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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74주년…이낙연 "제주에도 눈물 없는 봄이 오기를"
-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제주 4·3 항쟁 74주년을 맞은 3일 “제주에도 눈물없는 봄이 오기를 소망한다. 이제 제주도민들께서 마음껏 기뻐할 줄도 아시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제74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제주 4·3, 눈물 없는 봄의 시작이기를`이란 글에서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제주도민 여러분께 멀리서나마 위로의 인사를 올린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 전 대표는 스무 살 8월, 난생 처음 제주에 간 때를 떠올렸다. 이 전 대표는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고 8시간,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바다는 눈물겹도록 찬란했다. 뛰어내려도 빠지지 않을 듯이, 바다 표면은 잔잔하다 못해 단단해 보였다”면서 “그렇게 도착한 제주.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검은 땅과 돌, 진초록의 들과 산, 짙푸른 하늘과 바다. 제 상상을 뛰어넘은 아름다움에 저는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이어 “그때 4·3의 역사를 잘 알지 못했다. 그 턱없는 눈물은 가눌 수 없도록 넘쳤던 청춘의 폭포 같은 분출이었을 것”이라면서 “그 후로 제주에 갈 때마다 새로이 느끼게 됐다. 제주의 눈물겹도록 찬란한 아름다움에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울음이 배어있을 지도 모른다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작년 봄 국회에서 4·3 특별법을 전면 개정해 피해자 보상의 길을 열었다. 올해부터는 1인당 9000만원의 보상이 시작된다”며 “특별법 전면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그 통과를 위해 노심초사 애쓰신 오영훈 국회의원과 보상의 결심을 해주신 문재인 대통령, 홍남기 부총리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아울러 “유가족들의 마음을 모아주신 양종훈 당시 평화 재단 이사장, 송승준, 오임종 전현직 유가족 회장 등 지도자들께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 의원은 전날 4·3 희생자 유족회 주관으로 열린 위령 제례에서 유족회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보듬는 대화의 시간을 보냈다. 오 의원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희생자 배·보상 내용을 담은 제주 4·3 특별법 개정에 이어 최근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 무죄 판결까지 내려지면서 4·3 해결에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됐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위령 제례에 참석하게 돼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는 자리에서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 유족을 만나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 이재명 셀프소개 "인권변호사 선택은 노무현 조언 때문'[전문]
- [이데일리 배진솔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2일 제1회 방송연설문을 통해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했던 이야기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이 후보는 판검사가 아닌 인권변호사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저라고 왜 마음 속에 출세욕이 없었겠냐”고 말하면서도 “`돈이 아니라 사람을 변호한다`는 원칙, 지금까지 잘 지켜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2일 인천시 부평구 부평역 앞 광장에서 열린 ‘인천 재도약 앞으로, 인천 경제 제대로!’ 부평 유세에서 지지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 후보는 이날 오후 KBS1 ‘대통령 후보 제 1회 방송연설문’에서 ‘사법고시 합격한 뒤 꽃길을 마다하고 인권변호사가 됐는데 내적 갈등 없었냐’는 국민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날 이 후보는 “저 이재명을 국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무엇보다 제가 판검사가 되면 가장 좋아하실 제 어머니의 큰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며 “그러던 중 (당시)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용기있게 해라. 변호사 내가 해보니까 절대로 안굶는다’ 이 말이 제 가슴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국민이 보내준 질문 여덟 가지를 읽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말을 이어갔다. ‘어린 시절, 이재명은 어떤 아이였냐’는 질문에는 “경북 안동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이라고 하는 화전민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저희 집은 무척 가난했다”며 “보기에는 이래도 어린 시절 저는 애교가 참 많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엄마’ 이렇게 큰 소리로 불렀다. 오염되지 않은 산골에서 어머니의 큰 사랑을 듬뿍 받으며 구김살 없이 살아왔던 제 유년은 가장 따뜻하고 그리운 기억”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소년공 시절 기억남는 장면 세 가지’에 대해선 △여덟 식구가 생활하던 단칸방과 일기 △공장의 프레스 기계 △교복 입은 학생들을 부러워하던 제 모습 등을 꼽았다. 