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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희, SNS 폭로 전 외할머니와 몸싸움..오빠 환희 신고로 경찰 출동
  • 최준희, SNS 폭로 전 외할머니와 몸싸움..오빠 환희 신고로 경찰 출동
  • [이데일리 e뉴스 박지혜 기자]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이 외할머니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길 당시 실제로 경찰관이 출동해 조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최준희 양은 5일 새벽 SNS를 통해 외할머니가 그동안 자신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며 “지금도 집안이 다 박살났다. 경찰들도 찾아오고 정신이 없다. 지금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기에 일단 (글을) 올리겠다”고 전했다.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 (사진=최준희 양 인스타그램)최 양은 전 날 저녁 외할머니와 다퉜고, 오빠 환희 군이 112에 신고하면서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최 양과 외할머니가 저녁식사 후 뒷정리 문제로 시비가 붙어 몸싸움까지 번진 것으로 파악했으며, 서로 처벌을 원하지 않아 정식으로 사건 처리하지 않고 현장에서 종결했다.또 경찰은 최 양의 상습 학대 주장에 대해 본인과 주변인을 통해 사실관계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최 양은 현재 친구 가족과 함께 있으며,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최 양은 어머니인 배우 최진실이 2008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하고 아버지인 전 야구선수 조성민 역시 2013년 1월 자살로 세상을 떠나자 오빠 환희 군과 함께 외할머니 손에 자라왔다.
2017.08.05 I 박지혜 기자
"당사자 모두 위험한 상태" 최준희 양 페북 글 놓고 측근 호소
  • "당사자 모두 위험한 상태" 최준희 양 페북 글 놓고 측근 호소
  •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진실을 위해서라도 지금 말을 아껴야 할 때다.”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이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외할머니의 폭언과 폭행에 대한 주장을 담은 글을 올리면서 주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준희 양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외할머니와 갈등을 대외적으로 알릴 방법을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오랜 준비와 고민의 결과라는 것. 최준희 양은 페이스북 글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도왔던 인물로 이모 할머니 외에 홍진경·이영자 그리고 그의 어머니 고 최진실과 생전 절친했던 김대오 기자 등을 언급했다. 이들은 10년 남짓 외할머니와 최준희 양의 갈등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해결책을 내내 찾았다. 고 최진실의 측근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족 모두가 받지 않았겠느냐. 무엇보다 환희와 준희 두 자녀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필요했을 시기였는데, 외할머니와의 갈등 등으로 주위사람들이 하나 둘 멀어져갔다”고 전했다. 김대오 기자는 이데일리 스타in과 전화통화에서 “해야할 말은 많지만, 지금 당사자 모두 위험한 상태”라고 말을 아꼈다. 또 “진실을 위해서라도 지금 말을 아껴야할 때다”고 말했다. 진실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고 최진실을 지칭하는 말이냐는 말에 “중의적 단어”라고 부연했다.앞서 최준희 양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 일생에 대해 폭로하고자 고민 끝에 용기 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려 합니다’라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최준희 양은 해당 글이 화제가 되자 댓글을 통해 “이 글에 대한 변명거리도 외할머니가 분명 이야기할 것”이라며 “이 글이 무조건 동정을 받고 비난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저는 조금의 사람들이라도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한 “저는 집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고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다음은 최준희 양이 올린 글의 전문이다.안녕하세요.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고 최진실의 딸인 최준희입니다. 제가 갑작스레 이글을 적게 된 이유는 잘 살고 있었을 것만 같던 제 일생에 대하여 폭로하고자 고민 끝에 용기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려 합니다.현재 저는 중학교 2학년이고 아마 제 일생이 꼬이기 시작한 건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이후부터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고 보자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엄마가 떠난 이후로 불행하게 살 줄 알았던 저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그저 지극히 평범하게 학교 다녀와서 스폰지밥을 보고 싶어하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저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외할머니, 오빠, 이모할머니, 친가네 이 정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외할머니랑 살지 않고 같이 살고 있는 이모할머니는 누구인가에 대해 에스크를 올렸을 때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셔서 알려드리자면 이모할머니는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제가 태어나자마자 키워주셨고 다른 부모님들 못지않게 자랑스럽게 키워주셨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사실상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오빠만 예뻐하고 키우기 바빴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랑을 주고 저를 위해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저 최준희를 위해 살아오신 분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얘기를 이어가자면 외할머니는 이모할머니를 어렸을 때부터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이유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으나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이모할머니가 제 재산을 노리고 키운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하시더군요. 그렇게 11년 동안 함께 살붙이며 살아온 이모할머니를 갑자기 강제로 못 보게 한 것이 바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입니다.그땐 너무 어려서 5일 자면 오겠지, 10일 자면 오겠지 했지만 끝내 어느 날부터 이모할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1살이라는 나이에 제일 사랑하던 가족과 이별을 경험했고 며칠 뒤에 외할머니는 충격에 빠져 있던 저에게 뻔뻔하게도 “너랑 그년이(이모할머니)랑 같이 있는 꼴을 못보겠어서 내가 그냥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 너 그년이랑 있으면 네 인성 다 망쳐”라며 너무나도 어렸던 저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우울증에 걸려 안 우는 날 없이 밤마다 외할머니에게 들키지 않으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잠들고 하루 일과라면 우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큰 곰인형에 이모할머니가 들고 가지 못한 옷과 안경, 향수 양말들을 입혀 꼬옥 껴안고 잤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잔인하게도 그 인형을 집어던지며 이모할머니의 물건들을 바닥에 던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 너무 무서웠고 이모할머니랑 제가 뭘 이렇게 잘못했나 싶었습니다.그리고 며칠 뒤 저는 정신적으로 멘탈이 다 산산조각났고 용기내어 이모할머니에게 연락을 해보려 외할머니 몰래 카카오톡으로 연락을했습니다. 운 좋게도 이모할머니에게 연락이 바로 닿았고 이모할머니는 그저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네가 빨리 성인이 되고 커야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며 답장을 했고 전 더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리고 어느 날 전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제 핸드폰이 없어져 있었습니다. 