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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미오와 줄리엣'에 흑인 배우가 나오면 안 될까요?[알쓸공소]
-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다음달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듀크 오브 런던 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연 배우 톰 홀랜드(오른쪽), 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 (사진=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 인스타그램)[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셰익스피어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뜬금없이 이번주 온라인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다음달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듀크 오브 런던 극장에서 공연하는 셰익스피어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둘러싼 논란인데요. 줄리엣 역에 흑인 배우인 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가 캐스팅된 것을 놓고 X(옛 트위터) 등 SNS에서 설전이 오갔습니다. 로미오 역으로는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잘 알려진 톰 홀랜드가 캐스팅됐다고 하네요.궁금해서 이번 논란을 조금 더 살펴봤습니다. 이번 공연은 영국 연출가 제이미 로이드가 이끄는 ‘제이미 로이드 컴퍼니’의 신작입니다. 제이미 로이드는 2020년 연극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로 로렌스 올리비에상 최우수 리바이벌 작품상을 수상했고, 2023년 제시카 차스테인이 출연한 연극 ‘인형의 집’으로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 후보에 오른 연출가입니다. 논란이 이어지자 제이미 로이드 컴퍼니는 입장문을 내고 “인종 차별을 멈춰야 한다”며 “인종 차별 없이 자유롭게 작품을 창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네요.◇공연계에서 활발한 인종·성별 구분 않는 캐스팅2023년 영국 로열 익스체인지 씨어터가 제작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로열 익스체인지 씨어터 홈페이지)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흑인 배우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공연 담당 기자로서는 이번 논란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공연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성별과 인종을 구분하지 않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한국 배우들이 셰익스피어 고전을 연기하니까요.흑인 배우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을 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988년 영국 템바 씨어터 컴퍼니(Temba Theatre Company)가 제작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데이비드 헤어우드가 로미오 역을 맡았습니다. 데이비드 헤어우드는 10년 뒤인 1998년 영국 로열 내셔널 씨어터(RNT)의 셰익스피어 연극 ‘오셀로’ 내한공연으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세계 연극계의 추세가 다국적화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영국에서도 한국인들이 만든 ‘오셀로’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하네요.2013년 브로드웨이에서 제작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콘돌라 라샤드가 줄리엣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올랜도 블룸이 로미오 역으로 출연해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2023년 영국의 로열 익스체인지 씨어터가 제작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미오와 줄리엣 모두 흑인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이케 베넷, 샬리샤 제임스 데이비스가 각각 로미오와 줄리엣 역으로 호흡을 맞췄고요. 연극은 아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해석한 뮤지컬 ‘앤 줄리엣’(& Juliet)도 미리암 틱 리, 로라 커트니 등 흑인 배우들이 줄리엣을 연기했습니다.다음달 국내에서도 흑인 줄리엣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현대무용가 매튜 본의 최신작 ‘로미오와 줄리엣’(5월 8~19일 LG아트센터 서울, 23~26일 부산 드림씨어터)입니다. 팝 가수 카일리 미노그, 제이미 칼럼 등과 작업한 흑인 안무가 겸 무용수 모니크 조나스가 또 다른 무용수 브라이어니 페닝턴, 한나 크레머 등과 함께 줄리엣 역으로 출연합니다. 매튜 본은 이미 남자들만 출연하는 ‘백조의 호수’를 선보인 바 있기에 이번 작품 또한 파격적인 재해석이 기대됩니다.◇‘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하데스타운’도 다국적 캐스팅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사진=LG아트센터)이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인종을 구분하지 않고 캐스팅을 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21~2023년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한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흑인 배우 루시 세인트 루이스가 크리스틴 역으로 출연해 화제가 됐고요. 2022~2023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에서는 브리트니 존슨이 흑인 배우 최초로 ‘하얀 마녀’ 글린다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하데스타운’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그레이스 유를 비롯해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을 연기하고 있습니다.인종·성별을 넘어서는 캐스팅은 공연계에서는 이제 낯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관계자는 “원작을 파격적으로 비트는 작품이라면 인종, 성별과 상관없는 캐스팅을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이라면 원작의 고유성을 지켜주길 바라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심리일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대는 무한한 상상을 현실로 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품은 완성된 결과물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도 예고편만 보고 평가를 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여담이지만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던 시절엔 여자가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은 금지됐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처음 발표했을 때, 줄리엣 역은 남자 배우가 연기했다는 것이죠. 믿기 힘들다고요? 그렇지 않았다면 1999년 제59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연극으로 국내에서 초연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역시 무대에서만 가능한 상상 아닐까요.
