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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 근저당은 또 뭐예요?"…외국인도 전세사기 주의보
- [이데일리 이영민 수습기자] “남편도 저도 전세는 처음이고, 근저당이라는 게 무슨 개념인지 잘 몰랐죠…그냥 전세는 돈을 주고 살다가 2년 지나면 돌려받는 건 줄 알았어요. ”(사진=게티이미지프로)21일 만난 중국인 이모(28)씨는 지난 2017년 한국에 와, 2021년 8월 중국인 남편과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다고 했다. 전세 보증금은 1억1500만원이었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남편의 창업과 자녀출산계획 등을 앞두고 있어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계약을 했다. 이씨 부부의 계획이 흔들린 것은 지난달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안내문을 받았을 때였다. 이씨는 “우린 보증금 1억원이 넘어서 최우선 변제도 못 받는다더라”면서 “이 집에서 내쫓기면 새로 살 월세 보증금을 모으느라 남편은 공사장에서 막노동까지 하며 주말 없이 일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씨 부부와 같은 외국인 피해자들도 나오고 있다. 외국인은 언어장벽은 물론, 전세 제도에 대한 낮은 이해로 사기에 더욱 취약한데도 피해 구제를 받을 길은 내국인보다 어려워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1992년 한국에 처음 와 30년 넘게 살고 있는 중국인 김모(63)씨 부부도 ‘미추홀구 전세사기’의 피해자다. 김씨의 집은 보증금이 9500만원이라 최우선 변제 대상에 속하지만, 집이 은행에 가압류되면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4000만원 남짓으로 줄었다. 김씨는 “부동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려줄 곳도 없고, 일하느라 알아볼 시간도 없었다”면서 “평생 목숨 같이 생각하며 돈을 모았는데, 중개인 말만 들어왔다가 넘어가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국적을 가리지 않는 전세사기로 인해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 유학생들은 더욱 전세살이가 두렵다고 말한다. 지난해 8월부터 서울 서대문구에 살고 있는 중국인 대학생 안지아치(24)씨는 “친구들이 집주인과 부동산중개업자로부터 이사 때 터무니없는 비용을 청구받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한국어 계약서를 읽을 수 없고, 보장제도도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월세로 살 것”이라고 했다.아일랜드에서 온 대학원생 맥헬렌(26)씨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사기 위험 때문에 더 비싸더라도 영어로 후기를 읽을 수 있는 에어비앤비 등 단기 임대 서비스만 주로 이용했다”면서 “졸업 후 한국에서 더 지낸다면 외국인지라 사기의 표적이 더 되기 쉽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전세사기도 계속 걱정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특히 외국인의 경우엔 전세사기에 대처하기가 내국인보다 어렵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저리 대출과 같은 금융지원을 받으려면 피해입증이 필요하고, 구청이 피해 확인서를 발급해주는데 외국인들은 거주지 등록을 안 하거나 거주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어 발급이 제한될 수 있고, 결론적으로 지원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경찰청 등에서는 ‘외국인 전세사기’에 대한 통계가 없어 실태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전문가들은 전세사기로부터 외국인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국인 사기 피해를 주로 상담해온 강성식 법무법인 공존 변호사는 “외국인들은 한국어에 서툴고 인적 네트워크가 없어서 구제를 받을 곳에 대한 정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분쟁이 생길 때 대책을 물어볼 수 있는 전용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위원 역시 “외국인은 국내법은 물론, 시세 정보 등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사기의 위험성이 더 높다 며 “계약 전이나 전세 사고 발생 시 공인중개사나 변호사를 연결해 상담받을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대전 0시 축제’ 성공 위해 지역 대학들이 나선다
- [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오는 8월 대전 원도심 일원에서 열리는 ‘대전 0시 축제’의 성공을 위해 대전시와 지역 대학들이 손을 잡았다. 대전시는 ‘대전 0시 축제’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충남대 등 지역 7개 대학교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지역 대학생의 적극적인 행사 참여를 통해 젊은 에너지가 발산되는 축제의 장을 만들고, 행사를 계기로 대전시와 대학교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마련됐다. 협약에 따라 대전시와 7개 대학교는 행사 참가자 모집 및 인력 채용에 있어 지역 대학생 우선 선발 및 외국인 유학생 서포터즈단 구성 및 행사 홍보, 일류 관광도시 대전의 위상 정립과 대학의 지속 발전을 위해 적극 협력하게 된다. 협약에는 건양대와 목원대, 배재대, 우송대, 충남대, 한남대, 한밭대 등이 참여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대전 0시 축제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함께 손잡아 준 지역 대학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잠들지 않는 대전, 꺼지지 않는 재미’라는 축제 캐치프레이즈처럼, 대전이 가진 모든 재미가 어우러진 대한민국 최고의 여름 축제를 지역 대학교와 한 팀을 이뤄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전 0시 축제는 오는 8월 11~17일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을 잇는 1㎞ 구간 도로를 통제하고, 중앙로와 원도심 상권 일원에서 개최된다.
- 이복현 "보이스피싱 예방, '의심하고 끊고 확인하는' 대응 가장 중요"
- (사진=금융감독원)[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이복현(사진) 금융감독원장은 2일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국민들이 ‘의심하고, 끊고, 확인하는’ 일상의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 원장은 이날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간담회 참석해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각심 제고를 위해 정부, 유관기관, 금융권과 합심해 홍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이날 간담회에는 보이스피싱 피해 경험이 있는 금융소비자, 피해를 막은 영업점 직원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패널들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환전 수수료를 절약하려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며 유학생들에 대해서도 피해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보이스피싱을 당할 경우 피해금을 지급하는 보험이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금전 피해를 줄이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했다.소비자들이 일상에서 보이스피싱 가능성을 의심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제고하는 홍보를 확대하고, 보이스피싱 예방 성과에 대해 금융당국이 적극 포상해 영업점의 동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이에 대해 이 원장은 “교육·홍보·포상 등 패널들의 다양한 제언을 보이스피싱 예방 업무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했다.간담회에 앞서 신한은행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보이스피싱 피해자 지원 업무협약을 맺고 3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신한은행이 모금회에 3년간 총 300억원을 출연하고, 모금회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에 대한 생활비 지원, 심리·법률 상담, 예방교육·보험제공, 대국민 홍보·캠페인 등 사업을 진행한다.이 원장은 “이번 사회공헌 사업이 상생 금융의 마중물이 돼 우리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한편 진옥동 신한지주(055550) 회장은 지난 3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의 개인 기부를 통해 ‘사랑의열매 아너소사이어티’로 선정된 바 있다.
