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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중심 미술사, 여성 누드화가 많죠
  • [책]남성중심 미술사, 여성 누드화가 많죠
  •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미술관을 가면 왜 여성의 누드를 그린 그림이 많은 걸까. 유명한 미술가를 물으면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처럼 남성 미술가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여성 미술가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신화와 종교 이야기를 그린 미술 작품에서 여성은 왜 남성을 파멸시키는 존재로 그려지는지, 남성 노인은 기품 있게 묘사하면서 늙은 여성은 추악하게 그렸는지 궁금증은 계속된다.‘불편한 시선’은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지만 여성의 눈으로 보면 거북할 수 있는 미술을 이야기한다. 대전시립미술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청주시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학예실장을 지냈고 현재 수원대 미술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가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미술에 대한 의문을 ‘의문·시선·누드·악녀·혐오·허영·모성·소녀·노화·위반’이라는 10개의 키워드로 압축해 선보인다.저자에 따르면 미술 작품 중 여성 누드가 많은 이유는 역사 속에서 미술품 시장이 남성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다비드상처럼 남성 누드상도 없지는 않지만, 남성의 경우 누드도 당당한 모습으로 제작된 반면 여성의 누드는 옷을 일부 걸친 채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시선의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저자는 미술에서 여성을 팜파탈 또는 성녀로 묘사한 점, 임신과 출산은 그림의 소재로 다루지 않은 이유 또한 남성 중심적 시선 때문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근거를 제시한다.누군가는 고전을 굳이 불편한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서문을 통해 “나는 오히려 삶을 냉소하기 보다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답한다. 때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과감한 질문으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함을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2022.07.13 I 장병호 기자
'평범한 수집가의 특별한 초대'
  • '평범한 수집가의 특별한 초대'
  • [이데일리 류성 기자] “삼층찬탁엔 ‘비움’과 ‘채움’이 공존하며 놓여 있는 물건들은 ‘옛것’이되 ‘오늘’을 빛낸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미술 거리와 박물관 등으로 30여 년 발품을 팔면서 고미술품을 모아온 최필규 한성대 특임교수가 마침내 ‘평범한 수집가의 특별한 초대(나남 출판)’라는 수집가의 책을 펴냈다.저자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고미술을 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머문 것은 우리 옛 물건이었다고 이 책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우리 도자기와 목가구는 화려함보다는 편안함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 오래 볼수록 더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저자가 고미술의 세계에 처음 눈뜬 것은 기자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 해외 출장과 연수를 다닐 때였다. 한국경제신문 홍콩과 베이징 특파원 시절에는 중국 골동품을 수집하며 만난 현지인의 호감을 얻어 중국 관리 등 취재원을 소개받기도 했다. 저자는 고미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진품과 가품을 가릴 줄 몰라 크고 작은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이때 박물관과 인사동, 답십리 고미술 상점에서 만난 상인들과 전문가들은 좋은 스승이 되어 주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안목과 자신만의 수집 철학을 갖추기까지 직접 겪은 흥미로운 경험담을 들려주며 저자는 고미술 세계에 입문하는 길로 독자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우리 고미술 수집가로서 저자의 감상법도 독특하다. 주인에게 몇 번씩 찾아가 떼를 써서 구입한 청자(청자상감 물가풍경 유병)를 가슴에 품고 몇 달 동안 만지고 또 만지고, 보고 또 보기도 한다. 저자는 수집한 소장품을 일상생활에서 옆에 두고 함께 살아가는 실용주의적인 수집가로서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골동품은 그에게 특별한 날에만 박물관까지 찾아가 감상하는 유물이 아니라 연인처럼 매일 보고 싶은, 말 그대로 애장품이다.예컨대 조선백자 술병과 술잔을 챙겨가 좋은 친구와 약주를 나누고, 외국인 손님에게는 고려 다완에 차를 대접한다. 원래 부엌가구인 소나무 삼층찬탁은 거실 한편에 두고 책을 올려 두는데 기둥과 널판이 만나 이루어진 공간들의 절묘한 비례를 매일 보기 위해서다. 고미술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그의 해설은 미술관 도슨트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왜 자신이 소장품을 사랑하는지, 왜 시간 날 때마다 박물관을 찾아가 국보급 작품을 보고 또 보아야 했는지 미학적으로 해설하면서도 고백을 하는 듯하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에 미치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30년 동안 숙성시킨 고미술 사랑을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들려주는 저자의 고미술 해설은 특별하다.저자는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홍콩특파원, 베이징특파원, 국제부장, 산업부장, 부국장 등을 지냈다. 현대그룹 홍보실장을 거쳐 태광실업그룹 부사장 겸 대외협력본부장으로 일했다. 현재 한성대 행정대학원 특임교수로 있다. 언론인, 기업인, 교육인으로 인생행로를 바꾸면서도 늘 우리 고미술을 끼고 살았다. 저서로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30센티 마음 여행》, 《중국을 넘어야 한국이 산다》(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 《한반도 위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한국경제입문》, 《대만이 뛰고 있다》가 있다. 대표집필 도서로 《파워 프로》, 《21세기 21가지 대예측》 등이 있다
2022.07.12 I 류성 기자
박제당한 여인, 박차고 나온 여인<12>
  • 박제당한 여인, 박차고 나온 여인[이수연의 아트버스]<12>
  •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 X의 초상’(1884). 심미주의적 아름다움을 발산한 사전트의 대표작. 파리 최고의 초상화가를 꿈꾸던 그가 화제를 불러일으킬 대상을 물색하던 중 같은 미국인으로 프랑스 은행가의 아내였던, 당대 사교계 최고 미인 버지니 고트로에게 먼저 제안하고 설득해 완성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차례 구성을 변경하고 마침내 고트로의 특징적인 옆모습을 강조하는 자세로 결정했다. 파리 살롱전에 출품해 선정성을 이유로 맹비난을 받을 당시, 드레스 한쪽 어깨끈이 내려가 있던 것을 전시 이후 수정해 다시 그렸다. 캔버스에 유채, 208.6×109.9㎝,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까마득히 오래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린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기원’이란 것을 말입니다. 문자를 대신한 소통이 예술의 목적, 그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예술은, 또 미술은 다른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달고, 휴머니즘을 달고, 상상력을 달았습니다. 20세기쯤 오자 미래를 내다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딛고 서서 인간의 꿈이 도달할 그 너머를 꿈꿨던 겁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NFT에다가 메타버스에까지 닿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시간 현대미술의 진격을 지켜봐온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했던, 예술의 창조적인 경계의 확장을 가져온 미술거장의 삶과 작품 읽기를 통해 예술로 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그 드넓은 ‘아트버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사자가 글 쓰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세상 모든 역사는 사냥꾼의 영웅서사를 쓸 것이다.” 2007년 부커상을 수상한 아프리카 작가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 소설은 오콩코란 주인공의 삶을 통해 부족의 전통문화가 서구제국과 기독교문화와 만났던 상황을 나이지리아인의 시선에서 나이지리아인의 생각을 쓴 반식민주의 작품이다. 아체베는 당대 영문학이 백인이란 타인의 시선에서 아프리카를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설을 썼다. 18세기 산업혁명과 19세기 과학혁명의 길목에서 시대의 흐름을 놓쳤던 비유럽 국가들은 글을 쓰지 못하는 사자와 같이 자신을 표현할 힘과 방법을 잃어버렸고, 오랫동안 아프리카 대륙은 자신의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침묵의 잠에 빠져들었다. 아체베 등 아프리카 작가들이 비로소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문명발전 속도 따라잡으려 안간힘 쓰던 여성들근대문화의 발전으로 도태되고 소외된 사자는 비단 아프리카 사람뿐만이 아니다. 힘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문명발전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유럽의 또 다른 사자가 있었으니 ‘여성’이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이 마냥 억압받고 착취를 당했던 것만은 아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성공적으로 사교계에 데뷔하고 결혼한 뒤 아이를 잘 키워내면, 일정한 위치를 점하고 화려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활동한 화가 존 싱어 사전트(1856∼1925)의 ‘마담 X의 초상’(1884)에는 ‘성공한’ 여성이 나온다. 마담 X는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여인이다. 하얀 피부와 늘씬하면서도 모래시계 같은 볼륨있는 몸매로 뭇 남성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공공연히 수많은 연인을 뒀고, 종내에는 부유한 프랑스 은행가와 결혼했다. 그림은 그녀가 결혼한 후에 그려졌다. 당시 촉망받던 젊은 초상화가였던 사전트는 모델의 매력을 발산하는 걸작을 완성했다는 자부심으로 이 초상화를 파리 살롱전에 냈으나 작품은 비평가와 세간의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모델과 작가 모두에게 치명적인 스캔들이 돼버리고 만다. 결국 비난을 견디다 못한 그녀의 시어머니는 전시에서 작품을 내려달라고 작가에게 요구하기도 했다니 말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녀의 아름다움이 파리 사교계에선 동경의 대상이었으나 막상 그 장면을 박제하듯 전시회에 걸자 모든 이들이 그토록 불편해했다는 것이. ◇마담 X, 아름다움은 충족했으나 목소리가 없어‘마담 X의 초상’ 속 여인은 당시 상류사회의 여인들이 추구하던 아름다움의 기준을 충족한다. 희고 창백한 피부, 우아한 목선과 도드라진 이마, 잘록한 허리, 장및빛 뺨과 입술 등. 무엇보다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은 듯한 요염한 자태가 눈에 띈다. 살짝 고개를 돌린 덕분에 목에서 가슴까지 죽 뻗은 선은 검은 드레스와 금빛 어깨끈의 대조 속에 더욱 눈에 띈다. 천박하지 않은, 오히려 고상한 이 섹스 어필은 딱 상류사회 여성이 추구하는 정도의 매력이었을 것이다. 그림의 배경 또한 인물의 우아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두운 벽지를 뒤로 한 채 고급스러운 원목가구에 기대어 선 그녀는 절정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작품에는 뭔가 빠진 것이 있다. 마담 X의 시선이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정확하지 않다. 애초에 시선 설정은 긴 목선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으니 사실 그녀가 어디를 보든 아무 상관은 없다. 그저 젊고 야망에 가득찼던 화가의 시선과 파리 사교계가 사랑하던 아름다움을 향한 기준, 이것이 전부다. 아름다운 갈기와 황금빛 털을 박제당한 사자에게는 목소리가 필요 없다. 박제돼 서서히 잊혀야 할 사자의 초상화가 파리 살롱전에 떠들썩하게 등장했을 때 온 프랑스 문화계가 혹평했던 이유는 혹여라도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낼까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물론 마담 X는 스캔들을 뒤로 한 채 우아한 부인으로만 살다 갔지만 말이다. 반면 마담 X가 등장하기 80여년 전 이미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여인도 있었다. 