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겉늙은' 경제에 던지는 가계부채의 경고

  • 등록 2016-08-27 오전 7:18:11

    수정 2016-08-27 오전 7:18:11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부채는, 대출은 나쁜 것인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대출은 경제성장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대출에 숨은 함의 중 단연 관심을 가져야 할 게 있다.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누군가 빚을 내라고 시킨 게 아니다. 소비든, 투자든, 어딘가 돈을 쓰겠다는 경제주체의 자발적인 의지가 대출 안에 숨어있는 셈이다. 대출은 성장 선순환의 핵심 고리다.

그렇다면 1250조원의 가계부채는 많은 것인가. 이건 확실하지 않다. 정책당국은 위기를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거대한 숫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아니다. “위기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가 정답에 가깝다. 가계부채 증가세는 어쩌면 ‘막연한 공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가계부채에 호들갑인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위기 신호는 과연 무엇일까. ‘부동산에 의존하는 성장’이 분명 큰 비중일 것으로 기자는 믿는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축적의 시간’이란 책에서 풀어놓은 얘기는 섬뜩하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부동산에 투자된 금융자본 10조원과 자동차 10만대를 만들 수 있는 산업자본 10조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우리나라 총자산은 20조원이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20조원이 됐고, 누군가에게 30조원에 팔렸다고 하자. 총자산은 40조원으로 불어난다.

경제는 성장한 것일까. 김 교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생산 가능한 자동차는 여전히 10만대다. 물적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돈만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를 최초 20조원 돈의 가치로 환산하면 금융자본은 15조원, 산업자본은 5조원이 된다.

김 교수는 “부동산 투기가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자본에서 5조원을 약탈한 것과 같다”면서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말한다. 고도성장기를 이끈 주력 제조업이 고꾸라지는 요즘이다. 마냥 흘려듣기 어려운 경고다.

부동산 투자를 죄악시하는 게 아니다. 자본이 상대적으로 비(非)생산적인 곳에 몰리는 현실은 한 번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도 다소 쇼크였다. 지난 2011~2015년 국내 건설업의 잠재성장률이 -0.5%라는 추정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 한, 당혹스러운 일이다.

경제성장률 성적표에 정권이 일희일비 하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부동산의 유혹’은 박근혜정부가 외치는 구조개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문가그룹이 제시하는 방향이 없는 게 아니다. 초고층빌딩 혹은 초장대교(super long span bridge) 등의 초기 개념설계부터 우리 건설사가 전세계를 누비고자 노력하는 건 무리일까. 우리 금융사도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의 기술 위험을 평가하는 능력을 키우는 건 어려운 일일까.

가계부채 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고 있다. 지금이 ‘겉늙은’ 우리 경제가 체질개선에 나설 마지막 기회가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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