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기저귀 젖었어"…노인의 나라 만든 일본의 '독박육아'

[지구촌 육아전쟁 탐방기 일본편]
보육소 찾아 도쿄에서 사이타마로 이사한 렌겐씨 부부
男 육아휴직자 인사상 불이익 주는 '파타하라' 신조어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뿌리깊은 가부장적 사고 탓
  • 등록 2017-12-22 오전 6:30:00

    수정 2017-12-22 오전 6:30:00

지난 9월 25일 오후 6시쯤 일본 사이타마현 쓰루가시마시의 자택에서 다나카 렌게(35)씨가 5개월 된 다나카 하루키군을 돌보고 있다.(사진=이슬기 기자)
지난 9월 25일 오후 6시쯤 일본 사이타마현 쓰루가시마시의 자택에서 다나카 렌게(35)씨가 5개월 된 다나카 하루키군을 돌보고 있다.(사진=이슬기 기자)
[사이타마현(일본)=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다나카 렌게(35)씨의 하루는 남편으로 시작해 아들로 끝난다. 6개월 전만해도 금융의 중심지인 도쿄 긴자에서 이름을 날리는 헤드헌터였지만, 육아휴직 중인 지금은 한 남자의 아내이자 다섯달 전 태어난 아들의 엄마일 뿐이다.

렌게씨는 “복직하면 남편이 육아며 가사를 지금보단 많이 도와주겠지만 결국 대부분은 제 몫이 될 것”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보육시설 입소 위해 이사까지…일본판 맹모삼천지교

도쿄 시내에서 전철로 40분을 달리면 렌게씨의 집이 있는 사이타마현 쓰루가시마시에 도착한다. 고즈넉한 주택가가 모여 있는 도쿄의 베드타운이다. 직장에서 가까운 도쿄 시내에서 살던 렌게씨 부부가 지난 8월 이곳으로 이사온 건 ‘보활’(保活) 때문이다. 보활은 ‘보육활동’의 줄임말로 취업활동처럼 육아를 위해 이사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하는 일본의 신조어다.

렌게씨는 “도쿄에 있는 보육소는 운동장도 없고 비좁은 곳이 대다수다. 닭장 같은 곳에 아이들을 모아 둔 보육소에는 보내고 싶지 않아서 이사를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도쿄는 보육소 입소 경쟁이 치열하다. 원하는 인가보육소(우리나라의 국공립어린이집)에 들어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가보육소에서 떨어질 경우 시설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면서 비싸기까지 한 인가 외 보육소(민간어린이집)에 들어가야 한다. 인가 외 보육소는 빈자리가 많아 언제든 아이를 입소시킬 수 있는 반면 보육료가 인가보육소의 2배가 넘는다.

특히 일본은 한국과 달리 각 보육소에 몇 자리가 있는지만 알 수 있고 정작 본인의 대기순위가 몇 번째인지는 알 수 없어 부모의 불안감이 크다. 결국 렌게씨 부부처럼 보육소에 여유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해 인가보육소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9월 25일 오후 4시 30분쯤 일본 사이타마현 쓰루가시마시의 한 대형 마트에서 다나카 렌게(35)씨가 5개월 된 다나카 하루키군과 함께 장을 보고 있다.(사진=이슬기 기자)
기저귀 갈 때 되면 아내 부르는 일본 아빠

렌게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5시부터 몰아친다. 새벽 일찍 일어나 남편의 도시락을 싸고 세 가족의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아침식사 후 남편 다나카 노리유키(44)씨가 출근하면 노리유키씨가 퇴근하는 오후 7시 30분까지 모든 육아와 가사는 렌게씨 몫이다. 아빠가 육아와 가사에 참여하는 시간은 퇴근한 뒤 두세 시간 정도다.

“기저귀가 젖었어” 노리유키씨가 저녁식사 후 설거지 중이던 렌게씨를 부른다. 잘 놀아주다가도 아이가 용변을 보면 꼭 아내를 찾는다.

