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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검색결과 426건

"중국 공산당은 神이다"
  • "중국 공산당은 神이다"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08일자 35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장면 하나. 중국 최대 대형가전 제조업체인 하이얼을 이끄는 장루이민 회장에게 물어봤다. 그는 1984년 파산 직전 하이얼에 취임한 CEO면서 사내 당 서기였다. “당과 사적 이윤 간에 이해상충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대답은 쉽게 돌아왔다. “내가 나 스스로를 하이얼의 당 서기로 임명했는데 내가 나 자신과 갈등 빚을 일이 뭐가 있겠나.” 통계 하나. 2009년 세계은행이 보고서를 냈다. 1981∼2004년 세계 개도국의 빈민 수가 15억에서 11억으로 감소했다는 내용이었다. 눈여겨볼 것은 중국 집계. 같은 기간 중국 빈민 수는 5억이 줄어 있었다. 바꿔 말하면 지난 20여년간 중국은 홀로 세계 빈민층을 줄여놨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사실에 걸쳐진 공통분모가 있다. 중국 공산당이다. 국가와 사유기업 간 밀착관계를 만든 데도 부자와 빈자를 늘리고 줄이는 데도 `당`이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세계서 가장 크고 성공적인 정치조직이다. 중국의 전부를 움직이는 그 지배원리는 이렇게 정리된다. “나는 할 수 있고 너는 할 수 없다. 네가 못하므로 내가 한다.” 당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지국장으로 있는 저자가 정부와 법, 언론과 군사 위에 군림하는 중국 공산당을 속속들이 헤집었다. 2009년 당원 7500만명을 넘긴 이 거대한 조직은 중앙정부의 최말단을 비롯해 티베트·신장의 작은 마을에까지 국가통치기관 이상의 파워를 내뿜고 있다. 물론 입법·사법·행정이란 서방의 3권 분립을 중국도 갖췄다. 당·정·군이다. 하지만 이 전부를 장악한 기관은 하나, 공산당이다. 저자는 중국 공산당이 18세기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감옥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간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가 기본 시스템이다. 그처럼 “당은 신과 같다. 보이지 않고 접할 수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의 법통성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저자는 경제에서 답을 찾았다. 경제성장은 중국에서 당을 지탱하는 축인 동시에 세계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의 버팀목이란 데 방점을 찍는다. 중국에선 “당이 사업가와 손을 잡으면 사회주의에 해가 되기는커녕 구원이 되더라”는 거다. 시장개혁을 도입한 30여년간 중국 몰락을 추측하는 시나리오가 없던 것도 아니다. 특히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했던 때 서방 다국적기업들은 중국 경쟁사를 휘저으며 노골적으로 약점을 들춰냈다. 가장 그럴듯했던 것이 금융위기로 인한 몰락이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이 열리자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서방은 침체에 빠져 버둥거리는 중이고 중국은 부상의 날개를 펄럭이고 있다. “중국은 비서방세계가 반드시 서방의 발자취를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저자는 2009년 10월 `환구시보` 사설을 인용, 중국이 다른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무너져갈 거란 예측이 깨진 서방의 당혹감을 대신 전했다. 그리고 애써 서방의 편견이 저질러온 그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중국 공산당과 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서방을 닮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서방은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 성장모델이 지금처럼 지속될 수는 없을 거라 내다봤다. 당이 투자로 얻은 이익을 인민들에게 얼마나 어떻게 내줄 것인가가 향후 경제개혁에 절대변수가 될 거란 판단에서다. 그러나 중국이 쓰러지든 더 큰 위세를 떨치든 그 변화에 따라 세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데는 이견을 달지 않는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원유를 탐사해도 첨단 휴대전화의 표준을 만들어도 반드시 중국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벌어질 모든 세계 논쟁의 핵엔 늘 중국이 있을 거란 말이다. 당연히 그 중심엔 자신들 방식으로 세계에 치솟겠다고 선언한 중국 공산당이 있다.
2012.03.08 I 오현주 기자
갈대꽃 꽉 잡은 게, 장원급제 염원이…
  • 갈대꽃 꽉 잡은 게, 장원급제 염원이…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2월 28일자 25면에 게재됐습니다.▲ 단원 김홍도 `해탐노화`. 과거 급제의 축원을 담은 게와 갈대 그림이다. 절묘한 착상, 감각적인 기교, 알찬 내용이 어우러진, 화훼영모화 중 걸작으로 꼽힌다(사진=다섯수레).[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참게 두 마리가 다투고 있다. 서로 엉키듯 움켜쥐고 있는 것은 갈대꽃이다. 본래 게는 육식성이라 했다. 소소한 갈대꽃을 두고 야단을 벌일 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의 이러한 행태에는 분명 사연이 있을 것이다. 등에 딱딱한 껍질을 쓰고 있는 게를 한자로는 `갑(甲)`이라 했다. 이는 선비가 염원하는 `갑`자와 다르지 않았는데, 그건 바로 조선시대 과거시험 합격 등급이다. 갑과, 을과, 병과 중 1등 장원이 바로 갑과였다. 결국 게를 그린 그림은 갑과로 합격하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게와 갈대는 단원 김홍도(1745∼1806)가 그린 `해탐노화(蟹貪蘆花)`다. 누군가의 과거 급제를 바라는 마음을 먹 하나의 농담으로 호방하고 활달하게 그려냈다. 곁에 붙인 거침없는 행서도 의미가 단순치 않다. 당나라 시인 두목이 읊은 게에 대한 시 한 구절에서 따왔다. “바다 용왕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다(海龍王處也橫行)”다. 임금 앞이라고 눈치 보지 말고 소신 있는 사람이 되란 뜻이다. 간송미술관에서 상임 연구위원으로 있는 백인산이 우리 옛 그림을 다시 살핀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120쪽, 다섯수레)를 냈다.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그린 `화훼영모(花卉翎毛)`화 22점과 매난국죽의 `사군자(四君子)`화 30점을 뽑아 눈높이를 대폭 낮춘 설명을 달았다. 한점 한점을 마치 도록처럼 게재하고 그림들이 품고 있는 선비의 내면과 성정, 배경과 뒷이야기까지 풍성히 풀어놓는다. “형식이나 양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림 안에 담긴 화가의 마음과 정서를 읽어내는 것이 한 수 높은 안목.” 굽이굽이 그림 세워둔 길목 끝엔 도움말 한 토막 차분히 붙였다.