몇 분 뒤 외할머니는 저에게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하시며 “너 비밀번호(패턴) 해놓는다고 못 풀 줄알아? 이모할머니랑 연락하는 거 다 알아”라고 말씀하시며 수시로 제 핸드폰 검사를 하셨고 조금 의심의 여지가 있었을 땐 그저 말없이 가져가서 돌려주시질 않으셨습니다몇 주 뒤 전 당시 성악부였고 성악부 담당 선생님께서 제 사정을 알아 이모할머니께 연락을 드려서 이모할머니가 학교로 몰래 찾아와 달고나, 산딸기 등 제가 어렸을 때부터 즐겨 먹던 음식들을 챙겨왔습니다. 전 먹는 내내 이모할머니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웃음으로 대신했고 행복은 그저 거기까지였습니다.며칠 후 이모할머니가 학교로 찾아오는 건 외할머니가 어떻게 아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해 준희랑 이모할머니 못 만나게 하라고 시켰고 선생님들께서도 제 사정을 다 아시지만 어쩔 수 없이 못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자살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그저 이모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할머니의 윽박과 폭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고 학교에서 전 자연스럽게 친구들에게 더 의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겨 그나마 버틸만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저에게 남자에 미쳤냐며 상처를 주셨고 어느 날은 크게 말다툼이 일어나 저를 옷걸이로 때리려고 하셔서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근데 갑자기 제 손을 무셨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제 오른쪽 손가락 사이에는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하루하루가 사는 게 아니었고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았고 정말 그냥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유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자해방법은 있는 데로 다해보았습니다. 커터 칼로 손목도 그어 보았고 샤워기로 목도 매달아보고 하지만 살고 싶은 의지가 조금 있었는지 항상 실패했고 그때마다 흉터만 남고 결국 전 죽지 못했습니다.며칠 뒤 할머니께서 제 유서를 발견하시고 저에게 유서를 왜 썼냐며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전 그때까지 만해도 “아 할머니가 그래도 나를 걱정했구나”라고 생각을 했으나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유서에 외할머니를 쓰지 않고 오빠와 이모할머니에게만 썼다는 이유로 화를 내셨고 또 폭행을 하셨습니다. 더 심했던 것은 북유럽으로 저랑 오빠랑 외할머니랑 가족여행을 갔었을 때 갑자기 외할머니가 저를 방으로 부르시더니 저는 엄마가 잘못 낳았다고 하시고 옷걸이로 절 때리시고 목을 조르셨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당황스러운 것은 외할머니께서 “네가 그때 말을 안 들어서 훈육을 한 것 뿐이야”라고 말할 때마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그냥 장난으로 그런거에요”라고 해명하는 것 같았습니다.그렇게 유서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외할머니께서 절 못 키우겠다 하시면서 미국으로 갈래 이모할머니한테 갈래라고 2가지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허나 이모할머니한테 갈 경우 생활비를 10원도 주지 않겠다 말씀하셨고 마음만은 이모할머니에게 가고 싶었지만 미래를 생각하여 미국으로 가겠다고 결정했습니다그 후 제가 엄마의 공로상을 받았고 아무도 모르게 유학준비를 차근차근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당시 MBC 다큐 사랑을 찍고 있었습니다 방송에는 정말 노력하고 행복 해보이는 장면으로 연출됐을지 몰라도 전 정말 괴로웠습니다.미국으로 떠나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진경 이모와 신라호텔에서 외식을 했고 전 몰래 진경 이모에게 가기 싫은 눈치를 주었고 진경 이모는 제 편을 들어주며 안 가면 좋겠다는 쪽으로 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그 이후로 진경 이모 욕을 하며 걔네가 뭔데 참견하고 지랄이냐는 말을 자주했습니다.다음은 영자이모가 김대오 기자 등 여기저기 얘기를 했고 준희를 어떻게 도울까 생각하다가 친가네로 연락을 했고 친할아버지께서는 “조씨도 아니고 우리 손자 손녀 아니니까 신경 안 쓸껍니다”라며 무시를 했습니다.그리고 미국으로 떠났을 때 전 아는 집에 맡겨지기로 했으나 거의 입양수준이었고 더 심각했던 건 제가 머물러야 했던 집은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불안정한 상태의 가정이었고 전 우리나라가 아니라서 더 겁이 났습니다.결국 미국으로 떠났고 가서도 휴먼다큐 사랑을 촬영했으며 거기서 다닐 학교도 보니깐 이상한 사이비종교로 이루어진 학교였습니다. 전 더 겁이 났고 내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심만 커져갔습니다.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서 할머니한테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제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그런데 왠일로 할머니가 오랜 고민 끝에 다시 한국으로 가자고 해서 모든 계획은 다 파토가 났고 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 할머니의 원망이란 원망은 다 들었고, 전 다시 숭의초등학교를 다니려 했으나 유학절차가 아닌 퇴학절차로 해서 다시 초등학교를 재학 할 수 없었습니다.그렇게 전 몇 달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고 할머니는 절 오빠네 국제학교로 같이 보내려 했습니다. 그동안 빡세게 공부를 시켰고 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으나 국제학교에 합격해야한다는 주위의 큰 부담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치고 아플 무렵 할머니와 전쟁은 끝난 듯 했지만 다시 시작됐고 전 계속 공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아침에 전 토요일 저녁에 공부하느라 늦게 잤고 할머니는 교회 갈 준비를 하시며 화장을 하고 계셨습니다.그런데 갑자기 자고 있는 저에게 자신의 아이라이너가 없어졌다며 저를 도둑으로 몰아갔습니다 . 하필이면 제일 예민하고 피곤했을 때 저를 도둑년이라 칭하며 넌 어렸을 때부터 도둑질만 했다면서 저에게 또 상처를 주었습니다.일단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지금 2017년 8월 5일 토요일 새벽 1시 55분인 지금도 집안이 다 박살났습니다. 경찰들도 찾아오고 정신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실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기에 일단 올리겠습니다. 긴 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2017.08.05 I 고규대 기자
최준희 2차 폭로글까지 돌연 삭제.."이영자·홍진경 등 모두 아는 사실"
  • 최준희 2차 폭로글까지 돌연 삭제.."이영자·홍진경 등 모두 아는 사실"
  • [이데일리 e뉴스 박지혜 기자]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이 2차 심경글을 남겼다. 최준희 양은 5일 새벽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로 외할머니인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의 폭행과 폭언을 폭로한 데 이어 또 다시 심경을 밝혔다.그는 “이 글에 대한 변명거리도 할머니가 분명 이야기하실 것이다. 기사회견이든 뭐든, 하지만 전 진실만을 말한다”고 전했다.그러면서 “제 몸의 흉터들과 상처들이 증인을 맡아줄 것이고 홍진경 이모, 조성아 이모, 이영자 이모, 김대오 기자분 모두들 아는 사실”이라며, “조금의 사람들이라도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 집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고,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 (사진=최준희 양 인스타그램)앞서 최 양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유서도 작성한 적이 있다며,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온 뒤에도 학업에 대한 압박과 끊이지 않는 폭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특히 최 양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괴로운 상황을 방송인 홍진경, 이영자, 김대오 기자 등에게 전했지만 외할머니의 저지와 아버지 고(故) 조성민 집의 외면으로 불행이 이어졌다고 전했다.그러나 현재 최 양이 글을 올린 페이스북 계정은 삭제된 상태다.
