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통상임금 비정상의 혼돈 상태 극복하려면

  • 등록 2017-08-31 오전 6:00:00

    수정 2017-08-31 오전 6:00:00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장시간근로 해소 등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광폭적인 노동정책으로 기업과 노동현장이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는 이 때, 약 3조원 규모의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으로 대한민국의 노동은 결정타를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단일기업의 소송결과에 좌우되는 금액 규모가 그 정도이니 많든 적든 대부분의 기업들이 통상임금 문제를 안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통상임금 소송 결과에 따라 지급하게 될지도 모르는 전체 규모는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의 주장대로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산입하지 않은 채 법정수당을 적게 지급한 것은 기업들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발생한 체불임금일까? 근로자들은 약속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채 부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한 것일까?

아니면 기업측의 주장대로 통상임금은 기본급과 고정수당 등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본봉으로 국한되어야 하며, 노사가 임금협상을 통해 상여금을 제외하는 것으로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했으면 그대로 따라야 함에도 근로자측이 합의를 위반하여 부당한 이익을 요구하는 것인가?

더 나아가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로인해 근로자들이 특별한 추가이익을 얻고 반대로 기업들은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는 결과가 된다면 근로자들의 추가수당 요구는 노사간의 신의칙을 위반한 것이어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인가?

앞의 문제가 통상임금의 범위에 관한 1차적 쟁점이라면, 뒤의 문제는 통상임금 범위의 확정 후 발생하는 추가수당 지급에 관한 2차적 쟁점이다.

통상임금 분쟁 원인은 비정상적 임금구조

통상임금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 기업들의 비정상적인 임금구성이다. 지난 수십 년간 상당수 기업의 임금구조는 낮은 기본급, 높은 상여금, 복잡한 수당항목으로 구성되어 왔다. 이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높은 임금인상률을 유지해 왔던 우리 기업들이 법정수당 비용의 경감을 위해 그 산정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액을 낮추기 위해 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을 늘리는 대신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편법을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 기업의 상여금 비중은 기형적으로 높게 형성되었다. 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에 정기상여금과 일부 수당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둘러싸고 관련 법령의 불명확성, 일관성 없는 법원의 판결, 현장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정부의 통상임금 산정 지침 그리고 이기적인 노동조합의 태도 등도 비정상적인 통상임금 전쟁에 한몫 거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지난 2013년 12월 18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기상여금과 일부 수당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에 관한 긴 논란을 정리한 것은 우리 기업들의 불합리한 임금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였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정기상여금을 소정 근로의 대가로서 기본급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임금으로 인정하되, 고정성이 없는 경우에만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동안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되었던 정기상여금이 고정성이 인정되면 통상임금에 포함되기 때문에 할증임금의 증가로 전체 임금액도 인상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급조건에 따라 달리 판단되는 고정성 요건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로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정기상여금이라도 지급조건의 일부가 다르다고 해서 통상임금 산입여부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법정수당액의 규모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근로자들로서는 쉽게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분쟁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상여금을 포함하여 통상임금액을 재산정한 결과 과거 법정수당이 현저히 적게 지급하였고, 그에 따라 근로자들은 법정수당의 추가분을 요구한 것이다. 상여금의 비중이 클수록 추가지급해야 할 수당의 금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대법원은 근로자 측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기존 노사 합의를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추가 수당 지급을 소급해서 요구할 경우 그 금액의 과다로 인해 기업에 발생하게 될 심대한 타격을 막기 위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의 법리를 도입하였다.

신의칙 법리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 간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고, 만약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추가수당을 지급하게 된다면 실질 임금 인상률이 통상적인 임금인상률을 훨씬 상회하게 되어 근로자는 예상외의 이익을 얻게 되며, 추가수당의 소급지급으로 인해 기업에게 예상하기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에는 추가수당의 지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 ‘신의칙’ 고육책에도 혼락 지속

이와 같이 대법원이 신의칙이라는 다소 모호한 기준에 따라 추가수당의 지급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것은 통상임금 문제는 기업에게만 그 위반의 책임을 묻기 어려울 정도로 법령과 판례, 정부의 행정 해석, 노사가 함께 만들어 놓은 혼란이라는 점에서 불합리한 임금체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하도록 하기 위한 고육지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대법원의 의도와 달리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통상임금 소송이 끊이지 않고, 최근에는 주로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추가 수당 지급을 둘러싸고 신의칙 적용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1심과 2심이 서로 다르게 선고되는 등 일관성 없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어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경영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한국 기업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법원은 신의칙 적용 기준인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의 판단 요소로 초과근로의 상시성, 정기상여금 비율, 추가 지급에 따른 실질임금 인상률 등을 고려하였다. 즉, 정기상여금 비율이 높고 고액의 초과근로수당이 지급되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신의칙을 인정하여 추가 수당 청구가 인정되지 않을 소지가 높다.

그러나 하급심 중에는 대법원 취지와 달리 추가 수당이 인건비에서 차지하는 비중, 현금성 자산, 이익잉여금, 주주 배당금과 같이 신의칙 인정을 위한 구체적 기준을 설정하기 어려운 모호한 요소들을 추가하거나 소송 및 판결 시점의 기업 영업 현황, 심지어 기업의 규모와 임금 수준 등 객관성이 결여된 요소를 가지고 지급 능력을 판단하는 사례도 나타나곤 했다.

심지어 대규모 영업손실, 워크아웃 상태임에도 신의칙이 부정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기업의 재정 상태를 판단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공통된 기준 없이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사정만으로 신의칙을 판단하는 것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와도 부합하지 않으며 앞으로 판결의 예측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비록 1심이지만 이번 기아자동차 판결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 소송규모도 천문학적인데다 하급심마다 서로 다른 기준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급심도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일관성있게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여부 및 추가수당의 소급 지급에 관한 신의칙 판단 기준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급심에서부터 일관성있는 신의칙 판단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매 사안별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법적 공방의 긴 여정을 걸어야 하고 그로 인한 우리 기업의 불확실성은 어려운 경영난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근로자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대법 확립한 통상임금 기준 법제화해야

그렇지만 매번 소송에만 매달려 노사가 그 결과에 일희일비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소송을 방치하는 것은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수치이다.

통상임금에 관하여 대법원이 확립한 기준을 법제화하여 소모적인 소송을 방지하되,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해서는 노사가 대등한 지위에서 자유롭게 합의하여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임금액이나 구성, 수당 산정을 위한 기준임금의 결정은 당연히 노사의 자율적 판단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을 바탕으로 법률에서 정한 통상임금의 기준은 통상임금에 관한 노사간 합의가 사회통념상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에 한해서만 개입하면 된다.

또한 대법원도 노사 모두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세부적이고 안정적인 신의칙 판단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혼란을 해소하고 통상임금에 관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의칙의 적용이나 그 기준을 법률에 명시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통상임금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해법은 복잡한 임금체계와 임금구성을 합리적이고 명확하게 개선하는 것이다.

기본급의 비중을 늘리고, 상여금은 그 목적에 맞게 대폭 축소하며 복잡한 수당들도 직무의 성격을 반영하여 간소화해야 한다. 그 경우 통상임금을 기본급과 직무수당 등을 중심으로 산정하더라도 불합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궁극적인 답은 합리적이고 현명한 노사에게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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