프랑스 화가 마리 드니즈 빌레르(1774∼1821)는 ‘마리 조세핀 샤를로트 뒤 발 도녜’(1801)란 그림에서 자신의 손으로 펜을 쥐고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리려는 젊은 여성을 담았다. 이 작품의 배경 또한 꽤 고급스럽다. 후대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방은 루브르의 한 갤러리라고 하니, 이 여인의 사회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마리 드니즈 빌레르의 ‘마리 조세핀 샤를로트 뒤 발 도녜’(1801). 여성이 화가로 활동하기 어려웠던 시절, 건축가 지망생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빌레르가 남긴 초상화 중 한 점이다. 200년 남짓 거장 자크 루이 다비드에게 내줬던 화가의 이름은 1996년 되찾았다. 작품에서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보는 이를 응시하는 여인은 샤를로트 뒤 발 도녜(1786~1868). 당시 여성 미술학도들이 아틀리에로 삼았던 루브르의 한 갤러리를 배경으로, 동료이자 같은 학생이던 도녜를 모델로 그렸다는 것도 그때 밝혀졌다. 캔버스에 유채, 161.3×128.6㎝,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그림 속 여인도 마담 X 못지않게 젊고 아름답다. 부드러운 흰색 실크드레스에 분홍색 허리끈을 맨 여인은 전면을 향해 반쯤 몸을 튼 채 한 손은 화판을 잡고 한 손은 펜을 쥐고 있다. 뒤편 창문에서 넘어온 햇살은 고슬고슬하고 앳된 금발과 동그란 얼굴, 하얀 피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여인이 앉은 의자의 등받이는 붉은 천으로 덮여 있는데, 본래 유럽초상화의 유구한 전통에서 붉은 배경은 고귀한 인물을 표현하며, 몽상적이고 지적인 활동을 상징해왔다. 언뜻 전형적인 상류층 여성의 아름다운 초상화 구도와 색감을 차용한 작품은 대상을 수동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뭔가 하고자 노력하는 여인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담았다는 점에서 여타 그림과 차별적이다. ◇빌레르의 초상화, 한때 남성작가 작품으로 오인또 다른 특별한 점은 여인이 드물게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 유럽회화의 전통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초상은 왕이나 귀족, 혹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하지만 이 여인의 진지한 눈빛은 그녀가 현재 지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햇빛에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대조적으로 그늘진 얼굴에서 빛나는 눈동자는 과연 그녀가 무엇을 고민하고 말하려는지 함께 고민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녀는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고 있다. 무엇을 그릴지 결정하는 것은 그녀의 마음이며, 어떻게 그릴지 결정하는 것 또한 그녀의 선택이다. 무엇보다 여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한 그림교육과 어학·문학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배운 것을 넘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자 하는 젊은 작가의 총기 어린 눈빛 앞에 깨진 창 너머로 흘긋 보이는 사랑의 유희나 사교계의 허명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무기력해 보인다. 이 독특하고 강렬한 초상화가 한때 남성작가의 작품으로 오인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본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됐을 때는 18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거장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미술관의 지속적인 연구에 의해 빌레르의 이름이 밝혀지게 되었다. 작가와 모델, 두 여성이 서로를 마주보며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상당히 희귀하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젊은 여성작가들은 새로운 세계를 함께 창조하며 무슨 꿈을 꾸었을까. 실제로 그림 속 주인공은 빌레르와 같은 직업 예술가가 되기를 원했으나 결혼으로 그 꿈을 이루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고 노력하던 그 진지한 모습은 또 다른 여성작가에 의해 그려져 잊히지 않는 그녀만의 목소리가 돼 남았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2022.07.08 I 오현주 기자
베이징, 中 최초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11일부터 적용
  • 베이징, 中 최초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11일부터 적용
  • [베이징=이데일리 신정은 특파원] 중국 수도 베이징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공공장소 백신 의무화 정책을 도입했다. (사진=AFP)7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에 따르면 베이징시는 전날 브리핑에서 “공공장소, 특히 밀폐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은 숨어 있던 감염자가 들어오면 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높아 ‘코로나19 증폭’ 효과를 낼 수 있다”며 “11일부터 백신 미접종자는 인원밀집 장소에 진입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교육기관, 도서관, 박물관, 영화관, 미술관, 문화관, 체육시설, 헬스장, 공연장, PC방 등이 적용 대상이다. 베이징시는 또 장소를 예약하고 가는 곳은 백신 접종 완료 인원을 우선 배정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백신 접종 부적합자는 제외된다고 하나 정확한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밖에 의료진, 거주단지 관리자, 교통·운수 종사자, 인테리어업자, 가사도우미, 택배기사, 음식배달기사, 양로원 입소자, 중요회의 참석자, 베이징 시내 단체여행 참가자는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하거나 부스터샷을 맞아야 한다.사실상 중국만의 ‘백신패스’가 뒤늦게 도입된 셈이다. 그동안 중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같은 국가급 대형 행사 등을 제외하고는 백신 접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는 공공장소 출입시 72시간 내 유전자증폭(PCR) 음성 증명서를 요구해왔다. 베이징은 지난 2일 모바일 ‘헬스키트’(건강 상태를 증명하는 일종의 통행증)를 업그레이드 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여부와 PCR 검사 결과를 한번에 표시하도록 개선했다. ‘제로코로나’를 고집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확산세가 진정되는가 싶으면 다시 늘어나는 추세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상하이 봉쇄가 해제된 후 방역이 느슨해지자 또다시 각 지역에서 확진자가 급증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전날 동부 안후이성에서는 167명(무증상 1281명)의 감염자가 나왔다.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된 이번 재확산은 4일까지 9일만에 이미 1000명을 넘어섰다. 안후이성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현(縣)급 농촌 지역으로 의료 자원이 부족해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또 주변 장쑤성 등 중국의 가장 중요한 광역 경제권인 창장삼각주 일대로 퍼지고 있다.두 달 넘게 봉쇄됐던 상하이에서는 노래방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전날에는 54명(무증상 22명)의 감염자가 확인됐다. 상하이시는 5일 밤 낸 공고에서 이날부터 7일까지 사흘간 징안구, 민항구, 푸둥신구 등 11개구에서 전체 주민을 상대로 두 차례씩 PCR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상하이 전체구는 16개로, 인구가 적은 교외 지역을 뺀 사실상 상하이 전역으로 볼 수 있다.인구 1300만명의 시안시는 전날부터 7일 동안 시 전역에서 임시 통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시내 초·중·고교, 유치원은 예정보다 일찍 방학에 들어가고 대학은 폐쇄 관리된다. 또 음식점은 일주일간 매장 내 식사가 금지되고, 시내 주점은 물론 노래방 등 각종 오락 및 레저·체육시설, 도서관과 박물관,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 등은 일주일간 문을 닫는다.
2022.07.07 I 신정은 기자
미술평론가 김향안 삶 뮤지컬로…'라흐헤스트' 9월 개막
  • 미술평론가 김향안 삶 뮤지컬로…'라흐헤스트' 9월 개막
  •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시인 이상, 김환기 화백의 아내로 잘 알려진 수필가·화가·미술평론가 김향안(1916~2014)의 삶이 뮤지컬로 재탄생한다.뮤지컬 ‘라흐헤스트’ 캐스팅 공개. (사진=홍컴퍼니)공연제작사 홍컴퍼니는 김향안의 삶을 다룬 창작뮤지컬 ‘라흐헤스트’를 오는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공연한다고 4일 밝혔다.‘라흐헤스트’는 김향안이 생전에 남긴 글 중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Les gens partent mais l’art reste)라는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 위태로운 예술가와 열렬히 사랑하고, 쓰고, 그리는 삶을 지나 자신만의 예술을 향해 나아갔건 실존 인물 김향안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인사이드 윌리엄’ 등으로 주목 받은 김한솔 작가가 문혜성, 정혜지 작곡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뮤지컬 ‘사의 찬미’ ‘웨스턴 스토리’ 등에 참여한 김은영 연출가가 창작진으로 참여한다. 2020년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최종 선정작으로 당선됐고, 홍컴퍼니 제작으로 2년의 개발 단계를 거쳐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환기재단·환기미술관이 저작권 후원으로 함께 한다.향안 역에는 배우 이지숙, 제이민, 환기 역에는 배우 박영수, 이준혁, 양지원이 캐스팅됐다. 동림 역은 배우 임찬민, 김주연, 최지혜가 맡고, 시인 이상 역으로는 배우 안지환, 임진섭이 출연한다.티켓 가격 전석 6만 5000원. 7월 중 프리뷰 티켓 오픈 예정이다.
2022.07.04 I 장병호 기자
'빛의 벙커' '빛의 시어터', 대학생 관람객에 20% 할인
  • '빛의 벙커' '빛의 시어터', 대학생 관람객에 20% 할인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몰입형 예술전시 ‘빛의 벙커’와 ‘빛의 시어터’가 여름방학 시즌을 맞아 대학생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오는 8월 31일까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20% 할인된 가격에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관람 당일 매표소에서 대학교 학생증 또는 재학 증명서를 제시하면 된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미술·전시 등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빛의 벙커’와 ‘빛의 시어터’는 전 세계적 사랑을 받는 거장들의 예술작품을 몰입도 높은 전시를 통해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전시다. 음악과 함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옛 대극장의 공간 특수성을 살린 분장실 컨셉의 포토존 ‘그린룸’에서 예쁜 사진도 남길 수 있다. 빛의 벙커 ‘모네, 르누아르…샤갈’전(사진=빛의 벙커).‘빛의 시리즈’는 역사적인 장소를 빛과 음악으로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공간 재생 프로젝트다. 옛 국가기간 통신시설이었던 벙커는 제주 ‘빛의 벙커’로, 50여년간 공연문화계의 상징적 역할을 했던 워커힐 시어터는 ‘빛의 시어터’로 다시 태어났다. ‘빛의 벙커’와 ‘빛의 시어터’는 각각 약 900평, 약 1000평의 대형 공간의 벽면과 바닥을 가득 채우는 고전 명화에 음악이 더해져 작품에 깊이 몰입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빛의 벙커’는 도새재생을 통해 탄생한 국내 최초 몰입형 예술 전시관으로 지난 5월 누적 관람객 150만명을 돌파했다. 9월 12일까지 진행되는 ‘모네, 르누아르…샤갈’전을 통해 모네, 르누아르, 샤갈을 비롯해 피사로, 시냑, 뒤피 등 인상주의부터 모더니즘에 이르는 20명 화가들의 작품 5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지난 5월 서울 광진구 소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내에 개관한 ‘빛의 시어터’는 개관작인 ‘구스타프 클림트, 골드 인 모션’을 통해 ‘키스’ ‘유디트’ ‘생명의 나무’ 등 오스트리아 회화 거장 클림트의 전 생애에 걸친 명작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IKB(International Klein Blue)’로 대표되는 이브 클랭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획전시와 컨템포러리 아트 전시도 함께 상영한다.‘구스타프 클림트, 골드 인 모션’전(사진=빛의 시어터).