2017.08.05 I 박지혜 기자
 최준희 아이돌 프로그램 예선통과했으나..출연 허락 없어 외할머니와 갈등 이어져
  • [단독] 최준희 아이돌 프로그램 예선통과했으나..출연 허락 없어 외할머니와 갈등 이어져
  • [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이외할머니와의 폭언 등 외에도 미래에 대한 자신과의 견해 차이로 갈등이 증폭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준희 양은 앞서 한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출연하기 위해 조성민·최진실이라는 부모의 이름을 숨기고 1차 예선에 남몰래 응시해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준희는 이후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본선 무대에 나가기 위해 친권자인 외할머니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이후 제작진은 최준희가 어떤 도전자인지 뒤늦게 알고 외할머니를 만나 출연 동의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프로듀서 101’ 제작진이 집까지 찾아가 최준희 양의 꿈을 위해 허락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외할머니의 뜻이 달라 거절 당했다”면서 “혼자 힘으로 이뤄낸 성과인데다 정서적으로 어릴 적부터 연예계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성장에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결국 무산됐다”고 말했다.최준희 양은 어릴 적 받은 가족의 아픔 때문에 오빠 최환희 군보다 정서적으로 혼란을 많이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 일생에 대해 폭로하고자 고민 끝에 용기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려합니다’라며 장문의 글을 게재한 배경도 그 때문이다. 최준희 양의 고백처럼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로부터 과도한 보호, 나아가 간섭을 받으면서 우울증을 겪고 자살 충동까지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관계자는 “최준희 양이 평소 엑소의 팬이고 연예인이 꿈이라고 말했다”면서 “예단하기 어렵지만 재능이 뛰어난 터라 차라리 연예계 생활을 일찍 시작했으면 또 다른 탈출구가 되지 않았을까 아쉽다”고 전했다. 최준희 양은 5일 페이스북의 글에서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유서도 작성한 적이 있다며,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온 뒤에도 학업에 대한 압박과 끊이지 않는 폭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 양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괴로운 상황을 방송인 홍진경·이영자 등에게 전했고 외할머니와 갈등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최 양은 “5일 새벽 1시 55분인 지금도 집안이 다 박살 났다. 경찰들도 찾아오고 정신이 없다. 지금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기에 일단 (글을) 올리겠다”며 “저 좀 살려달라”면서 글을 맺었다. 최준희 양은 해당 글이 화제가 되자 댓글을 통해 “이 글에 대한 변명거리도 외할머니가 분명 이야기할 것”이라며 “이 글이 무조건 동정을 받고 비난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저는 조금의 사람들이라도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한 “저는 집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고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2017.08.05 I 고규대 기자
故 최진실 딸 최준희 "외할머니 폭행·폭언…살려달라"
  • 故 최진실 딸 최준희 "외할머니 폭행·폭언…살려달라"
  • 고 최진실 딸 최준희 양(사진=최준희 인스타그램).[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이 외할머니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최준희 양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 일생에 대해 폭로하고자 고민 끝에 용기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려합니다’라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이 글은 최준희 양이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했으며 우울증을 겪은 나머지 자살 충동도 느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한 외할머니가 오빠인 최환희만 챙겼고 친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지냈던 이모할머니와도 떨어트려 놨다고 주장했다.최준희 양은 해당 글이 화제가 되자 댓글을 통해 “이 글에 대한 변명거리도 외할머니가 분명 이야기할 것”이라며 “이 글이 무조건 동정을 받고 비난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닐테지만 저는 조금의 사람들이라도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한 “저는 집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고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다음은 최준희 양이 올린 글의 전문이다.안녕하세요.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고 최진실의 딸인 최준희입니다. 제가 갑작스레 이글을 적게 된 이유는 잘 살고 있었을 것만 같던 제 일생에 대하여 폭로하고자 고민 끝에 용기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려 합니다.현재 저는 중학교 2학년이고 아마 제 일생이 꼬이기 시작한 건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이후부터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고 보자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엄마가 떠난 이후로 불행하게 살 줄 알았던 저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그저 지극히 평범하게 학교 다녀와서 스폰지밥을 보고 싶어하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저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외할머니, 오빠, 이모할머니, 친가네 이 정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외할머니랑 살지 않고 같이 살고 있는 이모할머니는 누구인가에 대해 에스크를 올렸을 때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셔서 알려드리자면 이모할머니는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제가 태어나자마자 키워주셨고 다른 부모님들 못지않게 자랑스럽게 키워주셨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사실상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오빠만 예뻐하고 키우기 바빴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랑을 주고 저를 위해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저 최준희를 위해 살아오신 분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얘기를 이어가자면 외할머니는 이모할머니를 어렸을 때부터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이유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으나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이모할머니가 제 재산을 노리고 키운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하시더군요. 그렇게 11년 동안 함께 살붙이며 살아온 이모할머니를 갑자기 강제로 못 보게 한 것이 바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입니다.그땐 너무 어려서 5일 자면 오겠지, 10일 자면 오겠지 했지만 끝내 어느 날부터 이모할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1살이라는 나이에 제일 사랑하던 가족과 이별을 경험했고 며칠 뒤에 외할머니는 충격에 빠져 있던 저에게 뻔뻔하게도 “너랑 그년이(이모할머니)랑 같이 있는 꼴을 못보겠어서 내가 그냥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 너 그년이랑 있으면 네 인성 다 망쳐”라며 너무나도 어렸던 저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우울증에 걸려 안 우는 날 없이 밤마다 외할머니에게 들키지 않으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잠들고 하루 일과라면 우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큰 곰인형에 이모할머니가 들고 가지 못한 옷과 안경, 향수 양말들을 입혀 꼬옥 껴안고 잤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잔인하게도 그 인형을 집어던지며 이모할머니의 물건들을 바닥에 던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 너무 무서웠고 이모할머니랑 제가 뭘 이렇게 잘못했나 싶었습니다.그리고 며칠 뒤 저는 정신적으로 멘탈이 다 산산조각났고 용기내어 이모할머니에게 연락을 해보려 외할머니 몰래 카카오톡으로 연락을했습니다. 운 좋게도 이모할머니에게 연락이 바로 닿았고 이모할머니는 그저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네가 빨리 성인이 되고 커야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며 답장을 했고 전 더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리고 어느 날 전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제 핸드폰이 없어져 있었습니다. 