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안주한 데서 비롯한 패배감이 옅어질 무렵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로스쿨 출신 법조인이 등장했다.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았다. 법학적성시험(LEET)을 준비하는 것부터 생소했다. 한 차례 낙방하고 어렵게 지방 로스쿨에 들어갔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으로 지방 생활을 하려니 서울에 두고 온 처자식이 눈에 밟혔다. 비싼 학비도 부담이었다. 전셋집 평수를 줄여 마련한 돈과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저축을 보탰다. 그래도 모자란 학비는 대출을 받았다.
로스쿨에 입학하자 주변에서 나를 ‘금수저’라고 불렀다. 학비가 비싼 로스쿨을 다닌다는 게 이유다. 학비가 비싼 것은 사실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전국 25개 로스쿨의 평균 연간 등록금은 1569만원이다. 그나마 3년간 들어간 학비 가운데 절반은 장학금으로 감당한 게 다행이었다. 로스쿨협의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로스쿨 등록금 대비 장학금 비율은 37.6%(358억4600만원)다. 로스쿨 안에 금수저가 있는 것도 맞다. 한 동기는 아버지 로펌을 물려받으려고 로스쿨에 입학했다고 했다.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공직이나 대형 로펌에서 부름을 받기 어렵다.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건사해야 한다는 부담은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졌다. 멀리 떨어진 처자식을 그리워하는 시간조차 사치였다. 주말에도 상경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모래알처럼 지내던 로스쿨생들이 지난해 말 하나가 되는 일이 터졌다. 법무부가 2017년 폐지하기로 한 사시를 2021년까지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로스쿨 제도에 문제가 많으니 당분간 사시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저들 말대로라면 문제 많은 로스쿨을 나온 나는 변호사 시험을 합격해도 함량미달 법조인이 되는 것인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 관련기사 ◀
☞ 금융·환경 전문 변호사 키운다더니…특성화교육 '유명무실'
☞ '법대의 몰락' 로스쿨 7년만에 학생수 반토막
☞ "로스쿨=돈스쿨?" 장학금 받으면 '반값 등록금'
☞ [목멱칼럼]대학 법학부와 로스쿨, 상생방안 찾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