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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철우의 1S1B] 고참, 그 존재의 이유
  •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13일 경기 전 목동구장 원정팀 라커룸. SK 포수 박경완과 볼배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유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안 것은 한참 뒤였다. 유격수 나주환이었다. 그는 동그래진 눈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박경완이 말을 마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 볼카운트 1-2에서 말입니다. 직구 파울이 뒷그물로 갔거든요. 잘 친건 아니고 방망이가 좀 늦었어요. 근데도 직구가 또 들어오는거에요. 계속 그런게 헛갈리니까 2스트라이크만 되면 무지 힘듭니다." 흔히 파울 타구가 뒷그물로 가면 타이밍이 맞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타자가 그 구종을 노렸거나 컨디션이 좋은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나주환의 말은 직구 파울이 뒷그물로 갔으니 어찌됐든 상대 배터리가 변화구 승부를 할거라 생각했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박경완은 물론 옆에 있던 투수 가득염까지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마치 짠 것처럼 똑같은 말을 했다. "네가 그런 모습 보이는 순간 바로 호구 잡히는거야." 이후 설명이 이어졌다. "투수와 포수는 타이밍이 맞아서 뒷그물로 갔는지 늦게 쳐서 그랬는지 다 알아. 다음 공을 어떻게 선택하는지 다 예상할 순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을 치러가는 순간 고민해선 안된다는 거야. 그런 타자는 우습게 보일 수 밖에 없어. 알았냐." 나주환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은 '상식'이었지만 박경완과 가득염이 들려준 것은 '경험'이었다. 나주환은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속 응어리 하나가 풀린 듯한 표정이었다. 야구는 수학과는 달라서 공식을 쫓아가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경험이다. 오랜 세월 실전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쌓인 고참들의 경험담은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 역할을 한다. 한화 투수 안영명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등 쟁쟁한 선배들의 모습만 잘 지켜봐도 투수가 어떻게 생활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세상의 시선은 베테랑 선수들에게 냉정하다. 예전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당장 날 선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들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덕아웃 뒤켠 어딘가에선 지금도 그들이 뿌리는 희망의 씨앗들이 자라나고 있다.▶ 관련기사 ◀☞[정철우의 1S1B]'대안2'였던 사나이,그리고 그의 한☞[정철우의 1S1B] 로이스터 돌풍과 귀네슈의 2007 시즌☞[정철우의 1S1B]이봄,캐치볼로 마음을 전해보세요☞[정철우의 1S1B]야구장의 전봇대도 뽑아버리자
2008.04.14 I 정철우 기자
프로야구 사령탑, 8인 8색 출사표
  • 프로야구 사령탑, 8인 8색 출사표
  • ▲ 올시즌 각오를 말하는 8개구단 감독들 (맨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SK 김성근, 두산 김경문, 한화 김인식, 삼성 선동렬, LG 김재박, 롯데 로이스터, 우리 이광환, KIA 조범현 감독)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8개구단 감독 2008시즌 출사표 ▲김성근 SK 감독=지난해 우승한 뒤 크게 전력 보강이 없었다. 2군 선수들의 실력 업그레이드는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봤는데 1군 선수 부상이 많아 시범경기서 헤맸다. 시즌 운영 방향도 아직 찾지 못했다. 남은 기간동안 정비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작년엔 너무나 쉽게 페넌트레이스를 이끌 수 있었는데 올해는 시즌 초반부터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4월 한달을 5할로 넘어가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4월을 어떻게 싸우는지가 갈림길이다. 시범경기서 보니 다른 팀들이 많이 향상됐다. 우승이라는 말 자체가 어려운 말이 됐다고 본다. 어쨌든 목표는 2연패다. ▲김경문 두산 감독=세월이 빠르다는 것 느끼게 된다. 시즌 전에 목표 정해 부담스럽게 하는 것 보다는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항상 팬을 잊지 않고 노력하겠다. ▲김인식 한화 감독=지난해 구대성 이영우 등 고참들이 하나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때로는 끈기있게 끌어가 주는 역할도 했다. 그러나 현재 그 선수들이 수술 후 재활과정에 있다. 또 지난해보다는 전력 보강이 없다. 시범경기서 보니 다른 팀들은 많이 보강 됐다. 특히 KIA가 눈에 띈다. 돌풍을 일으킬 것 같은 예감이다. 우리 팀은 걱정이 앞선다. 그렇지만 1차 4강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 ▲선동렬 삼성 감독=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다.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것은 부상이 없는 한해로 지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즌도 들어가기 전부터 부상선수가 나와 걱정이다. 그래도 작년에 비해 팀이 공격력, 특히 중심타자 쪽에서 무게감이 생겼다. 단점은 포수가 진갑용 혼자라는 점인데. 부상중인 현재윤이 돌아올때까지 잘 버티면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  ▲김재박 LG 감독=작년에 부임해서 5위 했는데 실제 팀 전체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작년 가을부터 1.5군 선수 데려가서 훈련을 많이 시켰다. 봄 캠프에 와보니 역시 선수들이 많이 올라온 걸 느꼈다. 작년보다는 많이 보강됐다고 본다. 전보다는 투수층이 좀 나아졌다. 공격 부분은 젊은 선수를 많이 활용할 생각이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 팀들이 잘해야 서울 팬들이 찾아와주시리라 믿고 서울에서 좋은 경기, 좋은 결과 보여드리겠다. ▲이광환 히어로즈 감독=어제 팀 창단 한 막내둥인데 앞으로 미흡한게 있더라도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원래 막내가 말썽 많이 피운다. 우리도 그렇다. 와서 보니 마운드가 많이 부실하다. 김수경 전준호 등 선발 두 축이 빠진 상태다. 다행히 재활에 성공한 마일영 신철인이 가세했다. 빈 자리는 젊은 선수들이 메워줘야한다. 아무래도 젊은 선수들의 경기 수가 부족하다. 초반에는 검증과정이 아닌가 싶다. 엔트리 1/3을 젊은 선수들로 채울 수 밖에 없다. 하고 싶어 하는게 아니라. 부상이 많다보니 어쩔 수 없이 세대교체와 연결됐다. 어찌됐든 젊은 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함께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로이스터 롯데 감독=다른 팀 감독들이 시범경기서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다. 우리 팀은 과거보다 더 잘할거라 생각한다. 선수들이 밥 잘 먹는 만큼 수비를 잘해주면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올해 좋은 경쟁 될 것 같다. 한국엔 훌륭한 팀들이 많다. 지난 올림픽 예선을 통해 한국야구의 힘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에 한국에서 좋은 야구를 많이 봤다. 시즌에 기대가 크다. ▲조범현 KIA 감독=아쉬운 면도 있지만 나름대로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자신을 가다듬기 위해 충실한 훈련을 했다. 시범경기서 1위를 했는데 선수들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게 큰 소득이다. 신인 선수들도 열심히 했고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수도 생겨 활력이 되고 있다. 올해는 많이 이기고 싶다. 기아 팬들의 자긍심을 높여드리고 싶다. 열광적으로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사진=김정욱 기자)▶ 관련기사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말의 전쟁 '신인선수 편'☞프로야구 미디어데이 말의 전쟁 '감독,고참 편'☞유니폼 실수 장성호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마세요'☞[포토]프로야구 8개 구단 감독·선수 한자리 모여 화이팅!☞[포토]프로야구 대표 선수들, '올해는 우리가 최고'
2008.03.25 I 정철우 기자
한화 마무리 토마스 구위 굿,제구 흔들
  • 한화 마무리 토마스 구위 굿,제구 흔들
  • ▲ 한화의 외국인 투수 토마스 (사진제공=한화이글스)[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글쎄, 공 자체는 좋은데..." 한화가 8-1로 앞선 9회. 마무리 토마스가 첫 타자 대타 김준호를 상대로 150km와 151km를 잇달아 찍어내자 3루측 관중석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3구째 141km짜리 스플리터로 삼진을 솎아내자 탄성은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함성은 이후 잦아들기와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다. 이후 투구가 그만큼 기복이 심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다음 타자 박용택에게 단 한개의 스트라이크도 던지지 못한 채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다. 이어 최동수에게 볼 카운트 1-0에서 중견수 머리를 넘기는 2루타를 얻어맞고 실점을 했다. 역시 150km가 넘는 공이었지만 제구가 되지 않아 한 가운데로 몰린 공은 힘 좋은 최동수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토마스는 그러나 이후 박용근을 2루 땅볼, 박경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주무기는 역시 150km를 넘어서는 빠른 공이었다. 재활중인 구대성을 대신해 마무리로 낙점받은 토마스의 시범경기 성적은 1승1세이브 방어율 4.91. 1점차 승부의 마지막을 맡기기엔 아직 믿음이 가지 않는다. 특히 16일 SK전서 2개,21일 잠실 LG전서 1개씩의 볼넷을 내주며 위기를 자초하는 모습은 아쉬움을 남겼다. 가운데로 몰리지 않으면 쉽게 쳐내기 힘든 위력적인 공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아직 구장에 대한 적응을 하고 있는 기간이라 생각된다. 계속 기회를 주면서 경험을 쌓도록 하겠다. 구위는 정말 매력적인 만큼 볼넷을 줄여가는 방향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기서는 한화 타선이 LG 마운드를 맹폭하며 8-2 대승을 거뒀다. 4번 김태균이 5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으로 활약했고 이범호와 한상훈이 2개씩의 안타를 쳐냈다. LG는 기록된 실책은 하나 뿐이었지만 여러차례 실책성 플레이가 나오며 쉽게 무너졌다. 외야수 이대형,2루수 박용근,포수 최승환 등 미진한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은 김재박 감독의 지시에 따라 경기 후 따로 남아 특별 수비 훈련을 해야 했다.▶ 관련기사 ◀☞김인식 감독 "발야구 유행은 투수 스피드 맹신 탓"☞[정철우의 1S1B]야구장의 전봇대도 뽑아버리자☞이승호 '지금 필요한 건 技기 아니라 氣'☞SK 이승호 완벽 부활 아직은...삼성전서 볼넷 6개☞삼성이 보여준 진화 '발야구 잡기 프로젝트'