- "미용계 샤넬 되겠다"...준오헤어, 미국·아시아 본격 진출
- 국내 최대 헤어 프랜차이즈 준오헤어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합니다. 이데일리TV.[이데일리TV 문다애 기자]예전에는 미용 기술을 배우려고 해외로 많이 떠났죠. 이제는 거꾸로 한국을 찾아올 만큼 K-미용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국내 최대 헤어 프랜차이즈 준오헤어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합니다. 헤어 카테고리를 넘어 교육과 제품 등 토탈 뷰티 브랜드로 거듭납니다. 문다애 기자입니다.[기자]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준오아카데미. 대만과 홍콩, 싱가포르 다양한 국가에서 온 헤어아티스트들이 강사들의 코치를 받습니다.수강생들은 1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이지만, 한국의 미용 기술을 배우러 직접 온 겁니다.K-뷰티의 인기에 국내 1위 헤어 프랜차이즈 준오헤어를 운영하는 준오그룹이 해외로 본격 진출합니다.준오그룹은 전국 170여개의 매장을 가진 ‘준오헤어’와, 미용 교육 시설 ‘준오아카데미’, 웨딩케어 서비스 ‘애브뉴준오’, 헤어 케어 브랜드 ‘험블&럼블’을 전개하고 있습니다.이처럼 미용 서비스부터 교육, 리테일까지 헤어 카테고리를 넘어 토탈 뷰티 브랜드로 거듭난 준오그룹은 미주와 동남아시아에 동시에 진출합니다.목표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글로벌 토탈 뷰티브랜드’. 앞으로 5년간 준오헤어 매장 300개, 웨딩 토탈 뷰티 살롱 ‘애브뉴준오’ 100개, K-뷰티를 교육하는 ‘준오아카데미’ 10곳을 엽니다.제품 유통 사업도 확대합니다. 현재 준오헤어 매장에서만 판매 중인 뷰티 제품을 전세계 유통망으로 확대하고, 제품군도 헤어에서 스킨케어, 색조 등으로 다양화합니다.토탈 뷰티 플랫폼도 구축합니다. K-뷰티와 미용 교육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자체 플랫폼으로, 전세계 10억명이 구독하게끔 한다는 목표입니다.준오그룹이 해외로 눈길을 돌린 건 높아진 K-미용의 위상 때문입니다. 미용기술을 배우러 영국 등 해외로 떠났던 과거와 달리, 현재 준오아카데미로 유학을 온 외국인만 1만5000명에 달하는 상황. 한국에서 미용을 배웠단 것이 일종의 보증서가 된 겁니다. 준오그룹은 “한국 미용의 핵심 키워드는 ‘건강하고, 윤기있는’ 등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며 “K-드라마와 K-팝의 인기에 한국 스타일과 이를 완성하는 독보적인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강윤선/준오헤어 대표] “샤넬이 꼭 패션 브랜드는 아니잖아요. 샤넬하면 ‘럭셔리’, ‘프랑스’ 국가 등이 떠오르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준오가 샤넬처럼 세계인이 아는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어요. 목적은 브랜드 가치를 알리는 거, 준오헤어 브랜드 가치를 알려서 한국의 가치를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이데일리TV 문다애입니다.[영상취재 이상정/영상편집 김태완]
- 한 발의 총성으로 中 현대미술 시작됐으나…[정하윤의 아트차이나]<27>
- 작가 샤오루가 자신의 설치작품 ‘대화’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 1989년 2월 5일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개막한 ‘중국현대미술전’에서 샤오루는 자신의 작품을 향해 총을 쐈고, 오픈 3시간 만에 벌어진 이 ‘퍼포먼스’로 인해 전시는 바로 중단됐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들의 노력 끝에 다시 전시를 이어갈 순 있었지만 샤오루와 조력자는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탕! 1989년 2월 5일. 베이징 한복판에 위치한 중국미술관에서 총성이 울렸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대피했고, 전시는 급히 중단됐다. 테러인가?! 대체 누가 살벌한 중국의 수도, 그것도 엄중한 미술관에서 총을 쏜단 말인가! 황당하게도 총을 쏜 사람은 샤오루(肖魯·61)라는 미술가였고, 총을 쏘는 행위는 그녀의 ‘작품’이었다. ‘중국현대미술전’에 출품한 자신의 작품 ‘대화’ 앞에서 총을 쏘는 것이 작가의 ‘퍼포먼스 아트’였던 거다. ‘중국현대미술전’의 수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말미에는 전시장에 폭탄이 있다는 편지가 도착하는 바람에 당국에 의해 전시가 중단되기도 했다. 결국 고작 2주라는 기간도 다 채우지 못하고 끝나버린 이 전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현대미술사에 가장 중요한 전시로 꼽힌다. ‘중국현대미술전’이라는 매우 평범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중국에서 현대미술을 견인한 모든 미술가가 참여했던 전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크고 야심찼기 때문이다. 전국의 젊은 작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가장 야망에 찬 작품을 출품했고,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노 유턴’(No U-turn)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엄청난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은 미술사에 길이 남을 두 큐레이터, 가오밍루(高名潞·74)와 리셴팅(栗憲庭·74)이었다. 당시 마흔 살이던 가오밍루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중국의 29개 지역을 돌며 80개가 넘는 비공식적 예술가그룹을 조사했고, 2000명이 넘는 젊은 미술가 리스트를 만들었다. 가오밍루의 네트워크를 구성한 이들은 모두 예술을 창작하는 자유를 믿으며, 급진적인 형식을 보인 예술가들이었다. ◇‘폭탄 설치 편지’ 퍼포먼스 겹치며 결국 전시 중단이들은 회의를 거듭하며 전시를 준비하던 중 중국에서 아방가르드 미술이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국가기관에서 전시를 열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 어디가 가장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가. 답은 두 말 할 것 없이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이었다. 중국미술관은 1959년에 마오쩌둥 주도로 지어진 10대 건물 중 하나로 그간 국가 주도의 전시를 열며, 국가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수집해오던 명실공히 중국 최고의 미술관이었다. 