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렬
  • 영역
  • 기간
  • 기자명
  • 단어포함
  • 단어제외

뉴스 검색결과 1,352건

국민의힘 "민주라는 단어가 방종·폭주의 명분 돼서는 안돼"
  • 국민의힘 "민주라는 단어가 방종·폭주의 명분 돼서는 안돼"
  •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국민의힘이 6·10 민주항쟁 36주년을 맞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1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제3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10일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6·10 민주항쟁이 있었기에 우리가 그 토대 위에 살아가고 있다”며 “청년 박종철, 청년 이한열을 비롯한 수많은 청춘의 희생 위에서 얻어낸 숭고한 ‘민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라고 적었다.논평은 이어 “정당민주주의가 돈으로 인해 오염되고, 대화와 타협의 의회민주주의가 다수의 폭거와 독주로 파괴되고 있다”며 “‘자유’와 ‘민주’라는 이름 아래 사회분열을 획책하며 대한민국의 존립 가치를 뒤흔드는 행태도 이어지고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을 에둘러 비판했다.그러면서 “심지어 최근에는 6·10 민주항쟁의 뜻을 이어받는 단체가 정작 그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정치적 공격을 일삼는 시민단체에 후원하는 일도 발생했다”고 지적했다.앞서 정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윤석열 정권 퇴진’을 구호로 내건 행사를 후원한 것을 문제 삼아 행사 전격 불참을 결정했다.논평은 “민주 영령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민주의 가치가 퇴색되는 요즘”이라며 “집권 여당으로서 더 큰 책임감으로 ‘민주’라는 단어가 더는 방종과 폭주의 명분이 되지 않도록 그 가치를 지켜나가겠다”고 덧붙였다.
2023.06.10 I 이배운 기자
김동연 “尹 정부, 6·10항쟁 행사 불참은 옹졸한 일”
  • 김동연 “尹 정부, 6·10항쟁 행사 불참은 옹졸한 일”
  •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6.10민주항쟁 36주년 행사에 불참한 윤석열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1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민주路 - 같이 걸어온 길, 다시 가야 할 길’을 주제로 ‘제3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부터), 정의당 이정미 대표, 진보당 윤희숙 상임 대표,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기념사를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김 지사는 1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오늘은) 6ㆍ10 민주항쟁 36주년”이라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6ㆍ10 민주항쟁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뜨거웠던 1987년 6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든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고, 그 헌신과 희생을 기린다”며 “지금의 헌정 체제는 87년 6월 6ㆍ10 항쟁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김 지사는 “(6ㆍ10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그 여덟 번째 대통령”이라며 “그간 헌정질서 수호를 강조해온 정부가 오늘 기념행사에 불참하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옹졸한 일”이라고 지적했다.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정부 인사가 불참하는 것은 6.10 민주항쟁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07년 이후 처음이다.행정안전부는 지난 9일 기념식을 주관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윤석열 정권 퇴진’을 구호로 내건 행사를 후원했다는 이유를 들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주최자에서도 빠지겠다고 밝혔다. 당초 이번 기념식에는 행안부 장관 직무대행인 한창섭 차관의 기념사가 예정돼 있었다.김 지사는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대한민국이 작아지고 있다”며 “정치는 진영 논리에 갇혀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고, 외교는 균형을 잃고 일부 국가와는 척지고 있으며, 경제는 노동 진영을 적대시하면서 경제 주체를 가르고, 사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고 했다.김 지사는 “오늘 6ㆍ10 민주 행사에 정부가 불참하는 것은 쪼개지고 작아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징표”라며 “6ㆍ10 민주항쟁의 정신을 되새기면서도 36년간 지속된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3.06.10 I 윤정훈 기자
이재명 "독재정권 통치는 반대편 악마화에서 시작"
  • 이재명 "독재정권 통치는 반대편 악마화에서 시작"
  •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10 민주항쟁 36주년을 맞아 “낡은 이분법을 청산하자”는 메시지를 내놨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이 대표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6월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오만한 권력에 저항했던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에 빚지고 있다”며 “선열들은 이념과 계급 따위로 사람을 구분하고 통치하려는 야만적 권력을 끊어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고자 했다”고 적었다.이 대표는 이어 “독재정권의 통치는 언제나 권력의 반대편을 악마화하는 것에서 시작했다”며 “노동자를 갈라치기 하거나 사법의 이름을 빌어 진영 내분을 획책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사악한 구태”라며 정부를 에둘러 비판했다.그러면서 “낡은 이분법을 청산하고 오직 주권자의 요구에 기민하게 응해 건설적 대안으로 ‘잘하기 경쟁’하는 정치를 만드는데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강조했다.이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이희호 여사 묘역과 이한열기념관도 찾을 예정이다. 정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윤석열 정권 퇴진’을 구호로 내건 행사를 후원한 것을 문제 삼아 행사 전격 불참을 결정했다.
2023.06.10 I 이배운 기자
‘6월항쟁 추모제’·한국노총 집회…주말 서울 도심 ‘혼잡’
  • ‘6월항쟁 추모제’·한국노총 집회…주말 서울 도심 ‘혼잡’[사회in]
  •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이번 주말 서울 도심은 6·10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추모제와 윤석열 정부를 향한 투쟁 시위 등이 열려 혼잡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광화문·여의도 인근에서 집회 등이 열리는 만큼, 이곳을 지날 경우엔 대중교통 정보를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지난달 31일 대규모 도심 집회를 벌인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 ‘고(故) 양회동 분향소’를 불법으로 기습 설치하면서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사진=이영민 수습기자)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는 10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동편 인근에서 ‘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를 연다. 6월 항쟁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제다. 올해로 14번째인 이번 추모제 구호는 ‘열사의 염원이다. 민중세상 가로막는 윤석렬은 퇴진하라’다. 사전 행사인 ‘민주열사와 함께 하는 시민 대행진’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날 오후 12시 종로구 보신각에 집결해 종로1가, 광화문 네거리, 태평로를 거쳐 추모제가 열리는 서울 시청 동편에 모일 계획이다.서울지역 시민사회·노동·정당·종교 143개 단체가 모여 만든 서울시국회의는 이날 오후 4시부터 서울 중구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정부 규탄 집회를 연 뒤 경찰청으로 행진을 진행한다. 이들은 “민생파탄, 민주실종, 평화파괴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도 발표할 예정이다.진보성향의 시민단체 촛불전환행동은 정부규탄 집회를 이어간다. 이들은 이날 오후 6시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36주년 6월 민주항쟁 계승 비상시국대회’를 연다. 