2008.03.21 I 정철우 기자
한화 마무리 토마스 잇단 호투로 신뢰 ''팍''
  • 한화 마무리 토마스 잇단 호투로 신뢰 ''팍''
  • 사진=한화 이글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화 마무리 토마스가 잇단 연습경기 호투로 김인식 감독의 무한 신뢰를 받고 있다. 토마스는 23일(이하 한국시간) 하와이 센트럴 오아후 리지널 파크에서 열린 청백전에 마지막 투수로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잘 던졌다. 최근 두 경기 연속 무실점. 최고 구속은 147km까지 나왔으며 다양한 변화구 구사능력으로 점차 제구력까지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두 경기 모두 볼넷 혹은 몸에 맞는 볼을 내줬지만 공의 위력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 김 감독의 평가다. 토마스는 첫 실전 등판이던 18일 경기서는 1이닝동안 7타자를 맞아 5피안타 3실점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에도 코칭스태프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힘이 느껴지는 공을 던졌기 때문이다. 토마스에 대한 신뢰는 지난해까지 마무리를 맡았던 구대성의 보직 변경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구대성은 "토마스가 잘해준다면 선발로 옮길 생각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이날 경기는 5타수 3안타를 기록한 신인 오선진의 활약에 힘입어 백팀이 9-2로 이겼다. 장종훈 타격코치는 "오선진이 타격 센스가 있다. 타격폼이나 스윙을 보면 큰 기복 없이 좋은 타격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홍팀 선발로 나선 유원상은 3이닝 5피안타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고 백팀 선발 윤규진은 3이닝 5피안타 3실점(2자책)을 기록했다. 백팀 두번째 투수로 등판한 정대훈이 2이닝 무실점(볼넷 1개)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2008.02.24 I 정철우 기자
군 보류수당 폐지 '불필요한 관행 VS 인권 문제'
  • 군 보류수당 폐지 '불필요한 관행 VS 인권 문제'
  • ▲ 지난 19일 열린 KBO이사회[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군 보류수당을 전격 폐지했다.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는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구단들은 군 입대 선수들에게 계약된 연봉의 25%를 지급해왔다. 그러나 이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KBO가 규약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일부 구단이 선수단 지원 차원에서 연봉의 일부를 지급하면서 보편적인 관행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KBO 관계자는 "관점에 따라서 군 보류수당은 선수들의 성적에 따른 메리트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프로야구의 구조조정을 위해 규약이 정하지 않는 수당은 지급하지 말자는 합의가 있었고 그 연장 선상에서 내려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KBO와 구단들은 규약상 정해진 규정이 아닌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보류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보류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군 보류수당 폐지는 이번에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시발점은 지난 2004년 불거진 선수들의 병역비리였다. 당시 신인급 선수들은 물론 억대 연봉을 받는 주전급 선수들까지도 비리에 연루돼 입대하게 되면서 군 보류 수당에 대한 부담도 크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사회에서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군에 입대한 선수들의 연봉 일부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당시에는 합의까지 이뤄지지는 않았다. KBO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구단과 KBO는 상무와 경찰청 운영에 적지 않은 돈을 들이고 있다.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서다. 모든 선수들이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군에 가는 선수들에게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KBO도 일부 구단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사실을 통보한 것에 대해서는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KBO는 이사회 다음날인 20일 구단에 공문으로 군 보류 수당이 지급되선 안된다는 결정을 통보하며 선수들에게도 고지할 것을 요청했다. 한편 선수협은 군 보류수당의 전격적인 폐지 문제를 인권 보호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나진균 선수협 사무총장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러운 일이다. 내내 쉬쉬 하다가 월급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의 선수들이 생계는 물론 인격적으로 상처를 입었다"며 "단순히 법률적 해석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선수협은 이를 위해 법무법인이 아닌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나 총장은 "법적으로 싸울 일이 아니다. 선수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민변에 이번 사태의 해결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KBO 군 보류수당 슬그머니 폐지...선수협 반발☞[포토]한화 구대성의 재활 훈련 3종 세트☞[정철우의 1S1B]까마귀 날때마다 배가 떨어지니...☞우리 담배, 움직이는 광고판 어떻게 활용할까☞나카타 잡은 SK 이한진, '금성무 닮은 외모로도 화제'
2008.02.22 I 정철우 기자
  • KBO 군 보류수당 슬그머니 폐지...선수협 반발
  •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군 보류수당을 없애고도 이를 외부에 공표하지 않은채 곧바로 시행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이하 선수협)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구단들이 군 보류수당을 주지 않기로 결의한 뒤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 연봉 지급일이 돼서야 문자메시지로 해당 선수들에게 이를 통보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선수협은 KBO가 지난 19일 이사회에서 연봉 감액 제한을 철폐하고 이를 미계약자 신분인 센테니얼 선수들부터 적용하기로 한 점과 군 보류수당 문제를 묶어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시행에만 합의하고 실제로는 운영되지 않은 대리인 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선수협은 "대리인제도는 이미 지난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에 의거, 시행하도록 되어 있는 제도다. 그동안 한국야구의 상황을 고려해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선수들이 구조 조정 정국에서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바 대리인제도를 전격 시행하기로 했다. 그 첫 대상자는 센테니얼 선수들"이라고 밝혔다. 한편 나진균 선수협 사무총장은 이날 제주도를 방문, 센테니얼 선수들과 면담을 가졌다. 나 총장은 "선수들이 연봉 협상과 고용안정에 대해 큰 불안을 갖고 있다. 조만간 변호인단(대리인 자격)을 구성해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군 보류수당 철폐 '불필요한 관행 VS 인권 문제'☞[포토]한화 구대성의 재활 훈련 3종 세트☞[정철우의 1S1B]까마귀 날때마다 배가 떨어지니...☞우리 담배, 움직이는 광고판 어떻게 활용할까☞나카타 잡은 SK 이한진, '금성무 닮은 외모로도 화제'
2008.02.22 I 정철우 기자
한화 구대성의 재활 훈련 3종 세트
  • [포토]한화 구대성의 재활 훈련 3종 세트
  •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왼 무릎 수술 후 재활 훈련중인 한화 구대성(39)이 순조로운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무릎 부상 이후 어쩔 수 없는 훈련 부족 탓에 약해진 하체 근육과 흐트러진 밸런스를 잡는 것이 최우선 목표. 구대성은 이를 위해 다양한 재활 기구를 통해 힘을 붙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면 마운드에 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재활 페이스가 좋아 그보다 일찍 복귀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구대성이 조대현 트레이너와 함께 탄력 저항 밴드를 이용한 재활 운동을 하는 모습. 밴드를 다리에 묶어둔 채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훈련이다.  사진=한화 이글스                탄력 저항 밴드를 이용한 두번째 훈련. 나무에 밴드를 묶어두고 수십번씩 당겨가며 힘을 붙이는 훈련이다.  사진=한화 이글스                구대성이 세트럴 오아후리지널파크의 언덕을 뛰는 모습.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뛰는 것은 하체, 특히 투수들의 하체 힘을 키우는데 탁월한 효과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대성이 오르막 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재활이 순조롭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혹시 있을지 모를 무릎의 부담을 덜기 위해 '스텝퍼'라는 재활 운동 기구를 착용하고 있다.  '스텝퍼'는 탄력 저항 운동 기구로 러닝시 보폭을 조절하여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을 방지해 준다.▶ 관련기사 ◀☞[정철우의 1S1B]까마귀 날때마다 배가 떨어지니...☞우리 담배, 움직이는 광고판 어떻게 활용할까☞나카타 잡은 SK 이한진, '금성무 닮은 외모로도 화제'