이곳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관의 공식적 인정을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규모 또한 대단했다. 3만㎡라면, 중국의 혁신적인 현대미술을 알차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비를 진행해 가면서 가오밍루와 공동 큐레이터로 의기투합한 리셴팅은 공공기관과 개인사업가들로부터 국립미술관 임대료를 넉넉히 후원받는 데 성공했다. 전시를 위해 186명의 미술가들이 293점의 작품을 설치했다. 모두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쉬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천서’도 이 전시에 나섰고, 장샤오강 초기 작품 중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하는 대작도 이 전시에 출품됐다. 이외에도 황용핑, 겅젠이, 왕광이, 리샨, 위요한, 딩이, 구원다 등등 중국 현대미술사를 수놓는 수많은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름 한 번 들어봤다고 생각되는 작가는 대부분 참여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중국현대미술전’ 오프닝 전경. 1989년 2월 5일 개막한 전시는 전국에서 모여든 186명의 젊은 미술가들이 293점의 작품을 설치하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노 유턴’이란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2주의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럼에도 현대미술을 향한 야심찬 열기를 집대성할 수 있었던,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로 꼽힌다.다양한 작품이 출품된 만큼, 또 전시 자체가 전위를 표방한 만큼, ‘골때리는’ 작품도 많았다. 샤먼다다 그룹은 미술관을 옮겨보겠다며 밧줄로 미술관을 칭칭 감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고, 자신이 닭이 돼 알을 품고 부화시켜보겠다는 퍼포먼스를 펼친 작가도 있었고, ‘새우를 판다’는 행위예술을 벌이며 온 전시장을 수산물시장처럼 만들어버린 미술가도 있었다. 콘돔을 이용해 거대한 설치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모두는 1989년 중국에서는 아방가르드의 최전선에 있는 작품이었다. 일반 대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지 몰라도 외국 갤러리 관계자들은 이 전시가 역사적인 전시가 되리란 것을 직감하며 전시작들을 공개된 가격 그대로 지불하며 구매에 열을 올렸다. 이렇게 큐레이터와 미술가들이 온 열정을 불태웠던 ‘중국현대미술전’. 그 전시 오픈 3시간 만에 샤오루가 총을 쏜 것이다. 아마도 진정한 중국의 현대미술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리라. 하지만 미술관에는 관람객이 들어차 있었고, 사전에 어떤 공지도 없었기 때문에 경찰에 의해 전시는 즉각 닫힐 수밖에 없었다. 외신이 예술에 대한 탄압이라며 신나게 보도하는 동안 큐레이터들은 열과 성을 다해 재개관 협상을 했고, 천만다행으로 전시는 다시 개막할 수 있었다. 샤오루와 조력자는 체포됐는데, 사용했던 총을 반납하고 여러 관료가 힘쓴 결과 풀려날 수 있었다. 황당하게도 그 뒤에 한 번 더 전시를 중지시킨 ‘폭탄 편지’ 또한 어떤 작가의 퍼포먼스였다고 전한다. 비록 애써 준비한 전시가 중단되는 것은 큐레이터와 다른 작가들에겐 분명 화나는 일이었겠지만, 총과 폭탄 해프닝 덕분에 ‘중국현대미술전’이 더욱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주목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톈안먼사태 이후 작가들 창작 의욕 잃고 칩거 이어져아이러니하게도 자유로운 미술을 집대성한 ‘중국현대미술전’이 막을 내린 직후부터 중국 사회는 ‘자유’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또 한 번의 총과 폭탄 때문이었다. 전시 폐막 두 달 뒤인 1989년 4월, 당비서 후야오방(1915∼1989)이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게 발단이었다. 덩샤오핑(1904∼1997)의 최측근이자 2인자였던 후야오방은 정치인 중 자유를 가장 많이 지지하는 쪽이었고, 때문에 중국 지식인들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권력 다툼 때문이었는지 그는 1986년 이미 정치적 힘을 잃은 터였다. 이후 1989년 무렵 다시 후야오방이 원래의 자리로 복귀할 거란 소문이 돌았고, 그(가 상징하는 자유)를 지지하던 중국인들은 당연히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후야오방이 돌연 사망하면서 사람들은 낙담 속에 그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추모하기 시작했다. 베이징 톈안먼광장은 화환과 꽃으로 뒤덮였고, 애도의 물결은 점차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집회로 변했다.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은 스티로폼으로 ‘민주주의 여신상’을 만들어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과 대치시켰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함께 행진했다고 전해질 만큼 그 규모는 점점 커졌다. 1989년 5월 토시오 사카이가 촬영한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이 스티로폼으로 만든 ‘민주주의 여신상’이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을 마주보고 있다.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집회는 점점 확산됐고 결국 6월 4일 ‘톈안먼사태’가 터졌다. 톈안먼광장은 총과 대포로 화염에 뒤덮였으며 ‘민주주의 여신상’은 탱크에 짓밟힌 채 처참히 부서졌다.당시 시민들의 항쟁을 보고받은 85세의 덩샤오핑은, 6월 3일 시민들을 진압할 것을 승인했고, 결국 6월 4일 새벽 요란한 총과 대포 소리가 울렸고 톈안먼광장은 화염으로 뒤덮였다. ‘민주주의 여신상’은 탱크에 짓밟힌 채 처참히 부서졌다. 역사가 ‘톈안먼사태’라 기록하는 사건이다. 그해 중국미술관에서 미술가들이 쏘아올린 자유를 향한 예술을 덩샤오핑의 군대는 총과 탱크로 진압했다. 불과 넉 달 사이 두 개의 전혀 다른 총소리가 베이징 하늘을 갈랐다. 톈안먼사태 이후 중국 사회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미술도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작가들은 창작의 의욕을 잃고 칩거했다. 