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낙수효과'·진보 '분수효과' 결합한 선순환효과 낳아야[특별기고]

[정운찬 이사장이 본 한국경제 반등의 조건]
경제적 약자 배려와 지원 필요…중산층 소득 늘려야
낙수효과, 성장만능주의 맹신으로 공정한 시장경제 파괴
분수효과, 시장경제 역동성 훼손과 복지 과도한 부담
동반성장 단기 3정책 실천으로 경제 체력 강화해야
  • 등록 2023-12-21 오전 6:01:00

    수정 2023-12-21 오전 7:10:31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계적인 완전 평등은 가능하지도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사람도 있고, 대기업과 함께 중소기업도 있다. 성장하는 산업이 있으면 사양산업도 있기 마련이다. 모두를 똑같게 만들 수는 없다. 문제는 한 분야의 성장 효과가 그 분야에만 고이지 않고 다른 분야로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경제는 순환이다.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각 부문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선순환하도록 하는 것이 동반성장의 요체다.

공정한 경쟁질서 세우고 경제적 약자 배려해야

국민경제의 선순환은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두 가지 흐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부자·대기업·성장산업 등 선도부문의 성장 효과가 아래로 잘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른바 낙수효과(Top-down Track)다. 과거 반세기 여 동안 한국경제는 선 성장·후 분배의 불균형 성장전략만을 추구하다 낙수효과의 연결고리가 거의 끊어졌다. 이 끊어진 고리를 다시 이어야 한다. 저개발 단계에서는 성장이 최선의 복지정책이 될 수 있다. 1960~1970년대의 한국경제가 경험했듯이, 소수의 선도 부문을 선별하여 한정된 자원을 집중 지원하고, 심지어는 일정 정도의 편법을 용인해 주면, 성장이 촉진될 뿐만 아니라 고용이 확대되어 다수 서민층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이미 그 단계를 지난 지 오래다. 이제는 불법·편법을 근절하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벌개혁, 즉 대기업의 지배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하도급 거래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탈취 등과 같은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 불법과 편법, 그리고 경제력 남용은 시장경제를 파괴하는 요소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공정한 경쟁 질서를 만드는 것이 곧 시장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둘째, 하도급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의식적 배려와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분수효과(Bottom-up Track)라고 부를 수 있다. 경제적 약자들의 소득증대는 거꾸로 기업들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이어진다. 낙수효과의 정상화가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지만, 이것만으로 한국경제가 봉착하고 있는 양극화와 저성장의 문제를 극복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시장이 아무리 공정하게 작동하더라도 능력이 부족해서 또는 운이 없어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시행된 극도의 불균형 성장전략의 결과로 구조적 장벽이 너무나 높다. 따라서 중산층 이하 국민의 고용과 소득을 늘리는 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서민층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직접적인 효과뿐 아니라, 내수의 확대를 통해 기업의 고용과 투자를 자극함으로써 성장을 가속하는 간접적인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이익공유·적합업종·중기발주 등 동반성장 단기 3정책 실천해야

동반성장은 이러한 선순환적 결합으로 이뤄진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에서는 낙수효과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장만능주의를 맹신한 결과 오히려 공정한 시장경쟁을 파괴하고 기득권을 고착시키면서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는 폐단을 낳았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분수효과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반대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개인의 경제활동 의지를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면서 복지정책을 통한 사후적 분배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문제가 없지 않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결합하여 선순환효과를 낳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개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바꾸고, 우리 사회의 법제도와 관행을 혁신해야 하는 지난(至難)한 과제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결합하는 동반성장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경기침체는 경기순환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전 산업, 전 기업에 걸쳐 지속해서 경쟁력이 약화하는 상황은 단계별로 세밀한 전략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저성장과 잠재 성장력이 낮아지는 추세가 굳어지는 것을 막고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첫걸음은 동반성장 단기 3정책의 실천이다.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정부 사업의 중소기업 직접 발주가 그것이다. 이 단기 3정책은 한국경제의 체력 강화는 물론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먼저,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협력 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 해외 진출, 그리고 고용 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일부의 주장처럼 결코 반시장적인 사회주의 발상이 아니다. 과거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 모두 이익공유제를 미국 산업 전체에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일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이익공유를 실천해왔다. 이익공유는 192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 태동기 때에 처음 도입되어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그 후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등에서 기업 간 협력 사업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은 대기업이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대기업에 수많은 법적 · 제도적 혜택을 주고 자원을 집중시켰다. 그것은 경제성장을 선도하면서 세계시장에 나가 경쟁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창업주에서 2세, 3세로 경영권이 이전되면서 대기업 총수들은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을 물려받지 못했다. 오직 경영권만 물려받았을 뿐이다. 그 결과 많은 한국의 재벌 총수 일가는 끊임없이 골목상권을 침해하며 한국경제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정책이 역설적으로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면서 대기업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통해 대기업이 세계시장으로 나가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 사업의 대부분은 대기업에 발주하고 대기업은 다시 자사 협력사로 등록된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일은 중소기업이 다하고 이익은 대기업이 가져가는 결과를 낳는다. 중소기업이 자본 · 인력 · 기술을 축적할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조달할 때 일정 비율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기업 천문학적 자금 중소기업으로 흘러들도록 유도해야