2012.02.29 I 오현주 기자
中 시진핑 시대 조용한 변화 지켜보라
  • 中 시진핑 시대 조용한 변화 지켜보라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2월 23일자 26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은 2019년 10월1일. 중국 베이징에 10년 전과 다름없이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열린다. 잠시 후 톈안먼 누각 가운데 선 시진핑 국가주석이 격앙된 어조로 중요 선언을 발표한다. “오늘 중국은 세계에 우뚝 솟았다.” 지난 2009년 바로 그 자리에 섰던 후진타오는 “중국이 세계의 동방에 치솟아 있다”고 외쳤었다. 더 이상 `동방`이란 한계가 필요 없게 된 극적인 순간. 물론 이는 한 편의 시나리오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로 믿고 있다. 중국의 드라마틱한 성장이 배경인 이 다큐의 주인공은 시진핑. 그의 정권 말기가 되는 2019년 `미-중 역전`의 시기를 맞는 것이 엔딩이다. 올해 가을 중국 정부는 시진핑을 정점으로 하는 제5세대 지도부를 출범시킨다. 제4세대 후진타오의 후임으로 공산당 총서기가 되는 시진핑은 이듬해 3월엔 국가주석에 취임한다. 이 변화에 맞춰 중국 차세대 지도자인 시진핑을 향한 세계 각국의 시선이 뜨거워졌다. 앞으로 10년, 중국의 향배가 그의 눈과 발에 달려서다. 중국과 어떻게 친해질 것인가가 저마다의 심각한 고민이 됐다. 2007∼2011년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저자가 시진핑이 움직이게 할 중국 정치체제와 경제상황, 사회구조와 대외정책을 먼저 들여다봤다. 우선 시진핑의 통치 키워드를 뽑았다. 하나가 `민(民)`이다. 2010년 공산당 간부 양성학교에서 그가 `마르크스주의 권력관`에 대해 피력한 것을 주목했다. “권력은 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란 지론이다. 다른 하나는 `유온(維穩)`. 안정유지란 말이다. 그러나 유온은 사회불안을 억제하고 치안을 유지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공산당 일당 지배를 공고히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경제·국제관계의 안정은 죄다 `일당 지배체제 견지`라는 목표에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보다 구체적인 분석을 위해 저자는 `중국 모델`이란 개념을 꺼내 설명틀로 삼는다. 정치적으론 일당 지배로 민주화를 통제하며 경제적으론 관이 주도하는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한 통치형태다. 물론 이 모델은 쉽게 붕괴하지 않을 거라 했다. 부패나 빈부격차가 심각하지만 인적자산에 얹힌 단단한 경제력 덕에 통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공산당이 일당 지배체제를 이어갈 수 있는 관건은 향후 경제발전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시진핑의 중국이 공식적으로 취하게 될 제스처는 `다극화`다. 하지만 그 속내는 미국과 중국, 그 아래 놓인 일본·러시아·유럽연합 등으로 구성된 질서에 있다. 이 파워게임 아래 생겨날 수도 있는 국제사회와의 마찰쯤은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라 전망됐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국가에 대한 중국의 염려는 적잖다. 국경에 사는 200만 조선족의 민족의식을 자극하고, 결정적으로 티베트나 위구르 등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에 미칠 영향력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을 `거대한 코끼리`로 비유했다. 상처를 입어도 일부일 뿐, 티베트 소요나 반일시위 등은 한줌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게다가 이 거대한 몸뚱이는 6개월 단위로 변신까지 거듭한다. 변신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부분 균형의 함정`을 경계하라고 이른다. 특정 분야에선 옳아도 일반적으론 틀릴 수 있다는 거다. 중국 미래 방정식을 푸는 데 필요한 제1법칙이다. ▶ 관련기사 ◀☞기술의 진보로 끔찍한 미래가 온다
2012.02.23 I 오현주 기자
기술의 진보로 끔찍한 미래가 온다
  • 기술의 진보로 끔찍한 미래가 온다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2월 16일자 26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최소한 세 가지 신기술이 지금 세기가 채 끝나기 전 인류를 전멸시킬 가능성이 있다. 나노기술, 인공지능, 생명공학이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하다. 이 기술들은 인류를 살려낼 구원투수가 아니었던가.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한치 앞을 못 보는 순진한 발상이다. 자기복제와 증식이 가능한 나노기계는 세상을 복제생물로 뒤덮어버릴 때를 반드시 만든다. 인공지능이 장착된 똑똑한 컴퓨터들은 지구를 지배하려 들 수도 있다. 생명공학은 인구폭발과 동의어다. 유전자를 골라 태어난 아이들은 노화가 늦어지고 죽음에 임박해선 죄다 액체질소에 얼려진 상태로 해동될 날만 기다린다. 삶과 죽음 사이의 중간단계를 설명할 철학이 필요할 지경이다. 먼 미래의 일 같은가. 불과 30여년 뒤 2050년이면 이 척박한 시나리오는 본격화된다. 물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산타클라라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곧 실체를 드러낼 이 SF영화 같은 현실에 먼저 들어섰다. 미지의 미래에 이슈가 될 요소들을 기술·경제·법적 측면에서 낱낱이 해부한다. 하지만 앞서 그려냈듯 책엔 저자가 쏟아낸 냉소와 의심이 가득하다. `미래 그림`에 늘 따라붙는 희망은 대부분 배제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비딱하다. 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불확실성을 먼저 본 탓이다. 저자는 개인정보의 처리와 기술, 전자화폐가 통용될 때 세금을 징수하는 일, 우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법적 지위 등을 고민한다. 해결이 더욱 만만치 않은 문제도 있다. 정보로 뒤엉킨 실리콘 두뇌를 장착한 인간을 인간이라 불러도 되는가. 만약 된다면 이들에도 특허권·재산권 따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어떤 미래는 매력적이지만 어떤 미래는 끔찍하다는 거다. 지능 컴퓨터가 범죄를 더욱 지능화시킬 것이고, 해킹과 보안의 싸움은 가히 전쟁 수준이 될 것이며, 사랑의 감정조차 `애착형성 화학약물`로 급조될 것이다. 많이 봤던 풍경을 떠올려보자. 한 경찰관이 차를 세우더니 수색을 하겠다고 한다. 운전자는 `왜?`라고 묻는다. 경찰관은 `살인혐의 수배자와 얼굴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경찰관이 뭘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몇십 년 뒤면 아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투명해진다. 19세기 사상가 제라미 벤담이 고안한 `파놉티콘`이란 원형감옥을 상상하면 수월하다. 갇힌 수감자들이 서로를 감시하는 감옥. 미래의 `투명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찰이 시민을 감시하지만 시민도 경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프라이버시가 없는 사회”다. 이 안에선 개인정보를 캐내고 또 지키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다. 저자의 미래 세계엔 국가보단 시장이 더 중요했다. 이런 논리다. 컴퓨터 범죄 중 가장 골치가 아픈 해킹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해킹을 예방하려면 해킹을 범죄로 보지 않으면 된다. 덕분에 해킹이 활발해지면 이를 차단하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것이고, 여기서부턴 국가가 신경 쓸 범죄가 아닌 시장의 문제가 된다. 법적 보호를 기술적 보호로 대신하란 얘기다. 다소 급진적이라 할 해결책은 하나 더 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투명성을 보편화하면 된다는 거다. 2050년 책이 비춘 하늘은 어둡고 우중충하다. 그곳엔 약속과 위험이 공존한다. 기술의 장래가 재앙일 수도 있다는 지독한 경고다.  
2012.02.16 I 오현주 기자
 경제고전 외
  • [새 책] 경제고전 외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2월 9일자 26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문화부] 경제고전 다케나카 헤이조|280쪽|북하이브 애덤 스미스가 살아있다면 오늘날 경제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 상황을 막론하고 공공사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했을까. 고전이라면 응당 시대를 뛰어넘는 위상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늘 돌변하는 경제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인가. 스미스의 `국부론`, 맬서스의 `인구론`,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 등 9인 경제학자의 저서 10권을 들춰보며 경제고전의 혜안과 한계, 현실경제와의 연결점을 찾았다.   음모는 없다! 데이비드 에러너비치|534쪽|시그마북스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갈수록 위력을 발하는 것이 이른바 `음모론`이다.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이 날조됐다는 이야기를 필두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CIA가 개입됐다는 이야기 등등. 영국의 저널리스트였던 저자는 역사 속의 각종 음모론의 허구를 파헤치고 나아가 음모론이 왜 각광받는지 그 배경까지 살핀다. 음모론이 우리의 역사관을 왜곡시켜 현재를 바라보는 관점까지 왜곡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무취미의 권유 무라카미 류|176쪽|부키 “직장인들이 전직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먼저 고려할 대목은 자기 능력을 따져보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제발 마음을 돌리라며 상사와 동료들이 나서서 붙잡는 사람이어야 전직이 합당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저자가 짚어낸 비즈니스맨을 위한 38가지 조언이다. 접대·메모·독서·협상·인맥 등 구체적 업무부터 역할·사죄·목표·세계화 등 상황적 문제까지, 일과 인생에서 주체로 사는 직장인의 삶을 정리했다.
2012.02.10 I 문화부 기자
세계 경제판 바꿀 새 왕좌는?
