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접대문화 바꾸다]④접대비 연10조 '펑펑'…선진국은 '법카'사용 깐깐

목소리 커지는 후속조치 요구
사업과 직접관련 없어도 지출 인정
"선진국보다 관대…세법 손봐야"
  • 등록 2016-08-08 오전 6:00:20

    수정 2016-08-08 오전 8:24:57

△이달 초 대전의 한 소고깃집에 미국산 소고기와 술, 식사를 포함한 가격이 2만 9900원인 이른바 ‘김영란 세트메뉴’가 등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다음달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의 접대비 관련 법 규정을 손보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접대비 세금 감면 혜택을 줄이는 등 로비와 접대의 돈줄을 죄 부패 문화 개선의 마중물로 삼자는 주장이다.

작년 법인 접대비 신고액 10조원 육박…역대 최대

△법인 접대비 신고 금액 [단위:억원, 자료:국세청]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법인세를 신고한 법인 59만 1694개의 전체 접대비 신고액은 9조 9685억원(잠정치)이었다. 실질적인 지출은 대부분 2014년에 이뤄진 것으로, 역대 가장 많은 규모다.

기업의 접대비 신고액은 매년 증가세다. 2010년 7조 6658억원에서 2012년 8조 7701억원, 2013년 9조 68억원, 2014년 9조 3368억원으로 꾸준히 불어났다. 적잖은 돈은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 풀렸다. 유흥업소 법인카드 사용액은 2010년 1조 5335억원에서 지난해 1조 1418억원으로 약간 줄긴 했지만, 여전히 1조원을 넘었다.

현행 법인세법상 접대비는 법인이 업무와 관련해 지출한 접대비·교제비·사례금 등을 말한다. 정부는 기업의 접대비 지출을 일정 한도까지 비용으로 인정해 법인세를 깎아준다. 한도는 연간 기본 1200만원(중소기업은 2400만원)에 매출액의 일정 비율(0.03~0.2%)을 합친 금액이다. 매출액이 1000억원(특수관계인 매출 제외)인 기업이라면 8700만원까지 비용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접대비 인정 기준이 외국보다 매우 관대하다는 점이다. 건당 1만원(경조금은 20만원)을 초과하는 접대비는 신용카드 매출전표, 현금영수증, 세금계산서 등만 있다면 비용 처리가 가능하다. 돈을 누구에게, 어떤 목적에서 썼는지 업무 관련성은 세무조사가 없다면 굳이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 한 대기업 회계 담당자는 “회사가 직원이 소위 ‘법카’를 접대가 아닌 개인 용도로 쓰는 걸 알면서도 눈 감는 경우가 많다”며 “월급을 올려주면 퇴직금·4대 보험료 부담도 같이 커지니 대신 이렇게라도 소득을 일정 부분 보전해 주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선진국 접대비 인정 ‘깐깐’…영국은 소득세 물려



외국은 사정이 다르다. 기업 접대비를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엄격한 예외 규정을 둬 관리한다. 예컨대 미국은 사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지출은 비용 처리를 허용하지 않고, 관련 있다면 테스트에 부합할 때만 지출액의 절반을 비용으로 인정한다.

시장 경제의 본산인 영국은 접대비 지출에 세제 혜택을 주기는커녕 이를 임직원 급여로 간주해 오히려 소득세를 물린다. 영국은 2011년 7월부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뇌물방지법’을 도입해 시행 중인데, 이 법은 민간 기업끼리 뇌물을 주고받는 것도 전면 금지한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부패에는 각별히 엄격하다. 일본은 중소기업만 비용을 인정해주고, 독일은 접대비 부담 회사 이름·주소 등이 담긴 계약서, 접대자·접대장소·접대 상대방 내역·접대 목적 등을 포함한 명세서를 갖췄을 때만 지출의 70%까지를 비용 처리할 수 있다.

한때 ‘부패 천국’이라는 오명을 받았던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반부패 캠페인’을 선언한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업무차 중국 방문이 많다는 한 정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1차에서 열 서너 가지 요리를 시켜놓고도 모자라 2·3차 자리를 가는 게 보통이었는데 요즘에는 꿈도 못 꾼다”며 “중국의 관청들이 구내식당을 준 호텔급으로 개조한 다음 외부의 손님을 접대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전했다.

“비용 인정 요건 강화·법 정비 등 필요”

△OECD 회원국(2010년까지 총 30개국, 이후 34개국) 중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 순위 [자료=국제투명성기구(TI)]


전문가들은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접대비 인정 요건 강화, 비용 처리 한도 축소 등 후속조치를 취하자고 제안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법상 법인의 접대비 인정 한도를 현재의 1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낮춰 돈이 나올 원천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내놓은 청탁금지법 관련 정부 용역 보고서에서 “기업의 접대비 부담이 줄면 그만큼 경영 비용 부담이 완화돼 가격 경쟁력이 향상되고 건전한 경쟁 구도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법끼리 충돌하는 규정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성 있는 자로부터 제공받는 금품 수수 한도액을 식사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세법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 한쪽은 한도를 초과하면 받은 금액의 2~5배 과태료를 내도록 처벌 규정을 마련해 놓고, 다른 쪽에서는 접대비를 많이 쓸수록 기업의 세금을 더 깎아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형법상 공직자가 뇌물을 받으면 이를 몰수·추징하거나 세법에 따라 뇌물 받은 사람의 기타소득으로 보고 종합소득세를 물리는 것과 달리, 김영란법이 명시한 ‘금품’은 과태료 부과 외에 법상 명확한 처리 규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라며 “향후 기획재정부 등 과세 당국과 개선이 필요한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편법 우려 커…신중히 대응”

다만 신중히 대응하자는 주장도 있다. 기업 접대비가 자연히 줄게 된 상황에서 자칫 단속 행정력 이상으로 규제를 강화했다가는 편법이 난무하고 납세 의욕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금도 법인이 신고하는 접대비는 한도에 걸려서 비용 인정을 못 받는 금액이 상당하다”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접대비 지출 추가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인식도 이와 유사하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정부가 그간 접대비 인정 한도를 꾸준히 축소해 이미 기업이 한도를 초과해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접대비의 업무 관련성 증빙 강화 등도 편법이 등장할 수 있는 만큼 향후 추이를 지켜보고 제도 개선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내년도 세법개정안에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중소기업의 접대비 한도 특례(기본금액 1800만원→2400만원)를 2018년까지 2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 역시 지금 당장은 제도를 손댈 생각이 없다는 방증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김영란법은 현행 접대비 문화 정비에 매우 효과적인 장치”라며 “권익위가 김영란법 시행령에 기업 상황과 조화할 수 있는 접대비 인정 기준을 담으면 접대비는 자동으로 정비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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