이 후보는 소년공 시절인 1980년 8월 20일 일기에 적었던 글 하나를 소개하며 ‘어렵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한번 해볼까’를 읽었다. 이 밖에도 이 후보는 ‘불우한 환경에 엇나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어머니의 힘에 대해 말했다. 이 후는 “어머니가 ‘우리 넷째는 나중에 꼭 잘 될 거야’라고 해주신 말이 제겐 신비의 명약이었다”라며 “후보가 되고 전국을 다니며 어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난다”고 말했다. 또 이 후보는 국민들께 ‘가난은 이재명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대학생 이재명을 가장 크게 성장시킨 것’, ‘정치를 하게 된 계기’ 등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2일 오후 인천 부평역 광장에서 열린 ‘인천 재도약 앞으로, 인천 경제 제대로!’ 부평 유세에서 지지자들과 주먹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다음은 이 후보의 방송연설문 전문.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기호 1번 이재명입니다.오늘부터 방송 연설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저 이재명을 국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오늘은, 국민께서 보내주신 질문들에 답하는 방식으로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어린 시절, 이재명은 어떤 아이였나요? 한마디로 친구들과 잘 놀고 활발하고 씩씩한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성적표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저는 경북 안동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 이라고 하는, 화전민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7남매 중에서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고향 집은 지금도 버스가 안 다닐 만큼 첩첩산중 오지입니다. 매일 15리 길을 두 시간 반을 꼬박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엄청 먼 길이였습니다.저희 집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쯤 돈을 버시겠다고 먼저 고향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남은 다섯 남매를 키우시느라 남의 집 일을 해주시며, 정말 허리 펼 새도 없이 일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래도 어린 시절 저는 애교가 참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엄마 이렇게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멀리 밭에서 김을 매시다가도 호미를 쥔 채 일어나셔서 저를 기다려주셨습니다. 저는 총알처럼 달려가 어머니 품에 덥석 안기곤 했습니다. 어머니 품은 늘 푸근했고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났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산골에서, 어머니의 큰 사랑을 듬뿍 받으며 구김살 없이 살아왔던 제 유년은 제게 가장 따뜻하고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다음 질문 이런 게 있군요.열세살 어린 나이에 소년공이 됐는데, 소년공 시절 기억에 남는 장면 세 가지 어떤 걸 꼽을 수 있나요?첫 번째 장면은 여덟 식구가 나란히 누워서 함께 자던 단칸방, 그리고 그 단칸방 귓퉁이에서 작은 상을 요만한 상을 펴놓고 앉아 일기를 쓰던 제 모습입니다. 소년공 시절의 일기를 보면 아프고 서럽던 일들이 정말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들 모두 성남으로 이사를 했는데요. 일기에는 ‘이사 오던 날, 비는 주룩주룩 한없이 내리고 나는 눈이 아파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상대원동 달동네 꼭대기 작은 월세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생계를 위해서 온 가족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저도 중학교 대신 공장에 다녔습니다. 처음엔 목걸이 공장에서 끓어오르는 납증기를 들이마시면서 매일 12시간씩 납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월급을 더 준다 이런 곳이 있어서, 십리 길을 걸어서 목걸이 공장에 다녔습니다.석 달치 월급을 채불한 사장이 야반도주를 하는 바람에 석 달치 월급을 모두 떼인적도 있었습니다. 너무 서러워서 어머니 품에 엎어져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여러 공장을 다녔는데, 여러 상처 때문에 온몸엔 흉터가 많이 남았습니다.두 번째 기억에 남는 장면은, 공장의 프레스 기계입니다. 열여섯 살에 야구 글러브와 스키 장갑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손재주를 인정받아 프레스 기능공이 됐습니다. 가죽을 자르는 프레스 기계를 다루는 일이었습니다.그런데 여기에서 프레스 기계에 팔이 물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성장판이 손상되었는데,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했습니다. 산업재해 보상조항 이런 거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은 저 자신만 탓했습니다. 사고를 당하고 고참들에게 폭행을 당하며 저는 절망했습니다. 어느날 저를 괴롭히는 그 대단한 공장관리자가 고졸임을 검정고시로 고졸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공부가 유일한 살길로 보였습니다. 공장에서 퇴근하면 곧바로 학원으로 달려가고, 밤잠 줄여가며 열심히 공부해서 고입검정고시, 대입검정고시도 빠르게 합격했습니다. 