이후 오후 7시부터 숭례문, 서울역, 숙대입구역, 대통령실 앞으로 행진할 예정이다. 이날 촛불집회는 경기 수원, 충남 공주, 전북 군산, 광주, 대구,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도 열린다.한국노총 산하 레미콘운송노조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여의도환승센터 일대에서 ‘레미콘 수급조절 연장 촉구 결의대회’를 연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여의도 국민은행 서관까지 행진한다. 이들은 △레미콘 믹서트럭에 대한 수급조절 기종 고시 연장 △‘건설기계관리법’ 개정법률안 즉시 폐기 △믹서트럭 임대차 계약에도 표준계약서 작성제도 전면 시행 △레미콘 특수고용직의 노조할 수 있는 권리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故) 양회동 열사 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6시 30분부터 서울 중구 파이낸스 빌딩 앞 2개 차로에서 ‘건설노조원 추모 집회’를 연다. 이들은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와 고인의 장례 전까지는 주중에는 오후 7시, 주말에는 오후 6시 30분 매일 추모제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2023.06.10 I 황병서 기자
野 양소영 "대의원제 폐지는 혁신 아냐, 당내 민주주의 회복해야"
  • 野 양소영 "대의원제 폐지는 혁신 아냐, 당내 민주주의 회복해야"
  • [이데일리 이수빈 기자] 당 혁신을 요구했다가 강성 지지층의 공격에 시달려 온 양소영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이 9일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다양성을 훼손하고 당내 분열을 추동하는 형태를 단호하게 끊어내는데 힘써주길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또 “대의원제 폐지가 혁신인 것처럼 외치지만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당권싸움에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양소영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여했다.(사진=뉴스1)양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당내 민주주의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민주당 혁신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며 이같이 말했다.양 위원장은 지난달 12일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과 17개 시·도당 대학생위원회 명의로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거액 가상자산 투자 논란을 비판하며 당의 혁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양 위원장과 대학생 위원장들은 김 의원을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문자 폭탄’ 등 공격에 시달렸다. 양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당연한 목소리를 ‘내부총질’이라고 규정하고, 동료를 수박이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혁신과 동떨어진 대의원제 폐지를 외쳐야만 비난받지 않는다”고 현재 민주당 상황을 비판했다. 같은 회의에서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이 대의원제 폐지를 촉구한 것을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다.양 위원장은 “현재 민주당은 올바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관용하는 문화는 사라진 지 오래고 경도된 목소리가 당을 지배하고, 특정 정치인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이어 그는 민주당 혁신 기구의 임무로 ‘정당 내 민주주의 회복’을 제시하며 “국민의 관심사가 아닌 대의원제 폐지는 혁신기구의 주요 의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양 위원장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혁신기구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정치인과 계파의 목소리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 부족한 점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혁신기구가 되어야 한다. 동료를 수박이라 멸칭하는 인사들은 혁신기구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그는 “오늘 이 발언 이후 저는 또 비난의 화살을 맞을 수 있다. 신상 털이, 가족 욕설, 성희롱, 그걸 넘어 더 큰 시련이 올 수도 있다”면서도 “많이 두렵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심경을 밝혔다.양 위원장은 “민주당이 그저 권력만 추구하고 중요한 사안에 입 다물라는 정당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관용하고 포용하는 정당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당내 다양성이 보장되면 우리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다. 새롭게 구성될 혁신기구가 그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확대간부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을 만나 양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당내 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며 “정당이 다양성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의견을 정당하게 표명하고, 그에 대해 반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답했다.이어 “당 내에 문자 폭탄이나 폭언, 이런 표현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과도한 표현과 문제에 대해서는 당에 신고하면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고, 이미 제명조치까지 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한편 이날 정청래 최고위원은 “6월 항쟁 정신은 ‘내 손으로 대통령 뽑자’였다. 민주당 대표도 내 손으로 뽑자”며 대의원제 폐지를 요구했다.그는 “대통령 선거가 대통령도 한 표, 국민도 한 표이듯, 민주당 대표 선거도 대표도 한 표, 대의원도 한 표, 당원도 한 표 하자”며 “평등한 직선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상식을 지키자”고 거듭 요청했다.
2023.06.09 I 이수빈 기자
5·18에 하필 계엄군 시점 사진을...보훈처 "주의하겠다"
  • 5·18에 하필 계엄군 시점 사진을...보훈처 "주의하겠다"
  •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국가보훈처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당시 사진을 공개했다가 논란이 일자 해명했다.교체 전 사진. 계엄군 시점의 사진이라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보훈처는 18일 페이스북 등 SNS에 글을 올려 앞서 올라간 광주항쟁 당시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보훈처는 “‘5·18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여러 컷의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진 이미지를 보여주고 과거의 아픈 역사를 딛고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고 미래 통합으로 나아가는 SNS 사진 시리즈 캠페인을 기획했다”며 논란의 사진이 공개된 배경을 설명했다.보훈처가 사용한 사진들은 전남매일신문 소속으로 항쟁을 취재했던 기자 나경택씨가 촬영한 것을 컬러 복원한 사진들이었다. SNS 포스트 첫 페이지에 오른 사진은 금남로에서 찍힌 것으로, 시위대와 계엄군이 대치한 상황에서 하필 계엄군 쪽 시점으로 촬영된 사진이라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보훈처는 “여러 컷의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업로드하여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재조명하려 했으나, 관련 첫 이미지가 계엄군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진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이번 SNS의 캠페인의 목적과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하더라도 5·18유가족이나 한 분의 시민이라도 불편한 마음이 드신다고 하면 결코 좋은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5·18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시민들과 미래세대에게 기려야 할 국가보훈처로서 시민들의 뜻을 충분히 존중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교체 후 사진.
