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피보다 진한 물'과 촛불

  • 등록 2016-12-29 오전 5:00:00

    수정 2017-01-22 오후 7:47:29

[송일 한국외대 경영대 명예교수] 권력 비선들의 국정 농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진(秦)나라의 장사꾼 여불위(呂不韋)는 왕손 이인(異人)을 후원해 장양왕을 만들고 애첩을 황후로 바쳐 천하제일의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국정을 농단하다 결국 진시황에게 쫓겨나 자결했다. 고려 말기 요승 신돈은 노국공주를 못 잊는 공민왕을 샤먼적 농간으로 사로잡고 권력을 전횡하다 결국 반역죄로 처형됐다. 제정러시아 농부의 아들 괴승 라스푸친은 입신(入神)의 주술로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료해 황실의 신임을 얻고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사실상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결국 살해됐다.

김영삼 전(前) 대통령 차남 현철 씨는 ‘소통령’으로 불리며 막후에서 인사와 공천 등에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다 ‘한보게이트’에 연루돼 결국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와 삼남 홍걸씨는 이용호·최규선 게이트를 통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다 구속 기소됐다. 참여정부 때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형 노건평씨가 박연차 게이트와 세종증권 인수 로비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 받았고 MB정부에선 ‘만사형통’이라 불리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이 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측근 비리의 주인공은 거의 대부분 친인척이었다. ‘황태자’ ‘소통령’ ‘봉하대군’ ‘영일대군’ 등으로 불린 이들은 대통령의 권력과 위세를 이용해 이권을 챙기고 개인의 영달을 꾀했다.

그러나 최순실은 친인척도 아니다. 최씨는 광고업자, 성형시술업자 등을 데리고 장·차관이나 청와대 수석 등을 몸종 부리듯 하며 동계올림픽이니 창조융합복합벨트니,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들먹이며 국정을 떡 주무르듯 하니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혈육’ 박지만씨 표현대로 최순실은 ‘피보다 진한 물’이다.김치·청국장등 밥상에서 부터 화장 미용 보톡스, 속옷, 머리손질, 외출 패션까지, 그리고 청와대 입성 후 요직 인선과 국가정책까지 거의 대부분을 최씨가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6년은 ‘피보다 진한 물’을 극복한 해이기도 하다. 국정농단의 어둠을 걷어낸 성숙한 시민 의식과 평화집회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일궈낸 것이다. 시민들은 돈과 부패의 특권, 불공정, 편법, 반칙으로 훼손된 국가 시스템의 회복과 정의사회를 갈망했다.

정경유착의 비난 가운데도 정권으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기업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정치 불안이 경제 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2017년과 2018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3.0% 수준으로 내다보고 한국 국가 신용등급을 ‘AA-’로 거듭 확인했다. 또다른 신평사 무디스도 이와 유사한 평가를 내렸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나라 전체가 휘청거린 가운데 국가신용 성적표가 그나마 크게 훼손되지 않은 것은 글로벌 무대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기업 덕분 아니겠는가.

국내 기업이 국내 정치권 횡포속에서도 한국 이미지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최순실 사태를 촉발한 한국 정치권은 최악의 상태다.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한국의 낡은 시스템을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정치권은 앞으로 다가올 대통령 선거를 놓고 마음이 콩 밭에만 가있다. 이들은 “변해야 산다”고 외치는 민심은 외면한 채 촛불집회 뒤에 숨어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 판도를 그리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최순실 사태를 질타하는 현 정치권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집단으로 비쳐질 지도 모른다. 새해는 낡고 부패한 정치판을 청산하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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