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유통사는 ‘살충제 계란’ 피해자가 아니다

소비자와 같은 '피해자'라는 유통사
검증시스템 갖추지 못한 채
'친환경 제품' 홍보하고 판매한 '죄' 중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교훈 얻어야
  • 등록 2017-08-23 오후 2:28:50

    수정 2017-08-23 오후 2:28:50

[이데일리 박성의 기자] “저희야 뭐 정부 조사발표 기다릴 뿐이죠.”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인 지난 15일.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한숨도 뒤따랐다. 답답하다고 했다. 정부가 조사결과를 빨리 내놔야 계란의 판매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데, 식약처도 농림부도 손발이 맞지 않는 탓에 유통사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소비자에 대한 보상책을 물었다. 마트 관계자들은 다시 입을 모아 “기존 환불정책을 따를 뿐, 보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답변에는 헛웃음까지 묻어났다. 그러면서 억울하다고 했다. 말인즉슨 이 사태를 유발한 가해자는 양계농가와 정부이며 소비자와 유통사는 그 반대편에 선 피해자라는 얘기였다.

과연 마트를 운영하는 유통사는 피해자일까. 물론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하는 이는 양계농가와 정부가 맞다. 양계농가는 금지된 살충제를 뿌렸고, 정부는 이를 방조했다. 유통사는 이 같은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계란매대 앞에 ‘친환경 농가에서 기른 닭이 낳은 무항생제 계란’이라는 표어를 걸어놓고 장사를 했고 홈플러스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PB 계란인 ‘신선대란 홈플러스’를 판매했다.

유통사는 정부와 양계농가와 같은 무게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건 제품을 판매하고 싶다면 실제 그 이름을 붙일 자격이 되는 상품인지, 유통사는 확인해야 한다. 그럴 수고를 회피하고 싶다면, 자사 이름을 건 PB상품과 매대에 써 붙인 친환경이라는 팻말을 떼어 내는 게 맞다. 팔 때는 자사 이름을 걸고 보증해놓고, 사태가 터지고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소비자 기만이다. 제대로 된 검증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한 채 친환경제품을 판매했기에, 마트는 살충제 계란 사태의 공범(共犯)이다.

지난 17일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책임을 물어 재판에 넘겨진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관계자들은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수익에 급급한 나머지 소비자의 안전을 외면하고 옥시 제품을 벤치마킹한 상품을 판매해 상당한 매출을 올렸다”며 “그 결과 회사나 제품 라벨의 표시를 믿고 제품을 쓴 다수의 사람이 사망하거나 중한 상해를 입는 끔찍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질타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취지로 허위·과장 광고를 한 혐의도 적용됐다. 이 선고문에 유통사가 짊어져야 할 책임감과 수치(羞恥)가 있다. 말로만 외치는 고객우선주의는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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