전시기획자였던 가오밍루는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리셴팅도 몸을 사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1990년대 들면서 미술은 서서히 활력을 되찾았고, 작가와 큐레이터도 활동을 재기했지만, 톈안먼사태로 입은 내상은 이후 중국 미술을 무기력, 개인주의, 물질주의로 점철시켰다. 만약 ‘중국현대미술전’의 열기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중국의 동시대미술은 훨씬 더 급진적인 형태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역사에 ‘만약’은 아무 소용이 없는 법. 우리는 그저 중국 미술의 열기를 집대성한 전시로 1989년 ‘중국현대미술전’을 기억할 뿐이다. 1989년 베이징에 울렸던 전혀 다른 두 개의 총소리와 함께. △정하윤 미술평론가는…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총선용 퍼주기’…의기투합한 여야
- [이데일리 이은정 기자] 다음은 13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뉴스다.△1면-‘총선용 퍼주기’…의기투합한 여야-학폭, 대입 정시에도 반영 삼수해도 불이익 받는다-금융위 “은행 알뜰폰 허용”…KB 리브엠 사업 계속한다-삼성 감산 효과…D램값 13개월 만에 반등-[사설]시동 건 미래차 3강 도전, 범국가적 지원에 힘 합쳐야-[사설]추락하는 성장률…위기의 한국경제, 돌파구 왜 못 찾나△종합-“손수 지은 집 잿더미…맨발로 뛰쳐나와, 살 길 막막”-임대료 안내고 노조사무실로 건설사 입주시켜 임대사업도△은행 알뜰폰 사업 허용-금산분리 완화 신호탄…싱가포르처럼 ‘은행 주도’ 산업 융복합 물꼬-신한은행 배달앱도 청신호…비금융사업 다각화 힘받나-“0원 요금제 등 출혈경쟁 가속…소규모 사업자 생존 어려워”△종합-“경각심에 학폭 건수 줄 것” vs “엄벌주의 치우쳐 소송 늘 것”-“고객사 D램 재고 많아…본격 회복 신호는 아직”-최태원 “신산업 육성·지역경제 살릴 ‘메가샌드박스존’ 필요”-소상공인 “최저임금 동결해야 업종별 구분·주휴수당 폐지도”△포퓰리즘에 밀린 국가 재정건전성 -재정준칙 없는 예타 면제기준 완화…안전장치 없는 예산폭탄 만드는 셈-소위에도 못 오른 재정준칙…5월 통과도 난망-학자금 무이자 대출, 1000원 아침밥…총선 전 선심성 정책 봇물△정치-‘美도·감청 의혹’ 외통위 격돌…대통령실은 野 때리며 정면돌파-與 중진들 쓴소리에…‘김재원 중징계’ 급부상-野3당 ‘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 촉구…“20일께 법안 발의”-여야, 원내대표 첫 회동 ‘빈손’ 양곡법·간호법 등 합의 불발△경제-취업자 수 늘었지만…제조업·청년층선 ‘뒷걸음’-추경호 “부진한 수출 회복까지는 시간 걸릴 것”-SVB 사태로 美 성장률 0.2%p↓“-공정위 신임 조사관리관에 조홍선 사무처장△금융-순익 5兆 훌쩍…손보사 빅5 ‘형님’ 생보사 넘는다-“PF 1조원대 결손”…OK·웰컴저축은행, 허위 지라지 고발-손바닥 정맥으로…금감원, 은행 생체 인프라 운영 유도-“금리 인하 없다” 이창용 발언에 은행채↑△Global-개인정보 캐는 챗GPT…유럽 이어 美도 규제 착수-트위터에 올린 ‘X’ 의미는…머스크, 슈퍼앱 구상 본격화하나-15일 ‘탈원전’ 앞둔 독일…국민 절반은 “잘못된 결정”-러, 지난해 반도체 1.4조원 우회 수입△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美에 반도체 정보 주면 1위 내줄 수도…한미정상회담 더 중요해져”-“中企에 기술 이전·재교육…반도체 초격차 지원할 것”△산업-‘반값 전기차’ 쏟아진다…K배터리 ‘가성비 라인업’ 확대 승부수-전장부품에 힘주는 LG이노텍, 애플 의존도 낮춘다-포스코그룹, 혼다와 전기차 ‘동맹’-HMM, 10년새 탄소배출량 절반 이상 줄였다△ ICT-“소상공인 울리는 건 플랫폼 아닌 포퓰리즘”-“신작 ‘난이트 크로우’, 흑자전환 이끌 것”-출연연, 정년 65세 연장 추진에…과기부·기재부 난색-GS·대보 투자유치한 사피온 성능 4배 ‘업’ AI반도체 임박△제약·바이오-무인 충전공정으로 오염 최소화…깐깐한 美·유럽도 엄지 척-수젠텍 여성호르몬 진단 플랫폼, 국내 첫 美FDA 허가-지엔티파마 뇌졸중 치료제 ‘넬로넴다즈’ 임상3상 환자 등록 완료-엠투웬티·대한요가회 협약 ‘마요홈’ 공식 장비로 활용△Auto&Life-强·力…‘질주본능’ 남심 사로잡다-세단과 SUV 강점 결합 ‘매력적’ 다양한 편의사양 탑재로 ‘실용적’△증권-업황 반등 희망에 가성비도 훌륭…반도체 소부장의 봄-글로벌 증권사 “다가오는 반도체 상승 사이클…삼성이 가장 큰 수혜”-현대차 투자 엔진 자동차주 부릉부릉△증권-“에코프로 팔아라”…매도 사인 보내는 증권가-英펀드 등장에…LG 주가 하루 만에 9.5% 껑충-오스템임플란트 2차 공개매수 성공…상장폐지 수순 밟나-공매도 표적 된 ‘롯데쇼핑’, 왜△부동산-‘숨은 로또’ 강남 보류지, 수억 내려도 안 팔려요-서울은 ‘웃돈’ 억소리…지방은 ‘마피’ 억소리-현대로템, 1조 규모 SRT 고속철도사업 단독응찰-장위10구역 전광훈 교회빼고 재개발키로△문화-순수예술은 K컬처의 뿌리…문예기금 1兆 조성해 지켜내야-브로슈어→소책자…공문서 쉬운 말로 쓰면 한해 3375억원 비용 절감△피플오셀로처럼 질투 많지만 열등감은 없어…좋은 작품 향한 열망 뿐-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포르투갈 총리 면담-부채춤 만든 한국무용가 김백봉 별세…향년 97세-LG화학, 한양대와 전지소재 우수 인재 지원·육성-미래에셋운용, 호라이즌 ETFs CEO 선임-카카오 미디어 서비스 ‘뉴스투명성위원회’ 확대 개편-한화투자證, 취약층 어린이 금융교육 돕는다-정상철 한국캐피탈 대표 “금융 불확실 선제 대응”-불스원 전재호 신임 대표-JW중외박애상 수상자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고려대, 이차전지 충전성능 개선 소재 개발△오피니언-안중근의 총성은 지금도 울린다-中 희토류 무기화, 강 건너 불구경할 때인가-권찬희 ‘월출산 사자봉 Ⅱ’-여론과 동떨어진 ‘스쿨존 음주사고’ 처벌△전국-인력난 뻔한데…너도나도 ‘시정연구원’ 추진-“지역소멸 막자”…충청권 지자체, 외국인 유학생 유치 사활-출범까지 두 달도 채 안 남았는데 재외동포청 소재지 선정 ‘미적미적’△사회-코로나보다 무서운 3중고…94세 노모까지 나와 홀에서 반찬 날라-“민원에 시달리다 감정쓰레기통 전락” MZ세대 서울 본청 퇴사 2배 늘었다-한동훈, 대검에 ‘마약강력부 부활’ 지시-시민이 직접 그린 ‘광화문의 과거-현재-미래’ 모습은-‘강남 납치·살해 배후’ 재력가 부부 유상원·황은희 신상공개
- "인구감소 해결 위해… 단체장에 지역인구 10% 이민비자 발급 권한줘야"
