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분식의 정점 찍은 '엔론 사태' 다시보기

미래 예상 이익 부풀려 보너스 가져간 임원들…우리 조선·건설사와 닮아
회계부정 보고 받고 스톡옵션 행사하고 파산 직전에 성과급 잔치…도덕적 해이의 극치
  • 등록 2015-08-22 오전 8:00:01

    수정 2015-08-22 오전 8:00:01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분식회계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을 꼽자면 단연 미국의 ‘엔론 사태’입니다. 엔론의 분식 규모는 13억달러(우리돈 약 1조 5000억원)로 당시 분식을 주도한 경영자 제프 스킬링은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지금도 감옥에 있습니다.

엔론 사태는 여러모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현재를 비춰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경제주체들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가 1조 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와 파산이었으니, 기업의 내부통제와 회계 감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돌아보게 합니다.

엔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에너지기업 SK E&S의 전신 ‘SK 엔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친숙한 이름입니다. 엔론은 1985년 휴스턴 천연가스와 인터노스의 합병으로 탄생했는데 창업 15년 만에 포츈 500대 기업 순위 7위에 오를 정도로 고속 성장을 했습니다.

엔론이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천연가스 유통시장에 금융의 요소를 결합한 것이 한 몫했습니다. 1986년 이후 천연가스 생산에 대한 가격 규제를 해제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들쑥날쑥한 가스값 때문에 골칫거리를 떠안았지요. 이런 배경에서 엔론은 일종의 ‘가스 은행’을 탄생시켰습니다. 가스 생산자가 예금하듯 가스은행에 가스를 적립하고 소비자들은 대출받듯 고정된 가격을 지불하고 가스를 쓴 것이지요.

엔론은 천연가스와 전기 분야에서 이런 방식의 중개 거래를 성공시킨 뒤 수도, 석탄, 광섬유, 날씨 파생상품, 신문용지 등 계속해서 새로운 사업을 벌였습니다. 우리말로 ‘문어발식 경영’에 나선 것이죠.

회계처리 기준도 매우 공격적으로 바꿨습니다. 보유 자산의 가치를 원가가 아니라 시가평가 회계로 인식, 자산가치를 부풀리기 쉽게 바꿨습니다. 가령 미래의 어느 날 미리 정해 진 가격으로 천연가스를 구입하기로 한 선물계약이 있다면, 계약에서 정한 가격을 무시하고 회사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시점의 시가로 평가해 파생상품 거래 손실을 감췄습니다.

엔론은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예상 이익을 미리 계산해 임직원들의 보너스를 챙겨주는 방식의 성과보상기준도 마련했습니다. 가령 새로운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맺으면 그 계약으로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예상 이익을 계산해 이중 일부를 보너스로 지급하도록 한 겁니다. 보너스에 동기 부여된 임직원들이 굶주린 사자처럼 새로운 계약을 사냥하러 다닌 덕분에 회사는 고속 성장을 했지만, 이는 분식회계의 불씨가 됐습니다. 앞으로 들어올 이익은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이익 규모부터 부풀려 놓고 거액의 보너스를 챙겨가기 시작한 겁니다.

조선사나 건설사 등 우리나라의 수주기업들이 공사진행률을 부풀려 매출액을 미리 인식하고, 임원들이 거액 연봉을 받아가는 관행과 비슷합니다. 회계에서의 손익 반영을 왜 최대한 보수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지요.

엔론은 또 은행으로부터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자산을 증권화해 시장에 매각하는 식으로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이른바 자산유동화증권(ABS)의 개념을 도입한 것입니다. 파산 직전에 이르렀을 때 ABS 방식으로 조달한 부채는 20억 달러(2조 4000억원)이 넘었습니다. 이 역시도 우리 금융당국의 감시를 벗어난 상법상의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발행 규모가 114조원까지 급증한 우리 현실과 많이 닮았으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지요.

은행에서 빌리고, ABS를 발행해 빌리고…. 엔론은 이렇게 조달한 돈을 사업에 투자했지만, 대부분 수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통신에서 20억 달러, 수도에서 20억 달러, 브라질 전기·수도 사업에서 20억 달러, 인도 발전소 건설 사업에서 1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주가는 띄워야 했습니다.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주가는 내려선 안 되는 것이었지요. 주가 부양을 위해 분식회계로 이익 규모를 부풀렸고, 주주가치가 희석되는 유상증자 대신 부채로 자금을 조달했던 겁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엔론은 파산보호 신청을 하루 앞두고 500여명의 직원과 11명의 임원에게 적게는 50만 달러(6억원)에서 많게는 500만달러(60억원)에 이르는 특별 상여금을 지급했습니다. 또 최고경영자와 감사, 사외이사들은 회계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은 직후 스톡옵션을 행사하거나 보유 주식을 매각하는 등 심각한 도덕적 해이도 보여줬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언제나 시장의 합리성을 맹신합니다. 엔론 사태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대우그룹 사태, 저축은행 사태 등 시장을 혼란케 한 분식회계 사건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시장에 대한 맹신은 버리지 못합니다. 기업의 분식회계도 따지고 보면 이런 근거없는 맹신이 문제의 근원이 아닌가 생각해 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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