절박하게 매달린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저는 소년공이었고, 관리자가 될 길도 없었고, 대학에 갈 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때쯤 일기에 적었던 글이 기억납니다. ‘어렵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한번 해볼까?’1980년 8월 20일 제 일기장입니다. 희박한 가능성 하나를 붙잡고 고된 하루하루를 견딘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세 번째 장면, 그건 아마도 교복 입은 학생들을 부러워하던 제 모습입니다. 우리 또래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갈 때 저는 작업복을 입고 그들을 거슬러서 공장에 다녔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시장청소부 일을 하셨던 아버지를 도우러 나갔다가, 교복 입고 등교하는 여학생들을 피해 골목 구석으로 숨은 적도 많았습니다. 예민한 사춘기에 초라한 제 모습이 아마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던 것 같습니다.성남시장 시절 시작됐던 무상교복 정책, 사실은 교복에 대한 절절한 저의 경험이 들어있습니다.세 번째 질문은, 불우한 환경에서도 어떻게 엇나가지 않고 청소년기를 지날 수 있었나요? 입니다.전적으로 가족의 힘이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힘이 정말로 컸습니다. 제 어머니는 시장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휴지를 팔고 사용료를 받는 일을 하셨습니다 여성으로서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부업을 손에서 떼지 않으셨습니다.남매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에 공장에 다니는 저를 정말로 늘 안쓰러워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출근하기 전에 항상 제 손을 잡고 공장에 바래다주셨습니다. 제가 야근에 철야에 늦게 퇴근하면, 그 늦은 새벽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어머니와 손잡고 함께 걷던 새벽 골목길, 그 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목이 멥니다.그때도 지금도, 어머니는 저에게 하늘입니다. 그 고단한 삶 속에서도 어머니는 제게 넘치는 사랑을 언제나 듬뿍 주셨습니다. 언제나 전적으로 믿어주셨고 제가 어떤 결정을 하든 100% 다 지지해 주셨습니다. 늘 “우리 넷째는 나중에 꼭 잘 될 거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제겐 신비의 명약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을 가진 마법의 말씀이었습니다. 평생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는 많은 한을 남기시고 2년 전 이맘때쯤 돌아가셨습니다.제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전국을 다니면서 어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났습니다. 제 어머니처럼 평생 고단하게 사셨던 분들이 제 손을 꼭 잡고 ‘이 후보, 우리 좀 잘 살게 해줘’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정말로 우리 국민의 삶을 제대로 살피는 유능한 정치인이 돼야겠다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네 번째 질문입니다. 가난은 이재명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가난이 자랑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운 것도 아닙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가난 때문에 저는 더 빨리 자랐고, 더 빨리 더 많이 세상을 알게 됐습니다.가난이 죄도 아닌데, 가난해서 겪어야 했던 그런 부당함들에 대해서는 제가 유난히 민감했던 것 같습니다. 지독했던 가난에서 탈출했지만 저는 그때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성남을 떠나지 않고 가난한 힘든 이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인터뷰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제가 지금 정치를 하는 이유도 제가 탈출했던 그 가난과 절망의 웅덩이 속에서 여전히 고통받는 모든 분들에게 공정한 세상,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입니다. 다섯 번째 질문입니다. 대학생 이재명을 가장 크게 성장시킨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5.18 광주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법대생이 됐을 때, 저는 진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대학생이 됐고, 거기다가 학비면제와 생활비까지 월급의 3배를 받으면서 다니게 됐으니까요개인적 영달을 꿈꾸며 희망에 들뜨던 82년 어느 봄날, 교정에서 유인물을 뿌리다 사복 경찰에게 거칠게 잡혀가는 학우들을 보았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80년 5월 광주 민주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비디오를 봤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신문과 TV에서 ‘폭도’로 보도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전혀 다르다는 걸 그리고 내가 그들의 충견이 돼서 2차 가해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5.18은 저를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고, 그래서 제가 5.18 광주를 사회적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제가 그 일 때문에 개인적 영달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게 되었습니다.