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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데일리 '오늘의 경제일정'-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개최
- [이데일리 임정우 기자] 오늘(18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다. 기념식은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는 주제로 국가 주요인사, 5·18민주유공자 및 유족 등 약 400명이 참석한다. 올해 기념식은 5·18민주묘지가 아닌 5·18의 항쟁지인 5·18민주광장에서 개최된다. 5·18민주광장에서 기념식이 개최되는 건 1997년 5·18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지정된 후 처음이다. 다음은 18일 주요 경제일정이다.◇경제·금융08:00 홍남기 부총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련 경제부처 조율회의(비공개)15:00 홍남기 부총리, 확대 간부회의(세종청사)15:00 김용범 기재부 1차관, 확대간부회의(세종청사)15:00 안일환 기재부 2차관, 확대간부회의(세종청사)미주개발은행(IDB)을 통한 중남미 지역 코로나19 대응 지원(오전)한국은행, 해외 중앙은행의 CBDC 추진 현황(기술검토 진행상황을 중심으로)(오전)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는 2020년도 제1차 적극행정 우수공무원 시상(오후)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 개최(오후)◇산업·증권산업부, 온라인 일자리 박람회로 비대면 방식 해법 제시(오전)산업부, 2020년 중견기업 상생혁신 사업 공고(오전)◇정치·사회10:00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광주)10:00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광주)16:00 김양수 해양수산부 차관, 코로나 대응전략 전문가 토론회(세종)못난이 농산물’ 수출 효자로 재탄생한다(오전)농식품 벤처·창업 기업 집중 보육·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 지원(오전)국가인증 스타팜, 안심 먹거리를 찾아라!(오후)국제해양법 모의재판 대회 참가신청 접수(오전)e-Nav 서비스 통신망 실해역 시험 실시(오전)선저폐수 적법처리 유도를 위한 캠페인 실시(오전)2020년 어한기 가격안정용 정부비축 수산물 방출(오전)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오후)
- 이데일리 '내일의 경제일정'-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개최
- [이데일리 임정우 기자] 내일(18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다.기념식은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는 주제로 국가 주요인사, 5·18민주유공자 및 유족 등 약 400명이 참석한다. 올해 기념식은 5·18민주묘지가 아닌 5·18의 항쟁지인 5·18민주광장에서 개최된다. 5·18민주광장에서 기념식이 개최되는 건 1997년 5·18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지정된 후 처음이다. 다음은 18일 주요 경제일정이다.◇경제·금융08:00 홍남기 부총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련 경제부처 조율회의(비공개)15:00 홍남기 부총리, 확대 간부회의(세종청사)15:00 김용범 기재부 1차관, 확대간부회의(세종청사)15:00 안일환 기재부 2차관, 확대간부회의(세종청사)미주개발은행(IDB)을 통한 중남미 지역 코로나19 대응 지원(오전)한국은행, 해외 중앙은행의 CBDC 추진 현황(기술검토 진행상황을 중심으로)(오전)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는 2020년도 제1차 적극행정 우수공무원 시상(오후)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 개최(오후)◇산업·증권산업부, 온라인 일자리 박람회로 비대면 방식 해법 제시(오전)산업부, 2020년 중견기업 상생혁신 사업 공고(오전)◇정치·사회10:00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광주)10:00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광주)16:00 김양수 해양수산부 차관, 코로나 대응전략 전문가 토론회(세종)못난이 농산물’ 수출 효자로 재탄생한다(오전)농식품 벤처·창업 기업 집중 보육·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 지원(오전)국가인증 스타팜, 안심 먹거리를 찾아라!(오후)국제해양법 모의재판 대회 참가신청 접수(오전)e-Nav 서비스 통신망 실해역 시험 실시(오전)선저폐수 적법처리 유도를 위한 캠페인 실시(오전)2020년 어한기 가격안정용 정부비축 수산물 방출(오전)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오후)