2023.05.18 I 장영락 기자
"이준석 만남보다 광주 온 이유에 집중"...전두환 손자, '주먹밥' 소회
  • "이준석 만남보다 광주 온 이유에 집중"...전두환 손자, '주먹밥' 소회
  •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를 대신해 사죄한 그의 손자 전우원 씨가 지난 17일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 전야제 행사 중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를 만난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우원 씨는 이날 오후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제가 이름도 많이 들어보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정치인분들도 어쩌다 보니까 만나게 돼서 인사드렸다”고 말했다.그는 “‘이때까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죽기 전엔 만날 수 없는 TV 속 인물들이 현실 세계에서 나타나네’라는 일차원적인, 신기한 마음이 컸다”면서도 “‘분명히 정치인분들이랑 같이 있으면 사진이 많이 찍히고 여기에 대해서 기사가 써질 수도 있는데 정작 저는 그분들을 TV에서 많이 뵀다는 거 외에, 저 스스로 가볍게 조사를 해본 거 외에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분들이어서 함부로 말을 걸고 그분들이랑 주도적으로 사진 찍는 게 두렵더라”라고 했다.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 씨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오월 주먹밥’ 나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1980년 5월 광주 공동체를 재현한 시민난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사진=연합뉴스)우원 씨는 또 “주먹밥을 만드는 과정에서 TV 속에서만 보던 분을 뵀는데 ‘와 이런 일이 저에게도’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카메라 수십 대가 제 앞에 있으니까 기쁨과 놀라움도 잠시, 바로 걱정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며 “여기서 이분을 만난 거에 집중하기보다는 제가 왜 이 장소에 와 있는지, 제가 5월 17일에 광주에 오게 된 이유가 뭐고 제가 전야제에 있는 이유가 뭔지, 여기서 제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민주화 운동을 더 많은 분에게 알리고 그분들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많은 분에게 전파할지 집중했다”고 밝혔다.우원 씨는 전 씨 일가 가운데 처음으로 5·18 추모식에 참석했다.그는 이날 전야제 행사 중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펼쳐진 시민난장을 찾았는데, 이곳에서 이 전 대표와 함께 주먹밥을 빚게 됐다.5·18 당시 광주 시민과 상인들이 계엄군에 맞서는 시민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던 현장을 오월 어머니집 회원들과 함께 재현한 것이다.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주황색 앞치마를 두르고 비닐장갑을 손에 끼운 채 직접 빚은 주먹밥을 시민에게 나눠줬다.이 전 대표는 우원 씨와 주먹밥을 빚은 뒤 “정말 우연히 만났는데 진정성 있는 행보가 광주 시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보수 정당의 정치인들도 뭔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저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고 아마 광주 시민을 포함해서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저분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퇴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찾아 추모식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도 ‘우원 씨와 만날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특별히 계획을 갖고 있진 않지만 계기가 된다면 못 만날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1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43주년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한편, 우원 씨는 18일 할아버지 전 씨가 역사적으로 ‘학살자’라고 평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그는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이같이 말하며 “위선자인 것도 같다. 왜냐하면 정말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했으면 국가를 이루는 국민의 희생이 있을 때 그분들의 목숨과 삶을 할아버지 본인의 목숨과 삶의 소중함만큼 생각하고 그분들의 희생을 기리는 행보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고 비판했다.이어 “어떻게든 그때 있었던 그분들의 희생을 폄훼하고 왜곡함으로써 할아버지 본인의 과오가 조금이라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셨고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중 하나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의 욕심이 먼저이고 국민을 생각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잔인한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 되새기고 기억할 수 있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2023.05.18 I 박지혜 기자
"돌 던져도 할 말 없는데"…5·18 전야제 찾은 전우원
  • "돌 던져도 할 말 없는데"…5·18 전야제 찾은 전우원
  • [이데일리 김대연 기자] 5·18 민주화운동 43주년 전야제를 찾은 전우원(27)씨가 “많은 분들이 할아버지 때문에 힘들게 사신다”며 “그런 상황에서 저한테 돌을 던져도 할 말이 없는데 오월 어머니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1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43주년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사진=뉴스1)고(故) 전두환씨를 대신해 5·18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거듭 사죄해온 그는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전야제에 참석한 후 “언젠가는 가족들과 같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밝혔다.전씨는 5·18 전야제에 처음 참석한 소감에 대해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 가족을 대면하며 많은 무력감을 느꼈다”며 “여기 계신 분들은 그때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오랜 기간 얼마나 외롭게 싸워왔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또한 그는 “죄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잘하고 싶다”며 “따뜻함을 보내준 분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전씨는 “언제든지 다시 광주를 방문하겠다”며 “광주에 자주 오는 게 올바른 사죄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2023.05.17 I 김대연 기자
문재인, 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5·18 민주묘지` 참배
  • 문재인, 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5·18 민주묘지` 참배
  • [이데일리 이상원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43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퇴임 후 처음으로 민주 묘지를 참배했다. 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5·18 민주항쟁에 크게 빚졌다”고 밝혔다.문재인 전 대통령이 17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문재학 열사의 묘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사진=뉴스1)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와 망월동 구묘역을 각각 참배했다.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후 참배한 적이 있으나 5·18 추모기간 중 참배한 것은 문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날 참배에는 강기정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도지사도 함께 참석했다.문 전 대통령은 참배 전 방명록에 ‘5·18 민주정신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이후 광주상고 1학년에 재학 중,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최후항쟁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고(故)문재학 열사의 묘소를 찾아 추모했다.문 전 대통령은 국립묘지 제2묘역과 ‘망월동 구묘역’으로 불리는 민족민주열사 묘역도 찾아 참배를 이어갔다. 그는 지난 1987년 6월 9일 거리 시위 도중 최루탄에 피격당해 숨진 고 이한열 열사 묘소를 찾아 추모했다. 문 전 대통령은 추모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전 국민이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렇게 누리는 것도 5·18 항쟁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고 강조했다.이어 그는 “지난해 5·18 기념일을 앞두고 퇴임해서 참배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는데 오늘 참배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며 “우리 국민이 다 함께 5·18 민주항쟁의 의미를 새기며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문제에 대해 그는 “재임 중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개정안을 제출했는데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가 되지 않아 국민투표까지 가지 못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정치인들이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아울러 문 전 대통령은 최근 고(故) 전두환씨의 광주 학살에 대해 사죄하고 있는 손자 전우원 씨와 관련해 ‘만날 생각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의에 “특별히 계획이 있진 않다”면서도 “계기가 된다면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문재인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43주기를 맞아 17일 오전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 분향하고 있다.(사진=뉴스1)
