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경제 다시보기]'무차별 돈 풀기' 8년여, 어떤 교훈을 남겼나

우리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이야기
  • 등록 2016-04-23 오전 8:20:04

    수정 2016-04-23 오전 8:20:04

비전통적 통화정책, 특히 이른바 ‘양적완화(QE)’의 본격 시작을 알린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몇주간 국내총생산(GDP) 이야기를 쭉 해드렸는데요. 요즘 우리나라든 전세계든, 경제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국내외 기관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암울하지요.

그 분기점이 있습니다. 그 시기를 시작으로 불황이 전세계적으로 고착화됐는데요. 바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보통 ‘L자형 불황’이라고 하지요. 2010년을 피크로 수년째 해법이 잘 안 보이는 저(低)성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후폭풍은 또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경제학, 특히 거시 정책의 기본이 산산조각이 난 것입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이 아마 중앙은행이 아닐까 싶네요. 우리는 중앙은행이 단기금리(기준금리)를 내리면 장기금리도 함께 하락하고, 그러니까 이자를 얼마 안 받고 대출해줄테니 빌려가라고 하면, 너도나도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빌려서 이것저것 사고, 그러면서 경기가 금방 살아날 수 있다는 이론을 맹신해왔습니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기준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사람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지요. ‘전통적’ 통화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은 겁니다.

그렇게 등장한 게 ‘비전통적’ 통화정책입니다. 특히 양적완화(QE)라고 많이들 부르지요. 요즘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걸 많이 궁금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주부터 몇주간 이 양적완화는 도대체 무엇인지, 그런데도 경기는 왜 회복되지 않는지, 경제가 다시 건강해지려면 왜 고통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경제학 이론 깨뜨려버린 금융위기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회고록 ‘행동하는 용기’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의장이 되기 전, 금리가 일단 제로에 도달하면 그것은 통화정책 선택의 고갈을 나타낸다는 견해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나는 그때 반대 견해를 주장했다. 이제 나의 생각을 실천에 옮길 때가 됐다. 우리는 정통 이론의 종말에 도달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양적완화의 아버지’입니다. 지난 2008년 12월. 미국 연준은 정책금리를 0.00~0.25%로 낮춥니다. ‘제로금리’의 시작이지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연준은 주택 버블 위기가 불거진 2007년 8월부터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급한 불을 끄려 합니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였지요. 이것 역시 낮은 수준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부를 만한 강력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실패합니다. 위기는 그칠줄 몰랐습니다. 결국 금리를 낮출대로 최대한 낮춘 후 본격적인 비전통적 수단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국채와 주택담보대출증권(MBS) 등을 중앙은행이 직매입하는, 말그대로 양적완화이지요.

쉽게 말하면 중앙은행이 돈을 시중에 직접 푸는 정책입니다. 신용경색을 해소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것인데요. 중앙은행이 자산을 산 만큼 자국의 현금이 시중에 풀리면 그만큼 자국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고, 이는 수출 경쟁력 증가와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각 경제주체의 부(富)가 증가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아, 이제 돈을 좀 써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경제는 성장하는 걸 기대할 수 있는 겁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기대효과는 중앙은행의 적극적 의지를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래도 명색이 중앙은행인데 위험한 자산까지 직접 사서 돈을 뿌려줄 정도로 경제를 회복시키려고 한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주는 겁니다.

물론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이 양적완화를 하는 만큼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절상될 수 있는 점입니다. 환율은 상대국과 교환가치입니다. 예컨대 일본 엔화 가치가 약해지면,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는 오르는 겁니다. 당장 우리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낮아지고 라이벌 일본 기업에 뒤쳐질 수 있겠지요. 금융위기 이후 자기만 살겠다는 식의 국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 정치적 혼란이 커지겠지요. ‘통화정책의 공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이런 걸 뜻합니다.

한국은행 사람들은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에 있어 국가간 파급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말합니다.

“왜 미국은 됐고 일본은 안 됐는가”

무차별 돈 풀기 이후 8년여, 그 결과는 어떨까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미국은 어느정도 효과를 봤고 유럽과 일본은 아직 애매하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모른다는 게 더 정확합니다. 서울 시내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경제의 위기가 아니라 경제학의 위기 같아요. 학계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지만 교과서에 없다 보니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나지요.”

다만 짐작은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미국 경제는 살아나 제로금리 시대를 끝냈는지 말이지요. 왜 일본 경제는 여전히 늪에 빠져 마이너스금리까지 도입하는지 말이지요.

전문가들은 양적완화가 근본 처방전이 아니라는데 대체로 동의합니다. 일종의 모르핀 주사라는 거지요. 기업과 가계 경제 밑바닥부터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야 비로소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미국이 가진 힘의 원천은 구글 애플, 더 나아가 테슬라 같은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혁신이 양적완화를 만나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요.

일본은 어떻습니까. 떠오르는 첨단기업이 있으신지요. 양적완화가 좀비기업 연명에만 쓰일 위험도 엄연히 있다는 겁니다. 이건 우리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큰 데, 결국 경제가 살아나려면 자라나는 새싹을 위해 이미 죽은 풀은 잘라내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구조조정으로 들썩이고 있지요.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와 경제구조가 비슷하다고들 하지요. 일본은 그렇게 돈을 푸는데도 왜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할까요. 이 이야기는 다음주 더 자세히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경제뉴스를 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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