- ‘슈퍼 여당’ 등에 업은 文대통령, 강력해진 5·18 바로세우기(종합)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광주 MBC와 인터뷰 하고 있다.(사진=청와대)[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5·18 메시지가 강력해졌다. 문 대통령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MBC의 5·18 40주년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진상규명 의지를 강조했다. 특히 개헌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5·18 민주 이념을 헌법에 포함시켜한다고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또 앞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5·18 기념식을 비판하면서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77석 거대 여당의 힘을 바탕으로 5·18의 가치를 바로세우려는 시도로 읽힌다.◇개헌 가능성 언급 주목..21대 국회 논의될 듯지난 2017년 임기 시작과 함께 제 37회 5·18민주화 운동을 찾았던 문 대통령은 2018년에는 국무총리에게 참석을 양보했다가 이듬해인 2019년 다시 광주를 방문했다. 이 때마다 줄곧 5·18 정신의 헌법 등재를 꾸준히 언급했지만 21대 총선이 끝난 지금, 메시지가 보다 강력해졌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반드시 지키겠다”라며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10개월 이후인 2018년 3월 이 같은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9년에도 “개인적으로는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담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송구스럽다”고만 했다.그러나 5·18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은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개헌이 논의된다면 헌법 전문에서 그(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의 이념) 취지가 반드시 되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개헌’을 언급한 것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 이후 4개월여만이다.더욱이 당시 개헌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 가능성을 낮게 점쳤던 문 대통령이 능동적으로 ‘개헌’ 논의를 언급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당시 “개헌에 대해서 대통령이 추진 동력을 가지기는 어렵다”며 “개헌이 필요하다면 개헌 추진 동력을 되살리는 것은 이제는 국회의 몫”이라고 답했다. 21대 총선 대승으로 177석을 확보한 여당의 잰걸음이 예상되는 이유다.현행 헌법은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표현으로 민주화 역사를 수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를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까지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다. 다만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만으로는 개헌 통과선인 200석에 미치지 못한다. 여야의 합의가 선행돼야한다는 의미다.◇“발포 명령자 찾아야”..진실 규명에 힘 싣기문 대통령이 5·18 바로세우기에 힘을 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우리 광주 5·18에 대해서는 밝혀야 될 진실들이 많이 있다”며 “마침 5·18진상조사위원회의 본격적인 조사 활동이 시작됐는데, 이번에야말로 아직 남은 진실들이 전부 다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정부의 지원을 약속했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열렸던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눈물 흘리는 유족을 뒤따라가 안아주면서 위로하고 있다.(사진-KBS 캡쳐)그러면서 “여전히 발포의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집단학살 피해, 진실 은폐, 왜곡 공작까지 다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민주주의의 관용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그런 여러 가지 폄훼에 대해서까지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무관용 원칙도 밝혔다.앞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신임 원내대표가 당 안팎에서 끊이질 않았던 ‘5·18 망언’과 선을 그으면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당 내에서도 이전과 다른 색깔을 내면서 5·18 바로세우기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통합당의 전신 자유한국당은 불과 1년 전만해도 ‘5·18 망언’으로 논란이 됐고 당 차원의 공식 사과는 없었다.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기념식이 폄하되는 것이 참으로 분노스러웠다”고 이전 보수 정권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정신에 대한 존중, 진심, 이런 부분이 거의 담겨져 있지 않은 그런 사실들, 또 유족들이 따로 기념식을 치르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심정이었다”고 이전 정부의 5·18 기념식을 문제 삼았다.