2023.05.17 I 이상원 기자
“할아버지는 학살자” 전두환 손자 전우원, 5·18 추모식 참석
  • “할아버지는 학살자” 전두환 손자 전우원, 5·18 추모식 참석
  •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올해 43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27)가 참석해 관심을 받고 있다.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 씨가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 제례에 참석해 항쟁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 씨는 17일 오전 10시 30분쯤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했다. 검정 정장과 흰 마스크를 착용한 전 씨는 “소중한 자리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짧은 말을 남긴 뒤 추모탑 앞에 섰다.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1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43주년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전 씨는 이날 언론에 “항상 갖고 있던 죄의식에 따른 사과를 하기 위해 추모식 현장을 찾았다”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분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추모식을 통해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 씨가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 제례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최근 전두환 손자 전우원이 광주를 방문해 오월 유족 앞에 눈물로 사죄를 표한 바 있다”며 “당사자의 사죄는 아니었지만, 광주는 그의 어깨를 쓰다듬어줬다”고 설명했다.앞서 전 씨는 지난 3월부터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가족 내부 사정을 폭로해오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 할아버지인 고 전두환 씨를 대신해 피해자들에 고개를 숙이는 등 사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그는 앞서 KBS와의 인터뷰에서 “학살한 자들이 반성해야 되는데, 할아버지는 민주주의의 영웅이라 가르치고 광주민주화운동은 폭동 빨갱이들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가르치셨다”며 “하나하나 퍼즐이 맞춰지면서 그들이 떳떳하게 살지 않고 있다는 걸 배우고,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제가 살면서 배우면서, 비자금이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이렇게 살 수 있는 건지,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또 더탐사와의 인터뷰에서는 가족들을 향해 칼날을 겨눴다. 전 씨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공평하고 소중한 것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삶은 소중한 줄 알면서 남들의 무고한 희생에 대해서 죄의식을 하루도 받지 않는 악마들”이라고 분개하기도 했다.미국에 머무르던 전 씨는 최근 한국을 찾아 5·18 유가족을 만난 바 있다. 당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 등 사죄의 말을 전했고 유가족들은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2023.05.17 I 강소영 기자
초등생들 “아저씨 잘못 아냐 전두환 잘못”…전우원이 눈물 흘린 까닭
  • 초등생들 “아저씨 잘못 아냐 전두환 잘못”…전우원이 눈물 흘린 까닭
  •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고(故) 전두환 씨의 손자인 전우원 씨가 취득세 1억원을 내면서 눈물을 흘린 가운데, 길거리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에게 위로를 얻는 장면이 공개됐다.지난 7일 MBC ‘PD 수첩’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전두환 손자, 전우원을 위로해주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사진=유튜브 캡처)해당 영상은 전두환 씨의 아들 전재용 씨가 운영하는 ‘비엘에셋’ 회사가 오산땅을 취득한 뒤 회사 주식 지분이 있는 전우원 씨에게도 취득세 납부 의무가 주어진 것과 관련, 전우원 씨가 총 취득세 1억 원 중 납부한 금액을 제외한 약 5000만원의 세금을 납부하는 장면이 그려졌다.취득세를 모두 납부한 전 씨는 “어제랑 오늘 해서 다 했다. 이 돈이 우리 가족이 정당하게 벌어서 저한테 준 돈이 아니지 않냐”며 눈물을 보였다.이어 “법을 어겼고 거기에 대한 처벌로 벌금이 나온 것이다. 죄가 있는데 내가 번 돈이 아깝다고 안 내면…”이라며 말끝을 흐리다 “비자금이 흘러간 것이 자녀들한테 있으면 그것도 범죄로 얻은 돈이니까 환수해야 하는 것처럼”이라고 언급했다.그런데 전 씨의 근처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초등학생 2명은 “아저씨가 잘못한 것이 아니니까 괜찮다”라고 전 씨를 향해 말을 건넸다.현재 6학년인 이들은 전 씨가 누군지 아느냐는 ‘PD수첩’ 제작진의 질문에 “전두환 손자분”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전두환이 잘못한 거지 아저씨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며 “기부해서 죄를 덜면 된다”고 전 씨를 위로했다.그러자 전 씨는 “맞다. 너희들은 어린데도 형보다도 옳은 생각을 한다”며 “형은 이런 생각은 항상 했지만, 실천하는 데 27년이 걸렸다”고 말했고,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잘못을 뉘우치는 거니 죄책감은 갖지 말라. 아저씨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아울러 전 씨를 알아보게 된 이유에 대해 “(학교에서) 5·18 조사하고 와서 알게 됐다. 오늘 5·18에 대해서 공부했다. 4·19도 했고, 6월 민주화 항쟁도 (공부)했다”면서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고 했다.전 씨는 아이들의 말에 웃음을 짓고는 “정말 기특하다. 형이 창피해서 어딜 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형이 옳은 일을 하자마자 천사들이 와서 괜찮다고 해주니까 희망이 보인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전 씨는 지난 3월부터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가족 내부 사정을 폭로해왔다. 전우원 씨가 지난 달 31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묘지 내 있는 김경철 열사 묘비를 닦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아버지 전재용 씨와 이혼한 친모 사이의 위자료에 대해 비자금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으며, “어머님 말씀으로는 연희동 자택에 숨겨진 금고가 있고. 엄청난 양의 것들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전 재산이 25만원밖에 없다고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초호화 호텔을 며칠씩 빌리며 풀코스로 몇 십 명이 먹는 가족 여행을 가기도 했다” 등의 폭로를 이어갔다.또 계모 박상아 씨에 대해서는 “평소에 차갑게 대하다가 사람들 앞에서만 친한 척 연기를 했다”고 폭로하며 “내쫓으려 했다”고도 언급했다.전 씨가 폭로를 하게 된 배경에는 어렸을 적 가족들에게서 배운 개념과 커가면서 부딪히는 실정이 달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 아버지(전재용 씨)의 바람 등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앞서 KBS와의 인터뷰에서 “학살한 자들이 반성해야 되는데, 할아버지는 민주주의의 영웅이라 가르치고 광주민주화운동은 폭동 빨갱이들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가르치셨다”며 “하나하나 퍼즐이 맞춰지면서 그들이 떳떳하게 살지 않고 있다는 걸 배우고,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건지 제가 살면서 배우면서, 비자금이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이렇게 살 수 있는 건지,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더탐사와의 인터뷰에서는 “그들의 피로 번 돈”이라며 “모든 사람들의 삶이 공평하고 소중한 것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삶은 소중한 줄 알면서 남들의 무고한 희생에 대해서 죄의식을 하루도 받지 않는 악마들”이라고 분개했다.최근 전 씨는 광주를 찾아 5·18 유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 등 사죄의 말을 전했다.한편 전 씨는 이같은 폭로와 함께 마약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나섰다. 전 씨는 지난 달 28일 마약 투약 혐의로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 불구속 송치된 상태다.그는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을 뻔했을 때 정말 온몸이 부어오르고 칼이 온몸을 찌르는 것같이 아팠다. 숨도 안 쉬어지고 뇌신경이 완전 망가져가지고 고통이 멈추지 않고 증폭돼서 기절을 했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그 길로는 절대 가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2023.05.08 I 강소영 기자
전두환 손자도 사과했는데…전광훈, 광주서 "5.18은 간첩 선동"
  • 전두환 손자도 사과했는데…전광훈, 광주서 "5.18은 간첩 선동"
  •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광주에서 집회를 열었다. 최근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씨가 광주를 찾아 사과를 한 가운데 전 목사는 광주항쟁에 대한 왜곡 발언을 이어갔다. 연합극우 성향으로 본인 목회는 물론 각종 야외 집회에서도 정치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전 목사는 27일 광주 북구 광주역 광장에서 ‘자유마을을 위한 전국순회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지지자 100여명이 참석했다.전 목사는 이 자리에서 ‘광주 항쟁은 북한 간첩이 선동한 폭동’이라는 취지의 왜곡된 주장을 내놨다. 또 “독일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게 속았지만 나중에는 히틀러에게서 벗어났다”며 “광주 시민들이여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벗어나라”고도 외쳤다.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을 향한 비난도 이어졌다. 그는 “(민주당이) 적화통일과 다름 없는 연방제 통일을 원하고 있다“며 평소에 주장하던 대로 문 전 대통령을 간첩 혐의로 구속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5.18 기념재단은 이날 전 목사 발언을 두고 광주 항쟁 왜곡이라고 보고 ‘5·18 왜곡 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방침을 밝혔다.
