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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업력이 40년이 넘는 한 제조업체는 작년 5월 말 최대주주가 창업자에서 A씨로 바뀌었으나 최대주주가 바뀐 지 한 달도 안 돼 또 다시 최대주주가 A씨에서 비상장회사로 변경되는 주식양수도계약이 체결됐다. 그러나 이 제조업체는 최대주주 변경 관련 주식양수도계약 체결 이후 두 달 여 만에야 이를 공시했다. 이에 따라 공시불이행으로 벌점 8.5점을 받았다. 문제는 주식양수도계약이 파기되면서 공시 번복을 이유로 또 다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단 점이다. 최대주주 변경과 관련해 공시불이행과 공시 번복이 발생함에 따라 두 번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으로 누적 벌점이 1년간 15.5점을 기록, 즉각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현재는 상장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이 된 상태다.
작년 두 차례 이상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코스닥 상장회사의 대부분이 최대주주가 변경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영권이 변경됐던 회사의 일부는 무자본 인수합병(M&A)으로 추정된다. 무자본 M&A 과정에서 회사 경영과 관련된 정보가 즉시에 공시되지 않아 공시 위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평가다.
공시 위반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 주식 거래정지가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투자자 주의가 필요하다. 금융감독원이 올 3월 말부터 무자본 M&A가 의심되는 상장사를 감리 대상으로 선정키로 한 만큼 이에 대한 감독이 강화될 전망이다.
공시 위반 반복 회사 절반은 `최대주주 변경·취소` 때문
특히 작년 두 차례 이상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상장사는 12개로 이들은 모두 28건의 공시를 위반해 거래소로부터 제재금이나 벌점을 받았다. 한 기업이 네 차례나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작년 한 해 최대주주가 변경됐단 공통점이 있다. 12개사 중 한 회사는 상장이 이미 폐지됐고 나머지 11개사 중 10곳이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이중 5개사는 최대주주가 변경되는 주식양수도 계약이 체결됐음에도 이를 공시하지 않거나 해당 계약이 취소되면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금감원·거래소 ‘무자본 M&A’ 감독 강화
거래소 관계자는 “M&A를 통해 실제 기업을 경영할 만한 사람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그 과정에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등을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서 공시 위반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작년 4월부터 불성실공시법인 누적벌점이 1년간 15점을 넘을 경우 즉각 주식 거래 정지 및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지정되다보니 멀쩡하게 거래되던 주식이 공시위원회의 벌점 강도에 따라 하루 아침에 거래가 정지되는 사례가 발생, 투자자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공시 위반이 반복된 12개사 중 2개사는 이미 누적 벌점이 15점을 넘은 상태다.
이에 따라 금감원과 거래소는 무자본 M&A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공시를 통해 무자본 M&A 의심 회사를 색출하고 이들의 작년 사업보고서가 제출되는 3월말 쯤 회계 감리를 실시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무자본 M&A는 횡령·배임뿐 아니라 즉시에 정보가 공시되지 않아 투자자들이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무자본 M&A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올해 기업형 불공정거래 형태를 좀 더 집중 감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