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세월호·이태원…트라우마는 끝나지 않는다

이태원 압사 사고가 불러온 참사의 기억들
“사고 10년 후 자살시도” 삼풍 생존자의 고백
유족·지인 “트라우마, 죽을 때까지 아물지 않아”
악성댓글 고통가중…공동체 의식 절실
  • 등록 2022-11-01 오전 6:00:00

    수정 2022-11-01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이때 받은 충격이 사고 이후 10년이라는 잠복기를 거친 후 극도의 불안과 우울 증세를 동반한 정신과 질병으로 찾아왔다. 정말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더는 이렇게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의 저자인 ‘산만언니’는 스무살이던 1995년 삼풍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벌어진 붕괴사고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같은 해 아버지의 죽음까지 경험한 그녀는 오래도록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자살시도를 했던 그녀는 다행히 구조됐다. 이후 정신과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집에서 형광등을 켜지 않고 지낸다. 그녀는 저서에서 “집안이 밝으면 왠지 불안하다”며 “사고 직후 생긴 우울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생긴 버릇”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밤 사망자 155명, 부상자 152명(31일 밤 11시 기준)을 낸 이태원 압사 사고 이전에도 우리는 수차례 대형 참사를 겪었다. 사고는 당사자나 가족·지인들에게 ‘완벽한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를 남긴다. 트라우마다. 이제는 사진·영상을 통해 대형 참사를 실시간으로, 반복적으로 목격하는 우리 국민 모두가 트라우마 위험군이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안전사회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사고 이후 가장 필요한 건 공동체 의식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7년 전 딸 잃은 고통, 지금도 이루 말 못해”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압사 참사가 난 후 사흘 째인 10월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이태원 참사는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대형참사에 대한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고, 잊어선 안되는 사건들이다.

1994년 10월 21일, 출근시간대였던 오전 7시 40분께 한강을 잇는 성수대교 중간 부분이 무너졌다. 다리 위의 시내버스와 차들이 그대로 추락했다. 버스로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 등 32명이 목숨을 잃고, 17명이 부상당했다.

불과 8개월여 뒤인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0분경 서울 서초의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502명이 숨지고 937명이 부상을 입었다.

가장 가까운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다.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려 세월호에 탄 안산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숨졌고, 142명이 다쳤다.

같은 해 2월 경주 양남면의 코오롱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지붕이 무너져 부산외대 학생 등 총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치는 사고도 일어났다. 이외에도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 등 총 343명 사상자가 나왔다. 1993년 10월엔 전북 부안 인근 해역에서 서해 훼리호 침몰 참사로 승객 292명이 숨졌다.

트라우마는 죽음의 위협이 될만한 사건을 경험한 당사자뿐 아니라 옆에서 사건을 지켜본 사람, 가까운 가족이나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은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트라우마는 계속된다.

손영수 삼풍유족회 회장은 27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당시 19살이던 딸을 잃었다. 손 회장은 지난달 31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주검을 온전히 찾지도 못했다”며 “지금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아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생각하면 눈물만 나온다, 다른 유족들도 다 마찬가지”라고 했다.

단원고 1학년 말에 전학을 해, 이듬해 세월호 참사를 피한 A씨는 “3년 정도는 친구들과 같이 세월호에 타서 죽는 꿈을 자주 꿨다”고 했다. A씨는 “요즘도 가끔 꿈을 꾼다”며 “꿈에 죽은 친구들이 나와서 나를 원망하고 외면하고… 그러면 꿈꾸면서도, 깨어서도 슬프고 우울하다. 내가 아직도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 느낀다”고 했다.

일반 국민이라고 다를까. 세월호 참사를 실시간 뉴스로 봤던 20대 B씨는 “아직도 생생하고 무섭다”며 “사고 이후에 수영을 배우려 했는데 못했다. 아직도 물이 무섭고, 안전이 확보된 바다에서도 카약을 못 타겠더라”고 했다.

악성댓글에 또 상처…“공동체 일원으로 역할해야”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건 희생자들에 대한 비난·혐오 반응, 악성 댓글과 같은 것들이다. 이태원 참사에도 “거길 왜 갔느냐” “놀러갔다 죽은 이들에 왜 나라에서 지원금을 주느냐” 식의 힐난성 반응이 온라인상에서 분출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인 C씨는 “세월호 기사에 ‘그만 우려먹어라’, ‘지겹다’ 이런 게 베스트 댓글로 올라오면 이게 우리 국민 주류의 의견인 것 같고 너무 상처 받는다”며 “공황장애는 5~6년 치료 받고 좀 나아졌지만, 피해의식이 생겼다”고 했다.

절실한 건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든 국민이 트라우마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선 우리가 사회 일원이고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가짜뉴스를 생산·소비하지 않기, 익명성에 기댄 악성 댓글 달지 않기 등 자기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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