2023.04.27 I 장영락 기자
한 발의 총성으로 中 현대미술 시작됐으나…<27>
  • 한 발의 총성으로 中 현대미술 시작됐으나…[정하윤의 아트차이나]<27>
  • 작가 샤오루가 자신의 설치작품 ‘대화’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 1989년 2월 5일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개막한 ‘중국현대미술전’에서 샤오루는 자신의 작품을 향해 총을 쐈고, 오픈 3시간 만에 벌어진 이 ‘퍼포먼스’로 인해 전시는 바로 중단됐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들의 노력 끝에 다시 전시를 이어갈 순 있었지만 샤오루와 조력자는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탕! 1989년 2월 5일. 베이징 한복판에 위치한 중국미술관에서 총성이 울렸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대피했고, 전시는 급히 중단됐다. 테러인가?! 대체 누가 살벌한 중국의 수도, 그것도 엄중한 미술관에서 총을 쏜단 말인가! 황당하게도 총을 쏜 사람은 샤오루(肖魯·61)라는 미술가였고, 총을 쏘는 행위는 그녀의 ‘작품’이었다. ‘중국현대미술전’에 출품한 자신의 작품 ‘대화’ 앞에서 총을 쏘는 것이 작가의 ‘퍼포먼스 아트’였던 거다. ‘중국현대미술전’의 수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말미에는 전시장에 폭탄이 있다는 편지가 도착하는 바람에 당국에 의해 전시가 중단되기도 했다. 결국 고작 2주라는 기간도 다 채우지 못하고 끝나버린 이 전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현대미술사에 가장 중요한 전시로 꼽힌다. ‘중국현대미술전’이라는 매우 평범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중국에서 현대미술을 견인한 모든 미술가가 참여했던 전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크고 야심찼기 때문이다. 전국의 젊은 작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가장 야망에 찬 작품을 출품했고,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노 유턴’(No U-turn)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엄청난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은 미술사에 길이 남을 두 큐레이터, 가오밍루(高名潞·74)와 리셴팅(栗憲庭·74)이었다. 당시 마흔 살이던 가오밍루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중국의 29개 지역을 돌며 80개가 넘는 비공식적 예술가그룹을 조사했고, 2000명이 넘는 젊은 미술가 리스트를 만들었다. 가오밍루의 네트워크를 구성한 이들은 모두 예술을 창작하는 자유를 믿으며, 급진적인 형식을 보인 예술가들이었다. ◇‘폭탄 설치 편지’ 퍼포먼스 겹치며 결국 전시 중단이들은 회의를 거듭하며 전시를 준비하던 중 중국에서 아방가르드 미술이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국가기관에서 전시를 열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 어디가 가장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가. 답은 두 말 할 것 없이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이었다. 중국미술관은 1959년에 마오쩌둥 주도로 지어진 10대 건물 중 하나로 그간 국가 주도의 전시를 열며, 국가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수집해오던 명실공히 중국 최고의 미술관이었다. 이곳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관의 공식적 인정을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규모 또한 대단했다. 3만㎡라면, 중국의 혁신적인 현대미술을 알차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비를 진행해 가면서 가오밍루와 공동 큐레이터로 의기투합한 리셴팅은 공공기관과 개인사업가들로부터 국립미술관 임대료를 넉넉히 후원받는 데 성공했다. 전시를 위해 186명의 미술가들이 293점의 작품을 설치했다. 모두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쉬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천서’도 이 전시에 나섰고, 장샤오강 초기 작품 중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하는 대작도 이 전시에 출품됐다. 이외에도 황용핑, 겅젠이, 왕광이, 리샨, 위요한, 딩이, 구원다 등등 중국 현대미술사를 수놓는 수많은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름 한 번 들어봤다고 생각되는 작가는 대부분 참여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중국현대미술전’ 오프닝 전경. 1989년 2월 5일 개막한 전시는 전국에서 모여든 186명의 젊은 미술가들이 293점의 작품을 설치하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노 유턴’이란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2주의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럼에도 현대미술을 향한 야심찬 열기를 집대성할 수 있었던,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로 꼽힌다.다양한 작품이 출품된 만큼, 또 전시 자체가 전위를 표방한 만큼, ‘골때리는’ 작품도 많았다. 샤먼다다 그룹은 미술관을 옮겨보겠다며 밧줄로 미술관을 칭칭 감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고, 자신이 닭이 돼 알을 품고 부화시켜보겠다는 퍼포먼스를 펼친 작가도 있었고, ‘새우를 판다’는 행위예술을 벌이며 온 전시장을 수산물시장처럼 만들어버린 미술가도 있었다. 콘돔을 이용해 거대한 설치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모두는 1989년 중국에서는 아방가르드의 최전선에 있는 작품이었다. 일반 대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지 몰라도 외국 갤러리 관계자들은 이 전시가 역사적인 전시가 되리란 것을 직감하며 전시작들을 공개된 가격 그대로 지불하며 구매에 열을 올렸다. 이렇게 큐레이터와 미술가들이 온 열정을 불태웠던 ‘중국현대미술전’. 그 전시 오픈 3시간 만에 샤오루가 총을 쏜 것이다. 아마도 진정한 중국의 현대미술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리라. 하지만 미술관에는 관람객이 들어차 있었고, 사전에 어떤 공지도 없었기 때문에 경찰에 의해 전시는 즉각 닫힐 수밖에 없었다. 외신이 예술에 대한 탄압이라며 신나게 보도하는 동안 큐레이터들은 열과 성을 다해 재개관 협상을 했고, 천만다행으로 전시는 다시 개막할 수 있었다. 샤오루와 조력자는 체포됐는데, 사용했던 총을 반납하고 여러 관료가 힘쓴 결과 풀려날 수 있었다. 황당하게도 그 뒤에 한 번 더 전시를 중지시킨 ‘폭탄 편지’ 또한 어떤 작가의 퍼포먼스였다고 전한다. 비록 애써 준비한 전시가 중단되는 것은 큐레이터와 다른 작가들에겐 분명 화나는 일이었겠지만, 총과 폭탄 해프닝 덕분에 ‘중국현대미술전’이 더욱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주목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톈안먼사태 이후 작가들 창작 의욕 잃고 칩거 이어져아이러니하게도 자유로운 미술을 집대성한 ‘중국현대미술전’이 막을 내린 직후부터 중국 사회는 ‘자유’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또 한 번의 총과 폭탄 때문이었다. 전시 폐막 두 달 뒤인 1989년 4월, 당비서 후야오방(1915∼1989)이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게 발단이었다. 덩샤오핑(1904∼1997)의 최측근이자 2인자였던 후야오방은 정치인 중 자유를 가장 많이 지지하는 쪽이었고, 때문에 중국 지식인들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권력 다툼 때문이었는지 그는 1986년 이미 정치적 힘을 잃은 터였다. 이후 1989년 무렵 다시 후야오방이 원래의 자리로 복귀할 거란 소문이 돌았고, 그(가 상징하는 자유)를 지지하던 중국인들은 당연히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후야오방이 돌연 사망하면서 사람들은 낙담 속에 그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추모하기 시작했다. 베이징 톈안먼광장은 화환과 꽃으로 뒤덮였고, 애도의 물결은 점차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집회로 변했다.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은 스티로폼으로 ‘민주주의 여신상’을 만들어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과 대치시켰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함께 행진했다고 전해질 만큼 그 규모는 점점 커졌다. 1989년 5월 토시오 사카이가 촬영한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이 스티로폼으로 만든 ‘민주주의 여신상’이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을 마주보고 있다.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집회는 점점 확산됐고 결국 6월 4일 ‘톈안먼사태’가 터졌다. 톈안먼광장은 총과 대포로 화염에 뒤덮였으며 ‘민주주의 여신상’은 탱크에 짓밟힌 채 처참히 부서졌다.당시 시민들의 항쟁을 보고받은 85세의 덩샤오핑은, 6월 3일 시민들을 진압할 것을 승인했고, 결국 6월 4일 새벽 요란한 총과 대포 소리가 울렸고 톈안먼광장은 화염으로 뒤덮였다. ‘민주주의 여신상’은 탱크에 짓밟힌 채 처참히 부서졌다. 역사가 ‘톈안먼사태’라 기록하는 사건이다. 그해 중국미술관에서 미술가들이 쏘아올린 자유를 향한 예술을 덩샤오핑의 군대는 총과 탱크로 진압했다. 불과 넉 달 사이 두 개의 전혀 다른 총소리가 베이징 하늘을 갈랐다. 톈안먼사태 이후 중국 사회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미술도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작가들은 창작의 의욕을 잃고 칩거했다. 전시기획자였던 가오밍루는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리셴팅도 몸을 사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1990년대 들면서 미술은 서서히 활력을 되찾았고, 작가와 큐레이터도 활동을 재기했지만, 톈안먼사태로 입은 내상은 이후 중국 미술을 무기력, 개인주의, 물질주의로 점철시켰다. 만약 ‘중국현대미술전’의 열기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중국의 동시대미술은 훨씬 더 급진적인 형태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역사에 ‘만약’은 아무 소용이 없는 법. 우리는 그저 중국 미술의 열기를 집대성한 전시로 1989년 ‘중국현대미술전’을 기억할 뿐이다. 1989년 베이징에 울렸던 전혀 다른 두 개의 총소리와 함께. △정하윤 미술평론가는…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2023.04.14 I 오현주 기자
"전쟁범죄에 면죄부", 중앙대서도 대일 외교 규탄 성명
  • "전쟁범죄에 면죄부", 중앙대서도 대일 외교 규탄 성명
