 한 뒤 때리는 거예요. 등, 엉덩이, 허벅지, 안 보이는 데만 때리는 거예요.”

“한참 맞을 때는 링크장은 아이스하키도 같이 하니까 아이스하키채 3개 정도 부러질 정도로 맞았던 것 같아요. 20분 동안 락커룸에 갇혀서도 맞아본 경험도 있고.”

지난 3월 19일 경기 의정부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36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여자 일반부 1000m 결승전에서 심석희가 1위로 들어오며 환호하고 있다. 심석희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 조재범 전 코치는 올해 1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0년 6월을 선고받았다. 심석희는 경기 후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며 재기 의지를 보였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019년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서울시청) 선수가 국가대표 코치에게 지속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빙상종목 선수 특별조사 결과, 해당 종목 선수들이 타 종목보다 각종 폭력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조사 결과, 빙상선수의 인권은 스포츠 분야의 전반적으로 취약한 인권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더욱 심각한 상태”라며 대한빙상연맹경기회장, 교육부장관 및 빙상장(공공체육시설)이 설치돼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선수 인권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15일 권고했다.

빙상종목 선수들은 대학생 집단을 제외하고는 모든 폭력 유형의 피해 경험이 전체 평균 응답률을 크게 상회했고, 특히 실업선수 그룹은 전체 응답률보다 두 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또한 새벽, 오후, 저녁 훈련 등 매일 4~5시간 이상의 장시간 훈련으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물론 성장기 청소년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학습권 침해는 물론 선수들의 정신적·육체적 소진과 부상, 운동 중단 등 아동학대 수준의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인권위는 빙상계의 심각한 인권 상황의 원인을 △일부 지도자들의 빙상장 독점적 사용·국가대표 코치 및 선수 선발권·실업팀과 대학특기자 추천권 등의 전횡 △선수·지도자의 경직된 위계 구조 △지도자의 폭력이 성적과 메달을 위한 것으로 공공연히 용인되는 문화 △인권침해와 체육비리에 대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묵인 행위 등으로 판단했다.

인권위는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에게 빙상종목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을 권고했다. 또 학교 밖 ‘개인코치‘에 대한 관리·감독 부재 역시 빙상종목 인권상황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판단하고, 교육부장관에게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의 ‘과외교습‘에 체육 교습 행위가 포함될 수 있도록 해당 법의 개정을 추진하라고 했다.

인권위는 “빙상종목은 빙상장을 기반으로 육성되기 때문에, 학생선수 대다수가 학교 밖 개인코치에게 훈련을 받아 학교운동부 중심의 인권침해 예방 체계 밖에 존재하고 있다”며 “빙상종목의 주요 가해자는 학년 변동과 상관없이 지도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개인코치 교육과 자질 검증 등 관리감독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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