다음 질문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꽃길을 마다하고 인권변호사가 됐는데 솔직히 내적 갈등은 없었습니까? 저라고 왜 마음속에 출세욕이 없었겠습니까? 사법연수원 최종 성적이 판검사 임용권 안에 들다 보니까 사실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판검사가 되면 가장 좋아하실 제 어머니의 그 큰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25살 초보 변호사로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인권변호사의 강연을 듣게 됐습니다. 바로 노무현 변호사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용기있게 해라, 변호사 내가 해보니까 절대로 안굶는다”이 말씀이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밥은 안 굶을 테니 제 욕심을 조금 덜어내면 억압받고 억울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물다섯 살 새파란 변호사가 소년공으로 자라왔던 성남에서 사무실을 열게됐습니다.원칙은 두 가지였습니다.“돈이 아니라 사람을 변호한다”“이익이 아니라 정의를 변호한다”지금까지 잘 지켜온 것 같습니다. 일곱 번째 질문은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인데요. 성남에서 노동·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때, 성남 본시가지에 큰 병원 두 군데가 한꺼번에 폐업을 했습니다. 50만 시민들이 한밤중에 응급상황이 벌어져도 멀리 분당까지 가느라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시립병원을 위해서 시민들이 나섰고, 저는 시민운동 대표로서 성남시립병원 설립추진위 공동대표가 됐습니다. 순식간에, 20만 명이 지지 서명을 할 만큼 시립의료원 설립은 절박한 일이었습니다. 2004년 3월, 주민발의 조례가 성남시의회에 상정됐는데, 그때 다수당이던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47초 만에 날치기로 폐기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방청했던 시민들과 제가 너무 분하고 원통해서 본회의장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게 특수공무집행방해죄가 되었습니다. 시의회에서 항의하며 운 사건으로 두 번째 수배가 떨어졌습니다.수배중이던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 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수배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간입니다. 이제 시장이 돼서 직접 시립병원 우리 손으로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정치의 길로 들어선 제 운명의 시간이었습니다.그리고 2010년 제가 성남시장이 돼서 준비를 거쳐 2013년 성남시의료원을 착공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9년, 서른두 개의 음압 병상을 갖춘 성남시의료원이 문을 열었고, 지금은 코로나 상황에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재명의 정책에는 이재명의 삶이 녹아있다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 어떤 이유에서입니까?저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책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했고, 또 실제 많이 만들었습니다. 성남시장 8년, 경기도지사 3년 동안 제 모든 정책에는 가난하고 참혹했던 저의 삶, 평범하고 어려운 우리 국민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아버지가 시장에서 주워온 거의 상한 과일밖에 먹었던 저의 개인적 경험이 경기도의 어린이 건강과일 지원 사업 모태가 됐습니다. 검정고시 학원비 7000원이 없어서 공장에 다니며 산재장애인이 되어야 했던 제 개인적 경험이 청년기본소득의 뿌리가 됐습니다.20만원이 없어서 일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 현실이 경기도의 소액 극저 신용대출 사업의 출발입니다. 누군가는 포퓰리즘이라 비난하지만, 성남시민과 경기도민들께서 크게 만족하셨고, 그 성과 때문에 저를 지금 이 자리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시절 공약이행률 평균 95%가 넘습니다. 실천했고, 실적으로 실력을 증명했다고 자부합니다.저는 자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선택해 주시면, 성남시민, 경기도민들이 그러셨듯이,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때 내 삶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실적으로 체험시켜 드리겠습니다.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번 3월 9일. 저 이재명을 선택해 주신다면 위기에 강한 경제 대통령으로서 위기 극복을 넘어 기회가 넘치는 성장국가, 희망과 꿈이 가득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서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야권 단일화 `필승카드`…`밀당이냐 담판이냐` 기로[이데일리 여론조사]