  •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중앙대학교 교수 113명이 윤석열 정부 대일 외교를 규탄하고 책임을 묻는 성명을 발표했다. 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경희대 교수들의 강제동원 해법 관련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한 학생이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을 읽어보고 있다. 연합인권, 헌법 가치 수호를 위해 뜻을 모았다고 밝힌 중앙대 교수 113인은 13일 “강제동원 ‘제3자 변제’ 해법과 한일 정상회담 등 윤석열 정부가 보인 일련의 외교 행보가 일본의 식민지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최악의 외교 참사”라며 정부 대일 굴욕 외교를 규탄했다.이들은 “일본 정부가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기는커녕 한반도 불법강점, 강제동원, 일본군성노예제, 민간인 학살 등을 부정하고 왜곡하며 적반하장으로 피해자들을 모욕했다”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는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 침략의 잔재를 청산하고,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진정성 있게 실천할 때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이들은 “윤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의 범죄성에 대해 외면하는 발언을 해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3·1항쟁은 일본의 강권적 침략에 맞서 인도와 정의의 깃발 아래 대한의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역사적 기념일에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발언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윤 대통령 역사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또 “강제동원 해법은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 자체를 망각의 늪에 던지려는 조치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제3자 변제를 핵심으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해법의 심각한 결함도 지적했다. 이들은 “기시다 일본 총리가 강제동원을 비롯한 역사 문제에 대해 어떠한 사과나 유감 표시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일본 전범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2015 한일합의 이행’, ‘독도 문제’ 해결,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등 새로운 숙제만 잔뜩 짊어지고 돌아왔다”며 대일 외교 성과를 전반적으로 혹평하기도 했다.더불어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한 반인도적, 반헌법적 강제동원 해법을 즉각 폐기하고, 대일 굴욕 외교 당사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윤석열 대통령을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앞장설 것을 천명한다”며 윤 대통령의 결단도 촉구했다.대학 사회의 대일 외교 규탄은 논란의 한일 정상회담 후 주요대학들에서 이어지고 있다. 11일 부산대 교수와 연구자들이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 규탄 시국 성명을 냈고, 3월 24일에는 성균관대 재학생, 졸업생들이 시국 선언에 나섰다.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최근 ‘월요시국기도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윤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2023.04.13 I 장영락 기자
"본인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는 없다"...전두환, 호헌 발표
  • "본인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는 없다"...전두환, 호헌 발표[그해 오늘]
  •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본인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임기와 현재의 국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인은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내년 2월 25일 본인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사진=‘6.10 민주 항쟁’ 공식 홈페이지.1987년 4월 13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특별 담화를 발표한다. 이른바 ‘4.13 호헌(護憲) 조치’로 일컬어지는 이날 중대 선언의 핵심은 모든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기존의 제5공화국 헌법대로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로 차기 대통령을 뽑겠다는 것이었다.전 대통령은 특별 담화에서 개헌으로 인한 혼란 지속 시 공권력을 투입할 수도 있다는 뜻도 피력했다. 그는 “개헌 논의 지양을 선언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질없는 개헌 타령에만 골몰하여 불법과 폭력으로 사회 혼란을 조성하고 국민 생활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본인은 국민 생활의 안전과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는 모든 권한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밝혀 두는 바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본인의 단임 의지가 확고한 이상, 사실 헌법과 관련하여 본인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집권 여당이 주장한 ‘의원내각제’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극찬한 반면, 야당은 ‘대통령 직선제만 고집한다’며 비판했다.전 대통령이 4.13 호헌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은 지지부진한 개헌 논의로 정국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1985년 치러진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2.12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야당 신한민주당(신민당)은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정통성 문제를 본격 지적하기 시작한다. 연장선상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고, 이를 위해 1000만 개헌 서명 운동을 펼치면서 개헌 논의는 더욱 확산됐다.국민의 고조되는 개헌 열망과는 별개로, 국회에선 1986년 7월 30일 여야 만장일치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발족됐으나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의원내각제를 야당은 직선제를 주장하며 개헌 논의는 평행선만 달린다. 그러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치안본부(현 경찰청)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 사망한 사건이 일어나자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거세지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목소리 역시 더욱 커진다. 단순 쇼크사로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당국의 최초 발표와는 달리 뒤늦게 박 군의 죽음이 고문·폭행 치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개헌 요구 시위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이에 불안을 느낀 전 대통령은 1987년 4월 13일 모든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조치를 전격 단행했다. 바로 4.13 호헌 조치다. 호헌은 기존의 헌법을 수호한다는 의미로 소위 ‘체육관 선거’로 불린 대통령 간선제를 계속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4.13 호헌 조치는 사회 안정이라는 정권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급기야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렸다. 6.10 민주 항쟁이라 명명된 바로 그 사건이다. 전두환 정권과 타협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국민들은 적당히 멈추지 않았다. 국민들의 ‘호헌 철폐! 독재 타도!’의 구호는 높아져만 갔다. 같은 달 26일에는 전국 37개 도시에서 사상 최대 인원인 100만 명 이상이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등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전두환 정권도 어쩔 수 없이 4·13 호헌 조치를 철회한다. 이어 29일에는 민정당 대표 노태우가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특별 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6·29 민주화 선언’이다.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전국에서 5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시위에 참여해 얻은 결과물이었다.전두환 정부 입장에서 4.13 호헌 조치라는 승부수는 최악의 악수(惡手)가 됐지만 결과적으로 이 조치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시계를 앞당긴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
2023.04.13 I 이연호 기자
'전두환 손자' 전우원 母 "무서운 느낌 문자·전화 온다"
  • '전두환 손자' 전우원 母 "무서운 느낌 문자·전화 온다"
  •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할아버지를 대신해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 등을 이어가고 있는 전 대통령 고(故) 전두환 씨 손자 전우원(27) 씨가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해주는 모친이 친척들로부터 받는 고초를 공개했다. (사진=유튜브 ‘김현정의 뉴스쇼’ 캡처)전씨는 1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최근 근황과 직접 촬영한 전두환 사저 내부 영상을 공개하고 앞으로의 행보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씨는 “광주를 다녀와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요즘은 어머니 집에서 머물고 있다. 어머니는 지금 저를 지지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그는 “다른 가족들은 돈도 많고 변호사도 선임할 수 있고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지만 어머니는 안 그렇다”며 어머니가 최근 보낸 문자를 공개했다. (사진=유튜브 ‘김현정의 뉴스쇼’ 캡처)어머니가 전씨에게 보낸 문자에는 “할아버지(故 전두환) 친척 아주머니한테 계속 무서운 느낌의 문자가 오고 전화가 와서 읽어 보지도 않고 지우고 차단해버렸다”며 “진심으로 미안하다. 국민 화합에 좋은 역할을 한 자랑스러운 너를 알아보는 게 좋다”라고 쓰여있다. 어머니 역시 일종의 압력을 받는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전씨는 향후 계획에 대해 “광주를 단발성이 아니라 앞으로도 게속 찾아갈 것”이라 밝혔다. 그는 공부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많았다며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알 수 있는 점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 앞으로 남겨진 재산은 모두 사회에 기부하고 할아버지의 돈이 아닌 제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여드릴 것”이라 말했다.