-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5·18민주광장서 개최
-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오월시민행진 그날 WHO’ 참가자들이 40개의 종이탈을 쓰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스1)[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국가보훈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오는 18일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앞)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이날 기념식은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는 주제로 국가 주요인사, 5·18민주유공자 및 유족 등 약 400명이 참석한다. 특히 이번 기념식은 1997년 5·18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지정된 후, 처음으로 5·18의 항쟁지인 5·18민주광장에서 개최된다. 기념식은 방송인 김제동의 사회로 △도입영상 △국민의례 △경과보고 △편지낭독 △기념사 △기념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먼저 ‘26년,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을 활용한 도입영상으로 5·18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이어서 국민의례시에는 김용택 시인이 이번 기념식을 위해 특별히 집필한 ‘바람이 일었던 곳’이라는 묵념사를 문흥식 5·18구속부상자회장이 낭독한다. 경과보고는 5·18유가족인 남녀 대학생이 낭독한다. 경과보고 후에는 최정희(73)씨가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남편의 이야기를 편지를 통해 전달할 예정이다. 최 씨는 부산 출신으로 남편과 부산 국제시장에서 만나 결혼생활하다 담양으로 이주 후 2년여 만에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했고, 남편 고(故)임은택 씨는 5월 21일 사망했으며, 5월 31일 광주교도소에서 암매장 되어 발견됐다. 기념공연에서는 작곡가 정재일과 영화감독 장민승이 제작한 ‘내 정은 청산이오’가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다. 이 곡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티브로 남도음악과 전통문화, 오케스트라, 랩, 중창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 제작해 5·18희생자와 광주에 헌정할 예정이다. 끝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참석자 전원이 함께 제창하며 기념식은 마무리된다.
- [전문]文대통령 “5·18, 노무현 대통령 제일 먼저 생각난다”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광주 MBC와 인터뷰 하고 있다.(사진=청와대)[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5·18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의 노무현 변호사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광주MBC의 5·18 40주년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서 5·18과 관련해 떠오르는 인물에 대해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그러나 광주를 확장한 분으로서 기억을 하고 싶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문 대통령은 “80년대 이후의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면서 “광주를 알게 될수록 시민들은 그 당시 광주가 외롭게 고립되어서 희생당했는데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던 그 사실에 대해서 큰 부채 의식을 가지게 됐고, 그것이 이제 민주화운동의 하나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다음은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 전문-5.18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된 지 40년이 됐습니다. 저는 그때 굉장히 어려서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실은 기억이 희미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면 기억이 없는데요. 대통령께서는 그때 어디에서 계셨고, 5.18 소식을 언제 처음 접하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저는 그 5.18 전날인 5월17일 비상계엄령이 확대되고, 그날 바로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이 되었던 중에 저를 조사하던 경찰관들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당시 그 경찰관들은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된 그(것)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계엄군의 발포로 많은 광주 시민들이 사상을 당한 사실, 그리고 또 경찰은 발포 명령을 거부해 가지고 시 진압에서 배제가 되었다는 사실, 또는 시민군들이 예비군이나 경찰 무기고를 열어서 무기를 들고 이렇게 맞서고 있다는 사실, 이런 사실들을 저에게 경찰정보망을 통해서 올라오는 소식들을 매일 매일 전해 주었습니다.저는 그런 얘기들을 들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들이 당연히 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석방되고 난 이후에 보니까 그런 사실들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폭도들의 폭동인 양 그렇게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광주 바깥에서는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광주의 진실, 그런 것을 접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980년 5월27일 전남도청에서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들에게 진압된 이후에 1987년 6월항쟁까지 수많은 국민들이 광주 학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펼쳤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그때의 국민들, 시민들과 같은 마음이셨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대통령께 있어서 광주 시민과 오월 영령들은 어떤 존재였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우선은 제가 광주 5.18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민주화의 아주 중요한 그 길목에 다시 군이 나와서 군사독재를 연장하려고 한다, 그 사실에 굉장히 비통한 그런 심정이었고, 한편으로 광주 시민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을 들으면서 굉장히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80년 5월 초부터 매일같이 서울역에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모여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그런 집회 시위를 열었는데, 그게 날이 갈수록 숫자가 불어서 5월15일에는 무려 20만 명이 서울역에 운집을 했습니다.