- [이데일리 이성기 권오석 기자]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양김’(김영삼·김대중)의 분열 탓에 승리는 당시 노태우 민정당 후보에게 돌아갔다. 36.64%의 역대 최저 득표율, 그야말로 ‘어부지리’였다. 진영 간 대결 양상, 박빙의 지지율 차이를 보일 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승리의 법칙’으로 통한다.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가 엠앤엠(M&M)전략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선에서도 ‘단일화’는 정권 교체를 위한 ‘필승 카드’라는 점이 다시금 확인됐다. 다자 구도 대결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쳤지만, 단일화를 전제로 한 대결에서는 야권 단일화 후보 모두 이 후보를 오차범위 밖의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픽=문승용 기자◇단일화 성사 시 尹·安 누구든 李에 압승…견제 나선 與 다자 대결에서 박빙의 승부 양상은 단일화 성사 시 야권 단일 후보에게로 무게의 추가 확연히 기울었다. 오차 범위 내(윤석열 38.3%, 이재명 34.3%) 승부는 단일화 대결에선 유권자의 민심이 야권 후보(윤석열 41.6% vs 이재명 32.4%, 안철수 47.8% vs 이재명 27.1%)에게로 쏠렸다. 문제는 과연 야권 단일화가 성사될 수 있을지에 달린 형국이다. 유권자 중 절반 정도(47.5%)는 ‘대선 주자 모두 끝까지 완주할 것’으로 전망했고, 단일화·자진 사퇴 등 후보들 간 협상·타협이 이뤄질 것이란 응답은 34.7%에 그쳤다. 판단을 유보(잘 모르겠다·무응답)한 응답자는 17.8%였다. 이념 성향별로도 전망이 엇갈렸다. 진보 성향 응답자는 ‘끝까지 완주할 것’이란 응답이 62.7%로 ‘단일화나 자진사퇴할 것’(27.0%) 보다 배 이상 높았지만, 보수 성향 응답자의 경우 ‘단일화·자진사퇴’ 응답률(47.2%)과 ‘완주할 것’(40.6%)이란 응답과 별 차이가 없었다. 정권 재창출과 정권 교체 어느 쪽을 더 지지하는지에 따라 응답 역시 진영별로 나뉜 것으로 풀이된다.아울러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제 사전에 단일화는 없다”고 일축했지만 민주당과 정의당이 연대할 경우 이재명 후보가 오차범위 내 1위로 올라서는 흥미로운 결과도 나왔다. 야권 단일화가 불발된 상황에서 심 후보가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할 경우 이재명 후보 33.5%, 윤석열 후보 31.8%, 안철수 후보 13.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리한 ‘밀고 당기기’냐 ‘통 큰 담판’이냐, 기싸움 돌입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은 치열한 기싸움에 돌입했다.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본부장은 “2~3일 안에 (결정을) 못 하면 국민의힘의 의사가 없다고 봐야 한다”며 압박에 나섰다. 특히 국민의힘 측이 제기한 역선택 가능성 우려에 “ 역선택 방지 조항은 국민의힘 경선에 없는 조항이고, 그걸로 윤 후보도 대통령 후보가 됐고 이준석 대표도 당선됐다”고 강조한 뒤 “지금 와서 그걸 문제삼는 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권영세 국민의힘 선대본부장은 “지금은 ‘통 큰 단일화’가 필요하다”면서 후보 간 일대일 담판을 거듭 강조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길 수 있도록 윤 후보 측에서 안 후보에게 ‘출구’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장성철 공감과논쟁센터 소장은 안 후보의 전격 제안과 관련, “(야권 단일화를 위해)양보하고 ‘철수’할 수 있는 명분을 줬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단순히 선거 비용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선 이후 안 후보가 정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란 얘기다. 장 소장은 “한 자릿수 지지율로는 대선 이후 안 후보의 입지와 미래는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다가올 지방선거와 총선, 향후 대선에서 지지 세력 기반 없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 명분을 주면 정권 교체라는 대의 명분을 위해 양보를 선언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단일화 담판을 하더라도 안 후보 측에 무엇을 내어줄 것이냐가 과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공동정부 운영 방안이 거론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셈법 탓에 지리한 밀고 당기기가 이어질 수 있다. 명분은 퇴색된 채 ‘자리 나눠먹기’라는 비판으로 민심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 소장은 “‘안 후보의 정치 철학과 가치에 충분히 공감하고 공동 정부를 운영하자’는 식의 담판을 통해 지난한 과정을 겪지 않은 채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조사는 피엠아이 퍼블릭(PMI Public)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13명(응답률 73.4%)을 상대로 지난 8~10일 간 사흘에 걸쳐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설문 대상은 피엠아이 퍼블릭 자체 구축 패널 가운데 지역, 성별, 연령별 비례할당 표집되었고 온라인 조사로 이뤄졌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 뜨거운 광주 민심 확인한 이재명 "광주는 저의 사회적 어머니"
- [광주=이데일리 배진솔 기자] “저에게 육체적 생명을 준 것은 저의 어머니지만 광주는 저를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사회적 어머니입니다.”설 직전 호남 민심 달래기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7일 오후 광주 충장로 우체국앞에서 광주 시민들을 향해 이같이 외쳤다. 약 1000여명으로 가득찬 광주 충장로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후보가 거리로 진입하기 전부터 ‘이재명’ 연호로 가득 찼다. 이 후보가 연설을 마친 후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거리를 메웠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7일 광주시 동구 충장로를 방문, 이낙연 전 대표와 손을 잡고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 후보는 당초 이날까지 경기 지역에서 유세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다 전날 갑자기 계획을 변경했다. 