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탁상판결' 논란..전기요금 개편 '빨간불'(종합)

법원, "전력대란 방지·저소득 배려용" 한전 주장 인정
당정TF "재판 결과 반영해 10월 공청회, 11월 개편안"
소극적 요금개편 전망..9개 유사 소송에도 영향
소비자 반발 "국민재산권 침해", "적합성 다시 따져야"
  • 등록 2016-10-06 오후 3:28:14

    수정 2016-10-09 오후 3:31:28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법원이 시행 42년 만에 처음으로 누진제의 적법성을 공식 인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소비자 측은 누진제 폭탄 현실에 눈감은 ‘탁상판결’이라며 항소 입장을 밝혔다. 법원이 한국전력(015760)의 손을 들어주면서 요금 개편안을 마련 중인 정부·여당도 누진제나 전기요금 체계를 크게 손보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의 쟁점은 한전의 전기공급 약관이 약관규제법을 위배해 공정성을 잃었는지 여부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약관심사 지침 등에 따르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 조항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무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8단독(정우석 판사)는 6일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주택용 전기요금 약관이 약관규제법상 공정성을 잃을 정도로 무효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 “누진제 적정한도 어긋났는지 판단할 수 없어”

산업통상자원부가 인가한 한전의 ‘전기공급 약관’에 따르면 6개 종별(주택용,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 농사용, 가로등)로 요금이 분류된다. 주택용은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요금이 급증하는 6단계 누진요금제로 구성돼 최저·최고 요금이 11.7배 차이(한전 추산)가 난다. (출처=한전, 오른쪽 건물은 전남 나주 본사)
정 판사는 “한전의 약관은 누진제에 기반하면서도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전기요금을 감액토록 하고 있다”며 “여러 나라에서도 사회적 상황이나 사회 구조 전력 수요에 따라 누진제가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재판부가 한전 주장의 상당 부분을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한전은 현행 누진제가 전력 수요의 조절,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 재화의 적절한 배분 등 전력 공급의 공익성과 수익자부담 원칙의 실현 취지가 있어 누진제가 필요하다고 밝혀왔다. 한전은 국내 주택용 전기요금 수준은 OECD 평균의 약 58%(2014년 기준)에 불과해 오히려 저렴하다고 주장했다. 약관 인가권을 가진 산업부도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력대란, 부자감세가 우려된다고 밝힌 바 있다.

원고 측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판부가 현행 원가, 누진율이 소비자들에게 부당하게 불리한지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판사는 “총괄원가가 얼마이고 어떻게 산정되었는지 알 수 없다”며 “수인한도(受忍限度·피해의 정도에서 참을 수 있는 한도)에 어긋났는지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전은 원가 자료를 법원에 일체 제출하지 않았다.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줬는지 판단도 하지 않고 누진제 합법을 선언했다”는 원고 측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누진제 소송에 참여한 이윤수(36·평택) 씨는 “이번 판결은 어려운 서민을 생각하지 않는 사법부의 탁상판결”이라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어깨를 국가가 나서서 가볍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씨는 올해 아내의 출산 이후 여름철에 에어컨을 자주 틀었다가 9월 청구서에 53만원 요금 폭탄을 맞았다.

논란이 있지만 정부·여당은 이번 판결 결과를 누진제 개편 과정에서 반영할 예정이다. ‘전기요금 당정 TF(태스크포스)’ 공동위원장인 이채익 새누리당 의원은 “한전 국정감사, 재판 결과를 종합적으로 취합해 개편 과정에서 검토할 것”이라며 “최대한 이견을 좁혀 10월 중에 공청회를 열고 내달까지는 개편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관계자도 “당정 TF를 중심으로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확인했다.

소비자 “9건 소송 남아, 1~2명 판사라도 용기냈으면”

(출처=서울중앙지법, 법무법인 인강)
그동안 정부·여당은 누진제 개편 입장을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누진제 개편 수준이나 방법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이 나오면서 누진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한전의 입장이 개편안에 주요하게 반영될 전망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이미 누진제 개편 방안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와 있는데도 그동안 정부는 시간을 끌었다”며 “이번 판결로 앞으로 누진제 개편이 탄력을 받기 어렵거나 신중 모드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전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앞서 조환익 한전 사장은 지난 5일 국정감사에서 “누진제 폐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법무법인 인강의 곽상언 변호사는 “부당하게 징수한 전기요금을 국민에게 반납하고 앞으로는 위법한 누진제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탈하지 말아야 한다”며 “나머지 사건에서 1~2명의 판사라도 용기를 내 (승소) 선고를 해주시면 그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연말까지 나머지 사건 모두 선고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 이외에 서울중앙지법(3건), 서울남부지법(1건), 광주·대전·대구·부산·인천지법(각 1건) 등 한전을 상대로 총 9건의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다. 소송 신청자는 6일 현재까지 2만명에 달한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누진제가 법적으로 합법 판정을 받았더라도 사회적으로 정당한지는 별개 문제”라며 “누진제 판결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누진제의 사회적 정당성, 적합성을 따져 약속한 전기요금 개편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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