그런데 그 상황에서 군이 투입될 것이라는 그런 소문이 쫙 퍼졌는데, 그러자 당시 그 집회를 이끌고 있던 서울지역 각 대학 총학생의 회장단들이 말하자면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그게 이른바 ‘서울역 대회군’이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군이 투입될 수 있는 빌미를 줘서는 안 된다라는 명분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군이 투입되면 아주 희생이 클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고 난 이후에 다시 모여야 한다 그런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그런데 나는 그때 그 결정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경희대 복학생 대표였는데, 나뿐만 아니라 대체로 복학생 그룹들은 말하자면 민주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군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에 군이 투입되더라도 사즉생의 각오로 맞서야 한다, 그 고비를 넘어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주시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서울지역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아주 가혹한 그런 진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지금 그때 총학생 회장단들의 결정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매일 서울역에 모여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집회를 함으로써 결국은 군이 투입되는 그런 빌미를 만들어 주고는 결국 결정적인 시기에는 퇴각을 하는 그런 결정을 내린 것 때문에 광주 시민들이 정말 외롭게 계엄군하고 맞서게 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고, 저뿐만 아니라 광주 지역 바깥에 있던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들 모두가 이 광주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 그것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 부채의식이 그 이후 민주화운동을 더욱 더 확산시키고 촉진시키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그런 점에서 당시 광주 오월 영령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우리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그런 존재가 되었죠.-특히나 대통령께서는 5.18의 헌법적 가치에 대해서 누구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 오셨습니다. 대선 공약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까지도 헌법 전문에 5.18의 가치가 수록되어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셨는데요. 앞으로 개정될 헌법 전문에 5.18의 가치가 들어가야 한다면 여러 가지 광주 정신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들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우선 제가 그런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제가 개헌안 발의를 했습니다. 비록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제가 발의한 개헌안 그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의 이념의 계승, 이것이 담겨있습니다.지금 현재의 우리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에 의해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4.19민주운동의 이념을 계승하는 것으로 그렇게만 헌법 전문에 표현되어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발전시켜온 민주주의가 실제로 문안화 돼서 집약돼 있는 것이 우리의 헌법이거든요.그런데 4.19의 혁명만으로 민주 이념의 계승을 말하기에는 4.19혁명 이후에 아주 장기간에 어찌 보면 더 본격적인 군사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4.19운동만 가지고는 민주화운동의 어떤 이념의 계승을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이 다시 지역적으로 강력하게 표출된 것이 시기 순서로 보면 부마민주항쟁이었고, 5.18민주화운동이었고, 그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 6월 민주항쟁이었고, 드디어 그 미완된 부분이 다시 촛불혁명으로 표출이 되면서 오늘의 정부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그 가운데 촛불혁명은 시기상으로 아주 가깝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의 소지가 있어서 아직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이 이르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5.18민주운동과 6월항쟁의 이념만큼은 우리가 지향하고 계승해야 될 하나의 민주 이념으로서 우리 헌법에 담아야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5.18이나 또 6월항쟁의 성격을 놓고 국민들 간에 동의가 이루어지면서 국민적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헌법안 개헌이 좌절되었지만 앞으로 언젠가 또 개헌이 논의가 된다면 헌법 전문에서 그 취지가 반드시 되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예, 알겠습니다. 시기를 3년 전으로 좀 돌려보겠습니다. 5.18 37주년 기념식인데요. 그때 대통령에 당선되신 지 채 열흘도 안 돼서 직접 기념식에 참석을 하셨었죠. 여러 가지 장면들이 광주 시민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던 것 같습니다. 특히 5.18 유족인 김소형 씨를 직접 안아 주시는 장면은 제가 듣기로 예정에 없던 그런 장면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 기억을 한번 되살려 보신다면 어떻습니까?