- [이데일리 이선우 기자] “지역 단체장에게 지역 인구의 최대 10%까지 이민 비자를 발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합니다.”김관영(사진) 전북도지사는 최근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도청 집무실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지방 도시의 인구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 과감한 이민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방 도시로 인구 유입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 중인 육아 지원, 출산율 제고, 기업 유치 등과 같은 정책이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장기 대책이라면 이민정책은 짧은 시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단기 극약처방’이라는 게 김 지사의 주장이다. 그는 이어 “과감한 이민제도는 단순히 지방 도시의 인구 유입을 늘리는 효과 외에 우수 인력을 공급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김관영 전북도지사는 도청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방 도시의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이민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올해 외국인 400명 ‘지역특화비자’ 발급인구감소 문제는 김 지사가 취임 이후 해결책 마련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최대 현안 중 하나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전북의 인구 감소세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어서다. 2012년 187만 명이 넘던 전북 인구는 10년 연속 줄어 이제는 4~5년 이내에 170만 명대선 붕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행정안전부의 ‘2022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북의 주민등록인구는 178만 6855명으로 1년 전인 2020년 180만 4104명에 비해 1만 7249명이 줄었다. 연 1%에 가까운 인구 감소율(0.96%)은 9개 도 단위 지자체 중 전남(1.0% 감소)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지역경제를 이끌어 갈 3040 세대 인구가 줄면서 지역 인구의 평균 연령은 전국 평균치보다 무려 2.5세 높은 46.2세(남자 44.6세, 여자 47.8세)까지 치솟은 상태다. 당장은 갈수록 빨라지는 인구 감소 속도가 문제이지만, 앞으로는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고령화가 더 심각한 문제로 닥칠 위기 상황인 것이다. 김 지사는 “인구감소 문제는 특정 지방 도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범국가적 문제”라며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다른 현안을 제쳐 두고 가장 먼저 과감한 이민정책 도입을 건의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김 지사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지역특화형 비자’가 과감한 이민정책 도입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법무부가 도입해 올해 시범 운영하는 지역특화형 비자는 고령화로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방 도시에 노동 인구와 인재를 공급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된 새로운 이민제도다. 지역 특성과 수요 등 특화 요건에 부합하는 외국인에게 일정 기간 지역에 거주하는 조건으로 5년짜리 취업비자를 발급해주는 게 골자다. 지난해 윤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김 지사가 직접 제안해 제도화까지 이어졌다.김 지사는 “지역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 중 우수 인재 400명을 뽑아 지역특화형 비자를 발급하고 정읍과 남원, 김제, 순창, 고창, 부안 등 6개 지역 제조업과 출판, 서비스, 보건·의료 등 분야에 우선 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에 건의한 지역 단체장이 전체 인구의 10%까지 이민비자 발급 권한을 갖는 문제는 내년 출범하는 전북특별자치도 특례규정에 포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전북은 내년 1월 18일 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있다. 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 중앙 정부로부터 행정·재정상 특별 지원은 물론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받게 된다. 김 지사는 전북특별자치도의 성공 조건으로 ‘전북형 특례’ 발굴을 꼽았다. 현 체재의 한계와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극대화하는 특례를 발굴해 특별자치도 위상에 맞는 자치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형평성에 어긋나고 특혜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획일적으로 적용했던 중앙의 규제성 권한을 넘겨받는 안을 특례규정 개정안에 최대한 반영할 계획”이라며 “농생명 산업과 문화관광, 교육, 이민정책 등 전북의 강점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살린 특례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김관영 지사는 “신항만과 신공항, 입인철도 등 트라이포트가 완성되는 2030년 새만금이 중국을 넘어 동남아를 이어주는 주요 관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인이라면 꼭 한 번 광활한 새만금을 직접 방문해 둘러봐야 한다”는 당부의 메시지를 남겼다.◇새만금 중국·동남아 잇는 주요 관문 될 것 30여 년째 진행 중인 새만금 복합개발에 대해선 그동안 계획만 무성하던 흐릿한 미래에서 현실로 구체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동시에 새만금 복합개발의 성패를 좌우할 적기로 신공항이 개장하는 2028년 말을 꼽았다. 신공항, 신항만 개통으로 접근성이 개선되는 시기에 맞춰 관광·레저 용지 개발까지 모두 마무리하는 것이 최대 현안이자 관건이라는 것. 그러면서 산업단지, 배후도시, 관광·레저 단지 조성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먼저 서울 전체 면적의 3분의 2와 맞먹는 409㎢ 크기 매립지 중 비중(약 70%)이 가장 높은 산업용지에 들어갈 기업을 유치하고 그런 다음 입주기업 임직원이 거주할 배후도시와 레저·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복안이다.