설 전 광주 시민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광주 아이파크 사고 현장으로 가기 전 광주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갑자기 광주 일정을 잡은 건 사실이다. 저희가 너무 무심했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하고 하루라도 빨리 위로를 드리고 대안도 말씀 드려야겠다는 게 첫 번째 (방문) 이유”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충정로 거리에서 약 한 시간 가량 시민들과 소통했다. 이대남(20대 남자), 이대녀(20대 여자), 발달장애아를 둔 어머니, 70대 노인 등 시민들의 지지 연설을 모두 경청해 들었다. 이 후보는 이후 “광주 시민 여러분을 뵙게 되니까 꼭 오랫동안 헤어진 제 식구를 만난 것 같다”며 “개인 영달을 꿈꾸면서 판·검사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지 하지 않고, 180도 제 인생 좌표를 바꾸게 한 게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이다. 광주 민주항쟁이 가르키는 길을 따라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저는 광주가 낳은 사회적 아들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7일 광주시 동구 충장로를 방문, 이낙연 전 대표와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 후보는 거듭 광주를 추켜세웠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을 진짜 주인인 나라로 만들었던 원동력이 바로 광주에 있다”며 “우리 개혁 민주진영의 중심은, 그 핵심 정신은 바로 광주 정신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선 후보를 향한 비판도 했다. 이 후보는 “안보를 악용해서 정치적 이익을 획득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그건 안보 포퓰리즘이다. 절대 눈 똑바로 뜨고 봐야한다”며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국가 불안을 야기하고, 휴전선 긴장을 조성하고 남북간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 경제 손실이고, 궁극적으로 전쟁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특히 이날 이 후보의 유세에 전면 지원 나선 이낙연 전 대표는 시민들이 ‘이낙연’ 이름을 부를 때마다 옆에 있는 이 후보를 가리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전 대표는 “오늘의 주인공은 이재명 후보입니다. 앞으로 모든 연호는 이재명으로 통일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제가 못난 탓에 여러분께서 부족한 저에게 걸었던 기대가 부흥되지 못해 죄송하다”며 “그러나 시민 여러분, 오늘 이재명 후보를 뜨겁게 품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아직도 못난 구석이 많아 마음에 안 들 때가 많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수권정당으로 바로 서도록 광주 시민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말로 사죄를 대신하겠다”며 이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앞서 방문했던 광주 북구의 말바우 시장에서도 상인들의 지지가 뜨거웠다. 이 후보가 지나가는 거리에 광주 시민들이 연호하며 뒤섞여 시장통은 몇 걸음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후보의 이같은 광주 긴급 방문은 최근 60%대에 머무는 광주·호남 지역의 지지율을 설 연휴 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광주 시민들에게 “아들 딸들에게 전화해달라”며 “광주 믿고 제가 걸어왔던 일 따라서 걸어가면 목표 이루시게 해주시겠죠. 여러분이 희망입니다”고 강조했다.
- 이재명 "광주 군공항 이전 해결…남부권 교통망 수도권처럼"[전문]
- [광주=이데일리 배진솔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7일 광주 군공항 이전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지역의 해묵은 현안인 군공항 이전 문제를 해결해 민주당 정치적 기반인 호남 민심을 잡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광주·전남 지역 교통망을 수도권 수준으로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6일 오후 경기 파주시 금촌역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 후보는 이날 오전 전라남도 광주 공항에서 광주 공약 7가지와 광주·전남 공동 공약 3가지를 발표했다. 이 후보는 “광주 군공항 이전은 역대 정부의 중점공약이었음에도 수년 동안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며 “광주 군공항을 가덕도 신공항 지원에 발맞춰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 “그 부지에는 4차산업혁명 기술이 실증되는 ‘스마트시티’ 조성사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광주 지역 가장 큰 해결과제로 꼽히는 군공항 이전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또 광주를 △인공지능 특화 도시 △미래 모빌리티 융합 클러스터 △광주역~전남대 ‘스타트업 밸리’ △그린수소트램 시범사업 도시 △아시아 문화수도 등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후보는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이라며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문화해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시키겠다”고 말했다. 추가로 광주·전남 공동 발전을 공약도 내놓았다. 이 후보는 철도·공항·항만을 잇는 광주·전남 트라이포트 추진을 적극 지원해 새로운 남부권을 열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광주~나주 광역철도망을 신속히 추진하고, 광주~화순 구간에 도시철도를 연장하는 것이다. 