  • 세계 경제판 바꿀 새 왕좌는?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2월 09일자 26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1999년 미국 달러의 독주를 잠재우겠다는 움직임이 가시화됐다. `하나 된 유럽`의 상징, 유로존이 그 주체였다. 그들의 화폐인 유로화엔 장밋빛 희망을 새겼다. 그후 10여년, 숙원하던 미국의 독주를 드디어 잠재운 듯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호기롭던 유럽도 같이 저물게 된 거다. 독주 또 그 견제 세력까지 막아선 건 중국을 앞세운 신흥국들이다. 그 제3의 세력이 미국과 몇몇 국가들로 깔끔하게 구획됐던 경제지도를 복잡하게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지구촌 경제를 돌리던 축이 옮겨가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의 지형이 뒤바뀌고 있다. 한마디로 `선진국 추락 신흥국 부상`이다. 국내외 경제·정치상황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4명의 현직기자들이 이 추세를 따라잡았다. 하나뿐이던 `태양` 미국이 저물며 격렬하게 벌어지는 왕권 다툼, 칼 같던 경제질서가 어그러지며 대립각을 세우는 국가들, G7에서 G20으로 확대된 글로벌 지배구조의 새판 짜기 등 어지러운 정세를 세세하게 짚어냈다. 가장 큰 관심은 `새로운 축`이다. 달러·유로화의 추락으로 앵글로색슨 자본주의가 정말 붕괴할까. 그러나 우려가 현실인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신흥국에 재정지출을 늘리라고 선진국이 생떼를 쓰는 일, 중동의 한 실직 청년의 죽음까지도 결국 미국을 때리게 되더라는 거다. 연관성이 희박한 요소들조차 미국 자본주의에 구멍을 내는 나비효과란 얘기다. 발단은 미국 발 금융위기지만 파급력은 도미노급이었다. 그리스·이탈리아·포르투갈 등의 재정위기는 유럽 전체를 흔들고 있다. 당장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어떻게 불어갈 것인가도 관건이다. `아랍의 봄`은 유럽을 거치면서 `미국의 가을`로 이어졌다. 서쪽으로 전진하던 항거물결은 뉴욕서 정점을 찍으며 탐욕스런 1%에 대한 99%의 분노가 됐다. 그 사이 형세는 신흥국으로 기울었다. 중국·인도·브라질·칠레 등 신흥국들은 무엇보다 경제위기 탈출에서 극명한 속도차이를 냈다. 2009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3.5%, 유로존이 -4.3%, 일본이 -6.3%로 추락하는 사이 중국은 9.2%, 인도는 6.8% 성장했다. 브라질조차 -0.6%에 그쳤다. 그렇다면 혼돈의 경제판을 평정할 왕좌가 이들 신흥국에서 나올 것인가. 강력한 후보는 역시 중국이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옮겨가는 권력이동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은행으로 교차되는 산업 변화에서도 중국은 핵이다. 2011년 현재 중국의 공상은행은 시가총액은 물론 영업이익에서도 세계 1위를 꿰찼다. 물론 중국 대세론에 부정적 시각이 없는 건 아니다.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은 “중국은 인구구조 변화 때문에 세계 대권을 노려보기도 전에 성장엔진이 꺼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저축률도 높고 실업률도 낮은 편이지만 고령화시대의 질곡인 `사라지는 젊은층 일자리`가 결정적 위험인자란 거다. 더 나아가 `일극`의 구심점이 없어진 세계가 다극을 넘어 무극의 G0시대가 될 거라 점치는 이들도 있다. `불확실성`만이 확실한 세상으로 가는 길에 맞닥뜨린 사안들이 총망라됐다. 그 논점에 붙인 150여개 그래픽과 일러스트가 빠른 이해를 돕는다. 책의 미덕은 첨예한 이슈들을 줄줄이 꿰어내 돌아가는 판도가 한눈에 들어오게 만든 데 있다. 시사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든 전문 경제지식이 필요하든 아니면 저자들의 의도대로 경제권력이 이동하는 좌표값을 구할 매핑을 하든 부족하지 않다.
2012.02.09 I 오현주 기자
`취업 유목민` 노동시장 흐름 바꾼다
  • `취업 유목민` 노동시장 흐름 바꾼다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2월 02일자 26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50세 이상의 베이비부머를 부모로 뒀다. 23∼35세에 포진해 있으며 2개 국어쯤은 우습게 구사한다. 어떤 샘플링에선 100명 중 75명이 3개 국어를 했고, 10명은 4개 국어까지 능통했다. `다국어` 특성은 가정이 다국적인 덕도 있다. 당연히 여러 나라를 여행하거나 살아본 경험이 있다. 일을 하는 덴 사사건건 간섭받기를 싫어한다. 중요한 일을 보고하는 건 찬성하지만 최우선은 목표달성이다. 개인적인 브리핑을 좋아하고 상관이나 동료로부터 받는 피드백은 `비공식적 일대일`을 선호한다. 창조와 혁신이 무기다. 돈?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일순위는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도전이다. 이를 위해 언제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다. 이들은? `글로벌 노마드(Global Nomad)`다. `노마드`는 유목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고 이동하며 사는 사람 또는 그 습성을 이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글로벌`이란 명찰을 단 `노마드`들이다. 일을 찾아 세계를 떠도는 새로운 인종. `글로벌 노마드`는 취업 유목민이다. 자신을 베이비부머 세대의 글로벌 노마드라고 소개하는, 인력개발 컨설턴트인 저자는 국가를 막론하고 새롭게 등장한 취업문화인 글로벌 노마드 트렌드를 집중분석한다. 그리곤 지리적으로 어디든 옮겨갈 수 있는 이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글로벌 노마드가 국경을 허무는 취업혁명을 설명한다. 글로벌 노마드로 분류된 100명을 만나고 12명의 글로벌 기업 CEO와 인터뷰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핵심인재인 글로벌 노마드를 선호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봤다. 이들은 다국적·다언어·다인종·다문화로 무장한 채 세계 노동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한 CEO는 이들이 전체 수익의 20%에 기여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일 열심히 하고 성실하고 상사에게 깍듯한 것을 미덕으로 삼는 전통적인 직장인과는 차이가 있다. 조직에 대한 사명감이나 충성심도 기대하기도 힘들다. 저자의 문제제기는 여기에 있다. 이들을 다루거나 끌어들이는 데 과연 전통적인 잣대가 먹히겠느냐는 거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업들은 어떤 카드를 쓸 수 있겠는가. 글로벌 노마드의 가장 큰 관심은 복지혜택이었다. 특히 의료혜택이다. 포화상태인 선진국을 떠나 신흥시장으로 파견될 이들이 우려하는 게 개척지의 열악한 사회보장이란 것이다. 기업 내 관리시스템도 있다. 이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경력 개발이 필수적인 유인책이다. 여기엔 조직을 수평화하고 이들의 마인드를 이해하는 것도 포함된다. “영국서 태어났다. 프랑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 남아공으로 옮겨 갔다. 핀란드인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아내는 남아공, 두 번째 아내는 프랑스 국적. 2∼3년이 멀다하고 옮겨다니다 회사를 공동창업한 후엔 아시아로 갔다.” 이 노마드의 행적은 저자가 만난 100명 중 한 예에 불과하다. 물론 기성세대들에겐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특히 동양권 조직특성인 층층시하를 깨고 고위층 상사와 `맨투맨`을 시도하는 것도 거슬리고 `조금만 참아봐` 따위의 견인책이 안 듣는 것도 두렵다. 그럼에도 저자는 앞으로 5년 내 글로벌 노마드를 둘러싼 인재쟁탈전에 불이 붙을 거라 확신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이미 세계 유동인력의 거점이다. 그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말뿐이 아닌 진짜 `글로벌` 동력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나와 있다.