몇 분 뒤 외할머니는 저에게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하시며 “너 비밀번호(패턴) 해놓는다고 못 풀 줄알아? 이모할머니랑 연락하는 거 다 알아”라고 말씀하시며 수시로 제 핸드폰 검사를 하셨고 조금 의심의 여지가 있었을 땐 그저 말없이 가져가서 돌려주시질 않으셨습니다몇 주 뒤 전 당시 성악부였고 성악부 담당 선생님께서 제 사정을 알아 이모할머니께 연락을 드려서 이모할머니가 학교로 몰래 찾아와 달고나, 산딸기 등 제가 어렸을 때부터 즐겨 먹던 음식들을 챙겨왔습니다. 전 먹는 내내 이모할머니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웃음으로 대신했고 행복은 그저 거기까지였습니다.며칠 후 이모할머니가 학교로 찾아오는 건 외할머니가 어떻게 아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해 준희랑 이모할머니 못 만나게 하라고 시켰고 선생님들께서도 제 사정을 다 아시지만 어쩔 수 없이 못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자살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그저 이모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할머니의 윽박과 폭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고 학교에서 전 자연스럽게 친구들에게 더 의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겨 그나마 버틸만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저에게 남자에 미쳤냐며 상처를 주셨고 어느 날은 크게 말다툼이 일어나 저를 옷걸이로 때리려고 하셔서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근데 갑자기 제 손을 무셨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제 오른쪽 손가락 사이에는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하루하루가 사는 게 아니었고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았고 정말 그냥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유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자해방법은 있는 데로 다해보았습니다. 커터 칼로 손목도 그어 보았고 샤워기로 목도 매달아보고 하지만 살고 싶은 의지가 조금 있었는지 항상 실패했고 그때마다 흉터만 남고 결국 전 죽지 못했습니다.며칠 뒤 할머니께서 제 유서를 발견하시고 저에게 유서를 왜 썼냐며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전 그때까지 만해도 “아 할머니가 그래도 나를 걱정했구나”라고 생각을 했으나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유서에 외할머니를 쓰지 않고 오빠와 이모할머니에게만 썼다는 이유로 화를 내셨고 또 폭행을 하셨습니다. 더 심했던 것은 북유럽으로 저랑 오빠랑 외할머니랑 가족여행을 갔었을 때 갑자기 외할머니가 저를 방으로 부르시더니 저는 엄마가 잘못 낳았다고 하시고 옷걸이로 절 때리시고 목을 조르셨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당황스러운 것은 외할머니께서 “네가 그때 말을 안 들어서 훈육을 한 것 뿐이야”라고 말할 때마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그냥 장난으로 그런거에요”라고 해명하는 것 같았습니다.그렇게 유서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외할머니께서 절 못 키우겠다 하시면서 미국으로 갈래 이모할머니한테 갈래라고 2가지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허나 이모할머니한테 갈 경우 생활비를 10원도 주지 않겠다 말씀하셨고 마음만은 이모할머니에게 가고 싶었지만 미래를 생각하여 미국으로 가겠다고 결정했습니다그 후 제가 엄마의 공로상을 받았고 아무도 모르게 유학준비를 차근차근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당시 MBC 다큐 사랑을 찍고 있었습니다 방송에는 정말 노력하고 행복 해보이는 장면으로 연출됐을지 몰라도 전 정말 괴로웠습니다.미국으로 떠나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진경 이모와 신라호텔에서 외식을 했고 전 몰래 진경 이모에게 가기 싫은 눈치를 주었고 진경 이모는 제 편을 들어주며 안 가면 좋겠다는 쪽으로 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그 이후로 진경 이모 욕을 하며 걔네가 뭔데 참견하고 지랄이냐는 말을 자주했습니다.다음은 영자이모가 김대오 기자 등 여기저기 얘기를 했고 준희를 어떻게 도울까 생각하다가 친가네로 연락을 했고 친할아버지께서는 “조씨도 아니고 우리 손자 손녀 아니니까 신경 안 쓸껍니다”라며 무시를 했습니다.그리고 미국으로 떠났을 때 전 아는 집에 맡겨지기로 했으나 거의 입양수준이었고 더 심각했던 건 제가 머물러야 했던 집은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불안정한 상태의 가정이었고 전 우리나라가 아니라서 더 겁이 났습니다.결국 미국으로 떠났고 가서도 휴먼다큐 사랑을 촬영했으며 거기서 다닐 학교도 보니깐 이상한 사이비종교로 이루어진 학교였습니다. 전 더 겁이 났고 내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심만 커져갔습니다.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서 할머니한테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제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그런데 왠일로 할머니가 오랜 고민 끝에 다시 한국으로 가자고 해서 모든 계획은 다 파토가 났고 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 할머니의 원망이란 원망은 다 들었고, 전 다시 숭의초등학교를 다니려 했으나 유학절차가 아닌 퇴학절차로 해서 다시 초등학교를 재학 할 수 없었습니다.그렇게 전 몇 달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고 할머니는 절 오빠네 국제학교로 같이 보내려 했습니다. 그동안 빡세게 공부를 시켰고 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으나 국제학교에 합격해야한다는 주위의 큰 부담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치고 아플 무렵 할머니와 전쟁은 끝난 듯 했지만 다시 시작됐고 전 계속 공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아침에 전 토요일 저녁에 공부하느라 늦게 잤고 할머니는 교회 갈 준비를 하시며 화장을 하고 계셨습니다.그런데 갑자기 자고 있는 저에게 자신의 아이라이너가 없어졌다며 저를 도둑으로 몰아갔습니다 . 하필이면 제일 예민하고 피곤했을 때 저를 도둑년이라 칭하며 넌 어렸을 때부터 도둑질만 했다면서 저에게 또 상처를 주었습니다.일단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지금 2017년 8월 5일 토요일 새벽 1시 55분인 지금도 집안이 다 박살났습니다. 경찰들도 찾아오고 정신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실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기에 일단 올리겠습니다. 긴 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2017.08.05 I 장병호 기자
③나훈아부터 방탄까지
  • [위기의 아이돌]③나훈아부터 방탄까지
  • 나훈아(사진=이데일리DB)[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 위협에 노출된 아이돌은 어제오늘 일 아니다. 스타에 대한 집착이 과격한 형태로 이어진 사례는 과거에도 존재한다. 김창완·김민종 등 다수 스타들이 스토킹에 시달렸다. 故 최진실은 두 차례 납치될 위기에 처했고, 도지원은 1998년 20대 남녀에게 납치됐다 풀려났다. 1970년대 연예계를 뒤흔든 나훈아 피습 사건이 대표적이다. 1972년 무대서 노래를 부르던 나훈아에게 한 남성이 깨진 소주병을 휘둘러 왼쪽 뺨을 70바늘이나 꿰매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남성은 “남진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며, 3년 뒤에는 남진까지 피습하려다 실패했다. 1980년에는 목포의 남진 집에 불까지 질렀다.1990년대 활동한 걸그룹 베이비복스 출신 간미연은 당시 인기 아이돌 H.O.T. 문희준과 열애설로 몸살을 앓았다고 2013년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밝혔다. 그는 “과거 눈이 파진 사진과 함께 커터칼을 선물 받았다. 선물 상자를 열다가 다치게끔 만들어 보낸 사람도 있었다. 혈서를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같은 걸그룹 출신 심은진은 “돌이나 물총, 달걀 등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동방신기 유노윤호는 2006년 20대 여성이 준 본드가 섞인 음료수를 마시고 변을 당했다. 음료수를 단번에 마시는 습관이 있던 유노윤호는 의심 없이 평소처럼 마셨다가 피를 토하고 실신했다. 유노윤호는 2014년 MBC ‘별바라기’에서 “위벽과 식도가 상했고, 한동안 역류성 질환환을 앓았다”면서 “공황장애가 오는 등 연예인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살해 협박을 받았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SNS에 지민을 향한 메시지와 함께 두 개의 총 사진을 올렸다. 미국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콘서트에서 범행을 실행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다. 당시 협박 글과 함께 공연장의 좌석 배치도, 총, 피가 묻은 손, 피를 흘리는 돼지 사체 등의 사진을 함께 게재해 충격을 줬다. 다행히 방탄소년단은 무사히 공연을 마쳤지만 멤버들과 스태프는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다. 방탄소년단(사진=이데일리DB)
2017.07.10 I 김윤지 기자
'미스터K' 하차 이후…이명세 감독이 대학로 찾은 이유는?