2023.04.11 I 홍수현 기자
5·18 생존자 "그 어린 사람이 와 울며 사죄, 저희들도 울었다"
  • 5·18 생존자 "그 어린 사람이 와 울며 사죄, 저희들도 울었다"
  •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반란 수괴 전두환씨의 친손자 전우원씨가 광주를 찾아 사죄했다. 전씨를 직접 만난 5.18 시민군 출신 김태수씨는 “진실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광주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총상 피해까지 입은 김씨는 31일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씨는 “우리한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살인마 중에 살인마 아닌가, 그런데 그분도 광주 와서 재판도 몇 번 받으셨지만 말씀도 안 하시고 물어보면 왜 그래, 그런 식으로 대답만 해 주시고 돌아가시니까 너무너무 마음이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었다”며 일체 사죄를 거부했던 전두환씨 행태를 떠올렸다.이어 이날 사죄를 위해 광주를 찾은 전씨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진짜 손자 전우원 씨는 진실된 이야기를 하시고 자기가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진짜 자기 본심의 말씀을 나눠주셨다”고 말했다.김씨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해서 우리를 이렇게 나쁜 사람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시켰는데, 자기가 커나가면서 이 이야기를 듣고 저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우리 할아버지가 살인마였구나, 그래서 그게 너무 죄스러워서 머나먼 광주까지 와서 사죄를 드린다고 그렇게 말씀 주셨다”며 전씨의 말 가운데 인상깊었던 내용도 떠올렸다.김씨는 전씨가 5.18민주묘지에서 자신의 외투를 벗어 묘비를 닦는 모습을 보고는 “제 마음이 뭉클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못된 잘못을 했는데 손자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죄가 없는 그 어린 사람이 와서 울면서 외투를 벗어서 묘비 닦으니까 저희들도 울었다”고 덧붙였다.김씨는 “많은 마음에 도움이 되었다. (다른 가족들도) 꼭 그렇게만 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다른 후손들의 사과도 기대했다.
2023.03.31 I 장영락 기자
"언제든 밥 먹으러 오라"…무릎 꿇은 전두환 손자 품은 광주(종합)
  • "언제든 밥 먹으러 오라"…무릎 꿇은 전두환 손자 품은 광주(종합)
  • [광주=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이런 날도 오고….”, “망자의 영들이 오늘을 분명 기억할 겁니다.”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광주 시민들 대화 중)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방문해 ‘5·18민중항쟁추모탑’ 앞 분향소에서 분향과 헌화를 하고 참배 묵념을 하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31일 오전 9시45분.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27)씨는 회색 정장과 검정 코트 차림으로 약속된 시간보다 15분 일찍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국 후 경찰 조사를 마친 뒤 ‘사과하고 싶다’며 첫 행선지로 곧장 광주를 찾은 전씨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전씨가 등장하자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 및 피해자들과 광주 시민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지난 1980년 5월18일 이후 43년을 기다린 눈길이 그에게 쏟아졌다. 전씨 일가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 5·18과 관련해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어 이날이 첫 사죄 행보가 되는 날이었다.전씨는 이날 마중 나온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과 세 공법단체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 정성국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회장, 양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과 잠시 비공개 면담을 나눈 후 만남의 장이 마련된 리셉션홀에 들어섰다. 그는 자리에 나온 유족 및 피해자들과 함께 일어나 잠시 묵념을 한 뒤 마이크를 건네받았다.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피해자와 유족들과 만나 회견을 하며 사죄의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전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고서 잠시 침묵하더니 “안녕하십니까,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입니다”는 말과 함께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저같이 추악한 죄인에게 이렇게 소중한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며 “이렇게 늦게 찾아뵙고, 더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서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첫 심경을 밝혔다.그는 이어 “제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인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고 학살자”라면서 “가족을 대변해서 인정하고 정말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군부 독재와 두려움 속에서 용기로 이겨낸 광주 시민 여러분께서 저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5·18 당시 자녀를 잃은 오월어머니회 할머니들은 담담히 지켜보다가 이윽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피해자와 유족들과 만나 사죄의 뜻을 밝히고 큰절을 올리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이에 정성국 공로자회장은 “할아버지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고 사과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광주를 방문한 우리 전우원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이번 방문을 통해 5·18 진상 규명과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환영의 말을 건넸다. 이날 발언대에 나온 유족과 피해자 대표들도 격려의 말들로 화답했다.전씨는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과 계기에 대해 “교회 봉사활동을 통한 깨달음과 반성이 있었다”면서 “어머니는 제 선택을 지지하시고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신다”고 밝혔다. 조부친인 전 전 대통령과는 생전에 5·18과 관련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 이날 자리에 앞서 따로 공부를 했다고도 했다.전씨는 회견을 마치고 5·18 피해자와 유족들 앞에서 거듭 사죄의 뜻을 밝히며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기념관 뒤편에 5·18 희생자들의 성함이 새겨진 팻말이 한데 모인 추모관을 찾아 애도한 뒤, 곧장 광주 북구에 위치한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았다.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방문해 작성한 방명록 글.(사진=김범준 기자)전씨는 이날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와 함께 100여명의 광주 시민들과 취재진의 맞이 속에서 5·18 추모곡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묘지 입구 ‘민주의 문’을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그는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 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는 글을 남겼다.이어 전씨는 김범태 관리소장의 안내와 함께 5·18 첫 희생자 김경철 열사, 12세 나이로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전재수군 묘, 행방불명자들의 묘, 아직까지 신원 확인이 안 된 ‘무명 열사의 묘’들을 차례로 참배했다. 전씨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참배한 묘비와 비석에 새겨진 희생자 사진들을 직접 하나하나 닦고 묵념하며 애도를 이어갔다. 이를 지켜본 한 시민은 “본인 외투로 하지 말고 이 수건으로 하라”며 건네자 전씨는 “괜찮다”며 정중히 사양하기도 했다.곳곳에 참배를 마치고 나온 전씨는 다시 민주의 문 앞으로 와서 “이렇게 와서 보니까 정말 죄송하고 창피한 마음뿐”이라며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곳에 묻힌 5·18 당시 중학생이던 고(故) 문재학 군의 모친 김길자씨는 전씨의 손을 꼭 잡고서 “아직 젊으니까 건강도 잘 챙기시라”고 말하며 따뜻한 포옹을 나눴다.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고 전재수 열사의 묘비를 닦으며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어 전씨는 다시 시내로 가서 점심으로 한정식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날 오후 3시쯤 광주 동구 아시아문화전당(옛 전남도청사)을 찾았다. 5·18 당시 전남도청이었던 이곳은 광주 시민들과 계엄군이 마지막으로 대치한 최후 항쟁지다.전씨는 이곳에서 ‘도청지킴이’를 하고 있는 오월어머니회 소속 회원 12명과 만나 한 명씩 손을 잡고 사죄하며 면담을 나눴다. 할머니들은 전씨를 박수와 함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배고프면 언제든지 밥 먹으러 오라”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전씨는 이날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245를 찾았다. 이 건물은 5·18 당시 군 공수부대의 헬리콥터 사격을 받은 245개의 실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끝으로 전씨는 “광주에서 너무 언론에 노출되면 진정성이 퇴색돼 보일 수 있어 내일은 비공개 일정으로 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경찰의 출국 금지 조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라 괜찮다”라며 “조만간 서울로 올라가 거처를 마련하고 (마약류 투약 혐의) 경찰 조사도 성실히 받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떠났다.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가운데)씨가 31일 오후 5·18민주화운동 최후 항쟁지였던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사를 방문해 유가족 오월어머니회와 만남을 가진 후 5·18 관련 단체 관계자들과 손을 잡고 나서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
