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변죽만 울린 기름값 대책..유류세가 묘하다

  • 등록 2011-10-24 오후 1:56:38

    수정 2011-10-24 오후 1:58:09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기자가 뉴욕에 있었을 때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맨해튼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에 육박했다고 현지 언론이 떠들썩했다. 리터(ℓ)로 환산해보니 1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 당시 환율로 따져 1000원 남짓이었다.

그 즈음 한국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 발언이 정유업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두 나라의 휘발유 가격을 비교해 보니 정말 묘했다. 국제 유가는 동일한데 어떻게 한국의 휘발유 가격은 미국의 2배에 달하는 것일까.

해답은 세금에 있었다. 정부는 휘발유 가격 변동에 상관없이 ℓ당 900.92원을 세금으로 고정 부과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에서 유류 관련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8.3%다. 국민들이 주유소에서 내는 가격의 절반 가량은 정부 몫으로 간다는 의미다. 반면 미국의 유류세는 갤런당 50센트 수준. 리터당 150원 정도로, 기름값의 6분의1 정도다.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9개월이 흘렀다. 그 동안 정부는 휘발유 가격을 낮추기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먼저 주유소들의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했지만 의도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대안주유소 도입과 일본산 석유 제품 수입, 대형마트 주유소 확대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모두 립서비스에 그쳤고 정유사만 압박하는 꼴이 됐다.

기름값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ℓ당 1820원대였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현재 1990원대로 치솟아 있다. 지난주까지 7주 간 쉬지 않고 올라 2000원대를 코앞에 뒀다. 서울 평균 가격은 2000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기름값이 오르면 정유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기준 정유사의 유통비용과 이윤은 휘발유 가격의 2.9%, 주유소의 영업비용과 이윤은 4.2%에 그친다. 국제 유가가 오르는데 기름값을 낮추라고 하는 것은 손해를 보고 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정유사들은 정부 압박에 못 이겨 지난 4월부터 3개월 동안 휘발유 가격을 100원 인하해 팔았다. 이 결과 주요 정유사들의 2분기 영업이익은 반토막났다.

기름값이 내리든 오르든 돈을 버는 쪽은 정부다. 고정된 유류세 덕분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기름값 인하에 가장 효과가 큰 것은 유류세 인하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체 국세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으로 약 15조원에 달하기 때문. 정부 입장에서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물론 비산유국인 우리나라 유류세 비중이 산유국인 미국보다 높은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휘발유값 세금 비중은 60%가 넘는다. 문제는 정부가 물가 안정을 목표로 정유사에 기름값 인하를 강요하는 나라는 드물다는 점이다. 휘발유 가격을 낮추려면 관련 세금부터 내려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묘한 것은 기름값이 아닌 유류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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