렌게씨는 “남편은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만 보려고 한다. 아이가 울거나 기저귀를 갈 때는 꼭 나를 부른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육아휴직이 끝나 회사일을 시작하면 남편이 육아를 지금보다 더 많이 도와주긴 하겠지만 영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노리유키씨가 유난스러운 것은 아니다. 노리유키씨는 전형적인 평범한 일본남성이다. 일본 총무성이 올해 발표한 ‘사회생활기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살 미만의 아이가 있는 아빠의 평균 가사노동(가사·간호·육아·장보기 등 노동에 할애한 시간의 총 합계) 참여시간은 일평균 1시간 23분이다. 같은 조건에 있는 엄마의 참여시간 7시간 34분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일본 여성의 ‘독박육아’ 현실은 평일 오후 일본의 마트에 가면 여실히 나타난다. 이날 오후 4시30분 쯤 장을 보기 위해 나선 렌게씨를 뒤쫓아 방 문한 대형마트. 한시간 남짓 장을 보는 동안 남성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렌게씨처럼 육아휴직 중인 사람이거나 전업주부, 혹은 시간단축형 근무를 해서 일찍 퇴근한 엄마들뿐이었다.

지난 9월 25일 오후 7시 30분쯤 일본 사이타마현 쓰루가시마시의 자택에서 다나카 노리유키(44)씨와 다나카 렌게(35)씨 부부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저녁을 차리는 사람도, 식사 중 아이를 돌보는 사람도 렌게씨다.(사진=이슬기 기자)
지난 9월 25일 오후 7시 30분쯤 일본 사이타마현 쓰루가시마시의 자택에서 다나카 노리유키(44)씨와 다나카 렌게(35)씨 부부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저녁을 차리는 사람도 렌게씨, 식사 중 아이를 돌보는 사람도 렌게씨다.(사진=이슬기 기자)
아빠 육아휴직은 직장내 괴롭힘 대상

일본의 남성 육아휴직 제도는 다른 육아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여성이 혼자 육아휴직을 쓸 경우에는 최대 1년이지만, 부부가 같이 쓰면 2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다.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쓸 수도 있다.

여성이 혼자 육아휴직을 쓰면 전반 6개월은 원래 임금의 67%, 후반 6개월은 50%밖에 받을 수 없는 반면, 부부가 교대로 육아휴직을 쓰면 1년 동안 각자 임금의 67%를 보전해 준다. 재원은 고용보험 기금이어서 1년이상 직장생활을 한 고용보험 피보험자라면 누구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노리유키씨는 “그런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여기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환경이다. 아마 제도를 알았어도 절대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후생노동청이 3살 미만의 아이가 있는 남성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남성 약 30%는 육아휴직을 쓰고 싶었지만 결국 쓰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로는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분위기의 직장 분위기(26.6%)’를 꼽았다. 2위는 ‘육아휴직 제도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은 회사여서(26.0%)’였고, 3위는 ‘잔업이 많고 업무가 바빠서(21.2%)’다.

실제 일본에서는 육아휴직을 요구하는 남성 직원에게 상사가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 괴롭히는 경우가 많아 ‘파타하라’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파타하라는 부성을 의미하는 ‘파터니티(paternity)’와 괴롭힘을 뜻하는 ‘허래스먼트(harrassment)’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뿌리깊은 가부장적 사고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낮추는 것은 비단 사회 분위기 뿐만이 아니다. 일본 아빠들의 사고방식도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노리유키씨는 “모유를 줘야 하는 건 결국 엄마”라며 “첫 돌이 되기 전까진 엄마가 육아휴직을 쓰고 아이를 돌보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가 어릴 때 엄마가 돌봐야 올바르게 자란다’는 모성신화는 일본 내에서도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허구로 밝혀진 지 오래다.

스가하라 마스미 오차노미즈여자대 교수가 일본 모자 269쌍을 12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3살 미만일 때 엄마가 일하더라도 아이가 문제행동을 일으킨다거나 모자 관계가 나빠지는 일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꼭 엄마가 육아에 전념할 필요는 없고 아빠와 조부모 등 여러 곳에서 애정을 두루 받으면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안도 테츠야(54) NPO 파더링재팬 대표는 “일본은 워낙 가부장적 사회여서 아빠들이 의식적으로 행동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육아는 엄마 몫이 된다”서 “일본에서 엄마들이 행복하려면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아빠와 그렇게 만든 사회 구조 양쪽을 다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족한 보육시설과 아빠들의 가부장적 사고방식, 야근이 일상인 장시간 근로가 만연한 회사. 우리나라와 닮은 꼴인 일본의 합계 출산율은 1.45명으로 1.17명에 불과한 우리나라보단 높지만 1.92명인 프랑스와 1.81명인 호주 등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난해보다 57만명 늘어나 3517만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7%로 일본인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매년 급증추세다. 일본처럼 ‘노인의 나라’가 되기 전에 우리 사회를 아기 울음소리가 넘쳐나는 ‘육아천국’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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