2008.02.22 I 정철우 기자
한화 류현진 청백전서 2이닝 5실점 부진
  • 한화 류현진 청백전서 2이닝 5실점 부진
  • ▲ 류현진 [사진제공=한화이글스][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화 류현진(21)이 대표팀 합류를 앞두고 가진 실전 피칭에서 부진했다. 류현진은 18일(이하 한국시간) 청백전에 선발등판, 2이닝동안 3개의 안타를 허용하며 무려 5점이나 내줬다. 특히 볼넷을 4개나 내줄만큼 제구가 불안했다. 최고 구속은 143km가 나왔다. 한화 코칭스태프는 그러나 "류현진이 타자의 바깥쪽 변화구를 시험하는데 중점을 뒀을 뿐"이라며 성적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류현진은 19일 대표팀 참가를 위해 한국으로 떠났다. 한편 김인식 한화 감독이 구대성을 대신해 마무리 투수로 낙점한 브래드 토마스도 이날 경기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1이닝동안 무려 5개의 안타를 맞으며 3실점했다. 다만 구속이 142~147km 사이를 꾸준히 유지했으며 다양한 변화구 구사능력을 보여준 것이 위안거리였다. 경기는 6-7로 뒤진 7회 이범호가 토마스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을 뽑아내 7-7로 끝났다.▶ 관련기사 ◀☞KIA 최희섭 두통으로 결국 대표팀 탈락☞김인식 감독 마운드 구상 "유원상 3선발,마무리 토마스"☞김재박 감독 1차 전훈 결산 "백업 요원 기량 향상에 만족"☞제주 캠프와 함박눈의 추억☞유승안 전감독이 말하는 '제주 캠프 경험기'
2008.02.19 I 정철우 기자
김인식 감독 마운드 구상 "유원상 3선발,마무리 토마스"
  • 김인식 감독 마운드 구상 "유원상 3선발,마무리 토마스"
  • ▲ 김인식 감독이 백네트 뒤에서 청백전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한화이글스][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김인식 한화 감독이 2008 시즌 마운드 운영 구상을 밝혔다. 유원상의 선발 고정과 불펜의 양적 질적 강화가 핵심이다. 김 감독은 15일 홍백전에 앞서 "선발은 류현진 정민철 유원상은 확정적이다. 나머지 두 자리를 놓고 문동환 송진우 안영명이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입단한 1차지명으로 입단한 유원상은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 1군에 합류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140km대 후반의 묵직한 직구를 앞세운 과감한 승부가 장점. 특히 포스트시즌서 보여준 전천후 활약을 이어간다면 선발 마운드의 든든한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김 감독의 구상대로라면 3선발을 맡게될 것으로 보인다. 부상으로 지난해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노장 송진우와 문동환의 재기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김 감독은 "송진우는 지난해보다 좋다. 훈련과 피칭 모두 정상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제구력도 좋고 스피드도 안정적이다. 문동환도 많이 좋아졌지만 상태를 더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거의 홀로 불펜을 책임졌던 안영명은 선발과 중간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군 입대 선수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불펜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성장했다. 김 감독은 "신인 정대호를 비롯해 조규수 송창식 윤규진 마정길 김경선 정민혁 등 중간 요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신인 윤기호는 스피드는 아직 안 나오지만 체인지업이 아주 좋고 경기 운영 능력도 좋다. 좌완 요원으로는 문용민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무릎 부상에서 회복중인 구대성의 대안은 새 외국인 투수 브래드 토마스가 맡는다. 구대성은 6월 이후에나 합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토마스는 김 감독이 일찌감치 마무리 요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영입한 케이스. 직접 지켜본 결과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김 감독은 "스프링 캠프에서 피칭하는 것을 보니 확신이 간다. 직구의 스피드가 좋고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변화구가 좋다. 컨트롤도 나쁘지 않다. 마무리투수로서 괜찮다"고 높게 평가했다.▶ 관련기사 ◀☞김재박 감독 1차 전훈 결산 "백업 요원 기량 향상에 만족"☞제주 캠프와 함박눈의 추억☞유승안 전감독이 말하는 '제주 캠프 경험기'☞LG '감동 이벤트와 함께 싸이판 훈련 마무리'☞이광환 감독과 유니콘스의 색깔 궁합은?
2008.02.17 I 정철우 기자
박찬호의 집나간 ‘후광 효과’
  • [ MLB 한국야구 다시보기 11]박찬호의 집나간 ‘후광 효과’
  • [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광고학이나 심리학에서 쓰는 말로 ‘후광 효과(Halo Effect)’란 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드러지게 좋은 특징이 있으면 그 사람의 다른 면도 모두 좋게 보이고, 반대로 나쁜 특징이 도드라지면 다른 것도 그저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나 이미지가 발휘하는 힘이나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니 ‘이름 효과’라고 해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야구판에서도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TV 중계를 보다보면 투수-타자의 대결에서 흔히 ‘후광 효과’를 만납니다. 투수와 타자 중 한쪽으로 저울추가 기울 경우 무게가 더 나가는 쪽에 유리한 볼 판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야구인들과 기자들은 “강타자와 명투수는 한 경기에서 스트라이크 한, 두개 정도를 이익보곤 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합니다. 심판도 사람이어서 선입관이란 것을 갖고 있기에 ‘스트라이크라고 해도 되고, 볼이라고 해도 좋은 애매한 상황’에서는 시나브로 ‘후광 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거역할 수 없는 경기의 한 부분입니다. 그 가장 좋은 예가 누구인가요. 바로 홈런왕 배리 본즈입니다. 본즈는 지난 2004년 무려 232개의 한 시즌 최다 볼넷과 2302개의 통산 최다 볼넷 신기록을 동시에 세웠는데요. 물론 투수들의 고의적인 승부 기피와 그의 탁월한 선구안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즈란 이름이 뿜어내는 ‘후광 효과’의 덕을 봤던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코리안 빅리거들에게도 후광 효과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그것을 에누리 없이 보여준 것은 박찬호였습니다. 다만 거꾸로였습니다. 자유계약선수로 텍사스와 계약한 2002년을 분기점으로 박찬호의 후광 효과 손익계산서는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난 2005년 8월3일 피츠버그전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날 경기는 박찬호가 수모의 텍사스를 탈출해 샌디에이고로 이적해 첫 등판이었습니다. 박찬호는 1회 3실점, 3회 2실점하면서 초반에 일찌감치 무너졌는데요. 몇 개의 볼은 스트라이크를 선언 받아도 타자가 할 말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만약 볼로 선언된 몇 개의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더라면 경기 흐름은 뒤바뀌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LA 다저스 전성기 시절에는 심판들의 눈도 속일(?) 정도였는데 텍사스로 이적한 후 4년간 부상과 부진의 늪에서 헤매면서 심판 덕을 보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만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후광 효과가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상대 타자들도 박찬호란 이름 석 자에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확 달라진 현실입니다. 당시(지금도 그렇지만) 메이저리그의 약골 방망이 중 하나인 피츠버그의 상하위 타자들이 가릴 것 없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선 모습은 그 오롯한 방증이었습니다. 싸움에서 시쳇말로 ‘호구 잡혔을 때’ 결과는 보나마나 입니다. 타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들었을 땐 빗맞은 타구도 안타가 되기 일쑤입니다. 이제 박찬호의 이름은 호환도, 마마도, 더더욱 공포도 아닙니다. 올시즌 다저스의 스프링캠프 초청선수로 다시 도전에 나선 박찬호가 급전직하한 후광 효과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 관련기사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10] 보라스의 '박찬호 해고'☞[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9] 울고 간 천재, 야생마, 방랑자들☞[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8] 최희섭의 마지막 계약☞[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7] 김병현이 서재응 같았다면...☞[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6]동방서 온 ‘기인’ 구대성
2008.02.16 I 한들 기자
 보라스의 '박찬호 해고'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10] 보라스의 '박찬호 해고'
