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산사로 가는 길, 온전한 가을을 만나는 길

가을에 걷기 좋은 사찰의 숲 5
  • 등록 2009-10-22 오후 12:20:00

    수정 2009-10-22 오후 12:20:00

▲ 포장되지 않은 흙 길을 여전히 많이 품고 있는 김룡사(경북 문경시)에서 대성암 가는 숲길. /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 대표 제공
[조선일보 제공] 초기불교에서 수행자들을 '아란냐카'라고 했다. '숲 속에 머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숲은 사찰의 배경이 아니라 한 부분이다. 가을에 걷기 좋은 사찰의 숲 다섯 곳을 소개한다.

◆경북 문경 김룡사(金龍寺) 숲길

사람은 본래 비포장용으로 설계되었다. 발바닥 구조부터가 그렇다. 그래서 포장된 길은 조금만 걸어도 몸이 부대낀다. 절로 가는 길은 본래 걸어서 가는 길이었으나, 근래 들어 그런 길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가난한 절에나 가야 그런 길을 만날 수 있다. 문경 김룡사 길이 가난한 길이다.

운달산 김룡사는 예로부터 살림이 넉넉지 못했다. 그래서 절 입구부터 경내까지 이어지는 길과 주차장이 비포장이다. 스님들의 계도가 있었던지, 어쩌다 만나는 차들도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나간다.

들머리―주차장―김룡사―대성암―양진암 구간의 숲길은 그윽하고 호젓하다. 가을이면 화려하게 물드는 참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숲이 좋다. 별자리 이름을 몰라도 별하늘이 아름다운 것처럼, 나무 이름 몰라도 그윽한 숲과 호젓한 숲길은 전혀 낯설지 않다.

숲 속을 걷는 동안, 들고나는 숨소리를 관(觀·깊이 살핌)하고, 내딛는 걸음걸이를 관하고, 귀에 들리는 물소리를 관하면서… 종내는 내 몸이 어떻게 숲과 하나로 어우러지는지를 관한다. 내 몸이 어떻게 나무가 되고, 물소리가 되고, 솔바람이 되는지를 본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410 (054)552-7006

◆경남 고성 옥천사(玉泉寺) 숲길

숲은 거기에 사는 사람을 닮는다. 도시의 숲은 시민을 닮고, 산사의 숲은 스님들을 닮는다. 경남 고성 연화산도 옥천사 스님들을 많이 닮아 있다.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의 하나인 연화산은 신라 화엄불교에서 '화엄십산(華嚴十山)'의 하나로 꼽혔던 바로 그 비슬산이다. 옛날 이 지역은 소가야의 영토로, 신라에 병합되고 나서도 민심이 흉흉하여 의상대사가 옥천사를 지어 나라 잃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 옥천사(경남 고성군) 주변 숲은 늙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만들어내는 단풍이 일품이다. /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 대표 제공

옥천사는 들머리에 사하촌이나 식당 등이 없어서 첫인상이 좋다. 입구에서 옥천사까지 2㎞. 차를 타고 가면 찻길이지만, 걸어서 가면 숲길이다. 물속까지 불타는 저수지 단풍 풍광도 좋거니와 노송과 늙은 활엽수들이 만들어내는 숲길은 선경(仙境) 그대로이다.

일주문―부도전―청련암―옥천사―백련암에 이르는 활엽수 숲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세속의 때를 씻기에 충분하다. 단풍물이 한껏 번져서 눈맛도 좋거니와 휘어져 굽이도는 맛이 예사롭지 않다. 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408 (055)672-0100 www.okcheonsa.or.kr

◆경북 김천 직지사(直指寺) 암자길

붓다는 일생을 숲과 함께했다. 불교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숲과 함께 하는 전통은 변함이 없었다. 절집은 산을 지키는 산막(山幕)이었고, 수행자들은 숲지기에 다름 아니었다.