2012.02.02 I 오현주 기자
박완서가 던지고 간 마지막 선물
  • 박완서가 던지고 간 마지막 선물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31일자 30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마흔 살이란 늦은 나이답게 수줍게 문단을 두드린 게 처녀작 `나목`이었다. 사적인 경험을 우려낸 작품이니 유니크하지만 등단작으로 끝나는 일회적인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한 심사위원의 조심스 러운 전망이 기억에 남는다. … 초기에 쏟아낸 6·25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 대해선 비극적인 가족사를 반복적으로 우려먹는다는 평도 들었지만 나는 반전소설로 읽히길 바라고 있다”(`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중에서). 작가 박완서(1931∼2011)를 평생 옥죄던 질곡이 있다. 상처라는 말로는 어림도 없다. 그는 전쟁통에 오빠를 잃고, 훗날 남편과 막내 외아들마저 앞세웠다. 역설적이게도 이 질긴 속박은 그의 문학에 태동이 됐다. “소설로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고통을 이기는 힘이 됐다”고 했다. 쓰고 싶다는 욕구는 그 자신이 표현한 `이물감`처럼 서걱거렸다. 그리고 40년을 문단에서 살았다. 소설은 질곡도 도려내고 이물감도 빼낼 소통이었다. 그 한 덩어리가 엉켜 있는 선생의 마지막 단편들이 소설집 `기나긴 하루`(292쪽, 문학동네)로 묶였다. 선생의 타계 1주기를 기리는 소설집이다. 선생이 남긴 세 편의 단편과 함께 평론가 김윤식, 소설가 신경숙과 김애란이 추천한 세 편 등 모두 여섯 편을 실었다. 선생의 세 단편은 말년 작품들로 문예지엔 발표했지만 책으론 미처 묶이지 못했던 것들이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2010), `빨갱이 바이러스`(2009),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2008)가 처음으로 한 권에 들었다. 여기에 김윤식은 `카메라와 워커`(1975)를, 신경숙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3), 김애란은 `닮은 방들`(1974)을 대표작으로 추천했다. 세 사람은 선생을 향한 탄식을 따로 붙여 남은 비통을 전했다. 선생과의 엉킨 첫 만남을 회고하며 김윤식은 이렇게 썼다. “이래서 억울하고 저래서 억울한 법. 팔십쯤 되면 이 경지에 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하늘은 내 이런 질문을 앗아가고 말았소.” 신경숙은 조금 더 간곡하다. “아주 오래전, 십오 년도 전에 당신이 제게 `신경숙씨, 보셔요`라는 제목으로 쓰셨던 글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뒤늦게 이 글의 맨 앞에 `박완서 선생님, 보셔요`라고 씁니다.”  요즘 출판계가 분주하다. 1주기 언저리로 선생의 등단작인 장편 `나목`이 500권 한정판(열화당)으로 나왔고, `박완서 소설전집`도 22권으로 재출간(세계사)됐다. `기나긴 하루`는 그 위에 얹은 마지막 돌덩이다.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는 기둥은 이렇게 세워졌다.
2012.01.31 I 오현주 기자
금 `화폐의 왕` 옛 영화 되찾을까
  • 금 `화폐의 왕` 옛 영화 되찾을까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26일자 27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19세기 말 어느 날 찰리 채플린이 동료들과 가죽코트를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때 한 행인이 반쯤 피운 담배꽁초를 거리에 던지자 채플린은 반사적으로 꽁초를 주워 든다. 그 모습을 본 동료가 반짝거리는 시가 케이스를 흔들며 외친다. “이봐, 우린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이들은 바로 얼마 전 금광을 발견했다.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펼쳐지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 `골드러시`는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금맥을 좇는 광란의 행렬을 이끈 후 금을 향한 열기는 다시 알래스카로 번졌다. 1800년대 후반 미국서 10만명 정도가 알래스카로 갔고 4000명은 황금을 발견했으며 그 중 400명은 큰 부자가 됐다. 인간들의 금빛 열망, 그 정점이었다. 중국 경제칼럼니스트이자 경영컨설턴트인 저자가 인류 손에 쥐어진 금의 굴욕과 영화의 일대기를 들여다봤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공간을 망라해 금이 인류사에서 갖는 역할을 투시했다. 무역의 핵심도구였던 배경, 경제보단 정치의 메커니즘에 휘둘려야 했던 상황, 금을 중심으로 변화한 제도들까지 금을 축으로 세계사를 꿰뚫는다. 금화가 첫 등장한 것은 기원전 6세기. 리디아 국왕 크로이소스가 만들었다. 이후부터 금화 사용국은 늘어났지만 대중에까지 보급되진 못했다. 상황이 뒤바뀐 건 17세기 중반. 영국이 금융체계에서 금의 지위를 강화하면서다. 금 세상은 200여년간 이어지지만 2차대전 이후 부상한 미국경제로 인해 이내 깨지고 만다. 달러가 금융을 장악한 것이다. 미국 달러는 금과 태환이 가능한 유일한 화폐가 됐다. 하지만 달러의 금융패권이 종말을 맞게 될 거란 전망이 고개를 빼든 건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황금창구를 폐쇄하면서다. 미국이 더 이상 금 태환의 대가를 짊어질 필요가 없어지던 그 순간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은 무한대로 법정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된 거다. 화폐는 늘어났고 덩달아 부채도 쌓여갔다. 조폐기를 돌릴수록 국채도 마구 늘어나, 2008년 미국의 부채는 10조달러를 상회하기에 이른다. 금의 진가가 다시 발휘된 것은 이즈음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금값이 폭등해 이틀 사이 온스당 110달러가 넘게 오르게 된다. 금은 당시 모든 자산이 절반 이상 폭락하는 중에도 3%가 상승했고, 그 폭은 2009년에는 27%, 2010년에는 25%에 이른다. 저자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자체도 달러와 금의 연계가 붕괴된 탓이라고 주장한다. 순수한 법정화폐제도 아래선 악성인플레이션이 뻔한 수순이란 것이다. 해결은 금본위다. 황금만이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의 자산을 보호하며 사회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역설이다. 금만이 무한한 권위를 지닌 비축자산이라는 데 책은 몰표를 던진다. 너무 유동적이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통화를 안정시키는 궁극적인 금융자산도 금이라고 방점을 찍는다. 다만 금이 그 옛날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한 발 물러선다. “달러나 유로화가 지불수단으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한 번 더 재량권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막연하고 맹목적인 측면이 없진 않지만 한낱 `금속 덩어리`를 주역으로 세운 대하드라마를 따라잡는 재미가 적잖다.  
2012.01.26 I 오현주 기자
"한국은 후발 국가 길잡이"
  • "한국은 후발 국가 길잡이"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19일자 27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18세기 중후반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1750년이라고 하자. 이 혁명은 2차대전이 끝난 1950년까지 200여년에 걸쳐 진행됐다. 1750년 대부분 사람들은 1950년을 살던 85%와 비슷하게 살았다. 특히 1750년에서 두 번째 100년이 되는 1850년부턴 나머지 15%가 성장의 수혜를 독차지했다. 세계경제가 상위 15%를 위한 제로섬게임을 펼치던 `분리`의 시대였다. 상황이 급변한 건 2차대전 이후. 일본과 브라질 등이 치고 올라오면서 선진국의 산업혁명과 신흥경제국의 드라마틱한 성장이 `공영`을 시작한 거다. 거칠게 계산하면, 1750년 이후 세 번째 맞은 100년 중 절반이 그랬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머지 50년은 어떤 모습일 것인가. 한마디로 `선진국과 신흥국이 닮아간다`. 두 성장 주체가 융합(convergence)해 세계인구의 60%가 풍요의 세상에 합류하는 `공생`의 시대다. `착한 전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시 50년 뒤가 되면 세계인구 75% 이상은 선진국에서 살게 된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소비와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하는” 나라 말이다. 그렇게 정체에 빠진 선진국과 `폭풍성장`하는 신흥국은 한곳으로 수렴돼간다. 이 장밋빛 진단은 2001년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공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 뉴욕 스턴경영대학원 교수가 내놨다. 책은 그가 글로벌 미래 낙관론으로 다시 그려낸 세계 `부의 지도`다. 도대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성장세에 오른 신흥국이 답이다. 신흥국을 키운 건 세계경제 출범이었다. 국가 간 재화와 용역의 교환이 가능해지고 자본의 흐름이 늘어났으며 무엇보다 지식과 기술이전이 한몫을 했다고 분석한다. 지난 50년과 다가올 50년을 아우르며 그려낸 세계경제 밑그림의 주역은 중국·인도·한국 같은 중소득국가들로 세웠다. 중국과 인도는 우선 인구가 `무기`다. 중국 13억과 인도 12억을 합치면 세계인구 40%가 움직인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음에도 이들이 세계를 들썩이는 대국이란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기대치는 가히 무한대다. 지구촌 곳곳에서 아우성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힌트도 이들 국가에서 찾는다. 경제발전적 프리즘만 들이대면 해답이 없다는 거다. 정치·사회·문화·환경적 차원을 포괄하는 미래경제 질서의 패러다임을 내다보라는 주장이다. 중국·인도보다 중소득국가 대열에 먼저 들어선 한국에 대해선 후발 국가들에 길잡이가 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발전시킨 실용주의적 시스템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메인키는 중국·인도에 쥐어줬다. 한국에 던진 건 보조키다. 반도체나 IT 발전상을 높이 평가하지만 결국 중국·인도의 성장동력에 좌지우지될 거란 이유에서다. 수출 창구가 넓어진다 해도 이들에 기술력을 추월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본 `넥스트 50년`은 신흥국과 선진국이 외다리에서 마주서야 하는 시기다. 그래서 신흥국에겐 1세기 여정 중 더없이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과제도 생긴다. 자원과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성장틀이 필요하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역할도 늘어난다. 풍요로운 컨버전스가 화려하지만 `미국은 갔다, 중국을 받들라`는 대세는 거스르지 않았다. ▶ 관련기사 ◀☞150세까지 산다면 좋기만 할까
2012.01.19 I 오현주 기자
150세까지 산다면 좋기만 할까
