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앞에 선 삼성물산 합병]①자본주의 법정, 시장가격을 의심하다

  • 등록 2016-06-03 오전 6:50:00

    수정 2016-06-07 오전 8:09:09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주식매수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됐다는 법원 결정이 자본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번 결정은 특정인의 권리 침해나 회복을 목적으로 한 소송사건이 아니라 `적정가격`에 대한 행정적 판단을 내린 ‘비송사건(非訟事件)’이다. 법원 판단이 시장에서 일어나는 다른 기업 인수합병(M&A)에 법적 효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례에 적용해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법원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적정하지 않다고 결정한 이례적 사건이어서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데일리는 이번 법원 결정의 논리를 짚어보고 그 영향을 분석했다. [편집자 주]

‘공산주의 정부도 아니고 자본주의 법정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다시 결정한다고?’

상당수 시장참가자들은 옛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매수 청구한 주식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됐다는 서울고등법원 결정(판사 윤종구·양시훈·박옥희)을 접하고 이렇게 반응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는 주식매수가격을 이사회 결의일 전날부터 과거 2개월, 1개월, 1주일간 형성된 종가에 일정한 가중치를 적용, 이를 평균한 값으로 구한다고 정해놨기 때문에 다툴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고법은 이런 상식을 뒤집었다.

물론 고법도 원칙적으로 주가를 근거로 주식매수가격을 산정해야 한다는 대전제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고법이 근거로 든 건 또다른 자본시장법 조항이다. 이 법 165조에는 `주주가 시행령으로 정한 주식매수가격에 반대하면 법원에 매수가격 결정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시행령에 따른 가격보다 더 공정한 가격이 있는지를 찾아본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법원은 시행령이 정한 가격보다 더 공정한 가격이 있다면 이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주식가치가 합병 이슈에 영향을 받기 전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결의한 작년 5월22일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라 결정된 삼성물산 주식매수가격은 공정성을 의심할 정도로 합병 이슈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고법의 논리는 이렇다. 우선 2014년 12월18일 제일모직 상장 직후 증시내에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설이 돌아 삼성물산 주가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고 봤다. 증권가에선 이건희·이재용 일가 지분이 삼성물산보다 제일모직에 더 많았기 때문에 삼성물산을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의 피해주로 인식했다. 지배력이 있는 이씨 일가 입장에서는 삼성물산 주가는 낮게, 제일모직 주가는 높게 형성돼야 이익이라고 보고 시장내 투자흐름도 이런 판단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삼성물산이 합병결의일 이전까지 일부러 낮은 주가를 유지하기 위해 실적도 낮게 조정하는 이른바 ‘경영 태업’을 한 정황도 있다고 봤다. 현대건설, GS건설 등 다른 경쟁 건설사들이 지난해 상반기 주택공급을 늘려나갈 때 삼성물산은 나서지 않고 있다가 합병을 결의한 뒤에서야 공격적으로 확대했고 삼성물산이 해오던 일감을 갑자기 관계사인 삼성엔지니어링에 넘기는가 하면 2조원대 대규모 해외수주 소식도 합병 결의일 이후 뒤늦게 알린 것은 의도된 실적 부진이란 것.

여기에 옛 삼성물산 최대주주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을 결의하기 전 주식을 계속 팔아치운 것도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국민연금은 주주총회에서도 자문을 의뢰한 전문기관의 자문 결과와 달리 합병안에 찬성했고 자문 결과와 반대로 의결권을 행사하면서도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하지 않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인 만큼 삼성물산 주식을 판 것이 의심스럽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이런 근거에서 법원은 합병 이슈에 영향을 받기 전인 제일모직 상장일 전일을 기준일로 한 주가를 기초로 매수가격을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이렇게 구한 가격은 1심에서 판단한 주당 5만7234원에서 6만6602원으로 올라간다.

앞으로 쟁점은 고법이 다양하게 제기한 ‘합리적 의심’을 근거로 주식매수가격을 결정한 것이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 정한 주식가격보다 더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지다. 비송사건은 자료 수집 책임과 권능이 법원에 있기 때문에 법원이 삼성물산의 고의적 주가·실적 조정을 증명할 명확한 증거가 없더라도 이를 합리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된다. 즉 삼성물산은 항고심에서 고법의 의심을 해소할 수 있는 추가 자료를 더 내놔야 대법원에서 고법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다.

▶ 관련기사 ◀
☞ [法 앞에 선 삼성물산 합병]②고법 논리면 삼성물산 경영진은 배임?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임지연, 아슬아슬한 의상
  • 멧갈라 찢은 제니
  • 깜짝 놀란 눈
  • "내가 몸짱"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