△우선은 5.18 기념식이 제가 대통령 취임하고 난 이후에 처음으로 치른 국가기념식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뜻깊게 생각하고요. 우선 5.18민주화운동이 우리나라 아까 민주화의 역사에서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그 기념식에 대통령들이 참석하지도 않고, 그리고 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도 못하게 해서 유족들이 따로 기념행사를 가지는,-그렇습니다.△그런 식으로 5.18 그 기념식이 조금 폄하된다할까 하는 것이 참으로 분노스러웠습니다. 실제로 제가 야당 대표를 할 때 그 공식 기념식에 정식으로 초청받아서 참석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광주지방보훈청장의 경과보고, 그리고 국무총리의 기념사, 그것을 들으면서 그 속에 정말 5.18 민주화운동 정신에 대한 존중, 진심, 이런 부분이 거의 담겨져 있지 않은 그런 사실들, 또 유족들이 따로 기념식을 치르고 있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굉장히 좀 민망하고 부끄러운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념식을 마치고 저와 우리 일행들은 따로 묘역을 방문해서 거기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기도 했었는데, 어쨌든 그때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지역의 하나의 기념 이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말하자면 대한민국 전체의 어떤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로 그렇게 승화시키고, 또 대통령으로서도 해마다 참석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두 해의 한 번 정도씩은 참석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도 허용하고, 그래서 좀 제대로 기념식을 치러야겠다는 그런 식의 각오를 갖고 있었는데, 그런 제 각오와 약속을 실천할 수 있게 되어서 아주 뿌듯하게 생각을 했고요.그때 김소형 그 분은 저는 그때 처음 보는 분이고 사연도 처음 들었는데, 그분이 5.18 당일 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5.18을 생일로 가지고 있는 그런 분이었어요. 그 아버지가 전남 완도에서 일하시던 분인데,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왔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서 사망하게 된 거였거든요. 그래서 김소형 씨가 추도사를 하면서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었다면 엄마 아빠가 지금도 행복하게 잘살고 있지 않을까 이런 사연을 추도사에 담았는데, 그 추도사를 들으면서 누구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죠.저도 눈물이 나는 것을 이렇게 막을 수가 없었고요. 그래서 그분 추도사 마치고 난 이후에 그냥 위로하는 말이라도 조금 건네겠다 생각하고 무대로 나섰는데, 그게 전혀 예정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 처음 그 열린 공간에서 그 많은 분들이 참석한 그 행사에서 대통령이 갑자기 예정에 없이 무대 쪽으로 나가니까 우리 경호하는 사람들도 아주 당황했다고 하고, 김소형 씨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무대를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한참을 뒤에서 부르면서 쫓아가서 안아드렸는데, 이분이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냥 막 펑펑 흐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인제 좀 진정하기를 좀 더 기다렸었는데, 아마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유족들의 슬픔, 또 광주 시민들의 아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광주 시민들이나 또 전 국민들이 함께 공감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그리고 37주년 기념식 때 특별한 이름들을 호명을 하셨습니다. 표정두 열사, 박관현, 조성만, 박래전 이런 민주열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시면서 오월 영령들뿐만 아니라 이들 민주열사들의 이름도 함께 기억해 줄 것을 주문을 하셨는데요. 어떤 취지이셨을까요?△아까 제가 80년 이후에 광주 5.18이 우리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실제로 그 이후에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기억하라, 그리고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것이, 그것이 하나의 민주화운동, 그 자체가 바로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주에서도, 또 광주 바깥에서도 굉장히 많은 분들이 광주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또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목숨을 바친 그런 분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 많은 분들을 다 일일이 호명하지는 못하고 제가 대표적으로 그 네 분의 이름을 호명했는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 것은 5.18이 광주라는 특정한 지역으로 국한되는 운동이 아니다, 광주 밖에도 많은 5.18들이 있고, 그래서 광주의 정신이 우리 대한민국 전체의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이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 사실을 우리 국민들도 기억해야 되고 광주 시민들도 그 사실을 기억하셔야 된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대통령께서 취임하신 이후 수많은 5.18의 과제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의 원형 복원이라든가 5.18 헬기 사격과 관련한 국방부 조사위원회 가동, 그리고 며칠 전에 조사를 개시한 5.18진상조사위원회 출범, 수많은 일들을 지시하고 또 그런 것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그만큼 5.18에서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께서 생각하시기에 5.18의 여러 과제들 중에 가장 최우선적으로,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가 있다라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결국 과거의 그 아픔, 또 과거의 상처는 치유되어야 되는 것이거든요. 치유되어야 화해가 있고, 또 국민 통합이 이루지는 것이죠. 