  •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8년 전 겨울이었습니다. 겨울 오후의 을씨년스러운 햇빛이 걸어오는 세 사람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그림자는 함께 포개져 있었고 고개를 잔뜩 숙인 한 사람의 그림자는 뒤처져 무겁게 끌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낙양의 지가를 올리던 박찬호가 한국인 에이전트 스티브 김에서 '수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품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발표하던 그 날이었습니다. 스티브의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찬호는 "이제 스티브 형이 보라스씨와 함께 나를 위해 공동 에이전트로 일하게 됐다"고 힘줘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외적으로만 형식상 공동 에이전트였지, 내용적으로 스티브는 자신의 가장 큰 고객을 위해 본연의 업무를 할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것으로써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한인 선수-에이전트의 궁합은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해 이맘 때 박찬호는 보라스와 전격 결별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또 하나의 수퍼 에이전트 제프 보리스를 찾아갔습니다. 박찬호는 이번엔 베벌리힐스의 보리스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보라스와 헤어지게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마음 편히 일을 맡기기가 힘들어졌다. 구체적인 것은 밝히고 싶지 않다." 박찬호가 스티브에서 보라스로 다시 보리스로 에이전트를 옮겨가는 과정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해 공교롭습니다. 박찬호는 스티브와 보라스를 모두 스스로 해고했습니다. 발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들어가면 묘한 '전이(轉移)'가 발생합니다. 스티브에서 보라스로 간 것은 내용적으로도 해고의 모양새를 갖췄습니다. 당시 '블루칩' 박찬호에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가장 큰 목표를 눈앞에 두고 더욱 경험 많고 강력한 대리인이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라스트 네임이 '아' 발음 하나 다른 보리스로 옮겨간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밝혔듯이 보라스한테 홀대를 받은 게 역력한 탓입니다. 바로 '보라스 사단 내에서 소외'입니다. 보라스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당시도 바쁘기 짝이 없는 오프시즌이었습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배리 지토 등 '빅딜' 고객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박찬호는 뒷전이었고 스프링캠프를 보름여도 채 안남겨둔 시점에 이르도록 미계약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박찬호는 보라스를 해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잘렸다고 보는 게 더 진실입니다. 에이전트의 지극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선수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 이미 고객의 지위는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박찬호는 에이전트를 해고했던 선수에서 바로 에이전트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그래서 버림받는 보통 선수가 돼버린 것이었습니다. 조영남이 젊은 시절 불러서 히트를 쳤던 팝송이 있습니다. 그룹 C.C.R의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를 번안한 노래 제목이 아마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었던가요? 정말 삶은 돌고 도나 봅니다. 박찬호가 스티브에서 보라스로 다시 보리스로 에이전트를 옮겨다니는 모습이 영락없이 물레방아 인생의 뒷면입니다. 다만 세월의 흐름은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어 주객만 뒤바뀌었을 따름입니다. ▶ 관련기사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9] 울고 간 천재, 야생마, 방랑자들☞[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8] 최희섭의 마지막 계약☞[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7] 김병현이 서재응 같았다면...☞[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6] 동방서 온 ‘기인’ 구대성☞[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5] 통쾌, 유쾌, 상쾌 고추장볼
2008.02.15 I 한들 기자
 울고 간 천재, 야생마, 방랑자들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9] 울고 간 천재, 야생마, 방랑자들
  • ▲ 봉중근[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12년 전 봄입니다. 서울시 고교야구 춘계연맹전이 열리던 동대문구장서 경기를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한 선수가 무사 만루에서 번트 동작을 취하다가 강공으로 전환해 밀어쳐 좌중월 2루타를 날리는 것입니다. 고교 선수답지않은 ‘버스터’에 눈이 휘둥그레져 함께 갔던 아마 야구 담당에게 신상명세를 물었습니다. 뒤로 자빠졌습니다. 이제 갓 입학한 1학년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봉중근이었습니다. 봉중근이야말로 ‘미완의 대기’란 말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였습니다. 신일고 2학년 때인 97년 캐나다서 열린 세계 청소년선수권대회서 투타에서 맹활약하며 우승을 이끌고 MVP로도 뽑혔습니다. 그 때 일화가 있습니다. 외야에서 캐치볼을 하던 봉중근이 동료를 앉혀놓고 공을 던졌는데 94마일이 찍혔습니다. 결국 그 해 겨울 가장 눈독을 들인 애틀랜타가 몸이 달아 학교를 중퇴시키고 스카우트해 갔습니다. 방망이 소질도 탁월했지만 애틀랜타는 그를 역시 투수로 키웠습니다. ‘투수 왕국’의 황태자로 성장하던 봉중근은 마침내 2002년 데뷔 첫 선발 등판을 하며 빅리그 마운드를 밟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불펜 투수로 44경기를 뛰며 첫 승과 함께 6승 2패 1세이브를 거둡니다. 하지만 봉중근은 언젠가부터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한 스피드가 더이상 나오지 않더니 2004년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되고 2005년 어깨 수술, 2006년엔 40인 로스터에서도 제외되며 마이너리그 더블A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어 한국 U턴설이 불거져 나오면서 결국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17세의 어린 나이로 야심차게 도전한 빅리거의 꿈을 9년만인 26세에 깨끗이 접은 것이었습니다. 1남3녀 중 막내인 자신을 택시 운전으로 뒷바라지한, 삶의 전부나 다름없는 아버지의 위중한 병세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스스로 절감한 빅리그의 높은 벽과 자신의 한계, 그리고 처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도 못지않게 결단을 재촉했습니다. 만인의 삶이 그렇듯이 봉중근과 비슷한 길을 간 선수는 숱했습니다. 몇 년 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었던 이상훈도 그렇습니다. 한국에 이어 일본 주니치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그는 리그 우승을 하던 날 메이저리그 진출을 전격 선언했습니다. 주니치에 남았더라면 더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 확실했지만 미련없이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보스턴에서 별 활약을 못하고 방출되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한계에 도달했다”며 5억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돌연 은퇴를 해버렸습니다. 지금은 록커로 변신했습니다. 그의 별명은 ‘야생마’였습니다. 그야말로 꿈을 찾아 거친 들판을 질주하는 야생마의 삶, 그것입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방랑자들도 글러브 하나, 방망이 하나 달랑 메고 미국에 왔습니다. 2006년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의 최향남 (당시 35세)과 최익성(33세)이었습니다. 해태와 LG, 기아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최향남은 다년간의 준비 끝에 클리블랜드와 연봉 10만 달러에 계약하고 트리플 A서 뛰었습니다. 영어가 서툴러 더 던질 수 있겠느냐는 코치의 물음에 “노 파워”라고 대답한 게 “노 프라블럼”으로 와전돼 교체가 늦어져 난타를 당하고 말았다는 해프닝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한 보람도 없이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이듬해 롯데로 돌아왔습니다. 10년간의 1군 생활 동안 한국의 8개팀 중 무려 6개팀을 옮겨다닌 최익성도 2006년 3월 사고무친의 LA로 와 ‘나 홀로’ 훈련을 하면서 팀을 찾았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에서 트레이너를 권유했지만 사양했다”면서 “아직 힘이 남아 있다. 마이너도, 멕시코도, 독립리그도, 어디든 좋다. 마지막으로 나의 한계를 시험하고 도전해 보고싶다. 그래서 ‘인제 정말 안되는구나’ 내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미련없이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미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 밟아보고 싶어하는 메이저리그. 수많은 비지땀과 눈물만으로도 안되고, 그래서 꿈의 높이뛰기 조차 허락하지 않는 무감의 벽, 그것입니다. ▶ 관련기사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8] 최희섭의 마지막 계약☞[한들의 친구 야구]클레멘스-실링 일그러진 백인 영웅☞[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7] 김병현이 서재응 같았다면...☞[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6]동방서 온 ‘기인’ 구대성☞[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5]통쾌, 유쾌, 상쾌 고추장볼