  • '미스터K' 하차 이후…이명세 감독이 대학로 찾은 이유는?
  • 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이명세 감독(왼쪽)과 연출가 정태영이 지난달 중순 서울 종로구 동숭동 자유빌딩에서 진행한 연습 공개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쇼빌컴퍼니).[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충무로를 대표하는 비주얼리스트. 이명세(60) 감독을 따라다니던 수식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형사-듀얼리스트’(2005), ‘M’(2007) 등 그가 발표하는 영화들은 뛰어난 영상미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12년 ‘미스터K’(2013년 개봉한 ‘스파이’의 원제) 촬영 중 제작사와의 갈등으로 감독직에서 하차하면서 한동안 이 감독의 신작을 만날 수 없었다.최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 감독을 만났다. 그는 ‘미스터K’ 하차 사태 이후의 시간을 “인생의 한 과정이었다”고 돌아봤다. “물론 그때는 힘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애썼음에도 잘 되지 않은 것에는 나름의 뜻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때 신께서 ‘진짜 너의 것을 하라’는 메시지를 내게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다.”이 감독을 대학로에서 만난 것은 그가 연출한 영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개막한 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7월 30일까지 대학로자유극장)다. 이 감독이 최진실, 박중훈 주연으로 1990년 발표해 흥행한 동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무대로 옮겼다. 그룹 2PM 멤버 황찬성과 배우 김산호·이해준·김보미·이아영·신윤정 등이 출연한다.이 감독은 이번 연극에 예술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 감독은 “실제로 제작에 참여한 부분은 많지 않다”며 웃었다. 그는 “감독으로 영화 작업을 할 때 외부에서 간섭을 받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이번 연극에서도 몇몇 아이디어만 냈을 뿐 작업에 개입하지는 않았다”며 “내 아이디어가 연극에 반영됐는지도 공연을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나의 사랑 나의 신부’이 연극으로 제작된 것은 이명세 감독과 제작사 가치플레이어스의 김주오 대표와의 인연 때문이다. 3년 전 김 대표와 연극 ‘날 보러와요’를 함께 본 이 감독은 술자리에서 흘러가듯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연극으로 올리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기억한 김 대표가 연극 제작을 제안한 것이다. 이 감독은 “‘사랑’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소재이기에 무대에 올라갔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다”고 털어놨다.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한 장면(사진=쇼빌컴퍼니).이 감독은 서울예대 영화과 출신이다. 그러나 연극 무대도 낯설지 않다. 대학을 다니면서 연극도 함께 공부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판토마임 공연을 한 극단 에저또 단원으로 공연 제작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이 감독은 “연극 무대는 열정이 있어서 좋았다”며 “대학에서도 연극 연출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연극 작업에 참여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이 감독은 영화와 연극의 차이를 ‘시간’과 ‘공간’으로 설명했다. 영화가 시간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공간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본 연극 중 기억에 남은 작품은 ‘노이즈 오프’다. 무대와 백스테이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극이었다. 이 감독은 “만약 연극 연출을 하게 되면 공간을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할 것 같다”고 했다.‘미스터K’ 하차 이후에도 이 감독은 영화 작업을 놓지 않고 있었다. 현재는 내년 크랭크인을 목표로 신작 영화의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감독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연출했을 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보다 일상적인 내용의 영화를 선보이려고 한다”고 밝혔다. 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작업을 지켜보면서 얻은 자극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감독은 “한 달 가까이 리허설을 하는 연극의 시스템을 영화에도 적용하면 어떨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드라마는 TV 화면을 보다 잠시 고개를 돌려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요즘은 영화도 드라마와 비슷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드라마가 아닌 ‘진짜’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본다. 자본으로 만든 상품이 아닌, 내가 생각한 ‘작품’으로서의 영화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
2017.06.13 I 장병호 기자
2PM 황찬성, 첫 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동료배우 감사"
  • 2PM 황찬성, 첫 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동료배우 감사"
  •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함께하는 동료 배우들과 스텝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룹 2PM 황찬성이 연극 데뷔작인 ‘나의사랑 나의신부’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황찬성은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나의사랑 나의신부’에서 영민 역으로 분해 열연했다. 등장부터 객석을 압도하며 흡입력 있는 연기를 펼친 황찬성은 6년간의 연애 끝에 미영과 결혼한 뒤 대학시절 알고 지낸 승희가 나타나면서 위기감 가득한 결혼생활을 하는 영민 역을 연기했다. 이날 황찬성은 안정적인 호흡과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냈다. 수준급의 감정연기와 분위기를 이끄는 코믹하고 유쾌한 연기에 무대장악력까지 원조 연기돌으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줬다는 평이다. 공연이 끝난 직후 "함께하는 동료 배우들의 도움으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라며 "연출과 모든 스태프들께도 항상 감사하다. 7월 말까지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포부를 밝혔다.한편 황찬성이 출연하는 연극 ‘나의사랑 나의신부’는 1990년 이명세 감독(박중훈, 최진실 주연)의 동명 영화가 원작이다.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7월 30일까지 공연을 이어나간다. 
