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거위 털 뽑기와 공시가격 인상

  • 등록 2019-01-30 오전 4:50:00

    수정 2019-01-30 오전 4:50:00

[이데일리 조철현 부동산전문기자] “세금 걷는 기술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루이 14세 시절 재상 장 바티스트 콜베르가 한 말이다. 거위(납세자)가 소리를 지를 만큼 급격히 세율을 높이거나 세목을 늘려선 안 된다는 경고다. ‘거위털 뽑기’는 오늘날에도 바람직한 조세 원칙으로 통한다.

그런데 정부는 얼마 전 주택 보유자에게 ‘세금 폭탄’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국토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 인상 얘기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 평균 상승률은 9.13%로 지난해 5.51%보다 1.7배 올랐다. 서울은 지난해 7.92%에서 올해 17.75%로 두 배 넘게 뛰었다. 2005년 주택 공시제도 도입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시세 15억원이 넘는 고가 단독주택이 몰려 있는 강남구(35.01%)와 용산(35.4%)·마포구(31.24%)는 30% 이상 올랐다. 가히 ‘역대급’이라 할 만하다. 정부가 시세 반영률이 낮았던 고가 주택 중심으로 공시가격을 현실에 맞게 조정한 결과다.

재산세 등 부동산 세금 책정 기준인 공시가격을 제대로 매기는 것은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상승 폭과 속도다. 아무리 명분이 좋은 정책이라도 정도가 지나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이번 공시가 인상으로 올해 보유세(재산세+종부세) 증가액이 상한선(전년의 50%, 1주택자 기준)까지 치솟는 단독주택이 적지 않다고 한다.

후폭풍이 거세다. 주거 목적으로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마땅한 수입 없이 집 한 채로 버티는 은퇴자의 경우 세금 부담에 살던 집을 처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세금을 내기 위해 빚을 얻거나 살던 집을 팔아야 한다면, 그것은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다.

세금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공시가격이 뛰면 복지 혜택 수급 기준이 되는 재산평가액도 확 늘어난다.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고령자는 건강보험료 인상이나 기초연금 수급 대상 탈락과 같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 속도를 높일 태세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하면서 “집값이 급등했거나 공시가격과 시세 간 격차가 큰 주택의 공시가격을 빠른 속도로 현실화하겠다”고 말했다.

무리하게 털을 뽑았다간 거위가 “꽥! 꽥!”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듯이 급격한 세금 인상은 조세 저항을 부를 수 있다. 게다가 올해 표본 단독주택 공시가격 산정이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 없이 주먹구구로 이뤄졌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지 않는가.

공시가격 조정은 과세 주체가 감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세금은 거위 깃털 뽑듯 해야 한다는 콜베르의 조언처럼 말이다. 이 참에 취득세 등 거래세를 낮추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거래세 비중은 1.6%(2016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0.4%)보다 훨씬 높다. 거래세 인하는 조세 부담을 줄이면서 부동산 거래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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