2022.07.04 I 이윤정 기자
밝은 어둠, 그것이 인간의 본성<11>
  • 밝은 어둠,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수연의 아트버스]<11>
  • 제임스 앙소르의 ‘음모’(1890). 해학적 가면을 쓰고 익명성에 기대 위선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시대를 풍자한 작품이다. 근대회화에 표현주의란 용어가 생기기도 전 표현주의적인 그림을 그린 선구자로 꼽히는 앙소르는 ‘인간의 숙명’이라 불리는 세상을 냉소와 허무의 눈과 붓으로 풀어놨다. 캔버스에 유채, 90×150㎝ 벨기에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 소장.까마득히 오래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린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기원’이란 것을 말입니다. 문자를 대신한 소통이 예술의 목적, 그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예술은, 또 미술은 다른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달고, 휴머니즘을 달고, 상상력을 달았습니다. 20세기쯤 오자 미래를 내다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딛고 서서 인간의 꿈이 도달할 그 너머를 꿈꿨던 겁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NFT에다가 메타버스에까지 닿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시간 현대미술의 진격을 지켜봐온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했던, 예술의 창조적인 경계의 확장을 가져온 미술거장의 삶과 작품 읽기를 통해 예술로 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그 드넓은 ‘아트버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흔히 우리말로 ‘음모’(1890)라고 번역하는, 벨기에 화가 제임스 앙소르(1860∼1949)가 그린 작품의 원제는 ‘랭트리그’(L’Intrigue), 영어로는 ‘인트리그’(The Intrigue)다. 원어의 의미나 그림에 얽힌 뒷이야기에 비춰봤을 때 그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한국어 작품명 ‘음모’로는 조금 아쉽다. 차라리 ‘호기심’ 혹은 ‘뒷담화’쯤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만큼 작품은 그로테스크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일품인 19세기 말 플랑드르 지역의 걸작이다. 도대체 무슨 호기심과 뒷담화길래 이토록 냉소적인 제목과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작품에는 얼굴에 가면을 쓴 11명이 등장한다. 중앙에 꽃 꽂은 모자를 쓴 여자와 이 여자가 팔짱을 낀 정장모자의 남자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의 눈은 온통 이들 커플에 꽂혀 있다. 심지어 붉은 옷을 입은 유모 품에 안긴 아기조차 턱을 들고 이들 커플을 올려다볼 정도다. 어찌 보면 짙은 화장을 한 듯한, 가면에 칠한 요란한 색과 마스카라 선이 이들의 표정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정장모자 남자의 뒤쪽으로 선 두 사람, 그러니까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 같은 인물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옆의 볼 빨간 인물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정장모자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중이다. 꽃 모자 여자의 뒤로는 특이한 입모양을 가진 두 명의 여인이 서 있는데, 그 입에는 뭔가 말하고 싶은 마음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 맨 앞의 아기 안은 유모는 아예 대놓고 손가락질 중이다. ◇가면, 얼굴 가린 보호구이자 욕망의 포장사실 이들 모두는 막 결혼한 앙소르의 여동생과 그녀의 중국인 아트딜러 남편의 가십을 이야기하지 못해서 안달복달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온 중국인과의 약혼은 오랫동안 벨기에 오스탕드지역에 살던 앙소르 가족의 고향에서 큰 스캔들이 됐고, 가족들은 호기심과 비웃음에 가득 찬 마을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됐다. 앙소르의 가족은 축제용품을 파는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축제에 쓰이는 물품 중 특히 가면은 인파 속에서 얼굴을 가리는 역할이자 동시에 자신의 특징을 드러내는 용도로 쓰였으며, 앙소르는 그림에 바로 그 가면을 차용했던 것이다. 화장과 가면은 익명의 군중에 숨어서 떠들어대고 싶은 마을 사람들의 보호구면서 그 욕망을 극대화해 과장되게 표현한 포장인 셈이다. 앙소르는 사람들의 못된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어두운 주제를 따뜻하고 밝은 색감으로 그려내 괴이함을 더했다. 이처럼 밝은 색감은 19세기 말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 아방가르드였던 프랑스 인상주의 화파를 떠올리게 한다. 앙소르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선구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20인회’(Les XX)를 결성, 당시 인상주의 화가이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오딜롱 르동,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전시를 브뤼셀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적인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색채 실험과 활기찬 도시의 일상을 주로 그렸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앙소르의 작품에서 색채는 불안하고 공포에 찬 감정을 상징한다. 밝고 선명한 색채 뒤에 가려진 인간의 두려움과 위선, 폭력적인 본성을 예견하는 앙소르의 그림은 과학과 산업이 발전하고, 소란스러운 도시가 생겨나던 ‘벨 에포크 시대’(19세기 말부터 1차대전 발발 전까지 ‘아름다운 시절’을 일컫는 말)의 명암을 보여준다. 가면 쓴 인간의 위선을 화려한 색채로 풍자한 또 다른 화가도 있다.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 활동하던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다. 키르히너는 좀더 대담한 붓질과 표현주의 기법으로 20세기 초 변화의 중심에 선 베를린의 불안을 표현했다. 키르히너의 ‘베를린 거리 풍경’(1913)에는 멀리 흘러다니는 군중을 뒷배경으로 삼은 여러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보라색 옷과 푸른 옷을 입고 깃털 달린 모자를 쓴 두 명의 여자는 몸을 팔러 나온 거리의 여인이며, 등을 돌리며 선 잘 차려입은 남자들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 친구들, 또 베를린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성들로 보인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베를린 거리 풍경’(1913). 1913년부터 1915년까지 베를린 거리를 소재로 제작한 12점 중 한 점이다. 광포한 도시, 그 속에서 비틀어지고 우울하기만 한 도시인의 내면을 대담하고 빠른 붓질,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선, 격렬하고 침울한 색채에 담아냈다. 지방 시골마을에서 대도시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 키르히너에게 떨어진 문화적·정서적 충격이 짙게 배어 있다. 캔버스에 유채, 120.6×91.1㎝,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이들은 마치 전체 사진의 일부를 잘라낸 듯한 구도로 공간감 없이 거리에서 마주친 순간으로 묘사됐는데, 화려한 옷차림과 달리 표정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그림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에 따르면, 두 명의 여인 곁에서 흘깃거리는 남자들의 모습이 성적인 욕망을 표현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비웃음과 조소, 자기경멸과 같은 표정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이들의 욕망을 추정할 수 있는 장치는 인물들을 둘러싼 정염의 불꽃과도 같은 핑크색 배경뿐이다. 그나마도 어둠이 삼켜 곧 사라질 테지만. ◇‘아름다운 시절’이라지만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아기쁨이나 슬픔 등의 어떤 감정도, 심지어 성적인 긴장감도 느낄 수 없는 그림 속 인물들의 관계는 스쳐 지나가지만 결코 진심으로 만나지 않는 도시인들의 특징을 그대로 닮았다. 실제로 키르히너는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거리풍경은 1911∼1914년 고민했던 주제이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때였다.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 낮에는 사람과 마차가 가득찬 길을 정처 없이 걸었고, 밤이면 잠 못 든 채 긴 거리를 홀로 배회했다.” 앙소르와 마찬가지로 키르히너도 ‘다리파’란 그룹을 결성해 독일 미술의 전위적인 움직임에 적극 참여했던 인물이다. 다리파는 원초적인 원색과 자연스럽지 않은 형체, 추상에 대한 반감 등을 특징으로, 자유로운 색채표현을 중시했던 프랑스의 야수주의와 닿아 있었다. 키르히너 또한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 당대의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회화스타일을 추구했는데, 그 덕에 그의 스튜디오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삶을 추구하는 젊은 예술가가 모여드는 둥지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분출하는 욕망과 환상을 드러낼 수 있는 기법을 찾아헤맸고, 바로 거기서 독일 표현주의의 전통이 탄생했다. 그 중심에 섰던 키르히너는 생동하는 색채와 형체가 부서지는 ‘베를린 거리 풍경’을 그려냈지만, 막상 그가 표현한 감성은 앙소르 못지않게 어둡고 외로웠던 것이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베를린 거리 풍경’(1913)과 제임스 앙소르의 ‘음모’(1890)의 부분. 대상을 표현한 기법은 다르지만 가면 쓴 인간의 위선이 풍겨내는 냉소·허무·불안 등을 오히려 밝은 색채로 끌어낸 역설적인 방식은 다르지 않다.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1차대전 이전까지의 빛나는 유럽을 살면서 앙소르와 키르히너는 어째서 그토록 비관주의적인 감정에 빠져 있었을까. 1890년대에 앙소르는 깊은 좌절과 싸우며 스튜디오를 팔기까지 했고, 키르히너는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화가의 그림은 100년을 견디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들이 그림에서 말한 위선과 자기경멸, 소외와 외로움이 삶의 본질이자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까. 인간이 비관과 우울의 결말을 향해 가는 길목에는 빠져나갈 다른 샛길은 없는 것일까. 과연 누가 그 답을 자신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토록 쓸쓸한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행복한 그림은 줄 수 없는 또 다른 공감과 위안이 다가서기도 한다는 것, 그 공감과 위안이 냉소적인 오스탕드 사람들이나 냉랭한 베를린 거리의 사람들과 달리 우리 인생의 길목에서 발맞춰주는 동지가 되기도 한다는 것, 그 사실은 분명하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2022.07.01 I 오현주 기자
정소익·박경,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 선정
  • 정소익·박경,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 선정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정소익(49) 도시매개프로젝트 대표와 박경(67) 미국 샌디에이고대학교 교수가 ‘2023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를 총괄할 예술감독에 선정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정소익 대표와 박경 교수를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공동 선임한다고 30일 밝혔다.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한국관이 설립된 1995년 이후 처음으로 공동예술감독 체제로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며 “역량 있는 예술감독 두 사람의 시너지로 한국관 전시를 더 알차고 흥미롭게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정소익(왼쪽) 대표와 박경 교수(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공개모집을 통해 선정한 위원은 건축분야 전문가 7인(김광수 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 건축사사무소커튼홀 공동대표, 김아연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이사,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 신혜원 로컬디자인 대표,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학예연구사, 최춘웅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으로 구성됐다.정소익 예술감독은 연세대에서 건축공학(학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실내건축(석사) 등을 전공했다. 현재 도시매개프로젝트 대표를 비롯해 문화재청 궁능문화재분과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2017년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사무국장, 2020~2021년 아르코 공공예술사업 프로젝트 ‘기후시민3.5’ 협력큐레이터로 참여한 바 있다.박경 예술감독은 미시건대학 건축과를 졸업했다.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제14회 국제건축전 한국관(참여작가), 202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MAK에서 열린 ‘비엔나 비엔날레 포 체인지 2021’의 전시 감독 및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이번 한국관의 전시 주제로 ‘Future Communities in Post-Anthropocene Life : CiViChon 3.0(이하 CiViChon 3.0)’을 선정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팬데믹, 환경 재해, 경제 불평등, 사회·정치적 위기에 대응해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하고자 한다. ‘제3의 삶의 방식, 삶의 형태(The Third Way)’와 미래 공동체를 탐구하고 이를 공간적·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건축분야 전문가 7인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는 “정소익과 박경 팀의 ‘CiViChon 3.0’은 기획의도가 명확했으며 철학과 전시 방법론이 확고했다”며 “공동성과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이 매력적이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한편 국제건축전은 2023년 5월 20일부터 11월 26일까지 약 6개월간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일대에서 개최된다.
