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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부채는, 대출은 나쁜 것인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대출은 경제성장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대출에 숨은 함의 중 단연 관심을 가져야 할 게 있다.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누군가 빚을 내라고 시킨 게 아니다. 소비든, 투자든, 어딘가 돈을 쓰겠다는 경제주체의 자발적인 의지가 대출 안에 숨어있는 셈이다. 대출은 성장 선순환의 핵심 고리다.
그렇다면 1250조원의 가계부채는 많은 것인가. 이건 확실하지 않다. 정책당국은 위기를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거대한 숫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아니다. “위기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가 정답에 가깝다. 가계부채 증가세는 어쩌면 ‘막연한 공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가계부채에 호들갑인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위기 신호는 과연 무엇일까. ‘부동산에 의존하는 성장’이 분명 큰 비중일 것으로 기자는 믿는다.
경제는 성장한 것일까. 김 교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생산 가능한 자동차는 여전히 10만대다. 물적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돈만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를 최초 20조원 돈의 가치로 환산하면 금융자본은 15조원, 산업자본은 5조원이 된다.
김 교수는 “부동산 투기가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자본에서 5조원을 약탈한 것과 같다”면서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말한다. 고도성장기를 이끈 주력 제조업이 고꾸라지는 요즘이다. 마냥 흘려듣기 어려운 경고다.
경제성장률 성적표에 정권이 일희일비 하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부동산의 유혹’은 박근혜정부가 외치는 구조개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문가그룹이 제시하는 방향이 없는 게 아니다. 초고층빌딩 혹은 초장대교(super long span bridge) 등의 초기 개념설계부터 우리 건설사가 전세계를 누비고자 노력하는 건 무리일까. 우리 금융사도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의 기술 위험을 평가하는 능력을 키우는 건 어려운 일일까.
가계부채 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고 있다. 지금이 ‘겉늙은’ 우리 경제가 체질개선에 나설 마지막 기회가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