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의원은 “안종범 수첩에 K뱅크(83)와 카카오뱅크(86), 인터파크·SKT 컨소시엄(64)의 점수가 11월 20일 자로 적혀 있었다”며 사전 내정 의혹을 제기했다.
외부 평가위원 7명의 합숙 심사는 11월 27~29일이었고, 각 컨소시엄이 프리젠테이션(PT)을 한 것은 11월 28일, 점수가 발표된 건 11월 29일이었는데, 안종범 전 수석의 자필메모에 미리 점수가 적혀 있었다는 얘기다. 최종 점수가 카카오뱅크 860.8, K뱅크 831.2, 인터파크·SKT컨소시엄 642.6이었으니, 9일 전에 점수를 콕 찍어 적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의원은 “제 눈을 의심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즉각 설명자료를 내고 △금융·IT(보안)·핀테크·법률·회계·리스크관리·소비자 등 분야별 전문가 7명의 평가위원(위원장 포함)으로 외부 평가위원회를 구성했고 △평가위원들로부터 평가 과정에서 외부 영향은 일절 없었다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수첩 메모의 경위는 알 수 없으며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필요한 경우 어떠한 조사에도 응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점수 지시는 쉽지 않다. 금융위에 따르면 최종 평가점수는 7명의 위원이 각각 부여한 평가점수의 평균으로 산출했는데, 평가항목별 최고점과 최저점은 제외했기 때문이다. 9일 전 평가 점수를 미리 정했다고 해도, 같은 점수로 발표되려면 7명의 평가위원 모두 꼬셔야 가능하다. 당시 금융당국은 각 컨소시엄의 비전과 전략을 발표하는 PT 시간을 바로 전날 알려주고 5명 내외만 입장할 수 있게 하는 등 극도로 보안에 신경 썼는데 이 것도 연극인 셈이 된다.
안 전 수석이 공식 발표된 점수를 예전 날짜에 적었을 가능성은 배제할수 없으나, 진실은 안 씨만이 안다. 박영선 의원은의혹 제기 과정에서 메모를 공개하며 “수첩은 11월 4일부터 11월 21일까지 한 묶음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안 씨가 매일매일 메모를 적지 않고 일정 기간을 묶어 했다면, 11월 29일 발표된 점수를 11월 20일로 게재할 개연성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점수 사전 조작까지는 아니어도 안 전 수석이 인터넷뱅크 심사에 부당하게 관여했을 가능성이다. 당시 인터넷은행 심사에는 금융위나 금감원 공무원들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정부 고위 관료가 몰래 특정 컨소시엄을 지지하거나 반대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다만, 지난해 국감 이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평가자료까지 입수해 훑었지만 비리 증거를 적발하지 못했고, 지난 2월 참여연대가 K뱅크 특혜의혹에 대한 공익감사청구를 했지만 감사원 공익감사청구 자문위원회에서 기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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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떤 게 진실이든지 간에 이번 논란을 그냥 덮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IT기술로 혁신을 추구해 거래 비용을 낮추고 중금리 대출 시장을 활성화하는 인터넷은행과 정권 차원의 특혜는 어울리지 않는다.
K뱅크가 떳떳하더라도 진실과 무관하게 앞으로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은산분리 규정 완화로 KT는 금융위의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통과하면 K뱅크에 추가투자를 해서 통신과 금융업 간 시너지를 높이고 파트너사들과의 제휴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진실 규명 없이 애매 모호한 ‘특혜 은행’이라는 의혹만 따라붙는다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제3의 인터넷은행 심사를 준비하거나 검토하는 인터파크, 네이버, 넥슨, 넷마블 등 IT 기업들도 인터넷은행에 드리운 안종범 수첩 망령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