2017.06.09 I 김미경 기자
"사랑·결혼은 영원한 소재"…'나의 사랑 나의 신부' 무대로
  • "사랑·결혼은 영원한 소재"…'나의 사랑 나의 신부' 무대로
  • 배우 황찬성(왼쪽)과 이아영이 18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자유빌딩 연습실에서 열린 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연습실 공개에서 열연하고 있다(사진=뉴시스).[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사랑과 결혼은 시대와 상관없이 영원한 소재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30년 가까이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이명세 감독)1990년 배우 박중훈, 최진실 주연으로 개봉한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다. 사랑과 결혼을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린 작품으로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열기를 이끌었다. 2014년 조정석, 신민아 주연의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영화를 연출한 이명세 감독이 연극의 예술감독으로 참여한다. 18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자유빌딩 연습실에서 만난 이 감독은 “시대에 따라 사랑의 형태나 표형 방식은 다르다. 그러나 사랑과 결혼 자체는 시대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소재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지금까지도 무대에 오르고 있는 것처럼 ‘나의 사랑 나의 신부’도 연극으로 계속 이야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예술감독이지만 작품 준비는 연출가 정태영을 비롯한 제작진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이 감독은 “아이디어를 내는 정도로만 작업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며 “연극 현장에서 오히려 많은 걸 보며 배우고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감독은 근황에 대해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짧게 답했다.그룹 2PM 멤버 황찬성이 주인공 영민을 연기한다. 첫 연극 도전이다. 황찬성은 “영화, 드라마 경험은 있지만 무대는 처음이라 많은 점이 다르다. 100분 동안 무대에서 에너지를 표출해야 한다. 선배들에게서 많이 배우며 적응하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박중훈, 조정석과는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를 분석하고 있다. 황찬성은 “영화도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만큼 나 혼자만의 느낌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영민은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황찬성은 “영민에게는 어린이 같은 모습과 어른스러움이 모두 있다.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지금도 고민 중이다”라고 했다.연극이지만 뮤지컬처럼 음악이 극 전반에 이용된다. 연출가 정태영은 “영화를 연극으로 옮겨오면서 음악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배우들이 총 5곡을 부르고 배경음악도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또 정 연출은 “영화를 본 관객, 그렇지 않은 관객 모두에게 새로운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황찬성과 함께 김산호·이해준이 영민을 연기한다. 여자 주인공 미영 역은 김보미·이아영·신윤정이 맡는다. 최소영·김윤하·김찬종이 멀티 캐릭터로 출연한다. 오는 6월 2일부터 7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한다.배우 신윤정(왼쪽쪽부터) 김산호, 김보미,이해준, 이아영, 황찬성이 18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자유빌딩 연습실에서 열린 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연습실 공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017.05.18 I 장병호 기자
연극 '나의사랑, 나의신부' 박중훈 역에 '배우 이해준'
  • 연극 '나의사랑, 나의신부' 박중훈 역에 '배우 이해준'
  • 배우 이해준(사진=더퀸AMC).[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배우 이해준(29)이 연극 무대에 데뷔한다. 이해준은 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연출 정태영·제작 가치플레이어)에서 그룹 2PM 멤버 황찬성과 함께 남자 주인공 ‘영민’ 역에 캐스팅됐다.이해준은 뮤지컬 ‘웨딩싱어’로 데뷔해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알타보이즈’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드라마 ‘언제나 봄날’, 영화 ‘인천 상륙작전’, ‘잡아야 산다’ 등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번 무대를 통해 첫 연극에 도전하는 이해준은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너무 재미있게 본 작품”이라며 “영화 속 영민과 미영의 캐릭터와 캐미가 너무 좋아 꼭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연극으로 각색된다는 소식을 듣고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좋아하는 작품으로 첫 연극에 도전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각오를 전했다.연극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1990년 이명세 감독(박중훈·최진실 주연)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두 주인공의 환상적인 케미스트리와 현실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 호평 받았다. 2014년에는 조정석과 신민아 주연의 영화로 다시 리메이크된 바 있다.여자 주인공 미영 역에는 영화 ‘써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구가의 서’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김보미가 연기한다. 오는 6월 2일부터 7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한다.
2017.04.14 I 김미경 기자
'스윙스 아웃' 비난 쇄도…"최준희에 편지는 이기적 생각"
  • '스윙스 아웃' 비난 쇄도…"최준희에 편지는 이기적 생각"
  • 스윙스(사진=이데일리DB)[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래퍼 스윙스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활동 자숙을 촉구하며 방송 출연도 하지 말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스윙스가 7년 전 썼던 노래 ‘불편한 진실’로 고(故) 최진실과 자녀들에게 상처를 줬던 일이 다시 화두에 오른 데다 최진실의 딸 준희 양에게 ‘직접 만나 사과하고 싶다’고 SNS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유에서다.스윙스의 SNS에는 “이 사람이 TV에 다시 나오면 우린 부조리와 모든 부정들에게 다시 한번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영구퇴출시켜라” 등의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또 “당신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이번 건은 심했네요”, “7년 전이면 환희, 준희는 초등학생인데 어린 애들 상대로 그런 가사 쓴 것도 이해가 안되고 본인이 상처주고 이제 와서 사과하고 싶다니 병주고 약주고 잘하네요”, “인과응보.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다” 등의 비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준희 양에 대한 스윙스의 사과 메시지를 언급하며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자기 편하려고 다짜고짜 사과하는 것도 하나의 폭력이다. 진짜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지적한 네티즌도 있었다. 협박에 가까운 심한 욕설도 적지 않았다.준희 양은 SNS를 통해 받은 스윙스의 메시지를 자신의 SNS에 공개하며 “사과를 받아줘야 하는 건가요”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준희 양이 공개한 메시지에 따르면 스윙스는 “준희 님에게 직접 사과를 하는 것이 저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어서 인스타그램으로 먼저 쪽지를 보냅니다”라며 “준희 님, 7년 전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가족분들과 준희 학생 그리고 너무나 많은 분들이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 사과를 직접 해드리고 싶었어요”라고 적었다.스윙스는 군 복무 중이던 지난 2015년 9월 정신질환으로 만기 전역을 11개월 남겨둔 상황에서 의병전역을 하면서 SNS에 ‘남은 복무 기간 치료에만 전념하며 영리활동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지난해 1월 랩 레슨 수강생을 모집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스윙스는 1개월에 2500만원이 넘는 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7.03.30 I 김은구 기자
스윙스 가사 논란 여파?…故최진실 딸 “세상 참 싫다”
  • 스윙스 가사 논란 여파?…故최진실 딸 “세상 참 싫다”
  • 스윙스(사진=방인권 기자)[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고 최진실의 딸 최준희가 의미심장한 글을 게재했다.최준희는 29일 오후 자신의 SNS에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나는 점점 사라지는 별과도 같아 어두 컴컴한 밤하늘 속엔 항상 빛나는 별들, 그 수많은 별 사이엔 가려진 별들도 존재하는 법”이라며 “그런 별이 되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참아가면서 얼마나 힘들었거늘 그 노력이 사라진다니 세상이 참 싫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최준희는 또 다른 글을 게재했다. 그는 “학교에서 약하다거나 작다거나 못생겼다거나 아무런 이유없이 당해야 했던 아이들 ,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괴롭힘을 당하고 밟히고 맞고 지내온 것에 대해 어른들은 니가 잘못한것이 있으니 그렇겠지 하시는데 이게 과연 아이들의 잘못일까요?”라고 반문했다.이어 “이런 아이들을 보듬어 주지 못하고 바쁘단 핑계로 나몰라라하는 어른들의 잘못도 있는거 아닐까요? 위로의 한마디라도 전해주세요 잠깐이라도 힘을 낼수있게.”라고 당부했다.최준희는 최근 SNS에 래퍼 스윙스의 과거 가사 논란에 대한 심경글을 남겼다. 스윙스는 지난 2010년 발표한 앨범 ‘자아’ 수록곡 ‘불편한 진실’ 가사로 고인이 된 최진실과 두 자녀를 모욕했다는 논란을 초래했다. 논란이 재점화되자 스윙스는 최준희를 직접 만나서 사과를 하고 싶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윙스는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2017.03.30 I 김윤지 기자
故 최진실 딸 고민 빠트린 스윙스의 편지, 진정한 사과일까?