김 지사는 지난해 12월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새만금 사업법) 개정안이 2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새만금 국제투자진흥지구 조성에 속도가 붙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대한 조세특례제한법이 올 1월 1일부로 시행돼 입주기업은 최초 3년간 법인세와 소득세 100%, 이후 2년간 50%를 추가 감면받는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며 “현재 새만금 산업단지는 추가 매립을 서둘러야 할 정도로 입주기업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지난 1991년 세계 최장 33.9㎞ 방조제 착공으로 시작된 새만금 복합개발은 올해 내부를 동서남북으로 잇는 십자형 도로망 개통을 앞두고 있다. 2020년 개통한 동서도로(16.5㎞)와 함께 새만금의 대동맥 역할을 할 남북도로는 지난해 12월 1단계(12.7㎞) 개통에 이어 올 7월 2단계(14.4㎞) 공사를 마치고 완전 개통한다. 김 지사는 “그동안 외부 간선도로만 있어 새만금 내부 진입이 불가능했지만 십자형 도로망 개통으로 어디서든 20분 이내에 이동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김 지사는 신항만, 신공항, 인입철도로 이어지는 ‘트라이포트’(Tri-Port) 조성이 마무리되는 2030년 새만금이 중국을 넘어 동남아를 연결하는 주요 관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트라이포트는 5만 톤급 선박 접안이 가능한 국내 최초 인공섬식 신항만(2026년)과 연간 14만회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한 신공항(2028년) 그리고 새만금과 군산 대야역을 잇는 총연장 47.6㎞ 인입철도(2030년)를 개발하는 새만금 복합 물류망 구축 사업이다.인터뷰 말미에 김 지사는 “‘대한민국 기업인이라면 꼭 한 번 새만금을 직접 방문해 둘러봐야 한다’는 당부의 메시지를 꼭 기사에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새만금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곳은 없다는 것. 김 지사는 “새만금은 아직 아무런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흰 도화지 같은 상태”라며 “많은 기업인들이 광활한 새만금의 모습에서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일깨우고 미래 비즈니스를 위한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김관영 지사는…△1969년 군산 출생 △군산제일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공인회계사시험 합격(23회) △행정고시 재경직 합격(36회) △사법시험 합격(41회) △경제기획원 재정경제부 △김앤장 변호사 △美 조지워싱턴대 객원연구원 △19·20대 국회의원
- "예술을 위한 예술,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정하윤의 아트차이나]<26>
- ‘예술을 위한 예술’을 내걸고 1931년부터 1935년까지 짧고 굵게 활동한 결란사 멤버들의 작품이다. 장솬의 ‘소녀’(1935, 캔버스에 유채, 44×36.5㎝·왼쪽)와 니이더의 ‘여름’(1932, 캔버스에 유채). 하나의 화풍이나 스타일을 유지한 서양 현대미술 사조들과 달리 결란사는 작가 제각각 다른 작품세계를 꾸려갔다. 장솬은 회화적 붓질이 도드라졌으며, 니이더는 평면에 올린 입체적인 도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소파에 앉은 여인을 가는 윤곽선으로 살려내 꾸린 기법이 독특한 장솬의 ‘소녀’는 베이징 중국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고, 인물과 정물이 튀어나올 듯한 볼륨감을 입고 있는 니이더의 ‘여름’은 원작이 소실됐다.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기록의 쓸모, 역사의 쓸모, 미적분의 쓸모까지 언급하는 요즘. 어디 한 번 미술의 ‘쓸모’도 입증해볼까 싶다. 다행히 할 말은 많다. 예전부터 미술은 꾸준히 ‘쓸모’가 있어왔으니까. 소 그림 위에 활을 쏘아대며 사냥의 성공을 기원한 주술적 쓸모, 성경이나 신화의 내용을 그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달한 종교적 쓸모, 거대한 왕의 초상을 제작해 권력을 뽐낸 정치적 쓸모, 금융상품처럼 투자해서 이익을 얻는 경제적 쓸모 등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우리는 모든 것에 꼭 이렇게 ‘쓸모’를 따져야만 하는 걸까. 미술이 그냥 미술이기만 하면 안 되는 걸까. 미술의 오랜 이용가치에 대해 딴죽을 건 일군의 미술가들이 20세기 초에 등장했다. 그들은 미술은 그냥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꽤나 신박한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미술은 정치나 종교 등 어떤 다른 목적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외침이었다. 일명 ‘예술을 위한 예술!’ 미술사에서는 노예해방 뺨치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런 혁명은 서구에서나 있었을 법하지만 웬걸. 대략 90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도 ‘예술을 위한 예술’을 부르짖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상하이의 모더니스트그룹 결란사(決瀾社)의 멤버들이다. 혈기왕성했던 그들은 ‘위대한 파도’란 이름을 걸고, 야심 찬 선언문까지 발표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의 출발을 공표했다. “우리는 회화가 결코 자연의 모방이 아니며 종교의 노예가 아니며 문학에 대한 설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종합적으로 순수조형세계를 구성하고자 한다 […] 일어나자! 미칠 듯한 격정으로, 강철 같은 이지로. 우리의 색·선·형상이 교착된 세계를 창조하자!”(1932, ‘예술순간’ 제1권 제5호)◇입체파같은 니아더, 초현실주의풍 팡쉰췬…한 그룹, 다른 색깔미칠 듯한 격정으로 미술의 해방을 부르짖었던 결란사. 얼핏 봐도 열정에 차고 넘치는 이 그룹의 주요 멤버는 외국물을 한껏 먹은 젊은이들이었다. 창립 멤버는 중국 미술사에 길이 남아 있는 니이더(1901∼1970)와 팡쉰친(1906∼1985). 니이더는 일본에서 공부하며 유럽미술의 최신 트렌드를 접했고, 팡쉰친은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5년 동안 공부했다. 각각 1928년, 1930년에 상하이로 돌아와 만난 두 명의 젊은이는 1931년 결란사를 결성했고, 여기에 천정보(1895∼1947), 장솬(1901∼1936), 추디(1906∼1958) 등의 화가들이 합류했다. 