2022.06.30 I 이윤정 기자
국보 25억에 사들인 다오…“사기 아닌 블록체인 미래”
  • 국보 25억에 사들인 다오…“사기 아닌 블록체인 미래”
  •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다오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블록체인 미래입니다.”블록체인 투자자문사인 바이야드의 박혜진 대표이사는 28일 서울시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제16회 블록체인 리더스 포럼(주최 한국블록체인학회)에서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자율 조직인 ‘다오’(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블록체인 투자자문사인 바이야드의 박혜진 대표이사는 28일 오전 서울시 중구 달개비에서 박수용 한국블록체인학회장(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제16회 블록체인 리더스 포럼(주최 한국블록체인학회)에서 “다오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강조했다. (사진=최훈길 기자)박 대표는 바이야드를 이끌면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투자자문을 해왔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벤처투자금융 MBA 부주임교수를 맡아, 학생들과 금융투자 연구도 해오고 있다. 대학에서 철학과를 전공했던 박 대표는 블록체인의 가치와 미래를 보고 이 분야 연구·사업에 뛰어들었다. 박 대표는 “투자계약서를 써놓고 납입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투자 철회를 할 정도로 요즘 벤처캐피털 시장이 너무 안 좋다”면서도 “다오의 가치는 상당히 높다”고 진단했다. 이는 다오가 블록체인 기반으로 커뮤니티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참여·신뢰로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판단에서다. 곗돈을 타기 위해 ‘계’를 만드는 과거 모임과 달리 블록체인 기반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이다. 앞서 지난 3월 간송미술문화재단의 국보 ‘금동삼존불감’이 다오를 통해 25억원에 팔렸다. 가상자산 투자자 모임인 헤리티지 다오는 금동삼존불감이 본래 있던 간송미술관에 영구 보존하면서 전시 등에 활용되도록 기탁했다. 소유권의 51% 지분은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박 대표는 “다오를 통해 사회적 비용·불신이 사라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일부 부자들의 수집·재테크용 미술품 구매를 넘어 여러 투자자들의 논의·참여로 기부까지 하는 다오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탈중앙인 다오는 중앙정부에 대한 전쟁 선포가 아니라 개개인들이 부상(浮上)하는 것”이라며 “다오를 통해 ‘어떻게 사람들을 참여하게 만들까’, ‘기여하게 만들까’, ‘개인이 오너십을 가지게 할까’ 등 고민하게 된다”고 전했다. 다만 다오가 법적 근거가 없는 점은 향후 풀어야 할 숙제다. 박 대표는 “한국에서는 다오에 대한 법적 가이드가 없어서, 다오를 통해 돈을 모으는 것에 대한 리스크도 있다”며 “앞으로 법적 테두리가 어떻게 될지가 고민”이라고 전했다. 이어 “미국의 델라웨어주는 법에 따라 운영되는 다오가 있다”며 “미국에서 논의 중인 가상자산 법안 초안에는 다오 사업에 대해 법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면서 향후 논의 향배를 주목했다. 박 대표는 다오를 비롯한 가상자산이 사기·먹튀가 아니라 미래라고 강조했다. 그는 ‘루나·테라 사태 이후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와 여론의 부정적 인식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가상자산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싶은지에 대한 헤게모니·패러다임의 싸움이 시작됐다”며 “앞으로는 부정적 인식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 생태계를 제대로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오의 탈중앙 특성. (자료=박혜진 바이야드 대표)해외에서 여러 종류의 다오가 구성돼 운영되고 있다. (자료=박혜진 바이야드 대표)
2022.06.28 I 최훈길 기자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증시 침체에 외자 유치 역풍 맞은 유니콘
  • [이데일리 송주오 기자] 다음은 27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뉴스다.△1면-증시 침체에 외자 유치 역풍 맞은 유니콘-아파트서 밀려난 서민들 몰려 오피스텔 전세마저 고공행진-4년9개월만에 한미일 정상회담…한일회담은 무산-MZ세대 ‘짠테크’로 플러스 인생 꿈꾼다-[사설]대통령과 부처간 잇단 엇박자, 기강도 조율도 문제다-[사설]시행 직전의 건보류 추가 손질, 재정 건정성 고민해야△종합-[궁즉답]내달 자연면역 감소 4분기 유행 정점올 듯 하위변이 유입 가능성에 치료제 확보 중요-“R온다”…서머스의 예언, 이번에도 맞을까-“학교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최명재 민사고 설립자 별세△‘뜨거운 감자’된 영부인 활동범위-활발한 대외활동은 시대적 흐름…대통령보다 더 주목받는 건 경계해야-질 바이든, 단독 순방외교…기시다 유코, 그림자 내조-남편 재임 중엔 활동 최소화…‘미셸 오바마’ 롤모델 삼아야△종합-“TSMC 따라잡는다”…삼성, 이번주 세계 첫 ‘3나노’ 양산 돌입-4.3vs2.4억…아파트 떠나 오피스텔로 간 이유-추경호 “오늘 전기료 인상 발표 6~8월 물가 6%대 가능성 높아”-대학 총장 60% “고교학점제 도입시 학종 확대해야”△꽉 막힌 IPO, 싸늘해진 글로벌 머니-‘IPO 못하면 최저수익 보장’…투자유치 위해 보장한 옵션이 부메랑으로-‘해외큰손 투자 유치로 계열사 몸집 불린 IPO’ 잘 먹혔던 카카오 전략, 더이상은 안 통하나△정치-與 내홍속 혁신위 오늘 출항…이준석 ‘윤리위 징계 위기’ 정면돌파-여야, 법사위 양보 조건 사개특위 놓고 충돌…원구성 첩첩산중-양향자, 與 주도 ‘반도체 특위’ 위원장 수락-“통합·혁신의 새 판 준비해야” 김민석, 민주당 전대 출마 시사-‘北 피격 공무원’ TF 구성 놓고…여야 동상이몽-北, 5년 만에 반미 집회…대미 강경노선 예고△경제·금융-그냥 쉬고, 포기하고…30대에 고용 호조는 남일-우리카드 인도네시아 할부금융사업 진출-관심 커진 산업안전 분야…국내 최대 행사 열린다-‘최대 3000만원’ 국민취업지원제도, 청년 재산요건 ‘4억→5억’ 완화△글로벌-“낙태 즉각 금지”vs“원정수술 지원”…둘로 갈라진 미국-홍콩 주권 반환 기념식 가는 시진핑 코로나 이후 2년반 만에 본토 벗어나-중국 인민은행 고문 “2분기 GDP 1%대 전망 특별채 발행 고려해야”-G7 “러시아 금 수입 금지”△증권-매수 주체 실종 2300 깨질수도-주가 바닥 모들 추락…시총 톱10 적정주가 괴리율 평균 53%-6월 韓 증시 성적 ‘세계 꼴찌’…코스닥·코스피 ‘하락률 1·2위’-하나금융투자 사명 ‘하나증권’으로 변경△부동산-노원구 백사마을, 원주민아파트 지은 뒤 ‘임대’ 별도 건립-롯데, 도시정비사업 수주 3년 연속 2조원대-침체기 들어섰나…보류지 몸값 낮추고 할인분양도-미분양 공포 확산…비수도권선 ‘마피 거래’ 속출△돈이 보이는 창-알뜰 요금제, 살뜰 단말기 ‘통신비 군살’ 쫙~빠지네△新자린고비 생활-유통기한 임박하고 흠집난 상품 반값에…지구도 지갑도 지킨다-“기름값 한푼이라도 아끼자”…고유가 시대 주유 혜택 카드 인기△안전자산 시대-‘환차익+이자수익’까지…强달러 시대 달러예금 올라타볼까-13년만에 고점 돌파한 달러, 찬바람 불면 하락 가능성…지금은 ‘달러보다 金’△아트테크&-미술시장 나홀로 호황 언제까지…옥석가리기로 버블 붕괴 대비해야-퍼스널 쇼퍼에 명품매장 프리패스…연 2억 이상 쓰면 OK-재테크 성공비결 ‘원화·투자·달러 주머니’△산업-‘미래차 시대’ 내다본 구광모…410조 규모 전기차 충전시장 선점 나선다-중고차 구매 4시간만에 집 앞에 모빌리티도 퀵커머스 경쟁 치열-“전자레인지 돌려도 되는 ‘에코펫 용기’…환경호르몬 걱정 끝”-르노코리아, AS 브랜드 만족도 6년째 1위△ICT-항우연 초봉 ‘꼴찌서 4번째’…젊은 직원 떠난다-LG유플러스 “2050년엔 재생에너지 100%”-마이데이터 활용…대출 금리 부담 확 낮출 것-1인 평균 6계좌 시대…‘증권플러스’ 하나면 정보·거래 OK△중소기업-전 세계서 인정한 특수부품…수풀 비중 70% 눈앞-‘온수매트·청정환기시스템’ 경동나비엔 ‘웰빙지수’ 2관왕-“우리 아기 시원하게”…냉감 기저귀 인기몰이-TYM, 국제종합기계 품고 ‘1조 클럽’ 도전△소비자생활-윌슨 한정판 라켓 사고, 미니 테니스게임 즐기고-쿠팡, 제주에서도 무료배송·반품-습한 장마철…제습기 판매 한주새 270% 급증-CU, 위글위글과 협업…스낵·젤리·디저트 출시△스포츠-‘최연소 국대 출신’ 김민규, 한국오픈 제패-‘또 민지 천하’ 활짝…박민지 시즌 3승 달성-최지만, 9회말 천금같은 ‘볼넷’-김하성, 7경기 연속안타 행진 마감-‘테니스 간판’ 권순우, 윔블던 첫판부터 조코비치 만난다△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임금·근로시간 등 ‘일터 혁신’ 중요성 커져…현장 중심 컨설팅에 최선-“서울은 금융, 부산은 해운업…지역 특성에 맞춘 중장년 일자리센터 운영”△오피니언-[목멱칼럽]尹, 낮은 지지율의 빛과 그림자-[기고]호국의달에 되새기는 소방관의 희생-[기자수첩]보완 필요한 尹 ‘출근길 소통’-[e갤러리]마르셀로 로 기우디체 ‘에덴 프리미베라’△피플-BTS 뷔, ‘지킬 앤 하이드’ 출연했으면 좋겠다-최은석 대표 “여성 차별받지 않는 환경 계속 지원할 것”-이창양 산업장관, 해외서 ‘원전 세일즈’-방탄소년단 ‘챕터2’…제이홉 내달 15일 솔로앨범 발매-KT, 시내버스 기업·스타트업과 자율주행 사업 업무협약-40년간 ‘품바’ 공연 3000번 연극배우 이계준씨 별세-[인사가 만사]-[명복을 빕니다]△사회-청소년들 따라하면 어쩌려고…‘극단적 선택 경험담’ 올리는 유튜버들-檢 중간간부 인사 임박…‘진용 재정비’ 마무리 전망-전쟁기념관 온 아이들 있거나 말거나 6·25에도 이어진 ‘용산 집회’ 눈살-‘물값 적게 낸다’ 상가 수도 끊은 아파트 입주자대표
2022.06.26 I 송주오 기자
'No. 5' 이것은 초상화다<10>
  • 'No. 5' 이것은 초상화다[이수연의 아트버스]<10>
  • 찰스 데무스의 ‘나는 황금의 숫자 5를 보았다’(1928). 절친인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포스터 초상화로 제작한 작품.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고 받은 영감을 옮긴 윌리엄스의 시 ‘위대한 숫자’를 재해석했다. 윌리엄스를 직접 그리는 대신 상징하는 요소를 첨가해 완성했다. 도시풍경을 매끄럽고 정밀한 필치로 그려낸 미국 정밀주의 화파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림 주제를 내용보다 형식적으로 드러낸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추상성이 돋보인다. 마분지에 유화, 90.2×76.2㎝,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까마득히 오래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린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기원’이란 것을 말입니다. 문자를 대신한 소통이 예술의 목적, 그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예술은, 또 미술은 다른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달고, 휴머니즘을 달고, 상상력을 달았습니다. 20세기쯤 오자 미래를 내다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딛고 서서 인간의 꿈이 도달할 그 너머를 꿈꿨던 겁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NFT에다가 메타버스에까지 닿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시간 현대미술의 진격을 지켜봐온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했던, 예술의 창조적인 경계의 확장을 가져온 미술거장의 삶과 작품 읽기를 통해 예술로 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그 드넓은 ‘아트버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가 지은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에는 ‘인생과 우주, 그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만든 슈퍼컴퓨터 ‘깊은 생각’(Deep Thought)이 등장한다. 무려 750만년을 기다린 끝에 모든 외계종족이 환호하는 가운데 반가사유상처럼 턱을 괸 슈퍼컴퓨터 ‘깊은 생각’은 천천히 입을 열어 계산을 완료하고 궁극의 질문에 답을 한다. “뽀틔-투”라고. 42라니. 대체 42란 무엇인가. 어처구니없는 답에 불만을 표시하는 모든 외계종족에게 슈퍼컴퓨터는 오히려 거꾸로 반박한다. “질문의 온전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불완전한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다”고. 애초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무효하다는 뜻일까. 무효한 질문에 맞는 게 무효한 답이란 것일까. 