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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올해 만으로 환갑을 맞은 안호성(60·가명)씨. 마흔부터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데 익숙해졌지만 숫자 ‘6’이 주는 감회가 새롭다. ‘환갑 잔치’가 주변에 다 사라졌고 “60부터 청춘”이라고 외치는 친구도 많지만 숫자 6의 무게감은 왠지 남다르다.
안씨는 연휴 며칠 전 난생 처음으로 서울 구로구에 있는 인력시장을 찾았다. 그는 중소기업을 다니다 막냇딸 결혼 직후 퇴직한 뒤 별다른 소득이 없이 저축을 까먹고 지낸다. 그가 평소 갈 일 없던 인력시장에 간 이유는 ‘손주 세뱃돈’ 때문이다.
인력시장에서는 안씨를 서울 시내 아파트 건설현장으로 보냈다. 건물 내부 페인트칠을 하기 전 내벽에서 튀어나와 있는 전선 등을 잘라 처리하는 단순 업무였다. 처음 해 보는 일이지만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어 앞으로 종종 아르바이트 삼아 해 봐야겠다고 안씨는 생각했다. 사흘 동안 20만원 넘게 벌어 손주 세뱃돈에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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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환갑의 ‘ㅎ’이라도 먼저 말하면 그거 만큼 주책이 없어. 그래도 애들이 어떻게 그냥 넘어가느냐며 마누라랑 유럽여행을 보내준다지 않냐 글쎄.” 성동구에 사 놓은 아파트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며 시작된 친구 A의 자랑은 자식 자랑까지 이어졌다.
아파트값이 올랐다는 것도 부럽지만 자식들이 보내주는 유럽여행이라니. 안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들·딸한테 “A는 자식들이 여행 보내준다더라”고 해 볼까. 당연히 부담을 느끼겠지. 하지만 평생 키워줬는데 그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웃음과 고성이 오가는 술판 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안씨의 쥐띠해 설 마지막 날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