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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남자 무용수에게 콩쿠르는 당연히 해야 하는 도전과제다. 무용계에서 콩쿠르로 병역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의 ‘스펙’이다.”
한국의 남자 무용수들은 20대가 되면 가장 큰 장벽과 마주하게 된다. 군대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만 무용수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대 시절의 2년간을 군대에서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유가 있다. 몸을 주로 쓰는 무용수 특성상 군대에 가게 되면 그동안 쌓아온 무용 실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
무용수 박영상은 “군대에서 보내는 2년은 무용수에게 체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며 “실제로 많은 무용수들이 군대를 갔다 온 뒤 무용을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자 무용수들은 20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콩쿠르에 ‘올인’한다. 예술요원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병역혜택을 받을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무용은 대근육보다 더 섬세한 근육을 다양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군대에서 훈련을 받다 보면 몸 자체가 달라져 무용수로 다시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군대를 마치고 무용수로 활동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와이즈발레단 출신으로 현재 재활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이위형(31)씨는 2006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군대를 다녀왔다. 이 씨는 “군대 문제로 불안하다 보니 오히려 빨리 다녀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육군으로 전차대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오니 확실히 몸도 굳고 딱딱한 군화를 신다 보니 발목도 굳어서 안 좋은 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남자 무용수가 군대를 가는 것에 대해서는 “해볼 것 다 해보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 씨가 군 제대 이후에도 무용수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노력한 결과다. 상병 때부터 체중을 감량했고 휴가를 나올 때마다 무용 연습실을 찾아갔다. 전역 이후 와이즈발레단에서 활동하던 중 부상을 당해 무용을 그만두고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지원을 통해 재활트레이너가 됐다. 이 씨는 “일찍 군대에 간 것에 후회는 없다”며 “다시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군 입대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무용계에서는 예술부대 창설이나 무용수를 위한 대체복무제 마련 등을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 등의 문제로 현실화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콩쿠르에 매진하는 것만이 남자 무용수가 꾸준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병역혜택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콩쿠르에 대한 공정성 문제도 불거진다.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무용도 콩쿠르에서 특정 심사위원이 자신의 제자를 합격시켰다는 식의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조남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은 “콩쿠르에 대한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해 협회에서 주최하는 콩쿠르나 무용대회에서는 점수를 1점 차이로 둬 동점자가 나오지 않게 하고 심사위원 구성도 대회 하루 전에 공개하는 등 보다 공정한 심사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조 이사장은 “남자 무용수가 부족한 한국 무용계에서 콩쿠르를 통한 병역혜택 제공은 무용계 발전을 위한 정책의 측면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