숫자 42의 의미를 찾기 위해 세계 히치하이커 팬들은 온갖 이론을 내놓았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를 오마주했다는 설, 아스키코드의 와일드카드 문자 *를 10진법으로 고친 결과란 설, 이진법으로 변환했을 때 64괘의 마지막 괘가 나와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우주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설 등등. 물론 작가는 어느 설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며 의미 부여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랜덤한 숫자의 답을 찾아 헤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알고 싶지만 ‘깊은 생각’의 반론처럼 그 의미에 올바른 질문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순간에, 온 세상이 답답할 때,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이 아무 의미 없는 숫자나 글귀로 가슴에 콕 박히는 순간이 있다. ‘뽀틔-투’처럼. ◇조각난 평면, 기하학적 도상…뉴욕의 초상화이자 친구의 초상화미국 화가 찰스 데무스(1883∼1935)의 ‘나는 황금의 숫자 5를 보았다’(1928)는 한 시인이 어느 날 밤 뉴욕 거리를 걷다가 발견한 찰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그림이다. 스토리는 이렇다. 데무스의 절친인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1883∼1963)는 화가 마스든 하틀리의 화실을 찾아가던 길에 9번가를 빠르게 지나치는 빨간 소방차와 마주쳤다. 윌리엄스는 순간적으로 지나간 소방차를 황금의 숫자 5번과 움직이는 붉은 평면으로 떠올리며, 이때의 강렬한 기억을 시 ‘위대한 숫자’로 남겼다. 간단히 의역하면 이런 내용이다. “빗줄기와 밝은 빛들 사이에서 나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숫자 5를 봤다. 무심히 서둘러 달리며 경적을 울리는 붉은 소방차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를 남기고 소방차는 어둠에 잠긴 도시를 뚫고 간다.’ 이 시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뉴욕의 밤거리에서 환하게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왔다 사라진 소방차가 남긴 인상을 속도, 소리, 이미지를 섞어 소환한다. 어찌 보면 상징적이고, 어찌 보면 직설적인 이 시를 따라 데무스는 윌리엄스의 포스터 초상화로 이 그림을 그려 헌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작품은 당시 뉴욕을 표현한 시를 그린 뉴욕의 초상화이자 시인의 초상화인 셈이다. 그림에는 주인공인 윌리엄에 관한 힌트가 곳곳에 숨어 있다. 아래쪽에 시인의 이니셜인 W.C.W를 비롯해 위쪽에 잘린 빌(BILL)이란 애칭, 건물 사이에 숨어 있는 카를로스(CARLOS)라는 이름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상화란 설명이 무색하게 그림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황금의 5란 숫자뿐이다. 실제로는 아무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숫자 5는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의미심장한 상징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반복된 숫자의 등장은 그림에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마치 꿈속 장면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숫자를 둘러싼 색면은 채도가 다른 붉은색·오렌지색·노란색과 흑백·회색으로 칼같이 나눠 진짜 포스터 같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돈한 윤곽선과 단조롭게 조각낸 평면으로 미국적인 풍경을 묘사하는 기법을 ‘정밀주의’라고 부른다. 1920년대에 활발히 활동한 정밀주의 화가로는 데무스를 포함해 찰스 실러, 조지아 오키프 등이 있으며, 매끄러운 평면과 정밀한 기하학적 도상으로 입체감이 물씬 풍기는 리얼리즘을 실현하고자 했다. 특히 이들은 공장, 철제다리, 높은 빌딩, 거대한 기계 등 모던한 도시풍경을 즐겨 그렸는데, 나름의 원칙이 있었던 듯하다. “관람자의 눈과 미술가의 작품 사이에 붓터치나 색혼합 같은 ‘그림의 흔적’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고, 완벽한 회화기술만으로 대상을 최대한 명확하게 그려낼 것.” 그런데 풍경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이런 ‘비회화적’ 노력 때문에 엉뚱한 결과가 빚어졌는데, 이들의 작품이 보통의 풍경화가 아니라 기하학적 추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됐다는 것이다. ◇건물·기계를 매끈하고 정밀하게 표현한 1920년대 미국 정밀주의 화가들 데무스가 정밀주의 화풍으로 그린 초기작 중 하나인 ‘새로운 교회의 향’(1921)은 미국에서 새로운 종교가 된 ‘공장’의 풍경을 담고 있다. 뒤쪽 어두운 다리 사이로 보이는 그늘진 도시는 직육면체 굴뚝으로 솟아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뻗어간다. 그나마 사람 시선이 닿는, 앞쪽 가로등이 선 거리는 한 굴뚝에서 빠져나온 공장연기가 자욱하게 덮여 있다. 찰스 데무스의 ‘새로운 교회의 향’(1921). 정밀주의 화풍으로 그린 데무스의 초기작. 급격한 산업화 시대 도시 곳곳에 들어선 공장을 ‘새로운 교회’로, 그 공장이 뿜어내는 굴뚝연기를 ‘향’으로 비유했다. 이후 마천루와 교량, 건물과 기구 등 도시·산업·건축에서 모티프를 딴 미국적 이미지가 미래주의 기계미학을 입고 연달아 작품으로 등장했다. 캔버스에 유화, 미국 샌프란시스코 드영미술관 소장.데무스는 공장을 새로운 ‘교회’라 부르고, 연기를 ‘향’이라 표현하며 산업화하는 도시를 찬양했다. 하지만 현실을 가감 없이 전달하려 했기 때문에, 풍경은 결코 아름답거나 밝지 않다. 작품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도시로 스며들고 있는 굴뚝연기다. 꿈틀거리는 운동감으로 도시의 역동적인 인상을 그대로 전하지만 파충류의 등판같이 울룩불룩한 모양은 황금의 숫자 5처럼 현실을 넘어선 화가의 생생한 감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숫자 5, 굴뚝연기 등은 데무스가 순간의 진실을 바라보기 위해 설치한 장치다. ‘나는 황금의 숫자 5를 보았다’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5는 빠르게 멀어지는 소방차의 뒤꽁무니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우리가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면, 5가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멀어지는 풍경을 담고 있는 붉고 하얀 색면도 마찬가지다. 가로등 불빛, 상점의 쇼윈도 역시 숫자 5의 기능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찰나에 얻어낸 화가의 직관이 시인의 얼굴과 아무 상관 없는 황금의 5라는 숫자를 통해 가장 현실적인 초상화를 그려내게 했다. 마치 그림이 뇌를 거치지 않고 심장에 말을 거는 것처럼. 장미의 향은 장미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사랑의 감정은 사랑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틱낫한 스님은 자각하는 순간 직관이 생기고 직관을 통해 통찰이 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데무스의 그림과 같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그저 삶에서 좀더 자주 황금의 숫자 5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이를 통해 ‘인생과 우주, 그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2022.06.24 I 오현주 기자
와우산 자락서 만난 그날 이후 47년…'미술천재'들의 특별한 나들이
  • 와우산 자락서 만난 그날 이후 47년…'미술천재'들의 특별한 나들이
  • ‘홍대 75전’에 참여한 작가들이 전시를 개막한 21일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에 4년 만에 다시 모였다. 작품 대신 글로 동기들을 격려한 윤진섭(맨 왼쪽부터 시계방향) 평론가를 시작으로 강기욱·김경희·김정수·황찬수·박헌열·정대현·손기환·한진섭·이상권·김동백·최기봉·김정순·황혜련·왕인희·이신명·이경혜·박은서·성순희 작가들이 정겹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느덧 반백 년을 바라본다. ‘붓을 뽑았으면 점이라도 찍겠다’며 덤벼들었던 세월. 그 지난한 시간만큼 이루고 해냈다. 한국미술계의 허리, 바로 중추로서의 역할 말이다. 정확히 47년 전이다. 1975년 홍익대 미술학부로 패기란 깃발 하나씩 들고 모인 학생들. 그해 입학한 새내기 ‘75학번’이었다. 다들 스무살 남짓, 하지만 어리고 여리다고 대충 볼 면면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섰던 사연, 과정이야 제각각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미술천재’란 소리 한 번씩은 들었을 이들이 아닌가. 동양화·서양화·조각 등 순수미술 수업을 같이 들으며 이후 4년을 함께했던 이들 예비작가들은 유독 돈독했단다. 그래도 어쩌겠나. 졸업을 기점으로 섭섭하고 애틋한 마음만 잔뜩 품은 채 뿔뿔이 흩어져 갈 수밖에. 하지만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다. 이들이 휘어잡은 동네가 말이다. 어차피 미술계였으니. 그렇게 ‘따로 또 같이’ 보폭을 넓히던 어느 날 이런 말이 들려왔단다. “우리 한번 뭉쳐보자!” 누가 말을 꺼냈는지는 희미하나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는 선명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75동기전’, 화끈하게 줄여 ‘홍대 75전’이 결성됐으니까. 그렇게 1985년 ‘홍대 75전’ 첫 전시가 열렸다. 75∼80명 동기 중 30여명이 깃발 대신 이번엔 작품 하나씩 안고 모여들었다. 21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아트스페이스선에는 여느 전시장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20여명의 중·장년작가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거다. 맞다. 풍문으로만 들어왔던 그 ‘홍대 75전’이 다시 열린 거다. 회화·조각·설치작품 등 29점을 걸고 세운 전시장에는 예전 그 이름, 그 얼굴, 그 작품이 모였다. 횟수로는 5번째고, 햇수로는 4년 만이다. 첫 전시 이후 1995년 제2회를, 1996년 제3회를, 2018년 제4회 ‘홍대 75전’을 열었더랬다.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에 연 ‘홍대 75전’ 전경. 관람객들이 전시작을 둘러보고 있다. ‘홍대 75전’은 홍익대 미대 75학번들이 결성한 동기전으로 이번이 5회째다. 왼쪽부터 황혜련·이정규·차대영·김준권 작가의 회화작품과 박헌열 작가의 조각작품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번 ‘홍대 75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27명. 강기욱·공미숙·김경희·김동백·김승연·김정수·김정순·김준권·박은서·백낙선·성순희·손기환·심인혜·왕인희·이경혜·이신명·이정규·이희중·정해숙·차대영·황찬수·황혜련 등 22명이 회화작품을, 박헌열·이상권·정대현·최기봉·한진섭 등 5명이 조각·설치작품을 내놨다. ‘진달래 그림’으로 대중에게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김정수 작가가 100호와 60호 규모 ‘진달래 축복’(2022) 2점을, ‘홍대 75전’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정순 작가는 ‘꽃대궐 다시 꽃시절’(2021)을 걸었다. 한국조각가협회 명예이사장인 한진섭 작가는 ‘한마음’(2020)과 ‘행복하여라’(2021) 2점을 세웠다. 지난해 타계한 이정규·이희중 작가의 ‘계곡의 속삭임’(2011)과 ‘진달래꽃’(2001)은 절절한 초대작이다. 이들 외에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작품 대신 ‘스스로에 만족하는 삶을 위하여’란 글로 동기들을 격려했다.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에 연 ‘홍대 75전’ 전경. 전시장 초입에 김정수 작가의 100호 규모 ‘진달래 축복’(2022)과 작품 대신 글을 전시한 윤진섭 평론가의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위하여’가 보인다(사진=이영훈 기자).첫 ‘홍대 75전’ 때 서른 남짓이던 이들은 이제 일흔을 바라본단다. 바래고 흐려진 옛 기억을 더듬어준 건 한 작가다. “참 특별한 학번이었다”고 운을 뗐다. “고집 세고 개성이 남달랐지만 ‘함께’란 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유사한, 홍대 미대 출신 다른 모임이 있지 않을까. 한 작가는 고개부터 내젓는다. “원체 작가란 사람들은 한데 뭉쳐 뭔가를 도모하기가 어려운데, 그 어려운 일을 희한하게도 75학번만 마다하지 않았다”며 웃는다. “1955, 1956년생들이니 하나둘씩 퇴직하고 은퇴한 시점이 아닌가. 이번 전시는 그 의미까지 각별하다.” 그 동기들 중 어느 누구 사연 없는 이가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붓과 망치로 시간을 다져왔을 터다. 그 긴 서사는 전시작들이 대신 말해준다. 산과 물, 길과 담, 나무와 꽃 등으로 관조하듯 더듬어낸 세월의 두께가 두툼하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이어간다.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에 연 ‘홍대 75전’ 전경. ‘홍대 75전’은 홍익대 미대 75학번들이 결성한 동기전으로 이번이 5회째다. 왼쪽부터 강기욱·성순희·이희중·심인혜·정해숙 작가의 회화작품과 이상권 작가의 조각작품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022.06.22 I 오현주 기자