2008.02.14 I 한들 기자
 최희섭의 마지막 계약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8] 최희섭의 마지막 계약
  •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지난 2005년 12월20일(이하 미국시간). LA 다저스에서 ‘방출되느냐, 마느냐’ 설왕설래했던 최희섭은 우여곡절 끝에 재계약 했습니다. 연봉도 35만1500 달러에서 106%나 오른 72만5천 달러로 예상 보다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봉은 유감스럽게도 보장된 게 아니었습니다. 다저스가 최희섭을 방출시키면 대부분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메이저리그 개막 2주일 전에 방출되면 17만8278 달러, 그 이전엔 11만8852 달러밖에 못받는 논개런티드(non-guaranteed) 계약이었습니다. 당시 최희섭의 에이전트는 "논개런티드 계약은 자유계약선수 권리를 획득하지 못한 6년차 미만 선수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계약”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최희섭의 논개런티드 계약은 메이저리그 노사 단체 협약에 규정된 ‘사실’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이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던 것은, 다저스가 최희섭을 놓고 일관되게 견지해온 흐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저스는 당시 이미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1루수로 영입하고, 후반기엔 2루수 제프 켄트도 1루로 전업시킨다는 계획을 천명했습니다. 더욱 다저스는 2005시즌 내내 최희섭과 플래툰시스템을 이뤘던 올메도 사엔스와도 2년 계약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최희섭은 주전으로 설 자리도 없거니와 보험용 백업 요원도 될 수 없는 사면초가였습니다. 그런 절박한 현실은 다저스와의 협상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최희섭의 트레이드를 줄기차게 추진해온 다저스는 마땅한 팀이 나타나지 않자 구단이 재계약 포기 대상자를 발표하는 마감일이 되어서야 계약을 했습니다. 와중에 (메이저-마이너리그에 소속되느냐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스플릿 계약을 할 것이냐, 그래도 논개런티드 계약을 할 것이냐 두가지 안을 최희섭측에 제시한 뒤 계약을 마쳤습니다. 다저스의 속내는 뻔했습니다. 일단 최희섭과의 재계약으로 시간을 벌면서, 연봉도 높여 가치를 올려놓은 뒤 중단된 트레이드 작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논개런티드 계약 조항을 십분활용해 방출시킨다는 의도였습니다. 이것이 다저스가 금전적 손해를 최대한 줄이면서 이중삼중의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놓은 최희섭 논개런티드 계약의 '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최희섭의 에이전트는 다소 과민 반응을 보인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미국 언론이 논개런티드 계약을 사실상 스플릿 계약이라고 처음 알렸을 때 “악의적인 보도”라며 한국 언론을 상대로 정정 노력을 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계약의 내용은 사실상 보장받지도 못한 스플릿 계약이었는데 106% 인상이라는 수치를 앞세워 공치사에 바빴던 것입니다. 어찌됐든 좋은 계약을 이끌어냈는데 가려지는 게 에이전트로서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몇 달 후 최희섭은 다저스의 시나리오대로 됐습니다. 다저스는 3월24일 최희섭을 웨이버시켰고 보스턴 레드삭스가 잡았습니다. 다행히 다저스가 개막 11일 전에 방출해 연봉은 깎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희섭은 얼마 후 햄스트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이후 다시는 빅리그로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363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4푼, 40홈런, 120타점. 그것이 메이저리그 5년 통산 최희섭의 성적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일찌감치 다저스로부터 공을 넘겨받았던 최희섭의 에이전트였습니다. 촤희섭은 2005년 바로 그 해 메이저리그서도 몇 차례 없었던 3연타석 홈런 등 데뷔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막 꽃봉우리를 틔우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터전을 찾지 못하고, 부상마저 당한 뒤 마이너리그로 떨어지면서 메이저리그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최희섭의 불운이기도 하면서 에이전트의 한계였습니다. ▶ 관련기사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7] 김병현이 서재응 같았다면...☞[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6]동방서 온 ‘기인’ 구대성☞[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5]통쾌, 유쾌, 상쾌 고추장볼☞[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4]WBC 김인식 감독과의 해후☞[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3] ‘쨍’했던 광주일고 야구
2008.02.13 I 한들 기자
  • [한들의 친구 야구]클레멘스-실링 일그러진 백인 영웅
  •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하여 유종의 미(有終之美)라고 하였습니다. 영어에도 같은 뜻의 숙어가 있더군요. ‘a successful conclusion’. 새해가 된 지 달포가 지났을 뿐인데 난데없이 웬 제야의 종을 치냐고 지청구를 들어도 할 수 없습니다. 요즘 메이저리그의 걸출한 두 말년 스타 로저 클레멘스(46)와 커트 실링(42)의 행태가 저녁도 먹기도 전인데 숭늉을 찾게 만들고 있는 탓입니다. 내일 모레면 쉰 살 지천명인 현역 최다승 투수는 이전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엉덩이에 주사를 ‘맞았네, 안 맞았네’ 하더니 이제는 업소용 화보를 찍는 일도 아니었는데 부인에게까지 주사를 놓았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런 선배를 향해 지금까지 받은 7개 사이영상 중 절반이 넘는 4개를 반납하라고 목청을 높였던 네 살 아래 후배는 참으로 묘한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몇 번이나 칼을 댔던 주치의가 “이렇게 찢어진 어깨로는 던질 수 없다. 꼭 수술을 해야 한다”고 다짐의 다짐을 줬건만 그렇게 따를 듯 하더니 얼마 못가 “그냥 재활하란 말이야”라는 구단의 엄포에 바로 꼬랑지를 내렸습니다. 퇴직금 조인 800만 달러의 뭉칫돈에 눈이 어두워서였습니다. 구단은 의학적 견해의 차이라고 주장하는데 영 믿기지가 않습니다. 주치의는 그가 아플 때마다 회복시킨 명의니까요. 구단은 뭉칫돈이 '눈 먼 돈이 돼 버릴까(아니 이미 됐죠)' 노심초사한 끝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본 게 정확할 것입니다. 그 심보에는 ‘사람 일을 누가 알아?’라는 0.001%의 가능성에 기댄 멍청한 배짱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해가 안가는 점은 지난해도 그가 몹시 앓았던 만큼 구단은 당연히 스포츠보험을 들어 놨을줄 알았는데 예일대 출신의 똑똑한 단장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후배가 주치의의 말을 듣든 말든, 구단의 뜻을 따르든 말든, 구단이 보험을 들었든 안 들었든, 그런 것들은 논외입니다. 문제는 후배도, 선배처럼 X밭에서 구르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차이라면 선배는 의사당에서 선서를 하고도 결백을 주장해 법의 심판대에 서고, 후배는 양심의 저울 위에 올라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배처럼 처지가 그렇게 됐는데도 양심의 저울을 스스로 치워버린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벌써 십년이 다 돼 가네요. 선수들의 연봉이 비로소 천만 달러는 ‘뉘 집 개 이름’이 되기 시작한 그 때 “아니 천만 달러도 적다고 하면 도대체 제정신이 있는 자들인가”라며 또다시 재계약으로 튀기기는커녕 구단 옵션을 그대로 수용하고 1년 후 만류에도 조용히 은퇴한 마크 맥과이어가 그랬습니다. 최근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엊그제 오클랜드와 70만 달러에 계약한 키스 폴크입니다. 2004년 보스턴의 마무리로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던 그는 혹사의 후유증으로 부진했음에도 구단이 옵션을 행사하지 않아 자유계약선수로 지난해 클리블랜드와 500만 달러 계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팔꿈치로는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없다면서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스스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부상자 명단에만 올랐더라도 고스란히 거액을 움켜쥘 수 있었겠지만 양심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인생입니다. 사람마다 나름의 존재와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제3자가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정돼야 할 부분입니다. 예수님도 말했습니다. ‘누가 저 거리의 창녀에게 돌을 던지랴.’ 하지만 존재를 존재답게 오롯이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진실과 양심 아니던가요. 선배 로저 클레멘스와 그 똑같은 후배 커트 실링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관련기사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7]김병현이 서재응 같았다면...☞[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6]동방서 온 ‘기인’ 구대성☞[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5]통쾌, 유쾌, 상쾌 고추장볼☞[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4]WBC 김인식 감독과의 해후☞[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3]'쨍'했던 광주일고 야구
