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불안감 한복판에 진입한 시대와 사람들

심사위원 리뷰
국립극단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파트 투'
신유청 연출, 원작자 설계 완벽히 옮겨와
  • 등록 2022-05-12 오전 12:00:03

    수정 2022-05-12 오후 2:31:40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사진=국립극단)
[조형준 공연프로듀서] 1, 2부를 합쳐 관람 시간만 5시간인 공연이 표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관심을 만들어 냈다. 국립극단이 제작한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토니 커쉬너 작/신유청 연출)다. 작년에 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가 공연됐고, 올해 초(2.28~3.27, 명동예술극장) 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가 공연됐다. 신뢰도 높은 배우들의 참여라는 매력도 있겠지만, 관람에 엄청난 시간과 체력이 요구되는 이 공연에 왜 이토록 많은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을까?

‘밀레니엄’과 ‘페레스트로이카’는 상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인류가 공통으로 맞닥뜨린, 세계관을 담보한 혁명에 버금가는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으로 구성된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세상의 질적 변화로 실존적 불안감 한복판에 진입한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 바이러스 창궐, 우크라이나 등에서 벌어지는 전쟁, 확산되는 혐오와 배제 등 기존의 방식으로는 속수무책인 오늘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다.

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서는 절대 안 돼!”라는 늙고 완고한 한 볼세비키의 연설로 시작되고, 센트럴파크 베데스다 분수에 살아남은 등장인물들이 모여 “우리는 계속 싸워나갈 것이며, 세상 또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이 사이에 미국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기 에이즈로 혐오와 배제의 십자가를 짊어졌던 성소수자들 중심의 이야기를 배치한다. 당시 신의 형벌로 여겨진 에이즈에 감염된 ‘프라이어’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언자의 자격을 부여하며 위대한 역사가 시작됐다고 선언한다. 왜 ‘프라이어’였을까. ‘위대한 역사’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까지 연극은 물론 케이블TV, 영화, 오페라 버전 등으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작품은 언어와 재현이 중심인 전통적이고 논쟁적인 이야기 구조에 시공을 초월하는 판타지를 더하고 있다. 이는 원작자의 정교한 설계에 따른 것이다. 토니 커쉬너는 원작 축약을 무척 싫어한다고 한다. 신유청 연출은 “묵시적인 연극”으로 분석하고 “작품의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할 수 있다면 긴 시간은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원작자의 설계를 완벽하게 옮겨오는데 공을 들인다. 전통적 이야기 구조에 마술적 시공간의 허용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성적, 합리성이라는 전통적 기준에서 벗어나 전복적 상상과 주체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허용한다. 그리하여 신과 꿈의 영역까지 무대를 확장해 죽은 자와 하늘의 천사가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세계가 만들어진다. 고정관념이 사라진 이 세계는 숨어있는 단서들을 찾고 감각하고 재구성해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는 유용한 플랫폼이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편견이 지워진 자유로운 사유로 오히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경험은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태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1990년대 초반, 영국에서 로렌스 올리비에 연극상, 미국에서는 개막 전에 퓰리처상,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뉴욕비평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기록하고 희곡은 해럴드 블룸의 ‘서구의 정전’ 필수 문학 목록의 반열에 오르는 등 놀라운 신화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에도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성 속으로 깊숙하게 나아간다. 최근 토니 커쉬너는 2021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리메이크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참여했다. 이 영화에서 푸에르토리코 유색 이주민들과 미국 하위층 백인들을 통해 혐오와 배제를 버리고 순수한 사랑과 이타적 희생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라고 여전히 외치고 있다. 강렬한 연극적 경험은 꿈을 이루게 할 수 있을까.

(사진=국립극단)
(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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