  • 故 최진실 딸 고민 빠트린 스윙스의 편지, 진정한 사과일까?
  • 스윙스[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래퍼 스윙스가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에게 지난 2010년 발표한 래퍼 비즈니스의 앨범 수록곡 ‘불편한 진실’로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며 SNS로 메시지를 보냈다. 스윙스는 글 속에 구구절절 사과의 메시지를 담았지만 최준희 양을 고민에 빠트렸다는 점에서 진정한 사과인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실제 최준희 양은 29일 스윙스가 보낸 메시지를 SNS에 공개하며 “사과를 받아줘야 하는 건가요”라고 적었다. 스윙스는 자신의 노래로 상처를 받은 최준희 양의 마음에 편지로 다시 한번 불편함을 끼친 셈이다.‘석고대죄’라는 말이 있다. 거적을 깔고 엎드려 처벌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최준희 양과 가족을 만나서 사과를 하고 싶었다면 온라인을 통해 글을 보내는 게 아니라 직접 집 앞에 찾아가 무릎을 꿇고 만나주기를 간청해야 될 터였다. 하지만 스윙스는 그 동안 자신의 심적 괴로움과 뉘우침을 어필하는가 하면 마치 쪽지를 남기는 것도 준희 양 가족을 배려하는 차원이라는 것만을 강조했다. 스윙스는 준희 양이 전화나 더 직접적인 연락은 받기 싫어할 수 있지만 직접 사과를 받고 싶어 할까봐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스윙스는 “준희 님에게 직접 사과를 하는 것이 저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어서 인스타그램으로 먼저 쪽지를 보냅니다”라며 “준희 님, 7년 전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가족분들과 준희 학생 그리고 너무나 많은 분들이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 사과를 직접 해드리고 싶었어요”라고 글을 보냈다. 그는 과거 노래가 공개된 직후 ‘노래 유통을 금지하고 사과문을 올리고, 그리고 유가족 분들에겐 연락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전달받았다며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사과문을 올리는 것뿐이었다고 밝혔다. 또 “연락을 드려 직접 찾아 뵙고 사과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당시에 준희 씨, 그리고 환희 씨가 너무 나이가 어려 찾아가서 사과를 하는 것도 오히려 큰 상처일 것 같았어요”라고 덧붙였다.스윙스는 “저도 한명의 사람으로서 사건 이후 거의 매일 죄책감에 시달렸어요”라며 “언젠가 환희 씨, 준희 씨를 만나면 꼭 사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꼭 사과를 하고 그 사과를 통해 용서를 바라기보다는 아주 조금이라도 저 때문에 받은 상처들을 낫게 하고 싶었어요”라고 전했다.
2017.03.30 I 김은구 기자
故 최진실 딸, 스윙스가 보낸 편지 공개 "용서할까?"
  • [단독]故 최진실 딸, 스윙스가 보낸 편지 공개 "용서할까?"
  • 스윙스[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이 랩 가사로 자신의 가족들에게 괴로움을 안겼던 래퍼 스윙스를 용서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최준희 양은 29일 자신의 SNS에 스윙스가 보내온 장문의 메시지를 공개하며 ‘사과를 받아줘야 하는 건가요’라고 적었다.스윙스는 지난 2010년 발표한 래퍼 비즈니즈의 앨범 ‘자아’ 수록곡 ‘불편한 진실’ 가사로 고인이 된 최진실과 자녀 환희 군과 준희 양을 모욕했다는 논란을 초래한 일이 다시 화두에 오르자 준희 양에게 직접 만나서 사과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스윙스는 “준희 님에게 직접 사과를 하는 것이 저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어서 인스타그램으로 먼저 쪽지를 보냅니다”라며 “준희 님, 7년 전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가족분들과 준희 학생 그리고 너무나 많은 분들이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 사과를 직접 해드리고 싶었어요”라고 적었다.이어 “옛날에 그 노래가 나온 후 연락을 받은 분들이 저에게 이렇게 전달을 했어요. 노래 유통을 금지하고 사과문을 올리고, 그리고 유가족 분들에겐 연락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래서 그 때 당시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과문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싸이월드에 사과문을 올린 적이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또 “연락을 드려 직접 찾아 뵙고 사과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당시에 준희 씨, 그리고 환희 씨가 너무 나이가 어려 찾아가서 사과를 하는 것도 오히려 큰 상처일 것 같았어요”라고 덧붙였다.스윙스는 “TV나 매체에서는 어떻게 제가 비추어지는지는 어느 정도 알아요. 무섭고 거칠고 예의 없고 무모하고. 물론 그런 모습들이 제 모습의 일부인 것은 부정하지 않아요”라며 “하지만 동시에 저도 한명의 사람으로서 사건 이후 거의 매일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겉보기엔 안그럴 것 같아도 전 죄책감에 늘 시달리고 작은 잘못도 잊을 때 오래 걸릴 때가 많아요”라고 토로했다. 스윙스는 “그 사건 언젠가 환희 씨, 준희씨를 만나면 꼭 사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ㅤㄴㅣㄷ다”라며 “꼭 사과를 하고 그 사과를 통해 용서를 바라기보다는 그냥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저 때문에 받은 상처들을 낫게 하고 싶었어요”라고 마음을 전했다.스윙스는 “조금 전 준희 씨가 관련 기사에 저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보게 되었고 또 그 전에 올해 초에 올린 글도 보게 되어서 놀랐어요”라며 “올해 초에 올린 글은 사실 지금까지 저한테 전달이 안되어서 안타까웠어요. 제가 그 대 알았다면 무조건 바로 연락을 드렸을 거예요”라고 적었다. 이어 “만약 그 글을 올리고 나서 제가 그 글을 보고도 뻔뻔하게 산다고 오해하셨다면 그것도 죄송해요”라며 “하지만 전 그렇게까지 뻔뻔한 사람은 아니에요”라고 덧붙였다.스윙스는 “지난 사건은 저라는 사람의 본질에 대해서 계속 의구심을 품게 하는 최악의 일이었고 또 제 인생 가장 큰 사고이기도 해요”라며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전 두 번 생각 안하고 그 때로 돌아가서 그 때의 제 자신에게 돌아가 그 노래를 내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저는 저를 증오하고 있고 괴롭습니다. 근데 저보다 훨씬 괴로웠을 준희 씨와 가족분들 생각을 하면 몇십배로 제 자신이 미워집니다”라고 자책했다.스윙스는 현재 일 때문에 미국에 나가 있다며 오는 4월4일 밤 한국에 돌아오는 만큼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는 만나서 하고 싶다고 밝혔다. 메시지를 남긴 이유는 전화나 더 직접적인 연락은 받기 싫어할 수 있지만 직접 사과를 받고 싶어 할까봐라고 덧붙였다.