2008.02.12 I 한들 기자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7] 김병현이 서재응 같았다면...
  •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던 2006년 10월. 탬파베이의 서재응은 일찌감치 다음 시즌 연봉 계약을 했습니다. 참 잘했습니다. 35만 달러에서 무려 네 배 가까이 오른 120만 달러였습니다. 본인도 생각지 못한 대박이었습니다. 단숨에 팀내 4위로 껑충 뛰어오른 액수였습니다. 당시 탬파베이가 3542만 달러로 메이저리그 30개팀 중 플로리다(1434만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가난한 구단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점프였습니다. 다른 미국 선수들과 비교해도 A급 대우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2003년부터 풀타임으로 나선 서재응은 그때까지 107경기서 92경기에 선발 등판해 25승36패 방어율 4.27을 기록 중이었습니다. 오클랜드의 우완 리치 하든이 경력이 아주 비슷했는데 2003년 데뷔해서 2005년까지 68경기서 26승16패 3.60을 기록한 뒤 2006년 125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물론 하든은 연봉 조정신청 자격을 갖지 않고도 서재응 보다 1년 먼저 백만장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성적에 따른 연봉 증가세만 본다면 서재응이 오히려 차세대 영건 에이스로 촉망받던 하든을 앞질렀습니다. 하든은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 두자리 승수를 올린 반면 서재응은 한번도 10승을 올리지 못하고 2006년도 3승12패 5.33의 초라한 성적을 낸 다음이었습니다. 서재응의 대박은 오클랜드엔 저비용 고효율의 '머니 볼' 단장 빌리 빈이 버티고 있고 탬파베이에는 그만 못한 단장이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10여년 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최진실이 삼성전자의 냉장고 광고에 나와 깜찍한 표정으로 읊은 카피였습니다. 맞벌이 부부생활에서 아내의 처세학을 콕 찌른 이 말은 많은 여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매출 증가는 물론 최진실이 '찌라시' 광고 모델에서 신데렐라로 탄생하는 출세의 구름판이 됐습니다. 서재응은 뉴욕 메츠 때부터 '나이스 가이'로 불리웠습니다. 매스컴에 까다롭지않게 군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별명을 붙여준 한국 특파원들에 따르면 팀에서도 그런 평판을 충분히 듣고도 남을만 했답니다. 호투하고도 타선이 안터져 억울하게 진 날도 결코 남 탓을 하지 않고 꾀병은 커녕 몸이 좀 안좋더라도 팀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 등판을 했습니다. 릭 피터슨 투수코치와 불협화음이 조금 있었지만 현장은 물론 구단 관계자들에게 늘 웃는 낯이었다고 합니다. 가세가 기운 탬파베이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해 6월28일 다저스서 트레이드되자마자 바로 불펜으로 등판하고 이틀 후부터 선발로 나섰습니다. 16차례 등판에서 절반인 8번의 퀄리티스타트를 하고도 고작 1승밖에 못올렸지만 찌푸린 적이 없었습니다. 투수 코치의 무리한 투구폼 변경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 불평하지 않고 착실히 재활해 예정대로 복귀했습니다. 경기 중 교체하러 올라온 감독에게 두 손을 모아 더 던지게 해달라고 밉지않게 간청하는 터프한(?) 근성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조 메이든 감독은 "항상 신뢰가 가는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미국 스포츠에서 멘탈의 태엽이 풀려버린 선수들의 모습은 매일 빠짐없이 지면을 장식하는 그들의 이기적인 행태에서 비롯된 각종 사건.사고-약물은 양반이고 마약 성폭행 음주운전 등-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마치 60~70년대 한국에서 빈번했던 연탄가스 중독 사망 기사를 보듯합니다. 그렇기에 한국에선 최고 연봉 선수로서 당연하고도 남았을 박찬호의 수술 후 복귀(2006년 샌디에이고 시절)가 이 곳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던 것입니다. 지난해 탬파베이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컴백했지만 지금 서재응의 모습이 눈에 선한 까닭은 왜일까요? 바로 스프링캠프를 1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았는데 아직까지도 새 둥지를 찾지 못하고 떠다니고 있는 후배 김병현 때문입니다. 김병현은 데뷔 한 애리조나서부터 보스턴-콜로라도-플로리다에 이어 다시 애리조나, 또다시 플로리다로 옮기는 동안 대부분의 팀에서 좌충우돌(심지어 팬들과도) 했던 게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본인의 주장대로 굴러온 돌에 대한 차별, 인종과 국적, 언어의 장벽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김병현 스스로 마찰의 씨앗을 뿌린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메이저리그도 한 집 건너면 귀동냥이 가능하고 소문도 물먹은 휴지처럼 쉽게 번지는, 참새들이 살고 쑥덕공론의 방앗간도 있는 동네입니다. 성적도 성적이고 선발이냐 불펜이냐의 문제도 있지만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평초 같은 그의 캐릭터가 어쩌면 자유계약선수인데도 지금 계약 소식이 함흥차사인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나라 다른 인종 선수들이 갖지못한 치열한 멘탈리즘과 곰살맞은 처세는 기량 다음으로 한국 선수들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확실한 '자기 마케팅'입니다. 지금까지 김병현은 자기 마케팅에서 실패해 정을 맞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6]동방서 온 ‘기인’ 구대성☞[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5]통쾌, 유쾌, 상쾌 고추장볼☞[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4]WBC 김인식 감독과의 해후☞[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3] ‘쨍’했던 광주일고 야구☞[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1] 최희섭 홈런 더비 출전의 음영
2008.02.12 I 한들 기자
동방서 온 ‘기인’ 구대성
  •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6]동방서 온 ‘기인’ 구대성
  • [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지난 2005년 5월 하순, 메이저리그의 일주일은 ‘구대성의 주(Week)’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구대성은 5월16일 신시내티전에서 타자로 나와 배터박스에서 2피트나 멀찌감치 떨어져 방망이만 들고 서 있다가 삼진을 당해 메츠 선수들은 물론 메이저리그 관계자와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도 TV 카메라에 잡힌,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그의 표정은 천연덕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포복절도케 했던 구대성은 닷새 후 사람들을 깜짝 놀래켰습니다. 21일 뉴욕 양키스와 인터리그 경기에서 언제 내가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었냐는 듯 큼지막한 2루타를 날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후속 포수 앞 보내기번트 때 3루까지 진출한 후 홈플레이트가 비어 있자 쏜살같이 달려 득점을 올리는 센스 넘치는 주루플레이로 셰이스타디움을 온통 ‘KOO’의 함성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점퍼 주머니엔 훈련용 쇠공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최희섭도 안타를 쳐 보지못한 사이영상 좌완 투수 랜디 존슨을 중월 2루타로 두들기고, 무거운 점퍼를 입은 투수의 몸으로 철벽을 자랑하는 양키스 내야진을 뒤흔들어 놓았으니 메츠 팬들이 열광하고도 남을 일이었습니다. 메츠 내야수 크리스 우드워드는 “그런 플레이는 퍼펙트 피칭을 하고 동시에 그 공을 받는 것과 같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AP통신은 불과 5일만에 동상에서 강타자로 변신한 구대성을 두고 ‘쇼킹 그 자체’라고 평했습니다. 구대성은 원래부터 참 엉뚱했습니다. 시쳇말로 ‘골 때리는’ 선수였습니다. 한양대 시절 신입생으로 4학년이던 구대성과 함께 방을 함께 쓴 박찬호의 증언입니다. 새해를 앞둔 어느 날 구대성이 우겨서 설날(신정)이 1월2일로 바뀐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그 해 1월1일은 토요일이고 1월2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구대성의 주장인즉 설날은 무조건 쉬는 날이니까 빨간 날인 2일이 설날이란 것이었습니다. 후배들은 기가 막혀 어이 없었지만 방장 구대성이 하도 우기니 도리 없었고 결국 2일 떡국을 먹었다고 합니다. 한화와의 연봉 협상에서는 이런 일화도 있었습니다. IMF 태풍이 몰아쳤던 1998년 구대성은 그 해 고액 연봉선수 중 유일한 인상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구단 관계자의 한마디에 감봉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매년 연봉협상 때마다 끈질기기로 유명했던 구대성은 해외 전지훈련지에서 맨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기 일쑤였습니다. 그 이유는 '현명한' 아내의 코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단 관계자가 그 해도 구대성이 차일피일 미루며 도장을 안 찍자 무심코 “이번에도 와이프한테 허락받고 찍을거냐“고 내뱉았습니다. 그 한마디에 구대성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는지 덥썩 사인을 해버렸습니다. 그것도 2000만원을 올려주겠다는 것도 필요없다며 오히려 스스로 1000만 원을 깎아서 말입니다. 구단 관계자가 아무리 만류를 해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홧김에 일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시범경기에서 홈런타자 새미 소사를 삼진으로 잡아낸 뒤 소감을 묻자 “소사가 누군데요?”라고 말해 한국과 일본 기자들을 뒤로 자빠지게 만들고, 클럽하우스의 경기 전 자투리 시간에 하는 포커게임선 하도 베팅을 세게 해서 동료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한 구대성은 메이저리그 사람들에겐 딱 '외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같은 엉뚱함과 기질이 투수로서는 환갑을 넘긴 37세 구대성이 빅리그에 도전하는 모험을 감행한 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005년 한 시즌만 뛰고 짐을 싼 구대성의 성적은 이랬습니다. 33경기에 나와 23이닝을 던져 22안타 2홈런을 맞고 볼넷 13개, 탈삼진 23개에 승-패-세이브 없이 6홀드와 블론세이브 2개를 기록하면서 평균 자책점은 3.91이었습니다. 타율은 2타수 1안타 1삼진, 5할에 장타율 10할, OPS(출루율+장타율)는 15할이었습니다. 성적까지 좋아 페드로 마르티네스처럼 진정한 '외계인' 소리를 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구대성도 메이저리그에 기행으로 이름을 올린 선수 중 한명에 그쳤다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 관련기사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5]통쾌, 유쾌, 상쾌 고추장볼☞[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4]WBC 김인식 감독과의 해후☞[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3] ‘쨍’했던 광주일고 야구☞[MLB의 한국야구 다시 보기 2] 구대성의 ‘연봉 타령’☞[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1] 최희섭 홈런 더비 출전의 음영
