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초석 닦은 1세대 경영인…구자학 아워홈 회장 영면(종합)

2000년 LG서 독립…작년까지 21년간 아워홈 이끌어
삼성家 이숙희 여사와 결혼해 삼성·LG 양쪽 사장 경험
페리오치약·PBT·램버스D램 혁신 제품·기술개발 주도
자녀들 경영권 다툼 현재 진행형…씁쓸한 마지막 길
  • 등록 2022-05-12 오후 3:57:23

    수정 2022-05-12 오후 9:16:18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요새 길에서 사람들 보면 정말 커요. 얼핏 보면 서양사람 같아요.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래요.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합니다.”(2020년 직원들과 대화에서)

범 LG가 식자재 공급업체 아워홈의 창업자인 구자학 회장이 12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2021년 마곡동 아워홈 사옥에서 딸 구지은(왼쪽) 대표이사와 집무를 보고 있는 구자학 회장.(사진=구지은 대표 페이스북)
구자학 회장은 재벌가에서 드물게 사관학교를 나와 영관 장교로 전역한 군인 출신이며 삼성가와 결혼해 삼성·LG그룹 양쪽에서 경영인을 지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사업보국’을 철학으로 화학·전자·반도체·건설·화장품 등 핵심산업의 초석을 닦았지만 말년에는 자식들의 경영권 다툼을 지켜봐야 했던 만큼 씁쓸함이 남아 있기도 하다.

구자학 회장은 1930년 7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 구자경 LG그룹 2대 회장, 고 구자승 LG상사(현 LX인터내셔널) 사장이 형이다.

일찍이 경영에 뛰어들었던 두 형과 달리 구자학 회장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의 길을 갔다. 6·25 전쟁에 참전한 공로로 1951년 충무무공훈장, 1952·1953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이기도 하다. 1959년 소령으로 예편 후 미국으로 유학해 디파이언스 대학교 상경학과를 졸업했다.

구인회 창업주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혼담을 나누면서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1957년 이병철 회장의 둘째 딸 이숙희씨(고 이건희 회장의 누나)와 백년가약을 맺었고, 미국 유학 후 삼성에서 주로 근무했다. 이병철 회장은 대부분 사위들이 의사, 교수여서 기업가 집안 출신 구 회장을 데릴사위처럼 경영수업을 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1957년 구자학 회장과 이숙희씨의 결혼식. (사진=아워홈)
구 회장은 제일제당과 동양TV 등을 거쳐 호텔신라, 중앙개발(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옛 삼성에버랜드)에서 사장도 지냈다. 삼성이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하자, 금성사(현 LG전자)를 운영하던 LG와 어색한 기류가 형성되면서 구 회장은 친정으로 전격 복귀한다. LG에서는 럭키(현 LG화학), 금성사, 금성일렉트론(현 SK하이닉스), LG건설(현 GS건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일선에서 뛰었다.

그는 “남이 하지 않는 것과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며 ‘최초’를 고집했다. 럭키는 1981년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국민치약’ 페리오치약을 개발했으며 1983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폴리부틸렌테레프탈레이트(PBT)를 만들어 한국 화학산업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다. 현재 LG의 근간이 된 주요사업의 시작과 중심에는 늘 고인이 있었다.

▲지난 1986년 금성사 대표이사 재직 시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공장 준공식 참석. (사진=아워홈)
구 회장은 2000년 LG유통(현 GS리테일) FS(푸드서비스)사업부에서 분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해 20여년간 아워홈을 이끌었다.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는 의아해했다. 구 회장의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기 때문. 하지만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먹는 것 만큼 만드는 것도 좋아해 미국 유학 때는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를 했을 정도다.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하면서 2000년 연매출 2125억원에 불과하던 아워홈을 현재 2조원에 가까운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자식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편할 날이 없었다. 회사 최대주주 장남 구본성 아워홈 명예회장이 지분 매각을 통해 막내딸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부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면서 아워홈은 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갈등의 골이 깊은 장남과 구 부회장을 포함한 세 자매 간의 갈등은 고인의 영면 후에도 계속 이어질 질 것으로 보인다.

와병에 들기 전 아워홈 경영회의에서 구 회장은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어요”라며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구자학 회장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꾸려졌다. 발인은 15일 오전 8시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

▲지난 2009년 아모리스 오픈행사에 참석한 고 구자학 아워홈 회장. (사진=아워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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