광주 송정역의 복합환승센터 기능도 확대해 전남권의 교통체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밖에도 광주·전남이 ‘에너지 고속도로’를 선도할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 생산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또 영산강 국가정원 조성 등 마한 문화권 복원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을 잇는 제 4기 민주 정부를 우뚝 세우고 더 활기차고 잘사는 광주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후보의 광주 지역 공약 전문이다. 존경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광주를 통해 역사에 눈뜬 이재명,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자 광주시민 여러분 앞에 인사드립니다.셀 수 없이 고백했던 것처럼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저의 정신적 스승이자 사회적 어머니입니다. 광주는 개인적 영달을 꿈꾸던 청년 이재명이 올바른 역사를 직시하도록 만들어주셨고 약자를 위한 삶의 경로를 밟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국민주권이 흔들리고 민주주의가 억압당할 때 항상 맨 앞에 서주신 광주입니다. 앞으로도 죽비이자 회초리로서 우리 더불어민주당을 바로잡아 주실 광주입니다. 그런 광주에 완전히 혁신적인 새 희망을 만들어드리겠다고 약속드립니다.우리는 지금 대전환의 시대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합니다. 성장의 회복, 불평등의 완화, 지역의 균형발전은 우리 앞에 놓인 핵심과제입니다.국난극복의 주역이신 광주시민 여러분과 함께 지혜롭게 대전환의 위기를 극복하고 광주 발전의 새로운 기회로 바꾸어 내겠습니다.광주가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정신, 민주개혁의 과제를 확실히 완성하겠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이재명 정부의 광주 공약, 그리고 광주와 전남의 상생을 위한 광주·전남 공동 공약을 말씀드리겠습니다.첫째, 광주 군공항 이전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광주 군공항 이전은 역대 정부의 중점공약이었음에도 수년 동안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군공항 부지에 광주의 미래를 심겠다는 시민 여러분의 바람, 저 이재명이 실현하겠습니다. 광주 군공항을 가덕도 신공항 지원에 발맞춰 적극 지원하고 그 부지에 4차산업혁명 기술이 실증되는 스마트시티 조성사업을 지원하겠습니다.이곳에 재생에너지 100%, 일명 RE100을 적용해 탄소중립 미래도시로 발전시키겠습니다.둘째, 광주를 인공지능이 특화된 대표 기업도시로 만들겠습니다.광주는 국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구축을 시작으로 국가 AI 융복합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이에 더해 인공지능연구원 설립과 AI 연구개발 인프라조성을 지원하겠습니다. AI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육성할 수 있도록 AI기업 맞춤형 종합교육센터 설립을 지원하겠습니다.AI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 데이터센터, 연구개발, 창업까지 원스톱 지원환경을 조성해 광주를 AI기업이 몰려드는 인공지능 특화 대표 기업도시로 만들겠습니다.셋째, 광주 자동차산업이 미래 모빌리티산업으로 원활히 전환하도록 돕겠습니다.친환경 자율주행자동차, 도심항공 모빌리티와 같은 최첨단 미래 모빌리티의 연구·실증·생산·인증이 한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빛그린산단을 확장해 미래 모빌리티 융합 클러스터를 조성하겠습니다.광주가 현재 추진 중인 AI 융복합 클러스터와 연계해 미래 모빌리티 테스트베드를 만들겠습니다. 미래 모빌리티 특화 R&D(연구개발) 캠퍼스를 구축해 광산업·부품산업·에너지산업과 같이 지역 기존산업과 연계한 미래 모빌리티 인재를 양성하겠습니다. 넷째, 광주역~전남대 일대에 ‘스타트업 밸리’를 구축하겠습니다.광주역은 도시재생혁신지구 국가 시범지구로 선정됐고 인근 전남대는 대학타운형 뉴딜사업지구로 지정됐습니다. 광주역과 전남대 일대를 글로벌 스타트업 클러스터로 육성해 우수한 지역 인재들이 안정적으로 창업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을 마련하겠습니다.광주형 엔젤투자펀드와 그린 스타트업 타운 조성을 지원해 광주를 명실상부한‘스타트업 밸리’로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청년·투자자·대학·유관기관이 열린공간에서 소통하고 교류하며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춰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다섯째, 광주의 지하철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그린수소트램’ 구상을 지원하겠습니다. 그린수소트램 시범사업을 지원해 지하철 사각지대와 이동권 격차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인구 이동이 많은 무등경기장 챔피언스필드와 농성동 종합버스터미널에 정차하는 그린수소트램 도입을 지원해 대중교통 격차를 해소하겠습니다.지하철과 트램을 타고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그린 대중교통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여섯째, 광주가 계획하고 정부가 주도해 아시아 문화수도 광주를 완성하겠습니다.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의 최초 계획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고 이 사업과 다각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특화사업 발굴을 추진하겠습니다. 광주에 디지털 콘텐츠밸리를 조성해 글로벌 콘텐츠산업을 선도할 기업이 배출되도록 하겠습니다.