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연계없이 퍼주기식 서민대출…금리 오르면 '가계 빚 폭탄' 우려

정부 '반쪽짜리 서민금융정책'
정책자금 공급·최고금리 인하 등
"더 싸게 더 많이 대출"에만 집중
가계대출 3년 새 25.9% 불어나
  • 등록 2018-06-07 오전 6:00:00

    수정 2018-06-07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지난해 초 다니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둔 황 모(34)씨는 실직 4개월 만에 한계에 부딪혔다. 당장 월세 낼 돈도 빠듯한 상황에서 갑자기 아이가 병까지 걸린 탓이다. 생활비와 아이 치료비로 500만원이 넘는 목돈이 필요했지만 돈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황 씨는 정부가 저소득 서민을 상대로 내놓은 햇살론과 같은 정책 서민금융 상품을 이용하려고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 몇 곳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이어서 소득이 없는 황씨는 자격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대부업체 몇 곳에 전화를 돌린 뒤에야 겨우 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를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저소득층의 이자 부담이 지난 2003년에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사상 최대를 기록한 배경에는 수년간 가계대출 급증과 금리 상승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금은행 가계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잔액기준으로 2016년 4분기(연 3.18%)에 바닥을 찍고 상승세다. 올해 1분기에는 연 3.46%로 2015년 3분기와 같은 수준이다. 금리는 같은 수준이지만 이자비용은 2015년(약 8만3900원)보다 14% 증가했다.

저금리 기조 속에 전 세계적인 양적 완화 기류를 타고 금융회사와 가계가 대출을 크게 늘린 영향 탓이다. 가계대출은 올해 1분기 1387조원으로 3년 새 286조원(25.9%) 불어났다.

통계청과 금융당국은 저소득층의 부채보유비중이 작아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은 그리 크지 않으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득이 낮을수록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이 커지는 데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소득 1분위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은 60.5%에 달한다. 1년 전(41.3%)에서 20%포인트 가까이 급등했다. 100만원을 벌면 60만원 이상을 빚 갚는 데 쓴다는 의미다. 황 씨처럼 고정수입이 없는 실직 상태에서는 대출 이자 부담 가중은 재기의 발판마저 없앨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소득층 이자 부담 완화 확신 못하는 정부

문제는 정부도 저소득층의 이자 부담 완화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통계청은 저소득층 이자 부담이 커지는 이유에 대해 명확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저소득층 이자 비용 증가 이유는 명확히 모른다”며 “좀 더 명확한 분석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주무부처인 금융당국마저도 다양한 서민금융지원책 시행에도 이들 계층의 이자 부담 완화를 확신하지 못한다.

금융위원회 한 관계자는 “금리 인상기에 들어서면서 이자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최고금리 인하와 여러 서민금융 정책이 효과를 얻기까지는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취약한 계층에게 정책자금 공급과 최고금리 인하, 장기소액연체자 채무 탕감 등의 여러 실질적인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서민금융정책으로 소득 1~2분위 취약계층의 소득증가와 이자 부담 완화 등 거시지표 개선으로 나오기에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통계치에서도 드러난다. 가계 소득은 찔끔 늘 때 빚은 껑충 뛰었다. 국제결제은행(BIS) 조사 17개국 가운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상승폭이 1위를 기록했다. DSR은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서도 작년 3분기 가계부채 증가율이 9.5%로 처분가능소득 증가율(5.5%)보다 4.0%포인트 높았다.

빚은 늘었는데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소득은 줄거나 제자리걸음을 하자 이자 상황 부담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어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일자리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금융지원과 더불어 컨설팅 강화를 통해 자생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퍼주기 정책 ‘그만’

문재인 정부 금융정책의 방점은 ‘서민금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악성채무를 탕감해주고 최고 이자율과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해 서민 가계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가계부채의 뇌관인 취약차주가 위험상황에 몰리지 않게 관리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취임 직후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7대 해법’을 내놓았다. △가계부채총량관리제 도입 △이자율 상한 20%로 인하 △203만명 22조6000억원 규모 악성채무 탕감 등이 핵심이다.

“더 싸게 더 많이 빌려주겠다.” 모든 서민금융정책은 이 한 줄로 요약된다. 정부는 서민들에게 그간 더 낮은 금리로 더 많은 한도로 돈을 빌려주기 위해 대출 문턱을 낮춰왔다. 서민금융 정책의 방점이 ‘누구나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금융접근성 확대’에 찍힌 결과다. 그러한 서민금융정책 때문에 금리상승기에 저소득 계층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서민금융은 항상 초과수요가 존재하는 영역이어서 정책만으로는 결국 ‘빚의 확대’를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어렵다”며 “특히 서민금융상품의 연체율도 급증하면서 금융접근성 제고가 서민의 재기를 지원하기보다는 또 다른 빚의 확대에 머무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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