이러한 동반성장 단기 3정책은 기존의 불공정한 게임룰로 인해 대기업으로 흘러가 고여 있는 돈을 중소기업에 합리적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할 것이다.

돈이 중소기업으로 직접 흘러가면 무엇이 좋을까? 한 나라의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하려면 거시적으로 볼 때, 한편으로는 공급 측면에서 기업의 설비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져 생산능력이 계속 확충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요 측면에서 가계소비, 기업투자 그리고 해외수출이 계속 늘어나야 한다. 기업의 투자는 생산능력을 확충시킬 뿐 아니라 다른 기업으로부터 자본재를 구매하는 행위이므로 수요를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가계소득은 지난 50년간 기업소득에 비해 그 비중이 계속 줄어들었다. 또한, 가계는 2022년 3월 현재 1,900조 원이 넘는 빚을 안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에 소비가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비투자는 지난 20여 년간 부진을 거듭했다. 대기업도 그렇고 중소기업도 그렇다. 대기업은 천문학적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는 활발하지 않다. 그 이유는 대기업이 IMF 구제금융 이후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태를 보이는 데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투자할 대상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 정도면 첨단·핵심 기술이 있어야 투자한다. 그러나 한국은 첨단·핵심 기술이 부족하다. 연구 및 개발(R&D) 지출이 세계 5위이고 GDP 규모를 고려하면 세계 1, 2위다. 그런데도 첨단·핵심 기술이 충분치 않은 이유는 R&D 지출이 주로 개발(D)에 치중해있고 본격적인 연구(R)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알량한 R도 본격적인 연구(Research)라기보다는 남의 아이디어 다듬기(Refinement)에 불과하다고 한국경제를 폄하하는 관찰자도 많다. 이에 대한 대책은 개발에서 연구로(D→R), 남의 아이디어 다듬기(Refinement)에서 본격적인 연구(Research)로의 방향 전환이다. 이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저성장의 문제는 당장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중소기업은 어떨까? 그들은 비록 최고급 기술은 아닐지라도 투자할 데는 많은데 자금이 없다. IMF 구제금융 이후 가계로 흘러가지 않은 기업 소득은 주로 대기업 것이고, 중소기업의 수익률은 대기업의 반도 안 된다. 그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행위, 특히 납품가 후려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이 돈은 많은데 투자를 안 할 바에야 대기업으로 흐를 돈을 합법적으로 중소기업에 흐르도록 유도하면 투자가 늘어나 (중소기업의) 투자증가 → 생산증가 → 소득증가 → 소비증가 → 경기침체 완화 → 성장 회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연결고리의 가운데 중소기업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괴리도 줄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도 많이 완화할 수 있다. 한국의 기업 가운데 99% 이상이 중소기업이고 또한 고용의 85% 이상을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지난 10년 동안 동반성장 단기 3정책을 계속 주장해 온 이유다.

창의적 인재 육성 위해 교육혁신 필요

과거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주역은 과감한 투자로 대량 육성한 산업화 맞춤형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미래를 이끌 핵심 역량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재들이다. 이러한 핵심 인재들은 어떻게 육성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우수한 교육에 있다. 먼저 급변하는 세계에서 스트레스가 과중한 학생들의 심신을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심신을 단련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교육은 지덕체(智德體)에서 체덕지(體德智)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새로운 세대에게 창의력을 함양시켜야 한다. 창의적 사고에는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가 필수적이다. 셋째, 우수한 교육이란 또한 낯선 상황이나 위기에 적응하는 능력과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춘 미래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어떤 지식이 가장 중요한지 묻는다면 나는 바로 ‘언어’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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