"유화냄새 찐득한 곳에 차분히 붙였다, 올곧은 저 소나무"
  • "유화냄새 찐득한 곳에 차분히 붙였다, 올곧은 저 소나무"
  • 작가 장이규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 개인전에 건 작품 ‘향수’(2022·120×60㎝)와 ‘향수’(2022·120×60㎝) 사이에 섰다. 한여름을 온전히 품은 소나무 풍경들이다. 고도로 집중한 붓질로 빚은 이들 장면은 작가의 상상에서 나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날 선 푸름이라고 해두자. 어느 계절로 가든 어느 장소에 서든 기죽는 법이 없으니까. 가시 잎에 내려앉은 서릿발 같은 퍼런 옷을 하나씩 입고 각자도생 중이지만, 그렇다고 나만 잘난 독야청청만도 아니다. 먼 산과 한몸을 이루기도, 낮은 풀숲에 키를 맞추기도, 안갯속에 눈 둘 데를 잃기도, 높은 하늘을 우러르기도, 수평선 너머를 그리워하기도, 하얀 눈밭이 몹시 시리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사람 사는 모양과 지독하게 닮지 않았나. 소나무, 그것도 내 눈앞의 저 소나무가 말이다. 작가 장이규(68)의 ‘소나무’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으로 돌아왔다. 요란한 치장 없이 ‘장이규 전’이란 타이틀을 걸고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6년 전 바로 여기서 그이는 벗이자 동료인 작가 이원희(66)와 ‘한국 자연의 멋’이란 테마로 2인전을 했더랬다. 2016년 당시 일었던 ‘화끈한 반응’을 생각하면 전시로 돌아오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이다. “학교에서 맡은 보직이 많다 보니, 개인전은 꿈도 못 꿀 지경”이었다는데, 곧이곧대로 믿을 말도 못 된다. 서울 나들이만 자주 못했을 뿐이지 그이의 개인전이 곧 60회를 맞는다는 얘기를 벌써 들었던 터다. 어쨌든 이제 훌훌 털어버렸단다. 2020년 2월 대구 계명대에서 정년퇴임하면서 “대학 예산절감차원에서 겸임할 수밖에 없었다”는 미술대학장직까지 내려놓고 진정한 전업작가로 돌아온 거다. 이번 개인전에는 그 의미까지 기꺼이 보탰을 거다. 장이규의 ‘향수’(2022·60×60㎝). 한여름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운 소나무를 우뚝우뚝 세웠다. 강한 채도와 짙은 명도로만 가른 소나무 군락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녹색 파고드는 연구에 도구로 쓴 소나무 작가는 소나무를 그린다. 좀더 정확하게는 ‘소나무가 든 풍경’이다. 그런데 이게 단순치가 않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소나무 풍경’이라고 만만히 볼 게 아니란 얘기다. 길게 뻗은 몸통이며 솔잎 하나하나에 심은 청명의 기운이 산·들, 강·바다와 한바탕 어울려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하달까. 그렇게 고도로 집중한 붓질이 풍기는 힘 덕에 ‘실제보다 실제 같다’는 감탄을 뱉어낼 수밖에 없지만, 이는 적절치 않다. 그이가 그린 저 풍경이 사실을 묘사한 게 아니라니까. 맞다. 작가의 풍경은 작가의 머릿속 상상을 빼낸 거란다. 과연 이 절절한 자태의 소나무까지? “오랜 기간 녹색을 연구해왔다. 처음부터 소나무만 그리자고 고집한 게 아니다. 녹색연구에 치중하다 보니, 그 방식과 표현에 소나무가 적당한 도구고 적절한 소재가 됐던 거다. 형상보단 색채의 변화에 중점을 두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장이규의 ‘향수’(2022·90.9×72.7㎝). 희끗희끗 눈발이 남아있는 깊은 산세 앞에 줄지운 소나무들이 추위쯤은 아무렇지도 않는다는 듯 눈밭 위에 도도하게 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장이규의 ‘향수’(2022·90.9×72.7㎝)의 부분. 강한 채도와 짙은 명도로만 가른 소나무의 색채감이 선명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하늘이 깨질 듯한 선명한 여름, 눈밭이 한참 펼쳐진 하얀 겨울, 그이의 소나무가 사시사철을 포기하고 왜 굳이 두 계절에만 사는지에 대한 의문도 덕분에 풀렸다. “봄과 가을은 색이 많은 계절이라 잘 그리질 않는다”는 거다. “문인화 정신으로 유화를 그린다. 그래서 가능하면 화려한 색의 표현보다 묵직한 묵화의 느낌을 추구하려 한다.” 그러니 특별한 장소란 게 있을 수도 없다. “이런 구도에선 어떤 배경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장면을 만든단다. 산도 세우고 하늘도 높이고 눈밭도 다지고 바다도 깔고. 그렇다고 실경이 아예 없진 않다. 이번 전시에는 두 점이 나왔다. 거제도를 배경으로 한 ‘향수’(2022·116.8×80.3㎝)와 ‘향수’(2022·60×60㎝)다. 육지에서 내다본 바다가 아닌,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고 만든 작품들에는 강한 채도와 짙은 명도로만 가른 작가의 ‘소나무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그 둘 사이에 오롯이 ‘향수’란 작품명 하나로만 내건 10∼50호 크기의 나머지 28점(2022)이 풍경 속의 풍경처럼 점점이 박혀 있다. 장이규의 ‘향수’(2022·116.8×80.3㎝). 상상의 풍경을 그린 다른 전시작과 달리 실경인 거제도를 배경으로 한 두 점 중 하나다. 흔히 육지에서 내다본 바다가 아닌, 바다에서 바라본 육지를 그렸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그림 잘 그리는 작가’로 일찌감치 싹을 틔웠다. 서른한 살 젊은 작가가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구상부문 대상을 받으며 단번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당시 수상한 작품은 인물화”였단다. 이후 대구미술대전 등을 두루 휩쓴 공모전에서도 단연 인물화가 주를 이뤘고. 정작 그이의 소나무가 탄생한 건, 역설적이게도 그 찬란한 족보를 내려놓으면서다. 그것도 ‘옆 사람이 찔러서’ 말이다. “1992년 개인전을 열면서다. 당시 갤러리 대표가 소나무를 소재·주제로 한번 해보자 했던 게 시작이다.” 사실 운명을 좇자면 더 거스를 수도 있다. 까까머리 학창시절이다. “경주 계림숲에서 수채화를 그릴 때부터라고 할까. 여름 무성한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를 그리는데, 유화가 아니라선지 앞뒤로 선 나무들을 아기자기하기 표현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평생의 숙원작업을 안겨 준 결정적 계기가 된 거다. “얽히고설킨 색의 실타래를 끄집어내기가 힘들어, 그거 한번 해결해보자는 게 목표가 됐다.” 바로 색채연구에 몰입한 것을 두고 하는 소리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 ‘장이규 전’ 전경. 한 관람객이 허리를 굽힌 채 작품 속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누구든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구상으로 ‘대구’ 명맥 잇는 ‘영남학파’ 대표주자로 작가를 말하려면 ‘대구’ 얘기가 빠질 수 없다. 경북 경주에서 나서 대구 계명대로 진학했고 결국 계명대에서 교수로 정년퇴임까지 했으니 그이를 죄기도 풀기도 했던 생활터전이란 점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한국미술계에서 차지한 ‘대구’란 상징. 알려진 대로 대구에서 나고 활동한 ‘대구 작가군’이 범상치 않다. ‘대구의 거장’이라고 칭하는 이인성(1912∼1950), 이쾌대(1913∼1965)를 선두로, 이들의 밭이 돼준 서병오(1862∼1936), 서동진(1900∼1970)을 비롯해 곽인식(1919∼1988), 서세옥(1929∼2020), 박현기(1942∼2000) 등 작고 작가, 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김구림(86), 곽훈(81), 이강소(79), 최병소(79), 김호득(72)에 이르기까지. 그 줄을 ‘장이규’란 이름이 잇고 있는 거다. 그냥 잇는 것만도 아니다. ‘영남화파’라는 튼실한 곁가지를 냈는데, 자연을 배경으로 색과 감성을 얹는 대구 출신 구상작가 그룹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말이다. 작가 장이규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 개인전에 건 작품 ‘향수’(2022) 연작 사이에 섰다. 오른쪽부터 안개를 배경으로 한 ‘향수’(2022·72.7×116.8㎝), 깊은 산세를 뒤로 한 ‘향수’(2022·72.7×116.8㎝), 멀리 바다를 내다보는 ‘향수’(2022·72.7×116.8㎝)가 차례로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녹색을 심화한 청회색으로 색의 진전을 보기도 했단다. 묵화에서 나오는 여백을 안개로 어떻게 더 잘 드러낼까도 고민 중이란다. 어찌 됐든 “유화물감 냄새 찐득한 곳에 차분하게 붙이는 기본에 가장 충실한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세상의 모든 ‘기본’은 모조리 지독하고 빠짐없이 집요한 법이다. “촌놈 그림 같고 의식 없는 단순한 작업을 하는 것처럼 취급받아 외롭기도 했다”는 고백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그 끝에 “작품을 제작하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일 아니냐”며, 보람이 적잖다고 했다. 맞다. 왜 아니겠나. 현실보다 더 지독하게 살아남은 소나무를 저토록 장구하게 세워두지 않았나. 전시는 30일까지.
2022.06.22 I 오현주 기자
영남대학교 청년희망 Y-STAR 사업단, 영천 관내 유관기관과 MOU
  • 영남대학교 청년희망 Y-STAR 사업단, 영천 관내 유관기관과 MOU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영남대학교 청년희망 Y-STAR 사업단(이하 사업단)은 ‘경-북돋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관내 ‘찾아가는 원데이클래스’ 운영을 위한 유관기관과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7일 밝혔다.영천시가족센터 MOU 체결식 (사진=영남대학교 청년희망Y-STAR사업단)경-북돋움 프로젝트는 영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주관으로 2022년 12월까지 새롭게 추진되는 시범 사업이다. 지자체와 대학이 연계해 지역 대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역사회 이해 및 경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청년인구 유입과 정착을 유도하고 지역사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마련됐다.크게 청년 마을 지킴이 운영, 경북형 글로벌 마을 구축, 청년 마을 활력단 육성으로 나뉘어 추진되며, 그중 청년 마을 지킴이 운영은 사업단이 주체가 되어 영천지역을 기반으로 기관별 △찾아가는 일일 강좌 △어르신-청년 교감 콘텐츠 제작 △학생-소·상공인 간 지역 상권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해 청년들에게 지역사회 공헌의 기회를 제공한다.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사업단과 각 기관은 찾아가는 원데이클래스 프로그램 제공에 따른 강사 및 참가자 모집, 지역 내 취약계층 및 위기 청소년에 대한 문화예술 기회 제공 및 활력 제고를 위한 프로그램 운영 등을 공동 추진한다. 사업단은 지난 6월 9일과 13일에 걸쳐 영천시교육지원청(영천시Wee센터) 및 영천시가족센터와의 업무협약을 완료했다.이경수 영남대학교 산학협력단장은 “경북 도내 지역 활력을 위한 주체 간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향후 지·산·학 협력 플랫폼 구축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경-북돋움 프로젝트를 통해 영천 지역민 및 청년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청년들의 재능 기부로 지역 내 선한 영향력 제고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이밖에도 사업단은 6월부터 주 1회 이상 기관 협의를 통해 문화·예술 취약계층을 위한 라탄, 미술, 양말목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기관 방문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사업단에서 조성한 T/H/E GROUND 전시 공간과의 연계를 통한 작품 전시회도 진행할 방침이다.