그 출발은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 그 진실의 토대 위에서만 화해가 있고 통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도 진실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죠.아직도 우리 광주 5.18에 대해서는 밝혀야 될 진실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침 오늘부터 5.18진상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조사 활동이 시작됐는데, 이번에야말로 아직 남은 진실들이 전부 다 밝혀지기를 기대합니다.원래 이런 과거사에 대한 진상 조사는 국회가 특별법에 의해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그에 따라 조사되는 것이 관례인데, 저는 국회의 입법을 기다리는 그것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그렇게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하기 이전에 국방부 자체 내에 5.18 특조위 구성을 해서 스스로 진상 조사를 하도록 하고, 거기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진상조사위원회로 이렇게 이관해 주기로 그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국방부 자체적인 5.18 특조위에서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헬기 사격 사실이라든지, 또 여성들에 대한 성추행, 성폭행, 심지어는 성고문 이런 사실들이 추가로 확인된 것은 나름대로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여전히 발포의 말하자면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직도 행방을 찾지 못하고, 또 시신도 찾지 못해서 어딘가에는 아마 암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그런 집단 학살자들, 그분들을 찾아내는 일들, 또 헬기 사격까지 하게 된 그 어떤 경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그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한 그런 어떤 그 공작의 실상들까지 다 규명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 규명의 목적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 책임자를 가려내서 꼭 법적인 처벌을 하자라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이 그 진실의 토대 위에서 진정으로 화해하고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그래서 꼭 필요한 그런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번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작정입니다.-대통령께서 5.18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또 실제 많은 과제들이나 이런 것들을 해결해 나갈 의지를 보이고 계십니다만 아직도 5.18을 왜곡하거나 5.18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18을 전 국민이 기념하는 민주항쟁 혹은 민주기념일로 볼 수 없지 않느냐 이런 의견도 일부 있는데요. 5.18 왜곡과 폄훼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우선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 민주주의는 다양한 생각을 허용하고, 또 다른 생각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관용하는, 그런 말하자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죠. 그러나 그 민주주의의 그 관용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그런 여러 가지 폄훼에 대해서까지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요.어쨌든 아까 말씀드린 이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내는 것도 그런 폄훼나 왜곡을 더 이상 없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는 좀 더 나아가서 정말 우리 정치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 그 추가적인 진실 규명이 없더라도 지금까지 밝혀진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광주 5.18 그런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말하자면 결정적인 상징으로서 그래서 존중받기에 충분하거든요.이미 법적으로도 20 몇 년 전에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그것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이 되고, 또 거기에 희생당한 분들이 민주화운동의 유공자로 인정받기도 하고, 거기에 국가기념일로 지정이 되어서 전 국가적으로 기념행사도 치르고, 이 정도면 국민적으로, 국가적으로는 이렇게 하나 정리하고 다음의 장으로 넘어가야 되는 것이죠.개인적으로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해서도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일제 식민 지배는 불의한 것이었고, 그다음에 거기에 저항한 독립운동의 정통성이 있는 것이고, 친일은 심판받아야 되는 것이고, 또 해방 이후에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도 국가 발전의 과정에서 독재가 있었고, 그 독재에 맞서서 치열하게 항쟁하고 희생당한 그런 숭고한 민주화운동들이 있었고, 그런 운동들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이만큼 발전시켰고, 또 그와 함께 우리 경제 발전도 이만큼 이루었고 하는 이런 점에 대해서는 이제는 역사적 평가가 사실은 끝난 것입니다.이 평가를 넘기고 이제 앞으로 우리 민주주의를 얼마나 더 풍부하게, 더 크게, 넓게 발전시켜 나가느냐, 또 우리 경제를 얼마나 더 세계에서 선도적인 경제로 발전시켜 나가느냐, 이렇게 우리의 논의가 발전되어 나가야 하는데, 법적으로 다 정리된 사안을 지금까지도 왜곡하고 폄훼하는 발언들이 있고, 그것을 일부 정치권에서 조차도 그런 주장들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막 확대 재생산시켜지는 일들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식의 고리를 끊어야 우리 사회가 보다 통합적인 사회로 나갈 수 있고, 우리 정치도 보다 통합적인 정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5.18의 여러 인물들이 있습니다. 5.18을 상징하는 여러 인물들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생각하시기에 5.18 하면 생각나는 인물 혹시 있으시면 왜 그런지도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저는 5.18 하면 조금 이야기가 약간 