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체호프 희곡에 2NE1 노래' 당황하셨나요?

일본 국공립극장 최연소 예술감독 다다 준노스케(37)
‘갈매기’ 각색한 연극 ‘가모메’
“계속 영향 주고 받는 한·일” ‘겨울연가’ 주제곡 튼 이유
마이크 들고 대사...형식 탐험가
  • 등록 2013-10-07 오전 10:00:09

    수정 2013-10-07 오전 10:00:09

연극 ‘가모메’를 연출한 일본인 다다 준노스케. 한국 문화도 적잖이 접했다는 그는 “1930년대 한·일 역사를 다루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고 말했다(사진=권욱 기자, ukkwon@).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내가 제일 잘 나가.” 비트가 강렬한 그룹 2NE1 노래가 어두운 실내를 때린다. 클럽의 댄스타임이 아니다.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내 스페이스111. 연극 ‘가모메’ 연습 도중 벌어진 일이다. 26일까지 공연될 ‘가모메’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각색한 작품. 배경을 1930년대 일제 치하로 옮겼다. ‘희극의 경전’이라 불리는 체호프의 명작에 뜬금없이 2NE1 노래라니. 보통 도발이 아니다. 아이유 노래 ‘유 앤 아이’까지 나왔다. 공연장 주위를 둘러보니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노트북으로 음향을 조절했다. 오른손에 낀 목(木)반지와 파란색 팔찌가 세련돼 보이는 사내다. 클럽 DJ 같다. 알고 보니 연출자다. 주인공은 다다 준노스케(37).“직접 리믹스한 곡도 있다.” 일본인 연출자는 “음악을 활용하는 걸 좋아한다”며 웃었다.

1930년대의 배경에 최신 가요를 입혔다. 낯선 동거다. 속뜻은 따로 있다. ‘가모메’는 1930년대와 2013년의 한국과 일본을 오간다. 한국 배우 8명과 일본 배우 4명이 무대에 섞여 식민지 지배라는 과거의 역사에서부터 현재 양국의 관계까지 담아낸다. 여기서 음악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품으로 쓰인다. 황해도 연안에서 한국 여배우가 정부인 일본인 소설가에 권총을 겨누며 감정이 격해진 상황. 다다는 여기서 피아노 선율이 감미로운 드라마 ‘겨울연가’의 배경 음악인 ‘처음부터 지금까지’를 튼다.

“극중에 예술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울고 짜는 신파 얘기가 자주 나온다. 이 장르는 일본강점기에 생겨났다. 그렇다고 과거에 끝난 게 아니다. 신파는 지금의 한국 멜로드라마의 주요 소재다. 이는 ‘겨울연가’ 등을 통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흐름이 재미있더라. 음악에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문화도 담긴다. 그래서 ‘겨울연가’를 활용했다.”

늘 도전하는 연출자다. 장르 해체로 정평이 나 있다. 다다는 틀에 박힌 연극에 벗어나 일상에 주목하며 일본 현대극의 기반을 마련한 극단 세이넨단 연출부 출신이다. 2001년에는 ‘희곡의 현존’을 모토로 도쿄 데쓰락이란 극단을 직접 세웠다. 25세 때 일이다. 다다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해 연출자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배우가 상대방의 역까지 번갈아 연기하는 새로운 콘셉트의 작품 ‘세 사람 있어’로 주목 받기도 했다. 덕분에 일본 국공립극장(후지미시민문화회관)의 최연소 예술감독이란 감투까지 썼다.

그렇다고 심각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허를 찌르는 유머가 매력이다. ‘가모메’를 보면 배우가 마이크를 잡고 대사를 한다. 1930년대 설정에서 배우가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기도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재미”라는 답이 먼저 나왔다. “흐름을 깨고 싶었다.” 의외의 설정으로 관객에게 당황이란 즐거움을 주고 싶었단다.

“‘겨울연가’의 노래를 쓴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 노래가 나오면 관객들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런 건 절대 안 쓰겠지’라는 것을 쓰는 걸 좋아한다, 하하하.”

괴짜가 따로 없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3년 전 결혼식도 연극처럼 했다. “대본도 썼다. 무대·미술감독 등도 섭외했다. 공립극장에 결혼식을 했는데 식사하면서 음악 틀고 지시하고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이렇게 자유로운 타다는 K팝 팬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포미닛 현아가 제일 좋다.”

한국과 인연이 깊다. ‘가모메’는 다다가 한국에서 선보인 다섯 번째 작품이다. 2008년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매해 한국과 공동작업해 공연을 선보였다. 특히 극단 제12언어스튜디오의 대표로 있는 성기웅 극작가 겸 연출과 단짝이다. 합작의 매력은 뭘까. “연출로서 서로 성향이 다른 한국과 일본 배우들의 개성을 작품에 녹이는 게 흥미롭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잖나.” 다다는 오는 25일부터 서울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연극 ‘세 사람 있어’란 공연을 새롭게 단장해 선보인다. “비빔밥과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타다는 “한국에 집을 마련할까도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연극 ‘가모메’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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