  • 150세까지 산다면 좋기만 할까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12일자 30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수명을 늘리려는 시도는 곧 저주였다. 생명연장을 꿈꾼 이들의 결말은 늘 비참했다. 최소한 문학작품들에선 그랬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이 그랬고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이 그랬으며 괴테의 `파우스트`(1831)도 다르지 않다. 역사에선 유독 철권 통치자들이 목숨에 집착했다. 진시황은 수은을 명약이라 생각했고, 알렉산더 대왕은 젊음의 샘을 찾았으며, 이도저도 못 건진 헨리6세는 연금술사를 불러 불로장생 약재를 제조케 했다. 그런 수고가 헛되지 않은 덕인가. 젊음의 샘이나 연금술사 없이도 인간은 감히 150세를 넘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50세 삶이 정작 인간에게 득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미래학자면서 공학자인 저자가 150년을 사는 인간세상을 살폈다. `삶과 죽음의 관계를 과연 과학기술이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의구심에 대한 확언이다. 대답은 “예스!”다. 오래 살게 되면 삶이 더 고달파질까 덜 고달파질까에 대해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세세히 짚어내지만 전체적으로는 낙관적이다. 청사진의 근거는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에서 찾았다. 결정적 한 가지가 `유전자 치료`다. 새 DNA를 추가해 유전자를 교체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원래 DNA의 발현까지 억제할 수 있다. 게다가 생명을 늘려주는 `라파마이신`이란 신약은 이미 쥐실험까지 마친 상태다. 암컷은 14%, 수컷은 9% 정도 건강생명을 늘렸다. 기술발전도 눈부시다. 그 중 하나가 `기관 프린팅`. 2010년 `타임`이 뽑은 `올해 최고의 발명`이기도 하다. 흔히 알고 있는 프린팅과 다르지 않다. 다만 잉크 대신 세포들이 프린터에 들어간다는 것, 종이가 아닌 생분해성 물질 위에 인쇄를 한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인쇄된 세포층을 프린터가 켜켜이 쌓아 찍어내면 이내 3차원 형상이 만들어진다. 이 특허를 보유한 오가노보 사는 이 해 12월 떠들썩한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인간혈관을 프린트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유토피아만 있겠는가. 디스토피아의 암울도 만만치 않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나타날 현상 중 흥미로운 건 가족의 해체, 결혼형태의 변화다. 저자는 이를 `연속 일부일처제`로 정리한다. 결혼 혹은 싱글의 중간 중간에 누군가와 같이 사는 기간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는 거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데, 100세의 누군가가 30세와 교제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다면 자녀 간 터울은 최대 70세까지 벌어질 수도 있다. 수명이 길어질수록 인간관계는 엉키고 복잡해진다. 이뿐만 일까. 사람 귀한 줄 모르니 인권은 실종될 것이고, 석유가 아닌 유전자 때문에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빈부격차는 생명격차로 재생산될 수도 있다. 어렵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재미만으로 볼 수는 없다. 150세, 혜택보단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걸 집요하게 일깨우는 탓이다. 대책이 없다면 `백수를 누리다`는 새드엔딩일 수 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고민 또한 길고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2012.01.12 I 오현주 기자
"롬니 지지자들은 오바마 비판書 좋아해"
  • "롬니 지지자들은 오바마 비판書 좋아해"
  • [이데일리 민재용 기자]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인 미트 롬니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정치 노선과 유사한 내용이 담긴 책을 더 선호할까?" 추측은 가능했으나 실제 검증이 어려웠던 이런 질문에 이제 답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이 전 세계 페이스북 사용자의 관심과 동향을 수집 및 분석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위즈덤`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실제 각 후보의 지지자들은 그 후보의 정치 성향과 비슷한 내용이 담긴 책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공화당 내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미트 롬니의 지지자들은 필 커펜이 지은 `민주주의의 부정`(사진)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존 닷컴의 서평에 따르면 이 책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민과 의회를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서로 어떻게 하면 그를 막을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있는 서적이다. 지난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공화당 내 보수파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돌풍을 일으킨 릭 샌토럼의 지지자들은 `새로운 미국 티파티`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책은 복지 예산 등 미 정부의 과도한 지출이 국민의 세금 증가로 연결되고 있다는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인 티파티의 정치 노선을 옹호하는 서적이다. 지난 경선에서 3위를 기록 역시 돌풍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 론 폴의 지지자들은 론 폴이 직접 지은 `혁명`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론 폴은 공화당원이면서도 자유주의에 입각한 다소 혁명적인 정책을 주장해 젊은 층으로부터 견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서 4위로 처졌지만, 아직 롬니의 최대 정적으로 평가받는 뉴트 깅리치의 지지자들은 `로널드 레이건, 운명과의 조우`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책은 공화당 출신의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평가하는 책으로 레이건 시대를 그리워하는 유권자들이 깅 리치를 지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012.01.09 I 민재용 기자
그들에겐 반란의 DNA 있었다
  • 그들에겐 반란의 DNA 있었다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05일자 26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손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의 손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열여섯 명 작가들의 손은 하나같이 거친 굴곡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글과 책은 유려한 손놀림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아니었다. 관념보다는 생존, 안위보다는 고통, 문학보다는 사회였다.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차별성 너머에 존재한다. 나는 권력의 한계에 대항하는 메커니즘으로 형성된 시스템을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정치혐오주의자일 것이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 가오싱젠은 파리에서 망명 중이다. 천안문 학살사건에서 착안해 쓴 `도망`으로 인해 그는 중국정부에 `찍힌` 인물이 됐다. “예술은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 `돈키호테` `카라마조프 형제` `햄릿`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작가는 메시아적인 자세를 취하면 안 된다. 나는 약속은 하되 거기에 어떤 희망도 심지 않는다.” 1982년 수상자인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마지막까지 매달린 것은 지구 숲 지키기다. `책이 숲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관이었다. 스페인 `라 반과르디아` 지 문학전문기자와 사진기자가 세계에 흩어져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찾아 인터뷰했다. 짧게는 6시간 길게는 8일에 걸쳐 열여섯 명을 만났다. 삶의 궤적을 더듬고 철학을 읽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리고 생활 구석구석을 잡아낸 흑백사진들 속에 그 `손`들이 있었다. 현대사에서 유독 가시밭길을 걸어온 이들이 묶였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들은 문학이 아닌 다른 어떤 이유로 사회참여를 하고 있었다. 노벨상과 삶의 안락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평온치 않은 이유를 책은 `반란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으로 봤다. 권력의 바닥에 깔린 속성에 대한 저항 말이다. 이들은 정부권력의 전횡에, 오만한 엘리트에, 자본주의의 횡포에, 여성학대에 분노를 품고 있다. 대학살, 독재정부, 인종차별정책의 반대말은 `반란`이었다. ▲ 사진=스테이지팩토리일본의 오에 겐자부로(1994년 수상)는 인간의 고통을 표현하는 전문가로 불린다. 격통에 빠져들고자 원자폭탄이 투하돼 신음하는 히로시마로 향하기도 했다. 계기가 있다. 1963년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받은 수술로 지적장애가 되고나서였다.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2006)는 극우주의자들로부터 받는 암살협박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 땅에서 100만명의 아르메니아인과 3만명의 쿠르드족이 살해됐지만 누구도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로한 뒤다. 미국 흑인의 힘을 상징하는 토니 모리슨(1993)은 여전히 남아있는 노예제도에 대해 말한다. 일을 하고 돈을 못 받는 것, 의지대로 일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노예제도와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 세세한 행적을 나열하지 않고 그들이 구축한 문학사적 의의를 따지지도 않았다. 만난 시점 바로 그 상태에서 들이댄 앵글에 비추인 그들의 삶, 혹은 삶과 괴리된 이상에 관해서만 말했다. 한국이 노벨상, 더욱이 노벨문학상에 매달린 지는 꽤 됐다. 한 번만 꿰차면 문단은 물론 나라가 흔들릴 형국이다. 그러나 노벨상이 과연 그런 것인가. 정작 수상자인 그들은 세상의 잣대와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책무가 너무 무거운 탓에 명예조차 들어올리지 못했다.