2008.02.11 I 한들 기자
  •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5]통쾌, 유쾌, 상쾌 고추장볼
  •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2006년 3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은 한국엔 아쉬움 그 자체였습니다. 예선 1,2라운드서 6전 전승을 거두고도 준결승서 일본에 딱 한번 졌을 뿐인데 결승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쿠바를 꺾고 우승까지 해 그 아쉬움은 더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야구는 예상을 뒤엎고 ‘본토 야구’도 깜짝 놀래 키며 세계 4강에 올라 고추장 야구의 진수를 보였습니다. 사상 첫 야구 월드컵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무엇이었나요. 뭐니뭐니 해도 ‘곡선(曲線)의 야구’가 ‘직선(直線)의 야구’를 눌렀다는 사실입니다. 곧 ‘변방’ 한국 야구의 미국 야구에 대한 승리, 그것이었습니다. 한국은 매 경기 야구에서 그릴 수 있는 곡선을 모두 그려냈습니다. 투수들에게는 변화구와 컨트롤이 있었습니다. 서재응을 비롯한 투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가장 빠른 볼을 던지는 박찬호가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맹활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곡선의 변화구와 컨트롤이었습니다. 타자들의 철저한 팀 배팅은 방망이로 그려낸 또 하나의 곡선이었습니다. 욕심내지 않고 짧게 끊어 치는 타법은 안타를 못 때리면 ‘ℓ’자의 파울볼이라도 날려 상대 투수의 투구 수를 늘려 놓았습니다. 그렇게 집중력 높은 배팅은 16개국 가운데서 중하위권의 팀타율로 한국이 최고의 승률을 올릴 수 있었던 또 다른 밑거름이었습니다. 전경기 무실책으로 ‘퍼펙트’라는 극찬을 들었던 수비는 곡선의 야구가 보여줄 수 있는 고갱이였습니다. 상대 타자들의 성향을 철저히 분석한 것에 따른 수비 시프트는 안타가 될 곳에 어김없이 야수들을 갖다놓아 그물망을 펼쳤습니다. 반면 야구 본토를 자처하는 미국은 처음부터 줄곧 직선이었습니다. 투수와 타자, 그리고 감독이 하나같이 똑같았습니다. 투수들은 아직 컨디션이 100%에 오르지 않았으면서도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이승엽에게 결승 홈런을 얻어 맞았던 돈트렐 윌리스가 좋은 예였습니다(윌리스는 그 때의 놀라운 충격 탓인지 아직도 한구 야구하면 “아 그 왼쪽 타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팀 배팅은 아예 없었습니다. 때문에 숱하게 찾아온 찬스들이 허공으로 날아갔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있다가 덕아웃에 앉은 벅 마르티네스 감독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미국은 선수와 감독이 그렇게 우직하기만 하더니 결국 한국이 일본을 꺾고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도 뜨지 못하고 멕시코에 패하면서 안방에서 8강 탈락이라는 개망신을 당했습니다. 직선은 강합니다. 일방이고 단선입니다. 타협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만하고 독선적입니다. 물론 직선도 통할 때가 있습니다. 힘이 뒷받침됐을 경우입니다. 힘이 있으면 끝 간줄 모르고 한없이 뻗어만 나가는 게 직선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힘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모른 채 해오던 대로 상대를 몰아붙이다 되려 부러지면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곡선은 약합니다. 대신 부드럽습니다. 한 곳으로만 가지도 않습니다. 여러 갈래로 트여 있습니다. 그래서 막히면 우회합니다. 융통성이 있고 임기응변에 능합니다. 힘이 없어도 강할 수 있는 게 곡선의 미학입니다. 몸값과 이름값으로 따지면 비교가 안 되는 한국 야구가 미국 야구를 무릎꿇린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힘없이 늘어진 것처럼 보이는 한국 초가의 처마와 구불구불한 시골길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한 미국의 초고층 빌딩과 광활하게 쭉 뻗은 프리웨이를 이긴 WBC였습니다. ▶ 관련기사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4] WBC 김인식 감독과의 해후☞[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3]  ‘쨍’했던 광주일고 야구☞[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2] 구대성의 ‘연봉 타령’☞[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1] 최희섭 홈런 더비 출전의 음영☞[한들의 친구 야구] 눈물의 씨앗, 감독 이야기
2008.02.10 I 한들 기자
WBC 김인식 감독과의 해후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4]WBC 김인식 감독과의 해후
  • ▲ 김인식 감독[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한국 야구가 야구 월드컵이라는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하러 미국에 왔던 2006년 3월의 어느 날. 그 날은 LA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이빨이 부딪치는 떨림을 느껴야 했던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애너하임의 에인절스타디움을 찾아가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야구장에 가면 늘 볼 수 있었던 선수들과 기자들, 야구 관계자들…. 그리고 또 한 사람, 김인식 감독이었습니다. 마침 다음 날 멕시코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기자들과 대화가 한창이어서 인사는 생략하고 그 뒤에 묻혀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얼마 못가 서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보자마자 그는 이름을 부르더니 살갑게 웃으며 “이리 와” 하였습니다. 순간 뭔가가 얼굴로 확 끼얹듯 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주위에는 코치들과 선수들, 심지어 기자들까지 늘 사람들로 붐빕니다. 어려움에 빠져 있던 코치를 데리고 있다가 그가 다른 팀의 오퍼를 받자 “더 좋은 자리가 있다면 당연히 가야지”하면서 보내줬습니다. 선수도 후보 선수들을 더 챙깁니다. 95년 당시 맡고 있던 OB가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을 때였습니다. 미팅에서 주전에 가려있던 선수들을 일일이 일으켜 세우면서 “너희들이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잘 참아줘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바로 너희들이 1위의 최고 공신들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 즐거운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마감 시간 때문에 감독 인터뷰를 미리 송고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뷰는 경기 전에 마쳤지만 문제는 우승이 확정된 다음의 현장 분위기였습니다. 결국 기자는 상황을 미리 설정해놓은 뒤 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덕아웃으로 달려가 “기자실에 들어오면 먼저 담배부터 하나 달라고 해서 피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남들에겐 그렇지만 자신에겐 매우 엄격한 그입니다. 구단이 스타 출신 젊은 감독을 영입하려고 하자 후배에게 길을 터줘야 한다며 9년간 한국시리즈 우승을 두 번이나 시켰으면서도 미련 없이 용퇴하였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그의 가장 매력은 바로 ‘큰 사내’라는 점입니다. 그의 초상화를 그릴 때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풍경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한번 맺은 인연을 가벼이 하지 않고 소중히 한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자의 세계에서 흔히 말하는 ‘의리’란 말로 응축됩니다. 그리고 그의 의리는 결코 작은 것을 위한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그랬고, 그 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그랬습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2라운드 경기 일정을 뒤엎었을 때도 “상대팀에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야구에서 이런 세계적인 대회는 처음이다. 무엇보다 세계 야구 보급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겠다”고 의연하게 말했습니다. 대(大)를 위해서라면 소(小) 쯤은 감수할 수 있다는 자세입니다. 불과 1년여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나 자유스럽지 못한, 아니 힘겨운 몸인데도(그는 일본과 미국으로 이어지는 강행군 탓에 한국에서 해오던 식이요법, 재활 운동 등을 전혀 못하고 있다며 기자에게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대표팀 사령탑을 선뜻 맡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관련기사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3] ‘쨍’했던 광주일고 야구☞[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2] 구대성의 ‘연봉 타령’☞[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1] 최희섭 홈런 더비 출전의 음영☞[한들의 친구 야구] 눈물의 씨앗, 감독 이야기☞[한들의 친구 야구]야구 바다의 '물과 기름',스몰볼과 세이버매트릭스