광주에 구축 중인 AI 융합산업 클러스터와 VR·XR(가상·확장 현실)을 활용한 첨단 실감콘텐츠큐브와 같은 우수한 지역자원과 연계해 국내 최고 수준의 디지털 콘텐츠밸리로 키워나가겠습니다.일곱째,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문화하겠습니다.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입니다. 광주의 자부심을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되게 하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시키겠습니다.5·18 사적지인 옛 광주교도소를 ‘민주인권기념파크’로 조성해 역사를 공유하는 민주주의의 전당이 되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분산돼있는 5․18 원본자료와 해외자료를 모두 수집해 통합 관리·연구할 수 있는 ‘5·18 국가기록원’ 설립을 적극 검토하겠습니다.이상, 일곱 가지 광주 공약을 말씀 드렸습니다.다음은 광주·전남의 상생을 통해 새로운 남부권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초광역 협력 정책의 일환으로 광주·전남 3대 공동공약을 말씀드리겠습니다.첫째, 철도·공항·항만을 잇는 광주·전남 트라이포트 추진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수도권 수준의 초광역 교통망을 단계적으로 조성하겠습니다. 광주~나주 광역철도망을 신속히 추진하고 광주~화순 구간에 도시철도를 연장하겠습니다. 광주 송정역의 복합환승센터 기능을 확대하고 전남권의 교통체계를 강화하겠습니다.무안공항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항경제권을 조성하겠습니다. 광주전남 관문으로 무안국제공항을 활성화시키고 운송과 물류, 관광과 비즈니스가 결합된 신공항경제권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 무안에 조성 중인 항공정비 특화단지를 적극 지원하겠습니다.여수 광양항을 환적 물류가 가능한 아시아 최고의 그린 스마트 복합항만으로 조성하겠습니다. 전남 동부 등 남해안 남중권을 포괄하는 핵심 초광역 관광권을 조성해나가겠습니다. 둘째, 광주·전남이 태양과 바람의 재생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선도하도록 만들겠습니다. 호남은 이미 2019년에 재생에너지 발전량 26%를 달성해 2030년까지 20% 달성이라는 정부의 목표를 11년이나 앞당긴 명실상부한 재생에너지 생산의 메카입니다. 호남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호남에서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이를 위해 2026년까지 RE100 기반을 구축하고 2034년에는 호남 RE100을 완성해내겠습니다. 호남이 재생에너지 송배전을 위한 에너지 고속도로를 선도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끼지 않고 적극 지원하겠습니다.셋째, 영산강을 국가정원으로 조성하고 찬란했던 마한 문화권 복원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신창동 선사유적지, 월계동 장고분, 마한문화권과 같은 한국문화의 보고가 영산강 물길을 따라 펼쳐져 있습니다. 영산강 수변구역을 국가정원으로 조성해 초광역 영산강권 생태-역사-문화-관광 벨트를 조성하겠습니다. 영산강 유역의 찬란했던 마한 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존경하는 광주시민 여러분!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입니다.광주 영령들의 목숨 건 항쟁의 역사가 이를 말해줍니다.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이 자리까지 불러주신 이유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견고한 저항을 돌파하고 더 나은 사회로의 개혁을 완수하라는 의미라 생각합니다.유능한 정부, 성과로 증명하는 정치, 주권자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나라, 저 이재명이 할 수 있습니다.김대중 대통령님과 노무현 대통령님, 문재인 대통령님을 잇는 제4기 민주 정부를 우뚝 세우고더 활기차고 잘사는 광주, 반드시 만들겠습니다.광주 군공항 이전, 앞으로!광주·전남 초광역 교통망, 제대로!광주시민을 위해, 이재명은 합니다!고맙습니다.2022년 1월 27일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이 재 명
- 뮤지컬 '광주', 4월 예술의전당 찾는다
-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5·18민주화운동을 그린 뮤지컬 ‘광주’가 오는 4월 15일부터 5월 1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세 번째 시즌 공연으로 돌아온다.뮤지컬 ‘광주’ 포스터(사진=광주문화재단, 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광주’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문화재단의 ‘2019 님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2019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초연, 2021년 LG아트센터 재연을 마치고 예술의전당에서 세 번째 시즌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작품은 1980년 5월 18일을 전후로 평범한 광주 시민들이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재한 민주항쟁을 다룬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탄생 배경을 바탕으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 일궈낸 숭고함에 초점을 맞춰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그린다.이번 공연은 최근 제70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한 연출가 고선웅이 초연, 재연에 이어 다시 연출을 맡는다. 예술감독 유희성, 작곡가 최우정, 음악감독 이성준, 안무감독 신선호, 무대디자이너 김종석, 음향디자이너 권지휘, 조명디자이너 백시원 등이 창작진으로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