- "외국인력 최저임금 아래로 도입? 공적 돌봄 포기하자는 것"
-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국회에서 돌봄 서비스 외국인력 도입 쟁점을 두고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제안한 한국은행 보고서에 대한 각 분야 참석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뉴시스28일 오전 국회에서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 공동주관, 녹색정의당 이자스민 의원,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단 공동주최로 ‘돌봄서비스 외국인력 도입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토론회 인사말서부터 얼마전 공개돼 파장을 일으킨 한국은행 보고서가 거론됐다. 한국노총 유기섭 사무총장은 “돌봄의 사회화를 위한 국가 차원의 비전을 만들어야 함에도 한국은행은 비용절감 방법으로 저임금 노동력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며 “국책기관이 사회 전반의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문제의 한은 보고서는 돌봄 서비스 인력난과 비용부담 완화 방안으로 외국인력 활용과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제안하는 내용으로, 공개 직후 시민사회 단체들의 비판이 쇄도한 바 있다.민주노총 이태환 수석 부위원장 역시 “한국은행 보고서는 돌봄의 가치를 폄훼하고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번 토론회가 한은 보고서의 문제가 폭로되고 의미있는 대안이 논의되는 자리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주제 발제에 나선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돌봄 노동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한은의 외국인력 도입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남 소장은 “경총도 아닌 국책기관이 이런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 이례적”이라며 “(한은 제안이) 돌봄 사회화와 거리가 먼 비공식 부문의 확대”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여당이 모두 돌봄의 국가 책임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그같은 기조에도 역행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남 소장은 특히 현재도 외국인 노동자가 돌봄 분야에 진입이 가능함에도 다른 분야에 비해 외국 인력 진입이 많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돌봄의 가치가 너무 낮아 이주노동자도 쉽게 접근하지 않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남 소장은 “(최저임금 이하로 급여를 줘도) 송출국보다 소득이 높지 않느냐는 식의 접근은 너무 순진한다”고도 말했다.나아가 외국인력 도입이 한국 사회 돌봄 노동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다는 점도 언급됐다. 남 소장은 “(돌봄 노동을) 저비용으로 적당히 때우자는 사회적 인식이 만연해 있다”며 “사회적 돌봄의 의미에 대한 성찰과 숙의, 정책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두 번째 발제에 나선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돌봄 노동 ‘일자리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외국인력 도입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조 연구위원은 “한은 보고서는 외국인력 도입 배경으로 인력 부족, 고비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왜 공급이 부족한지, 왜 일자리의 질이 나쁜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조 연구위원은 돌봄 노동이 일부 공공영역으로 편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민간 위탁에 의존해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현재의 돌봄 노동 시장이 “돌봄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이에 ‘돌봄 서비스 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을 지적하며 공공 주도의 돌봄 서비스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돌봄서비스 일자리의 질을 올리지 않으면 외국인도 오지 않는다”며 “누가 일하는가,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덧붙여 조 연구위원은 한은 보고서가 태국 등 일부 국가의 사례에 기대 최저임금 차등 등의 주장을 하는 데 대해서도 “사례 지역들은 공적 돌봄 체계가 없는 곳이다. 체계가 일부 갖춰진 한국에 이를 도입하자는 건 공적 돌봄을 포기하자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조 연구위원은 지팡이 비유까지 들며 서울시 시범사업을 강행한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서도 “나의 임금을 올려달라는 요구는 많이 들어봤지만, 남의 임금을 깎으라는 요구는 처음”이라며 최저임금 차등 주장의 비현실성도 거듭 지적했다.한은 보고서의 비현실성, 정부 정책 기조와의 불협화음, 반인권적 특성에 대한 비판은 지정토론에서도 계속됐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은 보고서의 첫줄부터 잘못돼 있다”며 보고서가 이용 비율이 극히 적은 민간 입주형 간병, 개인 고용 가사노동 등을 근거로 돌봄 비용의 가계 부담 증대를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양 교수에 따르면 요양 방문형 서비스 제공자의 월 평균 임금(2020년 장기요양통계)은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60%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양 교수는 “이 임금보다 더 낮게 해야 되느냐”고 되물으며 돌봄 노동 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를 촉구했다.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한은 보고서의 등장이 정부의 향후 정책 기조와 연결된 것을 의심하며 더 적극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는 “한국은행 보고서는 현 정부 정책적 흐름의 종합판”이라며 향후 업종,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을 위해 돌봄노동 영역을 시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최 위원장은 “국적별 임금 차등은 인종차별”이라며 “업종, 지역별 임금 차등을 국적으로 가린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이날 토론에 참석한 정부 측 인사들도 이처럼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정부 역시 시험적인 단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이재민 서기관은 “외국인력 도입을 돌봄노동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며 “공공보육 등 공공 영역 돌봄 노력이 병행되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보건복지부 전인수 사무관 역시 “(복지부 입장에서는) 돌봄 서비스의 고도화가 목표”라며 외국 인력 수급이 1차 목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외국인력 도입 등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줘야 복지부 역시 참여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었다.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돌봄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토론 말미에 분출됐다.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에서 일한다는 한 돌봄 노동자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돌봄 노동을 싼값에 쓰려고만 하지 말고 그 가치를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은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올해 지원금이 대폭 삭감됐고 서울시 의회에서는 국민의힘이 폐지 조례안까지 발의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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