김천 황악산 직지사는 신라 때 아도화상이 짓고, 조선시대 사명대사가 출가한 절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았을 큰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관광사찰'에 무슨 숲길이 있나 싶지만, 큰절만 벗어나면 암자에서 암자로 이어지는 호젓한 숲길이 이어진다.

황악산은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달리 우아하고 부드러운 산이다. 직지사를 나와 산중으로 들어가면 은선암―중암―백련암―운수암 등의 산속 암자들이 숲길 끝에 숨어 있다. 암자들은 길에서 갈라지는 샛길 끝에 호젓하게 앉아 있다. 더러 포장된 곳도 있으나, 차를 버리면 무슨 상관이랴.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054)436-6174 www.jikjisa.or.kr

◆경기 안성 청룡사(靑龍寺) 숲길

수도승이 술집에 들어가면 그 술집은 사원이 되고, 주정뱅이가 사원에 들어가면 그 사원은 술집이 된다. 이슬람 시인 알 후즈위리의 말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가 자연을 사랑한 만큼만 보여준다. 아름다운 만큼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한 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숲은 보는 대로 보인다.

서울에서 가까운 안성 서운산 청룡사는 고려 때 세운 절이다. 조선 중기에는 억울하게 죽은 영창대군의 넋을 보듬어 안았고, 조선 말에는 갈 곳 없는 남사당패들을 안아주었다. 사적비가 있는 주차장 개울 건너 오른쪽 골짜기가 바로 남사당패들이 숨어 살던 불당골이다. 그 골짜기 숲은 보기에 좋다.

▲ 느티나무와 참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청룡사(경기도 안성시)의 기둥과 대들보는 휘어지고 비뚤어진 게 흔하다. / 조선영상미디어

청룡사의 전각들은 소나무보다 느티나무와 참나무 등 잡나무로 더 많이 지어졌다. 휘어지고 비뚤어진 기둥과 대들보들이 흔하다. 전각은 숲의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숲 속의 건축'이 아니라 '숲의 일부로서의 건축'이다.

청룡사의 숲길은 은적암까지 천천히 걸어서 1시간 거리다. 노령의 산이라 경사도 느리고, 바위길도 없다. 초입에는 젊은 식재림이 많지만, 올라갈수록 자연식생이 대부분이다. 주위로 늘어선 늙은 밤나무들은 예전에 사람들이 밭 갈아 먹고살았음을 말해준다.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28 (031)672-9103 www.buddhahouse.com

◆강원 영월 법흥사(法興寺) 숲길

▲ 옥천사(경남 고성군) 주변 숲은 늙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만들어내는 단풍이 일품이다. /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 대표 제공
예외는 있지만, 어느 절이든 절 뒤로 작은 작은길 하나씩은 몰래 품고 있다. 그 숲길은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의 눈에서 비켜나 있어서 걷기에 좋은 고즈넉한 길이다. 그 옛날 영월 법흥리 사람들이 횡성 안흥장을 보러 넘나들던 법흥사 숲길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법흥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세운 적멸보궁(寂滅寶宮·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의 하나로, 사자산 소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주차장 극락전에서 중대를 지나 적멸보궁에 이르는 숲길은 불자들의 순례길이자 일반인들의 관광길이기도 하다. 주변의 소나무숲은 천연기념물인 까막딱따구리가 깃들 정도로 청정하고 울창하다.

그러나 정말 걷고 싶은 법흥사의 숲길은 주차장에서 계곡 따라 난 길이다.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눈맛 좋게 어우러진 혼합림 숲길이 1㎞ 정도 이어져 있다. 그 이상은 경사가 가팔라 산책길로는 무리이다. 이 숲길은 가끔 스님들이 명상하러 나오기도 하고 주말이면 등산객들도 가끔 찾는다.

이 숲길은 단풍도 좋지만, 계곡을 끼고 있어서 '자연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음이온이 넘친다. 음이온은 알파파를 활성화해 명상을 도와주고 신경안정에 효과가 높다고 알려졌다. 가을 산책길로 그만이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422-1 (033)374-9177 www.bubheung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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