결란사는 1932년 10월, 프랑스 조계지에서 연 첫 전시를 시작으로 네 차례의 전시를 이어갔고, 자신들의 예술을 알리는 데도 열심을 냈다. ‘시대’ ‘양우’ 같은 대중잡지나 상하이 신문에 전시소식을 부지런히 알리기도 하고, 니이더의 주도로 ‘예술순간’ 같은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대중잡지 ‘시대’에 게재한 ‘결란사 제2회 전람회 출품’(1933, ‘시대’ 4, no.7). 주요 전시작과 작가의 사진을 가득 실어내며 두 번째 전시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고 있다. 1931년 결성해 1935년 해체할 때까지 결란사는 네 차례의 전시를 했다.힘을 합쳐 여러 활동을 벌였지만, 그림에서 어떤 하나의 스타일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서양의 여러 현대미술 사조들을 모두 ‘새로움’으로 묶어서 받아들였다. 그래서 결란사의 그림을 보면, 하나의 작품에 여러 경향이 섞여 나타나기도 하고, 서로의 작품을 과연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도 될까 싶을 만큼 다르다. 비교적 얌전한 정물화를 그린 추디 같은 화가도 있고, 약간의 입체파 냄새가 나는 니이더의 작품, 회화적 붓질이 도드라지는 장솬의 그림, 또 초현실주의의 분위기를 풍기는 팡쉰친의 그림 등등. 입체파 시절의 브라크나 피카소, 야수파 시절의 마티스와 드랭의 작품이 너무 비슷해서 뭐가 누구의 것인지조차 헷갈리는 양상과는 전혀 다르다. 앞서 말했듯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기치에 맞기만 하다면, 서구의 여러 새로운 방식을 관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확고한 기준이 있었기에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결속을 이룰 수 있었을 거다. 결란사의 열정적인 활동은 서구의 최신 미술을 중국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중국 미술계, 나아가 중국의 미술사를 다채롭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겠다는 이들의 포부는 금방 꺾여야 했다. 시대가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에는 전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일본은 이미 만주를 점령했고, 점점 더 노골적으로 중국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장제스의 국민당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시국에 결란사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외침은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예술이 어떻게라도 좀 삶에 실질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나라가, 내 인생이 고꾸라질지도 모르는데, 색채니 붓질이니 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점·선·면을 갖고 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결란사는 대중의 호응과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고 점차 동력을 잃었다. 화가들 사이에서도, 또 각자의 내면에서도 갈등과 회의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오쩌둥 시대 문화대혁명 폭풍 못 피해…결란사 각자도생그러다 결국 1935년 10월, 결란사는 4회전을 끝으로 해산했다. 마지막 전시에 대해 팡쉰췬은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이틀, 관람객은 매우 적었고 날씨마저 흐렸다. 결란사는 이처럼 암담한 가운데 역사를 마감했다.” 팡쉰친의 ‘구성’(1934). 결란사 창립 멤버인 팡쉰친의 이 작품은 여러 도상을 한 화면에 합쳐낸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다. 팡쉰친은 프랑스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5년 간 수학하고 1930년 중국 상하이로 돌아와 니이더와 함께 1931년 결란사를 결성했다. 하나의 스타일을 유지한 서양의 현대미술 사조들과 달리 멤버 제각각 다른 작품세계를 꾸려간 결란사의 활동에서 팡쉰친은 초현실주의적 화풍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캔버스에 유채, 92×73㎝.이후로 이어지는 마오쩌둥의 시대, 미술은 철저히 정치를 위해 존재했다. 정치인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당의 사상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그 어떤 미술품도, 또 어떤 미술가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결란사 멤버들은 각자도생했다. 니이더는 멤버 중에서 가장 승승장구한 편에 속한다. 그는 저장과 베이징의 미술대학에서 교수직을 역임했고, 중국 공산당에서 발간하는 ‘미술’ 잡지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유독 그의 커리어가 잘 풀린 것은 물론 그의 그림이나 글 솜씨가 워낙 뛰어났던 것도 있겠지만, 공산당 주도 아래 발전하는 풍경이나 당의 입맛에 맞는 노동자의 초상을 그렸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어쩌면 유난히 처세에 능했는지도 모르겠다. 팡쉰친은 결란사 해체 뒤 베이징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고, 1953년에는 미술과 공예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의 폭풍을 피해가진 못했다. 그는 가르치는 것을 금지당했고, 1972년에 강제로 은퇴 당했다. 1985년 위암으로 사망하기까지 팡쉰췬은 미술계 주변부에 머물며 소수민족과 전통 공예미술에 대해 연구하며 밝고 맑은 색채의 수묵화를 남겼다. 젊은 시절 아방가르드 미술을 향한 맹렬한 열정에 비하면 그의 후반기는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하루아침에 반동분자로 몰려 몰살당하기 일쑤던 그 무섭던 시대에 목숨을 부지했던 것만으로도 다행일는지 모르겠다. 많은 경우 다른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미술이 사용되던 중국에서 순수하게 미술 자체를 추구한다는 결란사의 주장은 참으로 독특하다. 이것이 바로 결란사의 수명이 극히 짧았음에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강렬하게 장식하는 이유일 거다. 무엇이든 ‘쓸모’를 입증하고 ‘효용’을 따져대는 피곤한 시대, 결란사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싶다. 미술은 그냥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이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 태광그룹 일주학술문화재단, 31기 해외박사 장학생 모집
