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사이드)갈수록 진화하는 제약 리베이트

회사 규모 상관 없이 리베이트
언론사 끌어들여 수법 교묘해져
'극심한 경쟁' 탓 일단 살고 봐야
  • 등록 2016-08-23 오전 6:55:00

    수정 2016-08-23 오전 6:55:00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끈질긴 생명력은 잡초만 가진 게 아니었다. 리베이트 얘기다.

정부가 완전히 뿌리뽑겠다고 쌍벌제(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뿐 아니라 이를 받은 의사도 처벌하는 제도)니 투아웃제(리베이트가 두 번 적발되면 해당 품목에 건강보험 적용을 제외시키는 제도) 같은 초강수를 둬도 초기에는 바짝 업드려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약사들은 이를 피해 진화한 방식을 개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리베이트로 행정처분을 받은 제약사 수는 쌍벌제가 시행된 2010년 14개 사에서 2013년 31개로 늘었다가 2014년 투아웃제가 시행되면서 2개로 급격히 줄었다. 그러다 지난해에 19개 제약사가 리베이트를 저지르다 행정처분을 받았다.

연도별 리베이트 적발 제약사 수(자료=식품의약품안전처)
◇제약사-의사 직접 거래에서 제약사-전문지-의사 3각 커넥션으로

과거에는 제약사 관계자가 의사나 병원 관계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직접 제공하는 1차원적인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제 3자를 통해 합법적으로 금품을 제공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지난 9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은 매출액 기준 세계 1위 제약사인 노바티스의 한국법인 대표이사 및 전·현직 임직원 6명을 비롯해 3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가운데에는 의학전문지 관계자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은 이렇다. 먼저, 한국노바티스는 의학전문지 다섯 곳에 5년 동안 181억원 어치의 광고를 게재했다. 의학전문지들은 한국노바티스로부터 받은 광고비로 노바티스의 제품과 관련된 학술좌담회, 심포지엄, 지상강좌(전문가가 특정 약의 효과, 질병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를 지면으로 소개하는 것) 등을 개최하면서 한국노바티스가 정한 ‘키 닥터(key doctor)’들을 발표자, 좌장 등으로 초정하고 이들에게 30만~50만원의 참가비를 지급했다.

한국노바티스가 선정한 의사들을 의학전문지의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이들에게 외국 논문의 번역을 맡기거나 기고를 요청하는 방법으로 1인당 50만~100만원의 비용을 자문료, 원고료 등으로 지급했다. 한국노바티스와 연결된 의학전문지들은 키 닥터들을 객원기자로 위촉해 해외학회 취재비 명목으로 1인당 400만~700만원의 참가경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좌담회, 심포지엄, 지상강좌 등은 의학전문지가 독자인 의사나 약사들에게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개최하는 학술행사로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노바티스는 이를 악용해 특정 키 닥터가 반복적으로 행사에 참여하게 한 것이다. 한 좌담회에서는 특정 의사 몇 명이 사회자, 발표자, 참석자 등을 번갈아가면서 맡으면서 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으로라도 때우자 ‘감성영업’

지난 6월 매출액 850억원 규모인 유영제약이 45억원 상당의 금품을 리베이트로 건넨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유영제약의 리베이트에는 임직원 161명, 의사 292명, 병원 사무장 38명이 연루됐다. 유영제약은 단순히 현금, 상품권, 골프채 등 금품만 제공한 게 아니었다.

유영제약 영업사원들은 의사 자녀들의 등하굣길 기사노릇을 하거나, 간식으로 빵을 사다 나르거나, 휴대전화를 대신 개통 주거나, 병원 컴퓨터를 고쳐다 주는 등 속칭 ‘감성영업’을 펼쳤다. 이런 감성영업은 비단 유영제약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약업계 전체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 제약회사 영업 담당자는 “새벽 1시에 ‘비가 온다’며 우산을 가지고 술집으로 데리러 오라는 의사도 있었다”며 “그 시간에 수 많은 경쟁자들 대신 나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냐”며 “약은 팔아야 하고 예전처럼 회사가 ‘총알’을 두둑하게 지원하는 것도 아니니 몸으로 때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개원의는 “어차피 약 처방해준다고 제약사에서 금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라도 생색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생존 경쟁…‘깨끗하게’ ‘어떻게든’ 팔라고 하니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신약개발 대신 복제약 판매에 의존하는 국내 제약사들의 태생적인 한계’로 인한 극심한 경쟁 탓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 수는 2014년 기준 851개다. 여기에 외국계 제약사, 도매유통사 등을 합치면 제약 관련 업체는 2500여 곳이나 된다. 이들이 취급하는 약 종류가 2만6000여개에 달한다.

약제비 절감을 위해 효능이 동일한 복제약을 처방할 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대체조제 장려금 지급 대상 품목이 9447개나 된다. 오리지널 약과 효과와 성분이 동일하다는 생동성 실험도 출시를 원하는 회사들이 비용을 갹출하면 비용을 댄 모든 회사가 허가를 받는 ‘공동생동’이기 때문에 과당경쟁이 필연적이다.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성분이 아닌 제품명으로 처방하기 때문에 제약사 입장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사에게 제품명을 각인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류충열 한국의약품도매협회 정책고문은 “약 별로 한 개 제약사만 생산·공급을 한다면 리베이트를 주고 받을 이유가 없다”며 “하지만 극심한 경쟁으로 인해 리베이트가 절대 사라지지 않을 시장 구조”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책으로 대형 제약사들은 ‘걸리면 망한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반면, 중소형 제약사는 대형 제약사들이 위축된 상황을 틈타 더 공격적으로 리베이트를 하고 있다”며 “이들은 ‘리베이트를 안 하고 약이 안 팔려 망하나, 리베이트로 매출 크게 일으키고 적발돼 망하나 어차피 궁지에 몰린 것은 마찬가지’라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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