멀어질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노무현 前 대통령, 그러니까 그 당시의 노무현 변호사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납니다. 80년대 이후의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주를 알게 될수록 시민들은 그 당시 광주가 외롭게 고립되어서 희생당했는데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던 그 사실에 대해서 큰 부채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이제 민주화운동의 하나의 또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처음에는 유인물들을 통해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도 하고, 또 해마다 5.18이 되면 버스를 2대, 3대 전세내서 민주화운동 하는 분들이 함께 합동으로 5.18 묘역을 참배하기도 하고,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에는 그 당시의 광주의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들, 이른바 광주 비디오라고 부르던, 거의 한 시간 정도 되는 분량이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고 정말로 참혹한 것이었습니다.누구나 그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그런 말하자면 확실한 증거가 되는 그런 비디오인데, 그 비디오들을 처음에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몇 사람들이 돌려보다가 나중에는 대학의 동아리들, 학생회 이런 차원에서도 돌려보고, 6월항쟁이 일어났던 87년 5월에는 당시의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서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5.18 광주 비디오, 말하자면 관람회를 가졌습니다. 영화 상영하듯이 하루 종일 모니터로 광주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산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서 광주 비디오를 보고, 그때 비로소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그런 분들도 많았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3, 4일 정도는 한 것 같습니다.그런 것이 부산 지역 6월항쟁의 큰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또 부산의 가톨릭센터가 6월항쟁 때 서울의 명동성당처럼 자연스럽게 부산 지역 6월항쟁을 이끄는 그런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함께했던 그 노무현 변호사,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그러나 광주를 확장한 그런 분으로서 기억을 하고 싶습니다.
- 주호영 “당 일각 5.18 모욕…유가족·국민께 안타깝고 죄송”
-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당 일각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모욕하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있었고, 아물어가던 상처를 덧나게 했던 일들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며 “이유를 막론하고 희생자와 유가족, 상심하셨던 모든 국민 여러분께 매우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사진 = 연합뉴스)주 원내대표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앞서 16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숙연한 마음으로 맞이한다. 4.19 혁명이 불 지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굳건한 토대가 됐다”며 “40년이 지난 지금 그분들의 희생정신이 씨앗이 돼, 오늘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희생자를 기렸다.이어 “통합당의 생각도 같다. 우리 당은 단 한 순간도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폄훼하거나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다”며 “5.18 민주묘역을 조성한 것도, 5.18 특별법을 제정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한 것도, 모두 고(故) 김영삼 대통령(YS)의 문민정부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주 원내대표는 그간 당 일각에서 5.18 관련 망언이 반복된 점을 사과하며 “개인의 일탈이 마치 당 전체의 생각인 양 확대 재생산되며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일으키는 일은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5.18을 기리는 국민 보통의 시선과 마음가짐에 눈높이를 맞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이어 “앞으로는 더 이상 5.18 민주화운동이 정치 쟁점화 되거나, 사회적 갈등과 반목의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5.18 40주년을 맞는 우리 모두가 되새겨 봐야 할 오늘의 시대적 요구는 바로 국민 통합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통합당도 5.18 정신이 국민 통합과 화합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며 “5.18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를 법정단체화하고 법적 근거에 따라 예산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5.18 민주유공자 예우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또 관련 단체와의 간담회 및 면담을 통해 유족들의 호소도 세심히 살피겠다고 덧붙였다. 주 원내대표는 “통합당은 YS 정신을 이어받은 유일한 정당으로서, 5.18 민주화운동의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 소홀함이 없도록 부단히 노력해 왔고 그런 각오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며 “5.18 정신을 받들어, 통합당도 대한민국 희망의 빛을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를 포함한 당 원내지도부는 오는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앞서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일부 의원들은 지난해 ‘5.18 폭동’,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 등의 망언을 쏟아내 많은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