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 부메랑]대기수요 넘쳐나는데 문닫는 어린이집 속출…왜?

어린이집 공급과잉 불구 아동 감소·국공립 쏠림 현상 심화
정원충족률 2012년 82.3%→작년 75.8% 3년새 7%p 감소
“국공립 확대·가정 양육수당 인상 등 구조조정 불가피”
  • 등록 2016-06-27 오전 6:30:00

    수정 2016-06-27 오전 8:54:26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어린이집간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하다. 시설 좋은 국·공립어린이집이나 수준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입소문 난 대형 어린이집은 대기수요가 수년치까지 밀려 있기도 한다. 반면 전체 어린이집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가정어린이집 중에는 보육아동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처한 곳이 많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준비없이 시행한 무상보육 정책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2년 0~2세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무상보육 도입 이후 보육수요가 급증하자 보육인원이 20인 이하로 제한된 대신 설립이 손쉬운 가정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어린이집이 급격히 늘었다. 2011년 3만 9842개였던 어린이집은 정점이던 2014년에는 4만 3742개로 3년새 3900개나 늘어났으나 이후 감소추세로 전환해 1년 6개월만에 2700여개가 문을 닫았다.

‘무상보육 확대→생계형 어린이집 급증→공급과잉→아동 수 감소·어린이집 쏠림 현상→영세 어린이집 폐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높은 갖춘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한편 가정 양육수당 확대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린이집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세어린이집 못믿겠다’ 국공립 쏠림현상 심화

국내에서 직장을 다니다 그만둔 경험이 있는 워킹맘은 ‘자녀를 안심하고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전체 아동수가 계속해서 줄고 있는 상황에서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실시한 전면 무상보육으로 인해 어린이집이 급증,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지 오래지만 정작 부모들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이유로 직장을 포기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어린이집 정원 충족률(정원 대비 현원 비율)은 2012년 82.3%에서 지난해 75.8%로 낮아졌다. 어린이집은 폭증한 반면 어린이집 0~2세반 나이에 해당하는 전체 아동 인구수가 2012년 142만 6100명에서 2015년 131만 200명으로 3년새 11만 6000명이나 줄어든 영향이 컸다.

어린이집 공급이 크게 늘기는 했지만 부모들 입장에서는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어린이집은 많지 않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15 전국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 상태를 중단한 적이 있는 아동을 둔 여성은 전체 조사 대상의 31.4%로 나타났다. 취업을 중단한 이유로 ‘자녀를 믿고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응답이 43.0%로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는 전국 2593가구·4046개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고 있는 워킹맘 김모씨(32)는 1년 간 육아 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다시 나가기 위해 집 주변의 시설 좋은 어린이집 몇 곳에 입소 신청을 했지만 빠른 곳의 대기 순번이 80번째였다. 김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아파트 단지내 가정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지만 30평 쯤 되는 가정집을 개조한 시설에 2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몰려 있는 모습이 마뜩찮았다. 김씨는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인데 좁은 집안에서 다치지나 않을 지, 다른 아이들한테 병을 옮지 않을 지 걱정돼 회사에서도 일손이 잡히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직접 돌볼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무상보육 확대로 보육과 무관한 일을 하던 사람들마저 너도나도 어린이집 운영에 뛰어들면서 영세한 생계형 어린이집이 폭증했다”며 “원장이 교사를 겸임하면서 원아 3명 이하를 두고 있는 어린이집도 전국에 500여곳에 달한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가정어린이집을 운영하는 A씨는 “맞벌이 가정이 아니어서 국공립이나 민간어린이집에 들어가지 못한 전업주부들의 영아들이 많이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전면 무상보육이 저출산 해법 아냐”

아동 인구 감소와 어린이집 쏠림 현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가정어린이집이다. 어린이집 공급과잉이 정점을 찍은 2014년 이후 18개월 만에 2277곳이나 급감했다. 더욱이 오는 7월 전업주부의 0~2세 영유아의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7시간(월 바우처 15시간 포함)으로 제한하는 맞춤형 보육이 시작되면 폐업하는 가정어린이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맞춤반에 지원되는 정부 보육료는 종일반 보육료의 80% 수준이다. 맞벌이 가정 보다는 전업주부의 영아가 많은 어린이집으로서는 맞춤반 비중이 높을 수록 수익성이 악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가정어린이집은 전체 어린이집의 절반이나 된다. 대부분 아파트단지 등 공동주택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고 입소가 쉬워 0~2세 영유아를 둔 전업주부들이 많이 이용한다. 지난해 기준 어린이집 보육 아동은 총 145만명. 이 중 23%인 34만 4007명이 가정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최윤경 육아정책연구소 박사는 “저출산 해소 등을 명목으로 정부가 무상보육을 강화했는데 결국 양육 부담 완화 정책이 저출산 해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가구 소득별 보육료 차등 지원, 어린이집 이용시간 제한과 바우처 지급 등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제도를 촘촘히 설계하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문미옥 서울여대 아동학과 교수는 “기관 중심의 무리한 무상보육 정책이 가정어린이집의 무차별적인 확산를 야기했지만 결국 출생아 수가 줄고, 시설도 다른 기관에 비해 열악한 경우가 많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많다”며 “만약 맞춤형 보육이 시작된다면 생존의 문제에 봉착하는 어린이집도 다수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어 “현행 최대 20만원인 가정 양육수당을 최소 30만~40만원 이상으로 늘려서 부모들의 가정육아와 어린이집 육아 중 선택하도록 하는 등 자연스레 어린이집 시장이 재편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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