2008.02.09 I 한들 기자
  •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3] ‘쨍’했던 광주일고 야구
  •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지난 2005년 8월24일(미국 시간) 메이저리그에서는 사상 최초의 풍경화가 그려졌습니다. 뉴욕 메츠의 서재응이 애리조나전에 선발 등판해 6승을 따내고, 콜로라도 로키스의 김병현과 LA 다저스의 최희섭이 다저스타디움에서 처음으로 투.타 맞대결을 벌인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광주일고 출신들입니다. 미국과 일본에도 숱한 야구 명문교들이 있습니다. 랜디 존슨과 마크 맥과이어, 마크 프라이어 등을 배출한 USC(대학)가 있고, 마쓰이 가즈오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프로 선수를 키워낸 오사카 PL학원(고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광주일고 트리오처럼 한 날 한 시, 빅 리그 그라운드를 누빈 학교는 없었습니다. 셋은 나란히 1학년씩 터울입니다(김병현과 최희섭은 같은 79년생이지만 김병현이 1월생, 최희섭은 3월생입니다). 이들이 광주일고를 함께 다녔던 해는 96년이었습니다. 서재응이 3학년, 김병현이 2학년, 최희섭이 1학년으로 뛰었던 그 해 광주일고는 청룡기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이들 사이엔 재미난 일화도 많았는데요. 김병현은 어려서부터 ‘물수제비’(강에다 돌을 던져 돌이 물위에서 통통 튀어가는 놀이)를 잘 떳다고 합니다. 애리조나 입단 초, 이동하는 차 안에서 물수제비를 잘 던진 게 잠수함 투수가 된 한 이유가 아닌가싶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서재응이 최희섭을 알게 된 것은 광주일고 입학 훨씬 전이었습니다. 중학생 서재응은 초등학교에서 엄청난 체구로 홈런을 펑펑 쳐낸다는 '괴물 아이'가 있다는 소문들 듣고 직접 그 학교를 찾아가 봤는데 그 아이가 바로 최희섭이었다고 합니다. 광주일고의 야구 역사는 유구합니다. 해방 이후 6.25 동란 전까지 당시 경남중의 장태영과 함께 중학야구를 양분했던 광주서중의 김양중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후 침체기를 면치 못했던 광주일고 야구는 고교야구 최초의 3연타석 홈런의 주인공 김윤환과 투수 강만식 등의 등장으로 70년대 중반 르네상스의 전기를 마련하고 80년대 들어 최전성기를 활짝 열어 제칩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투수라는 선동렬(78~80년), 타자 중에 처음으로 '천재' 소리를 들었던 이종범(86~88년) 등 국보급 선수들이 줄줄이 배출되면서 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해태 타이거스 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릅니다. 유독 광주일고 출신들이 '야구 본토'에 와서도 그 이름을 드높였던 힘은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서재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주일고 야구부는 지역 예선전에 나갈 때도 교정의 광주학생운동기념탑에 모여 항상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올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를 외치고 야구장으로 향한다. 무슨 대회에 나가 건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행하는 전통이다. 그런 정신이 광주일고 야구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광주일고 야구야말로 서재응과 최희섭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누누이 밝혔던, 바로 '한의 야구'입니다. 지난 1980년 5월의 광주는 세계 최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반인류적인 학살과 도륙의 참극이 벌어졌던 피의 현장이었습니다. 야만의 총부리에 졸지에 부모 형제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광주 사람들에게 야구는 그 응어리진 한을 토해낼 수 있었던 유일한 배출구였고, 야구장은 그 해방구였습니다. 선동렬-이종범-서재응-김병현-최희섭으로 이어지는 광주일고 야구의 적자들은 바로 그 한의 용광로에서 담금질 되고, 길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이 메이저리그에까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은 광주일고 야구의 사회학이고 역사학입니다. ▶ 관련기사 ◀☞[MLB의 한국야구 다시 보기 2] 구대성의 ‘연봉 타령’☞[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1] 최희섭 홈런 더비 출전의 음영☞[한들의 친구 야구] 눈물의 씨앗, 감독 이야기☞[한들의 친구 야구]야구 바다의 '물과 기름',스몰볼과 세이버매트릭스☞[한들의 친구 야구]월봉 250불 중국 야구, 메이저리그가 불지를까
2008.02.08 I 한들 기자
 구대성의 ‘연봉 타령’
  • [MLB의 한국야구 다시 보기 2] 구대성의 ‘연봉 타령’
  •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3년 전 8월 중순, 뉴욕 메츠에서 뛰었던 구대성이 샌디에이고와 LA 원정을 와서 이런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앞으로 메이저리그에 오는 한국 선수들은 절대로 100만 달러 밑으로 받고는 오지말라.“ 빅리그에 와서 반 년 뛰어봤더니 구단이 몸값 높은 선수들은 조금 못해도 충분한 출전 기회를 주는데 자신같이(45만 달러) 저연봉 선수들에게는 기회를 주지않아 헐값에는 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구대성은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산전수전을 다겪은 당시 37세의 베테랑이었죠. 그런 선수가 ‘가뭄에 콩 나듯’ 기회를 잡을까 말까했으니 그렇게 볼멘소리를 낼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99년 겨울로 기억됩니다. 일본서 주니치 드래곤즈를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 선동렬은 보스턴 레드삭스 입단을 타진했다가 좌절됐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1년에 30세이브 이상씩을 너끈히 올린 선동렬은 분명 탐나는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스턴이 선동렬에게 한 최종 오퍼는 일단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뒤 정식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올시즌 박찬호가 LA 다저스와 합의한 바로 그 논로스터 인바이티(Non-roster invitee)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당시 선동렬의 나이가 37세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이미 은퇴를 선언했던 선동렬은 자존심이 상해 결국 보스턴의 제안을 거절하고 미국행도 포기했습니다. 구대성의 연봉 타령은 같은 팀에서 뛰었던 후배 서재응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실력은 좋은데 연봉이 낮아 마이너리그에서 썩고 있었다”는 예로 서재응을 들면서 ‘찬밥론’을 늘어놓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구대성이 일면만 보고 확대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서재응은 루키였던 2003년 9승을 올리며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2004년 5승에 그치는 등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윌리 랜돌프 메츠 감독도 당시 서재응이 3연승의 눈부신 호투를 펼치고 있었는데도 붙박이를 확약하지 못하고 다만 “한경기 더 선발 기회를 주겠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연봉이 적어서 등판 기회를 안준다”는 구대성의 말이 가당치 않다는 것을 오롯이 보여준 사례는 다저스 투수 옌시 브라조반도 있었습니다. 브라조반은 당시 부상을 당한 에릭 가니에를 대신해 불펜에서 승격돼 주전 소방수로 활약하며 21세이브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연봉은 구대성 보다 훨씬 적은 31만9500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때까지 구대성은 32경기에 등판했는데 승-패-세이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두 차례 세이브 기회가 있었으나 스스로 날리고 챙기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게 결코 아니었습니다. 단지 연봉이 적어서 팀이 기회를 주지않았다는 그의 주장은 핑계요 피해의식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당시 다저스에서 짐 트레이시 감독의 ‘금과옥조’였던 플래툰시스템 때문에 왼손 투수만 나오면 빠졌던 최희섭은 감독의 그런 처사가 섭섭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섭섭하기는요? 저보다 성적이 좋은 선수(올메도 사엔스)도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데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지요.” 그리고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자꾸 그런 것 감독님한테 물어보지 마세요. 저만 곤란해져요”라고 오히려 기자를 입단속시켰습니다. 속마음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희섭은 자기가 처한 현실 만큼은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남탓보다 ‘내탓이요’부터 해야 하늘도 돕는 게 우리네 삶의 운동 원리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질곡에서 탈출하는 해법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비단 구대성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기는 커녕 국적과 인종 등 핑계거리부터 찾는 ‘네탓이요’는 바로 그 많던 선수들이 다시 태평양을 건너 돌아가고, 그래서 한두명의 선수로 명맥을 간신히 잇는 오늘 코리안 빅리거의 참담한 현실을 부른 한 원인이었습니다. ▶ 관련기사 ◀☞[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1] 최희섭 홈런 더비 출전의 음영☞[한들의 친구 야구] 눈물의 씨앗, 감독 이야기☞[한들의 친구 야구]야구 바다의 '물과 기름',스몰볼과 세이버매트릭스☞[한들의 친구 야구]월봉 250불 중국 야구, 메이저리그가 불지를까☞김선우 총액 15억원에 두산 입단...리오스 공백 메울 듯
2008.02.07 I 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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