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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29일 열린 첫 재판에서 “검사들이 정력적으로 공소사실을 말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근거가 없고 어떤 건 소설·픽션 같은 이야기”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양 전 원장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두고 이같이 밝혔다. 또 “모든 것을 부인하고 그에 앞서서 이 공소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겠다”며 날을 세웠다.
검찰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린 재판에서 양 전 원장 등의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공소사실을 1시간 반 이상 설명했다. 양 전 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 개입 혐의, 법관 부당 사찰 및 인사 불이익 혐의,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및 동향 불법 수집 혐의,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혐의 등 47개 혐의로 지난 2월 구속기소 됐다.
박 전 대법관은 “구체적인 개별 공소사실에 대한 사실관계와 법리적 문제 일체에 대해 다투는 취지”라며 간단히 의견을 말했다.
반면 고 전 대법관은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지냈던 법원의 형사법정에 서고 보니 이루 말씀을 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미어진다”며 운을 뗀 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에 대해 참으로 송구하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무엇보다 저의 가슴을 천근 만근 무겁게 하는 것은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이 사법부에 가지는 신뢰가 전례없이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라면서 “재판을 통해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고 전 대법관은 또 “판사님께서 일방적 시각의 언론보도를 접하며 갖게 됐을지도 모르는 선입견을 걷어낸 상태에서 저의 간절한 말에 귀 기울여 달라”며 “과연 형사법정에 이를 수준으로 권한을 남용해 후배 법관들에게 의무 없는 일들을 시킨 것인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신중하고 냉철한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인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됐다.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 취재진을 비롯한 수십명이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