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징검다리 탈북민]"북한은 악마"…그들을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은 ‘분단체제 산물+ 문화적 배타성’
탈북가정 자녀들 학교서 집단 따돌림 시달리기도
"분단구조 극복, 소수자 차별해소 노력 함께 이뤄져야"
  • 등록 2018-05-01 오전 6:30:00

    수정 2018-05-01 오후 4:21:26

북한 대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TV’가 12일 홈페이지에 게재한 ‘조국의 품에 안겨 한 여성이 터치는 고백’이라는 제목의 영상에 재입북자라고 주장하는 주옥순(오른쪽 여성)씨가 출연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노희준 이윤화 기자] 2001년에 북한을 탈출한 이모(53·여)씨는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민이다. 북한에서 약사로 일했고 남한에서도 국가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약사면허를 취득했다. 경기도 A시에 연 약국도 장사가 잘된다. 하지만 이씨는 동네 사람들에게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말투에서 탈북민임이 드러날까봐 항상 신경을 쓴다. 탈북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손님이 끊길까봐 걱정돼서다. 이씨는 “북한에서 약사로 일했다고 하면 제대로 된 약사로 보지 않을 게 뻔하다”고 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한반도평화체제구축과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탈북민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우리사회가 탈북민에 가진 편견과 오해는 남북관계가 개선된다고 해서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일반시민의 탈북민에 대한 편견은 남한사회에 잘 정착한 이들에게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탈북민 편견은 ‘분단체제 산물+ 문화적 배타성’

탈북민에 대한 편견은 기본적으로 분단체제의 산물이다.

‘탈북민 1호 통일학 박사’인 주승현 전주기전대 교수는 “분단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북한의 악마화’를 강화하면서 국민들은 탈북민을 같은 민족이나 이웃이라기보다는 경계의 대상으로 학습했다”며 “체제경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고 나서는 가난하고 못 사는 북한주민에 대한 연민과 동정, 훈계 태도가 탈북민에도 그대로 투영됐다”고 말했다. 탈북민은 우리 인식 속에 우리사회를 이루는 ‘동등한 구성원’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탈북민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탈북민이 각고의 노력 끝에 정착에 성공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지위를 상승시켰다 하더라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의 탈북민 이씨가 스스로 ‘탈북민의 존재’를 숨기는 이유다.

특히 자녀가 있는 탈북민은 본인이 직접 대응할 수 없는 학교에서의 ‘자녀 왕따’ 문제에 시달리기도 한다. 2002년에 탈북한 김모(53)씨는 “2003년 영화 실미도가 나왔을 때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북한인간, 빨갱이, 무장공비’라고 놀려 아이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5학년 때 학원 친구가 북한인간이라며 먹던 과자를 아이 얼굴에 뱉어 아이가 참지 못하고 싸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지표에서도 탈북민에 대한 거리감은 그대로 드러난다. 2017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국민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한국민이 탈북민을 동네이웃, 직장동료, 사업동반자, 결혼상대로 각각 얼마나 꺼리는지 보여주는 ‘사회적 거리’ 조사에서 동네이웃은 5점 척도에서 평균 2.66점으로 나타났으며 직장동료(2.71), 사업동반자(3.28), 결혼상대(3.55)갈수록 거리감이 증가했다. 1점은 전혀 꺼리지 않음, 2점 이하는 수용, 3점은 중립, 4점 이상은 꺼림, 5점은 매우 꺼림이다.

우리사회는 탈북민을 이웃주민으로는 그나마 수용할 수 있지만 결혼상대로는 여기지 않다는 의미다. 국민통일의식조사는 2007년부터 매년 1200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상황과 지표는 탈북민에 대한 편견이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통일이 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는 문제임을 드러낸다. 탈북민 문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배타적 문화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탈북민 문제 해결은 분단구조 극복 노력과 아울러 소수자 차별해소라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가능하다”며 “국가부터 탈북민을 소외시키지 말고 탈북민보다 남한주민의 변화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일방적 동화 강요 그만…우리가 변할 때

이에 따라 정부의 탈북민 정착 정책 역시 일방적으로 탈북민의 우리사회 동화에 초점을 두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사회 자체의 변화를 어떻게 유도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그간 탈북민 정착 프로그램의 방점은 정권 교체 속에 ‘보호 및 지원’(1997년)→‘자립 및 자활’(2005년)→‘사회통합’(2016년)→‘생활밀착’(2017년) 등으로 바뀌었지만 결국 탈북민을 ‘자본주의 사람’으로 우리사회에 빠르게 흡수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에서 탈북민과 남한주민이 더 많은 접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국가가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서독정부는 동독이탈 주민이 서독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민대학(Volkshochschule)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이는 우리나라 평생학교 등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저녁 시간 동독이탈 주민들이 해당 지역 주민과 만나 서로 대화와 토론, 소풍, 체육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탈북자가 교육과 시혜의 대상이 아닌 정착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이탈주민 출신 통일연구 전문가는 “남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제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탈북주민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단체와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탈북민과 남한 사람들이 구분 없이 민간차원에서 소소하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정부가 후원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탈북민과 지역주민과의 접점을 만들고 이해의 장을 넓히려는 프로그램을 많이 늘릴 것”이라며 “통일부 산하기관인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거점 기관으로 많은 곳에 통일문화센터 건립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지난달 13일 서울 마곡지구에서 서울시 최초로 통일문화센터 착공식을 가졌다. 건물은 2020년에 개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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