-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태광그룹 일주학술문화재단(일주재단)이 해외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학비·생활비 등을 지원하는 ‘2023학년도 31기 해외박사 장학생’을 선발한다고 3일 밝혔다. 지원 대상자는 해외 우수 대학원으로부터 박사과정(석·박사 통합과정 포함) 입학 허가를 받은 신입생으로, 선발인원은 10명 내외다. 장학금은 유학 국가에 상관없이 1인당 총 12만달러로 대학 등록금, 생활비, 연구비 등을 합산한 금액이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5년 이내 8학기 동안 이를 지원받는다. 또 입학 출국과 졸업 귀국 시 항공료(2회·회당 최대 200만 원)를 별도 지원한다. 신청 기간은 오는 21일까지며, 1·2차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오는 6월 중 합격자를 발표한다. 제출할 서류는 장학금 지원신청서, 입학허가서, 추천서 등이다. 접수는 일주재단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올해로 31기 선발을 맞이한 해외박사 장학사업은 ‘나무는 숲과 함께 자라야 한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약속했던 재단 설립자 고(故) 이임용 회장 철학에 따라 1991년 시작했으며, 지난해까지 총 205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일주재단은 순수학문 분야 연구자를 지원·육성하겠다는 설립자 이 전 회장 유지에 따라 심사과정에서 기초 순수학문 연구자를 우대한다. 대학이나 전공, 나이에 상관없이 학문적 역량과 열정이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으로, 재단의 해외박사 기졸업자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선발에 참여한다. 현재 일주재단이 배출한 해외박사 졸업생들은 재학생을 제외한 170여명이 국내·외 대학교, 연구소, 국내 대기업, 외국계 기업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해외박사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졸업생들 간 교류 모임과 다양한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다.졸업생들의 학술연구 모임은 연 2회 이상 이뤄지고 있으며, 정보 교류와 친목을 다지는 송년 모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또 일주재단은 해외 재학생 간 지역별 모임 활성화를 위한 지원비를 제공하는 등 인적 네트워킹과 소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일주재단 관계자는 “장학생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학업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조교(TA)·연구조교(RA) 활동에 따른 감액 없이 약속한 장학금 전액을 지원한다”며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등 순수학문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순수학문 전공자들이 학비와 생활비 걱정 없이 연구에 전념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태광그룹)
- 양회 마친 中, 3년만에 외국인 관광비자 발급 재개(상보)
- [베이징=이데일리 김윤지 특파원] 중국이 3년 만에 외국인에 대한 중국 관광비자 발급을 재개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같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비자 발급이 정상화되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면세점.(사진=공항사진기자단)주한 중국대사관은 14일 소셜미디어(SNS)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15일부터 외국주재 중국 비자 발급 기관은 외국인의 모든 중국 입국 비자 발급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20년 3월 28일 이전에 발급된 유효 기간이 남아 있는 비자의 효력을 되살리고, 각종 도착비자 발급도 재개된다. 하이난 섬, 상하이를 입항하는 유람선을 통한 무비자 입국 정책도 재개할 방침이다. 앞서 중국은 2020년 3월 당시 코로나19 확산에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시키고자 해당 시점 이전에 발급된 비자에 대한 효력을 모두 중지시켰다. 그해 8월 유학생과 취업자(Z비자 소지자), 비자 신청 시점에서의 유효 거류증 소비자 등에게 비자 발급을 재개했다. 이후 점진적으로 상업무역, 가족방문 등 발급 비자의 종류를 늘리고, 지난 1월 8일부터 해외 입국자에 대한 의무 시설 격리와 도착후 핵산(PCR) 검사도 중단했다. 그럼에도 줄곧 막혀 있던 중국 관광비자·단체 관광비자(최소 5인 이상) 발급이 이번 정책 변경으로 재개됐다. 전날 리창 중국 신임 국무원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직후 기자회견에서 취임 일성으로 올해 목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5% 달성을 위해 개혁개방을 심화하고 민간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외국인의 관광비자 발급 재개는 이를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한국인의 중국 개인·단체 관광은 가능해졌으나, 아직 중국은 자국민의 해외 단체여행 허용 국가에 한국을 배제하고 있다. 중국은 15일부터 자국인을 상대로 단체 여행상품과 ‘항공권+호텔’ 패키지 상품을 시범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국가에 40개국 추가했다. 지난달 6일부터 1차로 허용했던 자국민 단체여행 가능 국가 20개국이 태국, 캄보디아 등 주로 동남아 국가였다면 2차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미국 등은 2차로 발표된 중국의 해외 단체여행 허용 국가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중국인의 한국 개인 관광은 가능하다. 한국 정부는 중국이 ‘위드 코로나’로 방역 기조를 전환한 이후 중국 내 확진자가 급증하자 지난 1월 관광비자를 포함한 단기 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했으나, 2월 11일부터 해당 조치를 해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