2012.01.05 I 오현주 기자
언론재벌 머독, 트위터 시작..`SNS 손뗀줄 알았는데`
  • 언론재벌 머독, 트위터 시작..`SNS 손뗀줄 알았는데`
  • [이데일리 임일곤 기자] 지난해 인맥구축서비스(SNS) 마이스페이스를 헐값에 처분했던 `미디어 황제` 뉴스코프의 루퍼트 머독(80) 대표가 트위터 개인 계정을 만들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루퍼트 머독의 트위터 대문 사진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뉴스코프의 대표인 머독은 지난달 31일 `@rupertmurdoch`라는 개인 트위터 계정을 열고 1일부터 SNS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머독이 SNS에 다시 관심을 보인 것은 단연 눈에 띈다. 머독의 뉴스코프는 지난 2005년 매입했던 SNS 마이스페이스를 작년에 헐값에 매각한 바 있다. 머독은 인터넷에 대해 "거만하고 포르노로 가득차 있으며, 도둑과 해커들이 모여 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카리브해의 섬 생바르텔르미섬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트위터를 통해 책 서평을 비롯해 정치적 관점 등을 짧은 글로 남겼다. 머독은 스티브 잡스 자서전에 대해선 "흥미롭지만 불공평하다"고 평가했고, 자신이 소유한 WSJ에 미 대선 후보 경선로 나온 공화당 론 폴 텍사스 하원의원에 대한 좋은 칼럼이 실렸다는 소개도 올렸다. 새해를 맞아 자기 자신에게는 "항상 겸손을 유지하고 호기심을 갖자. 물론 다이어트도!"라는 문구도 남겼다. 뉴스코프 자회사 20세기 폭스사가 배급한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 대해선 "훌륭한 가족 영화"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머독이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맞팔(서로 팔로잉하는 것)을 맺은 이는 `구글플러스(+)`로 SNS 사업에 박차를 건 구글의 래리 페이지 최고경영자(CEO)라 눈길을 끈다. 트위터에 입문한 소감에 대해선 페이지와 트위터 공동 창업자 잭 도시 등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머독이 트위터 계정을 열었다는 소식에 사흘 만에 5만6000명이 팔로워가 생겼다. 하지만 머독이 팔로잉하는 사람은 페이지와 잭 도시 등 현재 5명이다. 머독이 처음 트위터를 시작하자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은 진짜 머독의 것인지 의심했고, 뉴스코프 대변인이 이를 공식 인정하기도 했다.
2012.01.03 I 임일곤 기자
아파트 전문가 `성냥갑` 탈출하다
  • 아파트 전문가 `성냥갑` 탈출하다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1년 12월 28일자 27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아파트 전문가`로 알려진 두 건축학자가 단독주택을 지었다. `살구나무집`이라 이름 붙이고 윗집과 아랫집을 구분했다. 가족과 이사를 해 1년 남짓 살았다. 그 전 이들은 경기 분당과 서울 강북의 중형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다. 더구나 대학서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 주거건축에 대해 강의까지 하는 교수들이다. 그런 그들이 왜 아파트에서 내려와야 했을까. 책은 이 두 사람의 단독주택 이주기다. 왜 아파트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됐는지부터 땅을 보러 다니고 구하게 된 과정, 공사비 산정 협의, 착공·준공, 조경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현장을 스케치한다. 그러나 중점을 둔 건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이주한다는 행위 그 자체다. 때론 주거건축 전문가 입장에서 때론 살집을 찾는 주거민 입장에서 집짓기에 얽힌 이중의 역할을 풀어냈다. 두 저자가 가장 공을 들인 일은 적정 수준의 `보통의 집`에 대한 강조다. 보통의 정도는 `집장수의 상품`과 `건축가의 작품` 사이에 뒀다. 이들이 그 보통의 집짓기에 나선 덴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서 살겠다는 의지의 실현이다. 아파트공화국이 된 한국의 현실에서 `주거가 곧 아파트`라는 등식은 최소한 깨보자는 생각에서다. 이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것을 `내 집짓기`란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따자보자는 거였다. 여기엔 단독주택에 대한 견고한 스테레오타입을 깨는 일도 포함됐다. 집짓기에 나선다고 할 때부터 부딪힌 일관된 편견 말이다. 요약하자면 “전원주택을 지으시다니…”다. `단독주택=전원주택`이란 단단한 공식은 단독주택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낭만적이고 돌발적인 행태로 보게 했다는 거다. 또 다른 요소는 비용. 늘 듣는 이야기가 “돈 많이 모으신 모양”이었다. 과연 그런가. ▲ 살구나무집 ⓒ 박영채(사진=동녘)2011년 1월 두 저자가 입주해 들어간 집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아랫집 11억원, 윗집 8억7000만원이다. 토지구입과 공사비를 합해서다. 화제가 됐던 땅콩집보단 비싼 비용이었지만 `중산층 집짓기`로 봐도 무방할 것이란 데 의견을 모았다. 집짓는 데 들어간 자금이 분당과 중계동에 살던 40평대 아파트 한 채를 판 가격과 일치하더란 거다. `아파트와 바꾼 집`이란 공식은 그렇게 나왔다. 문제는 집짓는 비용이 아닌 아파트 시세였다. 물론 이들에 못 미치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저자들의 의견은 좀 다르다. 평수의 개념을 접는다면 누구든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 단독주택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중형이라면 서울 외곽에, 소형이라면 어디든 땅콩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살구나무집 모형 ⓒ 솔토건축(사진=동녘)이들이 짚은 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는 거대하게 조성된 밀집에 있었다. “우리나라 주거의 문제는 `아파트`가 아닌 `단지`”라고 단언한다. 환금성과 편리성을 보장하는 건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란 말이다. 더구나 아파트의 거주문제를 들먹이며 이를 단독주택 단지나 타운하우스 형태로 해결하려는 것 또한 답이 아니란 지적이다. 집짓기의 첫 발상은 아주 단순했다. 모든 이들의 꿈이 그렇듯 `마당 있는 집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독주택으로 내려왔다고 아파트에 반하는 태도를 취한 건 아니다. 무엇을 짓든 집짓는 일은 결국 사회를 짓는 일과 연루돼있더라는 그 얘길 하고 싶었다고 했다.