2017.03.29 I 김은구 기자
스윙스, 故 최진실 딸에 편지 "직접 만나 사과하고 싶다"
  • [단독]스윙스, 故 최진실 딸에 편지 "직접 만나 사과하고 싶다"
  • 스윙스[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래퍼 스윙스가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에게 SNS 메신저를 통해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지난 2010년 발표한 래퍼 비즈니즈의 앨범 ‘자아’ 수록곡 ‘불편한 진실’ 가사로 고인이 된 최진실과 자녀 환희 군과 준희 양을 모욕했다는 논란을 초래한 일이 다시 화두에 오르자 스윙스는 준희 양에게 직접 만나서 사과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스윙스는 “준희 님에게 직접 사과를 하는 것이 저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어서 인스타그램으로 먼저 쪽지를 보냅니다”라며 “준희 님, 7년 전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가족분들과 준희 학생 그리고 너무나 많은 분들이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 사과를 직접 해드리고 싶었어요”라고 적었다.이어 “옛날에 그 노래가 나온 후 연락을 받은 분들이 저에게 이렇게 전달을 했어요. 노래 유통을 금지하고 사과문을 올리고, 그리고 유가족 분들에겐 연락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래서 그 때 당시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과문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싸이월드에 사과문을 올린 적이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또 “연락을 드려 직접 찾아 뵙고 사과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당시에 준희 씨, 그리고 환희 씨가 너무 나이가 어려 찾아가서 사과를 하는 것도 오히려 큰 상처일 것 같았어요”라고 덧붙였다.스윙스는 “TV나 매체에서는 어떻게 제가 비추어지는지는 어느 정도 알아요. 무섭고 거칠고 예의 없고 무모하고. 물론 그런 모습들이 제 모습의 일부인 것은 부정하지 않아요”라며 “하지만 동시에 저도 한명의 사람으로서 사건 이후 거의 매일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겉보기엔 안그럴 것 같아도 전 죄책감에 늘 시달리고 작은 잘못도 잊을 때 오래 걸릴 때가 많아요”라고 토로했다. 스윙스는 “그 사건 언젠가 환희 씨, 준희씨를 만나면 꼭 사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ㅤㄴㅣㄷ다”라며 “꼭 사과를 하고 그 사과를 통해 용서를 바라기보다는 그냥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저 때문에 받은 상처들을 낫게 하고 싶었어요”라고 마음을 전했다.
2017.03.29 I 김은구 기자
최진실 딸, 스윙스에 불편한 심경… “상처 짊은 건 우리”
  • 최진실 딸, 스윙스에 불편한 심경… “상처 짊은 건 우리”
  • [이데일리 스타in 이정현 기자] 故최진실의 딸 최준희 양이 래퍼 스윙스의 과거 가사 논란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최준희 양이 쓴 것으로 알려진 SNS 글에 따르면 최 양은 “죄송합니다만 예전의 일을 들추는 게 잘못된 건 알지만, 상처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은 저와 오빠인데요? 다 과거인데 왜 그러시냐는 말이 솔직히 저는 이해가 안 가네요”라면서 “저 스윙스 때문에 고등래퍼도 안 보고 웬만한 랩 분야는 잘 안 봐요 그만큼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사과한 것도 ‘상처받을 줄 몰랐다’ 이런 식으로 얘기했는데, 그때는 제가 어렸을 때라 잘 몰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제 입장 그리고 제 가족들 입장에선 너무 황당한 발언 아닐까요?”라고 전했다. 이 글은 29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공개됐다.최준희 양은 “예전 일이라도 화나는 건 여전하고 상처받는 건 여전합니다. 근데 왜 지금까지 난리 치시냐는 말은 당사자 입장은 생각 안 해보셨다는 거네요?”라고 썼다.최 양이 이 같은 글을 올린 것은 케이블채널 Mnet ‘고등래퍼’에 출연한 스윙스가 최근 부적절한 언행으로 뭇매를 맞으며 과거 행실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윙스는 지난 2010년 발표된 래퍼 비즈니즈의 앨범 ‘자아’ 수록곡 ‘불편한 진실’에 ‘불편한 진실? 너흰 환희와 준희 진실이 없어 그냥 너희들뿐임’이라는 내용의 가사를 써 고인이 된 최진실과 자녀 환희 군과 준희 양을 모욕했다는 비난을 받았다.스윙스는 “가사의 표현 중 고인과 유가족이 실명으로 언급이 되었는데, 유가족의 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히게 된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고인과 유가족을 욕보이거나 마음의 상처를 줄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평소에 저희 표현들이 중의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제목과 다른 문맥을 고려하여 가사를 쓰다 보니 큰 실수를 저질렀다. 문제가 된 부분은 제가 가사상으로 비판하는 대상에 대하여 거짓이 가득하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사용한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2017.03.29 I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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