2023.03.31 I 김범준 기자
전두환 손자 전우원 '민주주의 아버지' 언급한 이유
  • 전두환 손자 전우원 '민주주의 아버지' 언급한 이유
  •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27)가 31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이후 쓴 ‘방명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씨는 할머니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내인 이순자씨가 과거 언급한 발언을 의식해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며 작성한 방명록 글. (사진=뉴스1)전 씨는 이날 오전 11시30분쯤 5·18기념재단 이사장과 5월 3단체장 등과 함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전두환 일가 구성원이 5·18 묘역을 참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전씨는 참배에 앞서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라고 적었다.전 씨가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의 조모인 이순자씨가 “민주주의의 아버지는 전두환”이라고 한 말을 빗댄 것으로 풀이된다.앞서 이순자씨는 지난 2019년 1월1일 극우성향의 인터넷매체 ‘뉴스타운’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며 “(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단임제를 이뤄서 지금 대통령은 5년 이상 더 있으려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는 전 전 대통령이 지난 1987년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6월 항쟁이 거세지자 직선제·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을 수용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5·18 유가족인 김길자 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연합)해당 발언이 보도된 후 5?18 유족들은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강력 규탄 시위를 열고 항의했다.전씨는 이날 5·18 첫 희생자 김경철 열사, 12세 나이로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전재수군 묘와 행불자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또 전씨는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채 5·18 유족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5·18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항쟁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를 안고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전씨는 할아버지인 전 전 대통령을 ‘죄인’, ‘학살자’로 규정하며, 전씨 일가 중 5·18 피해자와 유족에 처음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5·18 민주 묘지 방문에 앞서 전씨는 이날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 리셉션 홀에서 5·18 유족과 피해자와 첫 공식 만남에서 “제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고 학살자임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한다”고 사죄했다.그러면서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또한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만, 광주 시민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울먹이기도 했다.5·18 민주 묘지 참배를 끝낸 전씨는 5·18 당시 계엄군이 쏜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과 옛 전남도청을 방문한다.
2023.03.31 I 백주아 기자
"오래 살고 보니 이런 날도"…무릎 꿇은 전우원 품은 5·18 유족
  • "오래 살고 보니 이런 날도"…무릎 꿇은 전우원 품은 5·18 유족
  • [광주=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족들은 사죄 없이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대신 손자 전우원(27)씨가 처음으로 사죄의 뜻을 밝히자 화답했다.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5·18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고 큰절을 하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31일 5·18 공법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와 5·18기념재단, 5·18 피해자와 관계자 100여명은 이날 오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리셉션홀에서 전씨와 처음으로 만났다.전씨가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또한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울먹이자 5·18 유족과 피해자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5·18 유족인 김길자 여사는 주머니에서 꺼낸 메모지를 들고 “큰 용기를 내 여기까지 와서 감사하다”며 “광주에 처음으로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5·18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항쟁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다. 발언 내내 눈물을 훔친 김 여사는 “전씨가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광주를 제2의 고향처럼 생각해달라. 차분히 얽힌 실타래를 함께 풀어가자”고 강조했다.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 ·18민주묘지 내 희생자들의 묘소를 찾아 자신의 옷으로 묘비를 닦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5·18 당시 구금돼 고초를 겪다 풀려나 부상 피해를 안고 살아온 김관씨는 “20대 초반에 군홧발에 짓이겨 만신창이였다”며 “지금은 60대 중반이 됐지만,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는 치료받지 않으면 연명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씨가 오늘 사죄한 용기에 대해 진짜 꼭 안아주고 싶다”며 “이제는 진실이 규명될 때”라고 말했다.전씨 사과를 계기로 5·18 가해자들의 사죄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이어졌다. 정성국 5·18 공로자회장은 “할아버지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광주를 방문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전씨의 뒤를 이어 다른 일가족들도 5·18 이후 43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용기를 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5·18 유족 측 한 관계자는 “전씨가 끝까지 노력해주면 좋겠다”며 “전두환이 죽고 나서 많은 가해자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많은 양심 고백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전씨와 유족들의 만남을 지켜본 한 광주 시민 A씨는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날도 온다”며 “죽은 자는 말이 없어도 망자의 영들이 다 보고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5·18 유가족인 김길자 여사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김범준 기자)이날 5·18 피해자와 유족들 간 첫 공식 만남 이후 전씨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유족들 앞에서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울먹이던 5·18 유족들은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며 전씨를 꼭 안아주며 화답했다.이후 전씨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 묘지로 이동해 5·18 최초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와 공식 사망자 중 가장 어린 전재수군(당시 11세), 고등학생 시민군이었던 문재학 열사의 묘소를 참배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전씨는 김 열사와 전군, 문 열사의 묘소에서 묵념했다. 전씨가 입고 온 검은 코트를 벗어 묘비석을 닦자 한 시민이 흰 수건을 건넸지만, 그는 “괜찮다”며 본인의 옷으로 묘비석을 닦았다.전씨가 묵념을 마치자 김 여사는 “광주로 올 때 얼마나 마음속으로 두려웠냐”며 “그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와서 사과한다니 마음이 풀린다. 위로 받았다”고 말했다.전씨는 필요하다면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와 5·18 기념식 등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 묘지를 찾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
2023.03.31 I 김범준 기자
1 2 3 4 5 6 7 8 9 10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