2011.12.28 I 오현주 기자
  • [동영상]''집이 무너진다'', 쓰레기 매립지 위 주민들
  • [이데일리TV 송원근 김성권 PD]                       언젠가 부터 예전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대구 서구의 평리 6동을 찾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의 마을 분위기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주민들의 항의 섞인 현수막을 시작으로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전봇대 그리고 서로 맞붙을 듯 기울어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주택들이 이곳의 심각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주민의 목소리는 “집이 기울어 져서 집수리를 여러 번 했는데 아무리 해도 계속 기울어졌다. 이상해서 조사를 해보니 이곳이 예전 쓰레기 매립장이여서 이런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이 동네 집들은 이제 팔리지도 않고 세도 안 들어온다. 쓰레기 냄새와 오염으로 공기가 안 좋은데 누가 여기서 살라고 그러겠냐.”라고 한숨 섞인 하소연이었다. 마을로 들어가 좀 더 가까이 살펴보니 1미터 이상이었던 집과 집의 간격이 이젠 거의 붙어 있을 정도로 양측이 기울어져 있다. 각 집들의 실내도 마찬가지다. 수도가 터지고 아귀가 틀어져 창문은 열리지 않고, 군데군데 물에 젖고 뜯어진 천장은 곧 무너질 듯 불안하기만 하다. 집집마다 벽이며 천장이 갈라지고 무너진 모습으로 주민들의 억장 역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평리 6동은 대구시가 1987년 농경지였던 지역을 주거지역으로 변경하여 1989년부터 새롭게 개발하여 탄생한 마을이다. 그런데 800여가구의 2천명이 넘는 주민 중 절반 이상이 집이 기울어지는 등의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상황의 원인이 다름 아닌 쓰레기 매립장 위에 마을이 건립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최근 진행 중인 서평리 지하차도 공사현장에서 대량의 생활쓰레기가 발견되면서 의혹은 더욱 커져갔다. 백승정 대구균형발전연구원은 “이곳을 조사해 보니 낮은 곳은 2.5미터 그리고 깊은 곳은 7미터 정도 깊이로 쓰레기가 매립되어 있다. 이렇게 매립지에 건축허가를 내 주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사례다.”라고 심각성을 말해준다. 백연구원의 도움으로 장비를 동원하여 주변 땅을 파보았다. 파낸 흙더미에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섞여 있었다. 파면 팔수록 쏟아져 나오는 검은 흙과 쓰레기 주변으로 심지어 썩은 물도 흐르고 있다. 기름까지 앉은 침출수에 주민들의 황당한 한탄이 터져 나온다. 쓰레기와 함께 나오기 시작한 침출수는 이미 웅덩이 수준이다. 혹시나 하고 우려는 했지만 드러나는 진실에 주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에 대해 정부의 대책을 듣기 위해 대구 시청으로 갔다. 대구시 담당 공무원은 예전 장부를 뒤적이며 “평리 매립장을 1981년부터 대구시에서 관리했다고 나오는데, 80년도 전에는 실제 관리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쓰레기 처리에 대한 책임이 구청장과 군수로 되어 있는데, 매립장으로 조성되어 관리한 곳이 아니라면 그 당시 구청장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사실 대구시에서는 4곳에 비위생 쓰레기매립장을 운영했었다. 그 중 한 곳이 평리동 일대라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대구시의 입장은 1981년부터 2년간 운영된 쓰레기 매립 부지에는 염색공단이 들어서 있고, 주택가는 매립지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구시는 관리기간 이후의 문제와 매립지역 이외 지역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런 사태의 원인이 마을 건립 전 토양을 다지기 위해 연탄재를 섞은 것이 문제의 원인인 것 같다고 예매하게 덧붙였다. 이연희 대구균형발전연구원은 “흙을 파는 순간 토양이 썩어있고 그 주변으로는 침출수가 흐른다. 대부분의 쓰레기들은 썩지 않는 생활 폐기물이다. 옷가지, 음식물 찌꺼기, 비닐 같은 것들 때문에 땅의 지하층까지 다 썩어있다. 이 땅위에는 사람이 살 수 없다. 이런 곳에 집을 짓도록 허가를 내준 정부가 지역 주민들 전부를 책임져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교원 경북대학교 지질학과 교수도 “80년대 초 쓰레기 매립지 관리에 관한 법률이 없던 시절에 허가 없이 쓰레기를 매립한 후 개인이 하나 둘 집을 지어 현재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 당시 쓰레기가 쌓여있는 걸 정부가 알았으면 흙을 바꾸던지 아니면 그 아래 토양까지 기초를 내려서 공사를 하던지 했어야 된다." 라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환경은 주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주민들은 크고 작은 통증을 호소하고, 눈곱이 끼고, 목이 아파서 말도 못하고 숨을 쉴 수조차 없다고 한탄한다. 특히 쓰레기에서 나오는 독한 가스를 마시고 살고 있기에 이곳에 사셨던 노인 분들 대부분이 오래 못살고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PD는 평리 6동 일대의 오염도를 측정하기 위해 한국환경수도연구원에 지하 5m 아래에서 침출수를 채취해 성분분석을 의뢰해 보았다. 분석결과 매립시설 배출허용기준 부유물질의 표준치인 70mg/L 대비 평리 6동의 경우는 17,190mg/L로 245배나 높게 판명되었다. 또한 CODMn(산화정도) 역시 1,120mg/L가 검출됐다. 이 역시 기준치인 100~150mg/L의 7배~11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속속 드러나고 있는 사실에 주민들은 고통 받고 있지만 대구시청은 이를 무시한 채 대책세우기에 뒷전이다. 누구의 책임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건강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빨리 평리 6동 주민들이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11.12.22 I 김성권 기자
왕의 꽃미남 수행원 정년은 16세
  • 왕의 꽃미남 수행원 정년은 16세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1년 12월 21일자 27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조선 중종 30년인 1535년 7월 대사헌 허항은 임금에게 심각한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한 주 전 궁궐의 꽃과 나무 관리를 맡은 장원서에 나가 화초와 기구를 점검했다. 그런데 보존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를 묵과할 수 없던 허항은 물품목록을 대조하려 했으나 장부마저 제대로 갖춰 있지 않았다. 결국 호조에 문제제기를 했다. 성종대 이후 작성된 장원서의 회계장부를 보내라 명했다. 그러나 호조도 비협조적이었다. 두세 번의 독촉이 이어지자 마지못해 장부대신 사람을 보내왔다. 산원(算員)이었다. 그는 장원서 장부가 아닌 작년 과일을 올린 회계장부를 들고 나타났다. 허항은 격노했다. 호조가 사헌부를 속였다는 것을 문제삼아 임금에게 보고를 올렸다. 자칫 호조의 하급관원인 산원이 다칠 뻔한 이 사건은 호조판서가 해임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사건에서 마치 호조의 허수아비처럼 비쳐진 산원은 실은 백성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실무자였다. 수학과 관련된 일을 한 명실상부한 전문직으로, 땅의 면적과 수확량을 측정하고 정부 물품을 관리했다. 일반 백성들이 탈 수 없는 말을 탔고 일반 관리들처럼 사모를 썼다. 그들의 말 한마디는 백성들의 세금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더 나아가 재산까지 좌우케 했다. 그러나 왕실과 고위관리 앞에선 꼼짝없이 죽은 척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하급관원이었다. 좀더 큰 권력과 밀착된 직업도 있다. 그들은 15세가 안 되는 나이에 임용돼 16세가 되면 퇴직을 해야 했다. 꽃미남이어야 하는 조건도 있었다. 중금(中禁)이다. 임금의 행차 때 길을 정리하는 것이 임무다. 낭랑한 목소리로 “상감마마 납시오”를 외치는 일이었다. 궁궐 밖에는 더 특별한 직업도 있었다. 호랑이 전문사냥꾼인 착호갑사(捉虎甲士)다. 수시로 출몰하던 호랑이로부터 백성들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그들의 직책이었다. 무예 실력 이상의 담력과 용기가 필수조건이었다. 조선왕조의 최말단에서 공무를 담당했던 관원들의 이야기다. 나랏일은 했지만 비주류였던 탓에 조선의 `비정규직 공무원`쯤 됐던 이들도 있다. 시간을 알리는 금루관(禁漏官), 통역을 담당한 통사(通事), 풍속 위반자를 단속하는 소유(所由), 세금운반선을 운행하는 조졸(漕卒), 고급정보를 빼오는 간첩(間諜) 등등. 책은 명칭만큼 생소한 조선의 하급관리 세계를 선명히 복원한다. ▲ 김홍도의 그림 `평생도` 중 하나. 한림 겸수찬이란 한 벼슬아치의 행차 장면으로, 그를 에워싼 이들이 구사(丘史)였다. 구사는 관리의 행차를 알리는 일종의 수행원으로 나라에 소속된 남자종이다(사진=너머북스).`조선시대 백성들에게 공권력의 실체는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으로 궁금증을 끌어냈다. 한국역사고전연구소에 재직하는 저자는 단연코 관료제의 언저리에서 일하던 말단 관원들이었다고 답한다. 그들이 병약한 왕권과 부패한 사대부가 지배하던 왕조를 500년 넘게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조선의 실핏줄 같은 존재였다는 거다. 역사는 기록으로 말한다는데 오히려 책은 많지 않은 기록에서 찾아낸 역사다. 왕조실록에 흔적은 있다지만 요새 신문의 사회면 단신처럼 취급되기 일쑤였던 내용들이 태반이었다고 했다. 앞뒤를 꿰어 맞춰야 어슴푸레 형태가 갖춰졌다는 저자의 토로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찮은 신분에 존엄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듯하다.