2022.06.17 I 이윤정 기자
예쁜 예술로부터 100년 독립전쟁<9>
  • 예쁜 예술로부터 100년 독립전쟁[이수연의 아트버스]<9>
  • 오스카 슐레머가 1922년 유화물감과 템페라로 그린 회화 ‘무용수’(몸짓). 공간과 인체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슐레머의 작업을 한눈에 보여준다. 현대 종합예술에서 무대의상이 댄서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데 중점을 둔 반면 슐레머는 오히려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길 바랐다. 불편한 의상 때문에 댄서가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그 불편함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독일 뮌헨 피나코텍미술관 소장.까마득히 오래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린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기원’이란 것을 말입니다. 문자를 대신한 소통이 예술의 목적, 그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예술은, 또 미술은 다른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달고, 휴머니즘을 달고, 상상력을 달았습니다. 20세기쯤 오자 미래를 내다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딛고 서서 인간의 꿈이 도달할 그 너머를 꿈꿨던 겁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NFT에다가 메타버스에까지 닿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시간 현대미술의 진격을 지켜봐온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했던, 예술의 창조적인 경계의 확장을 가져온 미술거장의 삶과 작품 읽기를 통해 예술로 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그 드넓은 ‘아트버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지난 주말 유치원생 조카의 발레공연 ‘백조의 호수’를 보고왔다. 막이 오르고 통통한 햇병아리들이 줄지어 서서 발끝을 들고 등장하자 그 깜찍한 모습에 객석은 탄성으로 가득했고, 공연 내내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아기 무용수들의 작은 키 때문에 동작은 잘 보이지 않았고, 짧은 팔을 흔들어대는 백조의 날갯짓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대를 가득 채운 것은 음악이나 무용의 테크닉이 아니라 ‘귀여움’이라는 분위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발레공연조차 기술 그 자체보다 무용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이 압도할 때가 있다. 가령 공연을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무용수의 의상과 무대장치, 무대미술 등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이다. 현대건축과 디자인, 미술의 요람이라고 불린, 20세기 초 독일 바이마르 예술종합학교 ‘바우하우스’의 작가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이러한 ‘시각·지각의 총체성’이다. 시각·지각의 총체성은 미술과 디자인이 단순히 캔버스 속 회화나 종이의 색깔·무늬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사는 환경 전체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가 설립한 이래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요하네스 이텐 등 세계적인 미술가를 앞세워, 멀티미디어 선구자인 라즐로 모홀리 나지, 건축가 미스 판 데어 로어 등 쟁쟁한 이들이 교수진을 맡아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염직·그래픽·산업디자인·타이포그래피·무대의상·연극·무용 등을 통합해 실험했고, 이를 시각종합체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현대 건축·미술의 요람 바우하우스…총체성에 주목바우하우스에서는 일반적인 예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교육과정을 포함했는데, 신체훈련, 조각적인 안무, 분위기 장치, 무대기술, 총체극장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신체훈련과 조각적인 안무는 인간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해, 사진·영상을 통해 촬영해낸 과학적인 자료들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데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교과목이었다. 장식적이고 예쁜 예술을 넘어서서 스포츠와 무용 등을 통합한 형태라고 할까. 또한 분위기 장치와 무대기술, 총체극장은 색채와 형태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조명과 디자인 등을 이용해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실험했다. 물론 이러한 실험에는 기계·전기·철구조물 같은 20세기 테크놀로지도 등장하지만, 동시에 어린이 장난감이나 알록달록한 놀이기구 같은 장치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바우하우스 교과의 특징을 두고 이텐은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파티가 되고, 파티가 놀이가 된다”는 설명으로 깔끔하게 요약하기도 했다. 바우하우스의 이 같은 파격을 한방에 드러낸 이가 오스카 슐레머(1888∼1943)다. 독일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 연극인이자 안무가로 활약했던 그는 바우하우스의 엠블럼을 제작하기도 했다. 슐레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삼부작 발레’(1922)는 초기 바우하우스가 표방한 인체·환경·디자인·기술·놀이가 결합한 이상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 ‘인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했던 슐레머가 시도한 ‘총체예술’이다. 오스카 슐레머가 제작한 ‘삼부작 발레’(1922)의 한 장면. 나선형의 스커트, 손을 연장한 삼각기둥, 금속성 헤일로 등 독특한 무대의상이 시선을 끈다. 아래는 ‘삼부작 발레’를 재현한 설치작품. 독일 슈투트가르트 슈투트가르트미술관 소장.그런데 처음 이 작품을 보면 누구나 온갖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 요상한 의상과 동작은 무엇이고, 저 특이한 디자인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100년 전 저런 비주얼을 만들어냈다고? ‘연극적 무용’으로 제작한 작품에서 단연 도드라지는 건 무대의상이다. 전혀 다른 색채와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3막의 구성에는 남자 무용수 2명, 여자 무용수 1명이 등장하는데, 무려 12개의 춤과 18벌의 의상을 선보인다. 첫 번째 신 3개는 레몬·노란색 배경 속에 즐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중간의 신 2개는 분홍색 무대에 축제적이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마지막 3개의 신은 검은색의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마치 로봇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은 댄서들은 보편적인 기계로,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변형된다. 다시 말해 각각 원, 삼각형, 사각형, 원뿔, 직육면체, 정육면체로 등장하는 댄서들은 춤과 설치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무대장치인 것이다. 구불구불한 나선형의 어지러운 스커트, 손을 길게 연장한 삼각기둥, 둥글둥글한 구로 이뤄낸 보조물, 여기에 금속성 헤일로까지 더해 댄서들의 움직임은 리드미컬하게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바로 사람의 몸·선·색·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는 바우하우스의 이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인간의 몸, 공간에 대한 연구…새로운 예술로 탄생특히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1912)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쇤베르크가 서양 클래식 음악을 정형적인 12음계에서 해방시켰던 것처럼 슐레머 역시 발레를 오페라와 팬터마임의 역사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새로운 예술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로 슐레머는 ‘인간의 몸동작보다 우월한 기계화한 인형의 몸’과 ‘창조를 향한 갈망’을 꼽았는데,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이 두 요소를 종합해 이처럼 특이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이 작업을 위해 슐레머는 수많은 습작의 과정을 거쳤다. 눈에 띄는 점은 인간의 신체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연구를 함께 진행했다는 점이다. 그의 습작은 면·선·색을 이용해 사물을 단순화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도드라진다. 바둑판처럼 그린 무대 위에 선 기하학적 인간의 몸은 효율적이면서도 괴기스러울 정도로 독특해 보여서 ‘기계화’와 ‘창조성’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실험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20세기 초 추상미술로 다가가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과정과 닮아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근대 세상에서 움직이는 기계와 인간이 가진 힘의 근원을 찾아내 그 정수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오스카 슐레머가 ‘삼부작 발레’를 제작하기 전 습작한 ‘공간 속 인물상’(1922). 회화작품에서 나아간, 마치 기계처럼 도형화·기호화한 공간과 무대의상, 인체의 움직임이 보인다.미술을 넘어서서 시각예술을 통합해 총체예술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슐레머와 바우하우스는 결국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노동당, 나치의 이념과 갈등을 빚었고, 1932년 바우하우스는 폐쇄됐다. 하지만 바우하우스의 이상이 그러하듯 ‘삼부작 발레’의 유산은 동시대 미술에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로 한국작가 양혜규는 ‘상자에 가둔 발레’(2013·2015)란 작품으로 슐레머의 작업을 새롭게 해석해 오마주하기도 했다. 이러한 유산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바우하우스와 슐레머가 보인 태도다. 그들은 시각예술이 가진 총체적인 경험의 힘을 믿었고, 진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관객의 경험을 더 새롭게 하고자 했다. 만일 오늘 건축물을 보거나 공연을 감상하거나, 혹은 어느 전시에서 강렬한 감각에 전율했다면, 바우하우스의 실험에 그 감동을 빚졌다고 할 것이다. ※바우하우스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가 독일 바이마르를 기반으로 설립한 바우하우스는 독일어로 ‘집을 짓는다’는 뜻의 하우스바우(Hausbau)를 뒤집은 것이다.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해 세운 만큼, 건축을 주축으로 삼고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려 했다. 초기에는 공예학교 성격이 강했고 1923년에 이르러서야 예술과 기술의 통일이란 연구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바우하우스만의 독특한 교육방침을 정착시킨 것도 이즈음. 예비과정에서 반년간 기초 조형훈련을 받고 토목·목석·금속·도자기·벽화·글라스그림·직물·인쇄 등 각 공방으로 진급하는 식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뒤늦게 건축공방(1927)이 세워졌는데, 그전까지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종합예술은 오스카 슐레머가 맡은 ‘연극(무대)공방’에서 담당했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2022.06.17 I 오현주 기자
KB국민은행-한국장애인재활협회, KB두드림스타 장학금 전달식 성료
  • KB국민은행-한국장애인재활협회, KB두드림스타 장학금 전달식 성료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한국장애인재활협회는 KB국민은행의 후원으로 지난 11일 ‘세상을 바꾸는 나눔 KB두드림스타 장학금 전달식’을 진행했다고 13일 밝혔다.(사진=한국장애인재활협회)이날 전달식에는 장학생과 장학생 부모, 장학사업 공동수행기관 사례관리자 등 60여 명이 참석해 장학증서 수여와 함께 청소년들의 ‘꿈’을 응원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특히 장학증서 수여 외에도 참석자들의 성장과정과 소감을 공유하는 스토리텔링 발표와 신규 장학생의 플롯 연주까지 더해져 전달식이 더욱 빛났다.신규 장학생으로 선발된 정기훈(가명, 17세/본인청각장애)학생은 “장학생이 되어 자랑스럽고, 제 꿈이 미술작가인데 장학금으로 학원에 다닐 수 있어서 좋다”라며 “꼭 꿈을 이뤄서 장학금을 주고 지지해 주신 모든 분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겠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장애가정 청소년들의 ‘꿈’에 투자하는 KB국민은행은 2009년부터 매년 2억 원의 장학금을 투자하고 있는데 지난해까지 투자받은 청소년은 1139명으로, 13년의 꾸준한 투자를 통해 학업, 예체능, 자격 취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결실을 맺고 있다.KB국민은행 두드림스타 장학금은 장애청소년 또는 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 청소년들이 꿈을 이뤄가는 데 필요한 교육이나 재능과 끼(음악, 미술, 체육 등)의 개발을 위해 KB국민은행이 매달 최대 50만 원씩 지급한다. 특히, 두드림스타 장학금은 일시적이 아닌, 선발부터 대학까지 장학금이 지속 투자된다는 점이다.KB국민은행 관계자는 “장애가정 청소년들의 ‘꿈’을 향한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라며 “KB금융그룹의 미션인 ‘세상을 바꾸는 금융’을 달성하고자 미래세대 육성 및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2022.06.13 I 이윤정 기자
“단순 NFT만 붙이면 '필패'…상징성·역사성·팬덤 확보해야”
  • “단순 NFT만 붙이면 '필패'…상징성·역사성·팬덤 확보해야”
  • 사진=넥슨개발자콘퍼런스2022 화면 캡쳐[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최근 국내 게임사들이 대체불가능토큰(NFT) 또는 P2E(Play to earn·돈 버는) 게임 시장에 너도나도 진출한다고 한다. 단순히 NFT만 붙이는데 그친다면 의미가 없다. NFT 등에 대한 기술적 원리를 잘 이해하고, 어떤 식으로 게임에 붙일 것인지를 더 고민한다면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10일 ‘넥슨개발자콘퍼런스 2022’(이하 NDC22)의 ‘NFT, 게임의 혁명인가 신기루인가’ 세션에서 “눈앞에 다가온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대 또는 ‘웹 3.0’ 시대에서 NFT는 자신이 만든 정보와 데이터에 ‘내것’이란 꼬리표를 붙여줌으로써 웹3.0 시대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카카오뱅크 자문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엔 SBS 예능 ‘집사부일체’ 등에 출연하며 대중적으로도 친숙한 블록체인 및 보안 전문가다. 그는 NFT가 가져야 할 중요한 요소로 상징성과 역사성을 꼽았다. 김 교수는 “과거를 보더라도 미술품 가격이 고가가 되는 건은 작품 자체가 어떤 상징성이나 역사성 가져야한다. 즉, 콘텐츠 자체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라며 “또 미술품을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샀는지, 어떤 유명한 박물관에 있었는지 등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최근 게임사들의 NFT·P2E 시장 진출 행보에 대해 김 교수는 “어떤 상징성이나 역사성이 없이 그냥 NFT만 붙인다고 하는데, 이 경우 해당 회사의 주가 역시 잠깐 올랐다가 바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최초로 NFT 표준 ‘ERC-721’를 적용한 ‘크립토키틀즈’란 게임이 성공을 거둔건, 게임 자체만으론 큰 재미가 없었지만 ‘최초’라는 역사성이 부여되면서 콘텐츠에 힘이 생기고 팬덤이 구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NFT 사업 성공을 위해선 강력한 팬덤이 구축돼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한 예로 최근 ‘나혼자만 레벨업’이란 웹툰의 NFT 판매 행사를 꼽았다. 그는 “인기 웹툰인 ‘나혼자만 레벨업’ 명장면에 NFT를 붙여 판매하는 행사가 열린 적이 있었는데, 불과 1분만에 완판됐다”며 “웹툰 같은 디지털 만화엔 초판본이나 한정판의 개념이 없는데, NFT를 붙이면 이 개념을 붙일 수 있다. 이를 사고 싶어하는 강력한 팬덤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팬덤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NFT 가격대가 유지되고 꾸준히 올라갈 수 있다. NFT가 단순히 ‘등기권리증’ 역할에 머물면 팬덤을 와해시킬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원본 콘텐츠에 NFT를 붙인 뒤 부가 기능을 더하는 시도들이 최근 늘고 있다”며 “멤버십을 가진 사람들만의 특권을 부여하는 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 강력한 팬덤을 유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NFT는 현재 명품시장에서도 대세가 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과거 종이로 부여했던 품질 보증서 대신 NFT로 일련번호, 재료, 공정, 판매매장 등의 정보를 담는 시도가 늘고 있는데, 이는 명품업체가 NFT를 활용해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이를 통해 명품 중소시장을 잡을 수 있고 자사 제품들도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NFT와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이 프로슈머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웹3.0’ 시대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블록체인, 암호화폐와 관련해 거품이 많이 끼어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엔지니어 관점에서 봤을 때 NFT, 블록체인 암호화폐엔 최고급 이론들이 사용되고 있다. 실제 탑티어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기술들이 그대로 구현돼 발빠르게 장착되고 있다”고 언급했다.이어 “때문에 단순이 돈만 벌겠다, 이런 것이 아니라 암호화폐나 NFT의 기술적 동작 원리를 좀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를 어떻게 게임에 붙일까 더 고민해야 한다”며 “(그렇게 잘 고민을 한다면)한국 같이 콘텐츠 강국, 인터넷 강국에선 굉장히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22.06.10 I 김정유 기자
