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성추행 피해아동 상담기록까지 가해자에 내준 법원

  • 등록 2018-11-29 오전 6:00:00

    수정 2018-11-29 오전 6:00:00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이렇게까지 다 줬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싹 다 털렸어요.”

본지가 지난 22일 보도한 <방어권 앞세워 성추행한 제자 1년6개월치 진료기록 뒤진 교감>의 교감 A씨가 피해 아동의 병원진료기록뿐 아니라 심리상담 내역·일기·성적표 등까지 법원으로부터 받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아동의 어머니 손모(45)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문서 수백 장을 받아왔다. A씨가 사실조회촉탁신청을 통해 딸의 개인정보를 받아간 사실을 인지한 뒤 법원을 찾아가 ‘대체 무슨 정보를 내어준 것이냐’고 따져 물은 결과다.

받아든 문서는 상상 이상이었다. 딸이 다녔던 병원명과 진료기록은 물론, ‘심리적 불안을 호소한다’는 상담센터의 소견서와 피해아동이 쓴 일기와 독후감까지 A씨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심지어는 생일날 학교 친구들로부터 받은 롤링페이퍼 스캔본도 포함됐다. 손씨가 “싹 다 털렸다”고 표현한 이유다.

A씨가 기록을 ‘싹 다’ 털어갈 수 있었던 것은 법원이 A씨측의 사실조회촉탁신청에 허가를 내준 덕분이다. 이 사건은 현재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1심 재판 중이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A씨에겐 “나는 강제추행을 하지 않았다” 방어할 권리가 있다. 권리 보장을 위해 관련 기록을 받겠다 신청하는 일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아동 성폭력’이라는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원의 조치는 잘못됐다. 미성년자 강제추행 사건에서 피해 아동의 성적표까지 A씨에게 알려줘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A씨는 피해 아동이 다녔던 초등학교의 교감이었다. 이미 개인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을 A씨에게 마지막 남은 개인정보까지 떠먹여 준 꼴이다. 미투 폭로 이후 여성계 등에서 꾸준히 지적해온 법조계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손씨는 딸이 지금이라도 그저 평범한 중학생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주소와 주민등록번호까지 털린 삶을 평범하게 살아내기 위해선 피해자만 더 노력해야 한다. 법원이 피해자의 짐을 더 무겁게 해서야 되겠는가.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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