2011.12.21 I 오현주 기자
`대중이 곧 생산자` 웹 2.0시대
  • `대중이 곧 생산자` 웹 2.0시대
  •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1년 12월 21일자 27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장밋빛이냐 잿빛이냐. 정보화 사회의 미래를 두고 전망은 늘 엇갈렸다.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고 많은 이들이 그 혜택을 입게 될 거라는 예상이 장밋빛이다. 하지만 컴퓨터 네트워크가 소수의 권력층에게 사회전체를 통제하는 완벽한 수단을 제공할 거라는 잿빛 관측도 있다. 그렇다면 웹 2.0시대 구성원들의 뒤통수에 퍼지고 있는 후광은 장밋빛이겠는가 잿빛이겠는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저자의 생각은 장밋빛에 가깝다. 장밋빛의 근거는 창조다. 대중을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본 것이다. 창조하고 협력하는 건 수천년 간 인류가 기꺼이 해오던 일이다. 웹 2.0시대라고 해서 몇몇 엘리트의 영역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책은 무한증식하는 소셜네트워크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전략을 따지는 발빠른 분석서와는 차이가 있다. 이 지점에서 끌어낸 것이 커넥팅이다. 유튜브를 제작하고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는 현대인이 창조자일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과 연결돼 소통하기 때문이란 거다. 그저 뭔가를 만들어내서가 아니다. 그리고 외친다. “꿀벌의 협업, `위키피디아`를 보라.” 창조는 본질적으로 연결과 소통을 지향한다. 보다 단단한 논지를 위해 저자는 아날로그를 거스른다. 빅토리아 시대 예술비평가 존 러스킨, 19세기 사회주의자 윌리엄 모리스, 1960년대 사상가 이반 일리치의 철학을 끌어내 연결과 협력이 인간의 본질이었다는 주장에 힘을 보탠다. `일단 무엇이든 만들어보라, 그것이 연결을 가져다준다.` 지나치게 낙관적인가. 허나 창조를 행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장밋빛이 아니었나.
2011.12.21 I 오현주 기자
1% `구라`를 향한 99%의 독설
  • 1% `구라`를 향한 99%의 독설
  • ☞ 이 기사는 12월14일자 이데일리신문 27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미국 부시 행정부가 흥미로운 계산을 했다. 블루칼라 여성이 결혼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몇 명의 블루칼라 남성이 필요할까를 따져본 거다. 2.3명이었다. 빈곤여성이 결혼만으로 가난에서 탈출하려면 2.3명의 남성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결론이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가난한 여성들의 결혼을 적극 권장했다. 그런데 과연 2.3번의 결혼까지 독려했을까.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위 1%의 판단이었다. 2000년대 후반 어느 날 미국 구직자들에게 도움이 될 긴급뉴스가 떴다. 노동통계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직종을 발표했으니 그에 맞게 이력을 수정하면 좋을 거란 얘기였다. 그런데 빠른 성장 직종 1위는 연봉 2만2880달러(약 2600만원)의 `소매 판매원`. 목록에 오른 25개 직종 가운데 3만달러 이상은 10개에 불과했다. 간신히 2만달러를 웃돈 건물잡역부, 간호보조사, 보조교사 등은 미국 경제의 향방을 보여줬다. 이는 “교육만 받으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던 상위 1%의 말과는 달랐다. 부자 나라나 가난한 나라나 할 것 없이 가진 것 없는 사람은 고달프다. 잘 안다. 그런데 상위 1% 초부유층이 이 가난을 적극 돕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더구나 그들이 사회적 안전망을 무너뜨리고 그 틈새로 빠져나온 부까지 챙기고 있다면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택대출금 이자도 최소 1%포인트 더 내야 한다. 자동차보험료도 저소득 운전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연 400달러는 더 낸다. 2006년 브루킹연구소가 발표한 `빈민 세금`이 그 근거다.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저자가 상위 1%를 겨냥해 숨 쉴 틈 없이 쏴붙인다. 빈부격차 고발은 기본이고 미국 중산층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의료제도, 사회적 불만을 억누르는 기제로 쓰이는 성·가족제도, 노동에 지친 이들을 어르는 종교 주술까지 낱낱이 고발한다. `초점 흐리기`는 상위 1%가 즐겨 사용하는 결정적 `꼼수`다. 본질을 알아챌 수 없게 만든다는 거다. 미국 빈곤층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불법이민이 그 결정적 예다. 1%가 보기에 불법 체류자들은 잔디를 깎고 사무실을 청소하고 가금류를 손질하기 위해서 국경을 넘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마약을 운반하고 사회보장혜택을 갈취하기 위해 이 땅에 들어온 것으로 간주됐다. 사회복지 축소로 높아진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기에 이만한 호재가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 특히 유행을 탄 주술적 사고도 있다. 욕구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비법서들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서점의 나머지 코너는 영국서 날아온 어린 마법사 얘기로 도배됐다. 공주의 판타지를 위해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버렸다. 그러나 그 믿음대로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 젊은 부부들은 미처 자동차대출을 받기도 전에 파산상태에 놓였다. 기본적으로 비딱하다. 하지만 정공법을 쓰며 쓴소리를 날리기보다 풍자와 반박을 동반한 유머로써 푸는 방법을 택했다. 99%를 대변해 미국 상위 1%에 날린 화살이지만 한국 1%에도 그대로 꽂힌다. 비난만큼 날카로운 대안이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2011.12.14 I 오현주 기자
조선시대 철학자들이 집을 지은 까닭은
  • 조선시대 철학자들이 집을 지은 까닭은
  • ☞ 이 기사는 12월14일자 이데일리신문 27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회재 이언적(1491∼1553)은 조선을 통틀어 가장 독특한 건축가로 꼽힌다. 그는 조선철학을 리(理) 중심으로 파악한 선구적 성리학자다. 하지만 그가 경주 양동마을에 지은 `독락당(獨樂堂)`에선 역설이 유독 돋보인다. `독락`의 뜻 그대로 남 들일 생각이 없었는지 폐쇄적인 대문을 세운 탓이다. 솟을삼문이 없고 중문이 두 개인 건축특성은 그의 정치·사상적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그저 기묘한 공간일 뿐이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반대파의 탄핵으로 40세에 벼슬자리에서 밀려난 후 울분을 안고 낙향해 지은 집이 독락당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집을 지었다. 건축가이면서 시인인 저자가 그들의 옛집 이야기를 한다. 이언적, 윤선도, 이황, 김장생 등이 직접 지은 집 9곳을 골라 답사했다. 철학자들이 집짓기에 나섰다는 걸 알린 일부터 생경하지만 그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까지 읽어낸 거다. 송시열은 죽은 왕의 집터를 잘못 잡는 바람에 정계에서 쫓겨난다. 괴산 화양리 금사담의 바위에 `암서재(巖棲齋)`를 짓고 은거한다. 하지만 그곳은 다시 벼슬길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암중모색의 집이었다. 이황은 가장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안동에만 다섯 채를 지었다. 집이 많았던 것은 그의 학문적 추이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도선서원에서야 그는 가장 완숙한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건축은 집에 한정되지 않는다. 집을 지은 사람, 그의 삶, 때론 그가 좋아하는 시 한편에 미칠 수 있다. 다 듣지 않고선 그 집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다. 책이 그렇게 말한다.
2011.12.14 I 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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