무심코 지나친 진실, 카메라는 알고 있다<8>
  • 무심코 지나친 진실, 카메라는 알고 있다[이수연의 아트버스]<8>
  • 지가 베르토프가 1929년 제작한 다큐멘터리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 등장하는 장면들. 도시를 응시하는 카메라와 교차편집된 눈(가운데)으로 건물 위에서 도시의 일상을 내려다보고(오른쪽 위), 출·퇴근하는 인파를 지켜보고(오른쪽 아래), 그 사이와 공간을 끊임없이 이동(왼쪽 위)한다. 단순한 공장노동을 역동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기도 했다(왼쪽 아래). 영화는 미하일 카우프만(베르토프의 동생)이란 카메라맨을 통해 대신 들여다본, 도시의 활기찬 일상, 영화가 만들어지는 방법, 기계의 눈으로 들여다본 풍경 등을 담아냈다. 영화제작, 광산, 철강, 통신, 우편, 건설, 수력발전, 섬유산업 등 이질적인 소재를 매끄럽게 엮기 위해 라임, 평행편집, 다중노출, 동작속도의 변형, 카메라무빙 등의 기법을 활용했다. ‘키노-아이’(영화-눈)라는 베르토프의 영화철학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꼽힌다.까마득히 오래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린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기원’이란 것을 말입니다. 문자를 대신한 소통이 예술의 목적, 그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예술은, 또 미술은 다른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달고, 휴머니즘을 달고, 상상력을 달았습니다. 20세기쯤 오자 미래를 내다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딛고 서서 인간의 꿈이 도달할 그 너머를 꿈꿨던 겁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NFT에다가 메타버스에까지 닿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시간 현대미술의 진격을 지켜봐온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했던, 예술의 창조적인 경계의 확장을 가져온 미술거장의 삶과 작품 읽기를 통해 예술로 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그 드넓은 ‘아트버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202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 1990년부터 가동한 허블망원경을 대신해 적외선 관측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이 망원경은 지구와 태양 양쪽 천체의 중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라그랑주 포인트 근처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발사 3개월여 만에 시운전을 통해 허블망원경이 지금까지 발견한 항성 중 가장 먼 항성을 발견하고, 선명한 해상도의 대마젤란은하를 촬영해 보내왔다. 제임스 웹 망원경이 하는 일 주요 업무 중에는 ‘최초의 별과 은하 관측’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성능이 좋다고 한들 도구에 불과한 망원경이 대체 어떻게 시간을 거슬러 우주 최초의 별까지 감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제임스 웹 망원경이 감지할 수 있는 파장이 적외선이라는 데에 있다. 별에서 나오는 빛은 우주가 팽창하며 파장이 길어지고, 가시광선이나 자외선은 적외선으로 바뀌게 된다. 적색편이라고 불리는 이 적외선은 초기 별이 생성한 시절의 정보를 담고 별을 떠나 팽창하는 우주를 향해 끝도 없이 뻗어나간다. 그렇게 희미한 적외선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초기 우주의 별에 가닿을 수 있는 것이다. 제임스 웹 망원경은 적외선을 통해 가시광선을 인식하는 인간의 눈이 감지하지 못하는 과거의 시간을 더듬었던 것이다. 제임스 웹 망원경이 나오기 100여년 전, 이미 이러한 기계의 눈이 가진 가능성을 동경하던 러시아 영화감독이 있었다. 인간의 눈으로 접근할 수 없는 세계의 진실한 이미지를 담아내는 기계의 눈. 이것이 전설적인 실험 다큐멘터리 영화의 개척자인 지가 베르토프(1896∼1954)가 ‘키노-아이’를 통해 사실적인 세계에 다가가려고 했던 방법이다. ‘키노-아이’는 192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상황을 반영한 발명품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 2월혁명, 10월혁명과 내전을 거쳐 1922년 소비에트연방이 탄생했지만, 오랜 내전과 혼란으로 제작·배급·유통이란 영화산업의 기본구조는 망가진 지 오래였다. ◇영화, 새 시대 이상 담는 매체로 각광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새롭게 탄생한 소비에트연방의 이상을 담을 수 있는 혁신의 매체로 각광 받았다. 베르토프 등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초창기 다큐멘터리의 한 형식인 뉴스릴(newsreel)을 이용해 새로운 예술을 향한 길을 열고자 했다. 뉴스릴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당대 주요한 사건들을 묘사·설명·재현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제작과 보급이 쉽고 빠른 장점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베르토프는 기존 영상의 짧은 파편들을 편집하고 새롭게 재조합한 위에 몽타주를 섞어붙여, 카메라의 눈이 바라보는 진실되고 정직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필름의 몽타주기법은 세계를 단편적으로 촬영한 필름의 여러 부분을 오리고 붙여 미처 보지 못한 사건의 단면을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지가 베르토프의 다큐멘터리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에 등장하는 장면들. 일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오리고 붙이고 오버랩해 새롭게 연출해냈다. 베르토프는 이런 기법으로,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의 순간을 발견하거나 전통적 서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베르토프의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는 혁명을 통해 새롭게 깨어나는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을 몽타주기법으로 담은 영화다. 낡은 예술의 형식을 부수기 위해 영화는 진부한 줄거리 전개를 피하고 다양한 현실의 사실적인 모습만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장치는 영화의 특징이 돼 여러 장면에서 발견된다. 우선 베르토프의 영화는 시작부터 환상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초반부부터 카메라 위에 서 있는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 극장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그 영상의 시작을 감상하는 관객, 영화를 준비하고 기계를 점검하는 영사기사와 또 영사기와 같은 기계 등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영화를 만들어내고 상영하고 소비하는 현실을 펼쳐놓으며 시작점부터 이렇게 선언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미지일 뿐이며, 할리우드영화처럼 주인공에 몰입해 현실을 떠나 달나라로 갈 수 없다!’ ◇기승전결의 서사 아닌 메이킹 과정으로 완성몰입과 환상 대신 이 영화가 제공하는 것은 스쳐 지나가며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일상의 장면들이다.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사람의 눈높이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각도의 이미지들을 등장시킨다.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굴뚝의 풍경, 새의 시점에서 바라본 듯한 가로수의 모습, 아스팔트 바닥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다리가 움직이는 모습,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보는 도시의 정경 등을 눈과 교차편집해 카메라가 새로운 눈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잠자는 풍경을 반복해 눈으로 봤어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사라진 진실을 무의식으로 연결시키고, 사람들의 옆모습이나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모습 등 다양하게 삽입한 클로즈업 샷은 우리가 매일 보지만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의 조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속도와 움직임이다. 자동으로 접히는 의자, 영화관의 기계들, 전철과 기차 등 운송수단, 공장의 도구와 노동자들 등, 마치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르는 듯한 흐름을 끊임없이 영화에 등장시킨다. 이러한 속도와 움직임,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혁명을 통해 변화하는 러시아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특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해변에서 수영하고, 운동기구를 돌리고, 체스를 두고, 피아노를 치는 모습 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근대 도시의 역동적인 노동과 레저의 장면을 함께 어울린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는 도시를 따라서 ‘카메라를 든 사나이’ 또한 여러 운송수단을 타고 움직인다. 걷는 건 물론, 마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도시의 곳곳을 담아내는데,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대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가 여느 영화처럼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메이킹의 과정에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스텐베르그 형제가 1929년 만든 ‘카메라를 든 사나이’ 포스터. 오프셋 리소그라피로 제작했다.◇필름 오리고 붙여 사건 이면의 진실 포착‘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란 말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의 눈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똑같은 안경을 보더라도 그 사람을 좋아하면 안경이 멋져 보이고, 그 사람을 싫어하면 안경은 촌스럽고 유행에 뒤떨어진 스타일이 된다. 또 우리의 뇌는 어떤 물건을 보는 즉시 스스로 기억을 소환해 끝도 없는 연상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행에서 사온 수버니어는 그저 기념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의 풍경과 당시의 감정, 누군가와 주고받았던 메시지까지 한꺼번에 소환한다. 이러한 기억은 아름답지만 때때로 사실보다 더 진실스러워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베르토프는 카메라란 신문물을 통해 인간의 눈과 뇌가 가진 약점을 보완하고 기계의 눈을 빌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꿈꿨다. 그의 꿈은 레닌과 트로츠키가 죽고 스탈린이 집권하고 러시아혁명정신이 쇠퇴하며 결국 빛이 바랬지만, 그 꿈이 그대로 멈춘 것은 아니다. 멀지 않아 빅뱅 후 1억∼2억년 사이에 태어난 최초의 별들까지 관측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모으는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 연결되고 있지 않은가. 나사에 따르면 그 제임스 웹 망원경이 오는 7월 12일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정식촬영을 처음으로 시도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관측 대상은 비밀이라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인간의 눈이 미처 바라보지 못한 우주의 진실을 탐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2022.06.10 I 오현주 기자
팝아트로 돌아온 낸시랭…개인전 '버블코코: 미러플레이'
  • 팝아트로 돌아온 낸시랭…개인전 '버블코코: 미러플레이'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팝 아티스트 겸 방송인 낸시랭의 개인전 ‘버블코코: 미러플레이’가 오는 23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SA갤러리에서 열린다. ‘버블코코’는 낸시랭이 지난해 개인전부터 선보이고 있는 새로운 장르의 작품 세계다. 시그니처인 고양이 코코샤넬을 팝아트 고양이 ‘버블코코’로 캐릭터화시켜 현대미술의 오마쥬 작품으로 재해석해 표현하고 있다.팝 아티스트 낸시랭이 개인전 ‘버블코코: 미러플레이’를 연다(사진=SA갤러리).이번 전시에는 홍대미대 서양화과 학사·석사 전공자로서 평면작품인 캔버스 그림들로만 선보인다. 동심을 자극하는 파스텔톤의 컬러풀한 페인팅을 입힌 총 14점의 신작들을 전시해놓았다. 거울의 속성을 이용해 캐릭터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세계적인 작품들의 오마쥬 작업을 소개한다. 꿈꾸는 소망이나 미래의 시간,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을 버블코코를 통해 표현하면서 거울놀이(미러플레이)를 통해 흥미를 배가시킨다. 현대인의 정체성 위기, 소외 문제 등도 낸시랭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으로 작품 안에 담았다.낸시랭은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펼친 ‘초대받지 못한 꿈과 갈등-터부요기니(Uninvited Dreams and Conflicts-Taboo Yogini)’라는 퍼포먼스로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다. 대학원부터 첫 개인전을 시작해 26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미국 마이애미, 이스탄불, 홍콩, 싱가포르 등 다수의 해외 아트페어와 국내외 기획전에서 초대작가로 작품들을 선보였다. 세계적인 패션그룹 루이 비통과 함께 비디오 작품(2005)을 만들었고, 미국의 유명 록그룹 린킨파크 워너뮤직과 캔버스 페인팅 작품(2003)으로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예술성을 알렸다. 2009년에는 프랑스 앵그르 미술관 ‘앵그르 인 모던’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초대되기도 했다. 피카소, 베이컨, 앵그르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 작품들과 함께 나란히 작품을 전시한 바 있다. 낸시랭은 미술계와 TV방송 등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앞으로 채널A의 새로운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입주쟁탈전: 펜트하우스’에 출연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팝 아티스트 낸시랭이 개인전 ‘버블코코: 미러플레이’를 연다(사진=SA갤러리).
2022.06.09 I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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